겨울 강가로 나가
십이월 들어 연일 최저기온이 빙점 근처로 내려가 쌀쌀한 월요일이다. 한 달 한 차례 당뇨약을 타는 병원을 찾아갈 일이 우선이라 반송시장으로 향했다. 마침 행정당국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창원 사랑 상품권을 판매한다는 날이라서 나도 신협 창구 앞에 줄을 서서 20만 원어치를 샀다. 그 금액을 사면 즉석에서 2만 원을 돌려주어 하루 점심값 정도는 공으로 생긴 셈이었다.
창원 사랑 상품권을 사 놓고 다니는 병원을 찾아가 혈당을 측정하니 식후 120 미만으로 안정된 편이었다. 그럼에 주치의는 종전과 같은 처방전을 끊어주어 약국에서 약을 탔다. 집을 나설 때 산책 차림이었기에 그 길로 동정동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사무소 앞을 둘러 주남저수지를 지니니 도래한 겨울 철새들은 갯버들 사이에서 오글거리며 잘 놀았다.
대산 일반산업단지에서 면 소재지 가술을 거쳐 모산과 제1 수산교를 지나 종점 신전에서 내렸다. 신전은 낙동강 강변의 전형적인 농촌으로 겨울철은 비닐하우스에서 특용작물을 재배했다. 풋고추와 수박을 촉성으로 길러 벼농사보다 더 높은 소득을 거두는 듯했다. 일부 구역은 당근과 감자도 심어 일찍 캐냈다. 강변 가까운 곳에는 창원 시민들의 식수원인 대산 정수장 시설이 있었다.
강둑 너머 둔치 여러 개 취수정에서 모래밭을 여과시킨 지하수를 퍼 올려 수돗물로 정수해서 시내 가정으로 공급하는 곳이다. 정문에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평범한 문구가 그곳에서는 사뭇 경건하게 와 닿았다. 정수장 곁 보조 둑을 따라 강 언저리 모래밭 경작지를 지나 대산면과 동읍 경계인 하옥정과 상옥정을 거쳤다. 옥정(玉井)은 예전 구슬처럼 맑은 물이 솟는 동네인 듯했다.
북면에서 김해 한림으로 뚫린 신설도로 상옥정 교차로에서 본포 수변생태공원으로 들어섰다. 자전거 길 따라 여러 그루 수양버들이 자랐다. 이른 봄부터 연두색 잎사귀가 돋으면서 포물선으로 가지를 드리웠던 수양버들은 서리를 맞고도 청청한 잎을 그대로 달고 있었다. 같은 버드나무라도 낙엽이 진작 져 나뭇가지가 앙상해져 부챗살처럼 펼쳤던 갯버들이나 왕버들과는 사뭇 달랐다.
점심때가 다가와 쉼터 정자로 올라 배낭의 도시락을 꺼냈더니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차가운 날씨였지만 소진되는 열량을 벌충하고 다시 길을 나서 걸었다. 초가을에 이삭이 패면서 은빛으로 일렁이던 물억새는 겨울바람에 몸통이 점차 날씬해졌다. 누가 겨울을 나는 물억새와 갈대를 구분 지어 이르기를 물억새는 몸매가 점차 가늘어지고 갈대는 지저분해진다는 말에 실감이 났다.
저만치 강심을 가로질러 학포로 건너는 본포교가 걸쳐 지났다. 강 언저리에는 내수면 어로작업에 쓰인 배가 몇 척 묶여 있었다. 볼에 스치는 바람이 차가울 정도라 유장히 흐르는 강물은 물결이 제법 크게 일렁거렸다. 둔치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구워 먹는 이들이 보였다. 본포교 밑의 수변 생채 보도교를 따라 벼랑의 양수장을 돌아 북면으로 향해 갔다.
학포 앞에는 창녕함안보를 빠져나온 물길이 잠시 머물러 강폭이 넓었다. 신천이 흘러온 샛강에는 가마우지가 연신 자맥질하면서 먹이활동을 했다. 북녘에서 같이 날아왔을 물닭은 작은 몸통에 앙증맞게 접영으로 헤엄치면서 놀았다. 가마우지와 물닭은 둘 다 깃이 새카맣지만 가마우지는 육식성이라 왕성한 식욕을 가졌으나 물닭은 수초를 뜯거나 수서 곤충을 잡아 먹는 정도였다.
북면 수변생태공원도 4대강 사업 전에는 푸성귀를 가꾸던 둔치 경작지였다. 생태공원으로 바뀌니 드넓은 둔치는 밀림이 연상될 만치 수풀이 무성했다. 그 가운데는 산야에서 가끔 보는 느릅나무도 섞여 자랐다. 한방에서는 느릅나무 뿌리의 껍질을 유근피라 이르는데 혈관계 질환이나 염증을 다스리는데 유용한 약재로 쓴다. 나는 준비해간 칼로 그 느릅나무 껍질을 몇 줌 벗겨왔다. 22.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