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에 벽송닙의 따뜻한 초대글을 보고 찾아 왔습니다. 앞으로 가끔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사로 오래 전에 썼던 제 졸작 한 편을 올립니다. >
대폿집 이야기
키작은 소나무
우리학교 뒷골목에 막걸리 집이 점점 늘어났다.
이제는 한 골목 전체가 막걸리 집으로 변해 전주 제일의 대폿집 타운이 되었다.
집집마다 안주도 특색이 있을 뿐 아니라 술값도 아주 싸고 모이는 사람도 다양하다.
그곳에 가면 언제나 활기가 넘치고, 정겨운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나는 그곳을 가끔 찾는다.
퇴근길에는 가끔 대폿집 앞에서 실랑이를 벌인다.
들어가서 딱 한잔씩만 하고 가자는 친구, 오늘은 일찌감치 집으로 직행하자는 친구, 이 쪽도 저 쪽도 아니면서 눈치만 살피는 친구가 있을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결국은 한잔씩 하자는 친구 의견이 채택되기 마련이다.
'그래, 딱 한잔씩만 하고 가지' 일행 모두가 의견일치를 보고 들어가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노란 주전자에 가득 담겨 나온 막걸리를 쭉 마시는 첫 째 잔의 짜릿한 그 맛은 마셔본 사람 아니면 알 수 없으리라.
잔이 몇 순배 돌아 취기도 조금씩 오르고 주전자가 가벼워 질 때쯤, 주인 아주머니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동태 냄비와 고등어조림까지 내 놓는다.
어느 장사가 이 안주를 놓아두고 벌떡 일어설 수 있겠는가.
자연스레 술은 한 주전자 더 시켜지고 일배 일배 부일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전자는 주방을 들락거리기에 바쁘다.
대폿집은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곳이다.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자리가 따로 없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에게도 똑 같은 안주가 나간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에게도 똑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얼큰하게 취한 순간만은 누구나 똑같이 포만감이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대폿집이다.
그래서 대폿집은 항상 활기가 넘치고 정겨운 사람 냄새가 난다.
보통 사람들의 신변잡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직장 이야기, 정치 이야기 뿐 아니라 북한의 핵문제며 이라크와 미국 전쟁 이야기까지 거론 못할 분야가 없다.
누구나 솔직한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대폿집이기도 하다.
서민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토론의 장이 어디 있으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만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너무도 끔직한 대구 지하철 참변을 당한 며칠 후, 우리 주당일행은 황당하고 허허한 마음을 달래고자 대폿집에 모였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안전 불감증 문제와 책임감 없는 기관사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탁자를 치며 함께 울분을 토했다.
참혹하게 변을 당한 희생자들에게 명복을 비는 숙연한 묵념도 올렸다.
조리사 자격 공부하던 엄마를 갑자기 잃고 고아가 된 세 아이의 이야기가 나와서는 함께 눈시울을 닦았다.
작은 정성을 모아 성금을 보내자는 한 친구의 제의에 따라 즉석에서 모금한 성금을 전한 것도 번쩍거리는 유흥주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드는 일이리라.
언제부터인지 고급 병, 사치 병으로 우리나라가 썩어가고 있다고 신문 방송에서 외쳐댔다.
고급 술집에서는 밤마다 수 백만 원 짜리 양주가 불티나듯 팔린다니 도대체 그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 달나라에서 뚝 떨어져 온 사람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비싼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대폿집에서 막걸리 마시는 사람들처럼 순수하고 소박하며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일까?
분명 아닐 것이다.
그네들의 이야기는 누가 죽든 말든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자기네 욕심을 채우고자 흉계를 꾸미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리라.
딸 같은 미성년 여아들에게서 돈으로 성을 사고 팔도록 강요하는 엉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드나드는 유흥주점.
새 정부에서 서민들을 위하는 정치를 한다고 했으니 술 마시는 문화도 확 바꾸었으면 좋겠다.
선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퇴폐 술집들을 모두 없애고, 가진 자나 없는 자,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힘있는 사람이나 약한 자들이 모두 함께 어울려 밝은 모습으로 술을 마시며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술집 문화로 바꿀 수는 없을까? 기분 좋을 만큼 얼큰하게 취해 대폿집 문을 나오면서 새로워질 내일을 기대해 본다.
2003. 2. 23
첫댓글 좀 건전한 음주 문화..... 제발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런지 ... 다들 너무해요. 다른 사람도 좀 생각해 주었으면 ... 전 토요일 일요일 저녁에 도봉산이나 북한산쪽에서 나오는 버쓰는 안 탑니다. 냄새가 너무 역겨워 ... 이유를 아시겠지요?
제가 대신해서 사과드릴께요. 저고 가끔 술 마시고 버쓰 탈 때가 있거든요.
문란하고 퇴폐적인것은 일부 아닐까요..나쁜것들이 지상파,신문에 부각되어 그런거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그렇지만 요즘 많이 만연되어 되가는것 같아 내심 걱정되구요..남자들 각성좀 하셔야 합니다...한잔술로 터놓고 삶을 론하고 애환을 래는것 꼭 술이 있어야 하는가...그런 반문을 해보곤 합니다...술없이 차 한잔으로도 충분히 우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눌수 있고 ,제가 편견이 좀..이런문제로 옆지기와 갑론을박 하며 정의에 죽고사는 왕고집파입니다..소나무님처럼 사람들이 산다면 세상에 법도 필요 없겠지요...나하나 내가정 이공간 사람들 그렇게 이어가노면 밝은 사회가 되리라 봅니다...
옆지기님 술 드시고 오실 때 칭찬 한 번 해 보세요.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날 아내한테 칭찬 한 번 들어 본다면 세상에 이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그게 소원 중에 제일가는 소원 일지 모른답니다.
술 끊고 칭찬 받으심이 쉬울듯..냄새부터 싫어 도망 갑니더..내게 인터넷 중독이라 말하듯 그도 중독 아닌가 ,서로 좋아하고 기는 樂을 인정 하고 이해로 가는 마당입니다...
그리고 조기 좋은글방도 다녀가셔유 ..오늘 따근따끈한 좋은글이 올라 와있답니다..매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네요..건안 건필 빕니다..
좋은 글방 들어가 보니 정말 좋은 글들 많네요. 자주 들릴께요. 감사합니다.
정말 훈훈하고 정감어린 대폿집의 낭만이 떠오릅니다. 대폿집하면 막걸리가 먼저 떠오르는데, 요즘 웰빙 바람을 타고 막걸리의 인기가 상한가라네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님의 글에 저극 동감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며칠 전 대폿집에 들렸더니 몇 년전 하고 또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훈훈한 인심도 변한 것 같고 막걸리 값도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얼큰하게 마시긴 했지만 훗맛이 씁슬 하데요
그렇지요~왕대포집 문화는 늘~훈훈한 기운이 감돌지요~좋은 글~돔감 하면서~늘~좋은글 올려 주세요~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