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작품(108) -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작가 ; 크누트 함순(1859-1952)
초판 발행 ; 1890
1920년 노벨상 수상
굶주림의 줄거리는 크리스티아냐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천재적이면서도 가난한 생활에 굶주리고 있는 주인공 시인이 영양실조 때문에 몽유병자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스치는 행인들에게 여러 가지 기묘한 말을 하고 지나간다.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갑자기 상냥스러워지기도 하며 또는 화를 내기도 하며, 정신의 고상함을 유지하면서도 너무나도 겹친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르지만 그러나 자기의 생활력을 소멸시킬 수는 없고 그리하여 모든 희망을 버리고 우연한 기회에 러시아 화물선에 고용되어 고향을 등지고 사라져간다.
<굶주림>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철저히 가려진다. 이는 주인공의 자의식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되었건 간에 4부로 구성된 함순의 <굶주림>에서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생존의 과제를 위해서 수반하는 필연적인 굶주림의 시련을 보여주는 방식은 각 부마다 동일한 과정을 거치고 위기를 넘기면서 시련이 봉합된다.
<굶주림>에서의 동일한 과정이란 이런 식이다. 먼저, 어느새 돈이 다 떨어진 주인공은 배가 고파진다. 배고픔의 심화과정이 자신의 내적 대화로서 이루어지고, 자기 자신의 물음에서 끊임없는 사유가 이어진다. 배고픔의 강도가 점차 세지면서 소설 속에서 강렬한 인상을 전달하는 클라이막스(그중에서 3부의 시련. 정육점에서 뼈다귀를 얻어다가 뼈다귀에 붙은 살점을 뜯고, 토하고, 뜯고, 토하는 과정은 이 소설의 백미였다.)로 치닫는다.
아무런 맛도 없었다. 뼈다귀에서는 썩은 피의 숨이 막힐 듯한 냄새가 나서 곧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또 뜯어먹어 보았다. 게우지만 않으면 무슨 효험이 있겠지. 일단은 배를 달래두는 것이 문제였다. 또 다시 게우고 말았다. 나는 화가 나서, 사납게 고기를 물어뜯어서 억지로 삼켜버렸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미친 듯이 주먹을 쥐었다. 한 수 없는 심정에 거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 되어, 무엇에 혼을 빼앗긴 사람같이 뼈다귀를 물어뜯었다. 나는 뼈다귀가 눈물에 젖어 더러워질 만큼 울고는 토하다가 저주하다가는 다시 뜯었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울었으니 또 게우고 말았다. 나는 큰 소리로 세상의 모든 권위를 저주했다. -166p-
각 부에 할당된 클라이막스 과정의 주인공의 내적 고뇌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그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신문사에 기고할 작품을 써내려가지만, 노력의 대가는 온전히 보답 받지 못한다. 그는 행운의 경로를 통해 삶을 연장할 돈을 얻지만, 한계를 인정하고, 일탈을 끝으로 그곳의 생활을 정리한다.
가난한 인텔리는 돈 많은 인텔리보다도 훨씬 더 세밀한 관찰자란 말이지요. 가난한 사람은 한 발 한발 떼는데도 주위를 살피고, 남들이 하는 말에 회의를 품고 들거든요. 한 발 한 발이 나의 머리와 마음속의 문제와 과제를 준단 말이오. 그는 귀가 밝고 감각이 예민하고, 경험이 풍부한 인간이고 그의 영혼은 낙인이 찍여 있지요. -186p-
<굶주림>은 두 가지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표면적으로는 극도의 굶주림이 인간의 이성과 판단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본질적으로는 내적 자아와 현실의 간극만큼의 괴로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두 질문이 만나는 지점에서 물음표는 되돌아온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총 4장으로 이뤄진 <굶주림>의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어둡고 괴롭다. 주인공은(정확한 이름도 없이 상황에 따라 남의 이름을 빌려 쓴다) 참기 힘들만큼 배고프면서도 체면을 지킨다. 남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면 염치없는 행동을 하는 자신을 보면서 괴로워한다. 자기만의 ‘생각 속에서는 아무 고민도 불쾌감도 없이 자질구레한 처지에서 멀어지지만 꿈에서 깨면 아직 살아있다는 게 슬퍼서 울 지경’(p.79)이다. 푼돈이라도 쥐기 위해 정신력으로 써 낸 논문은 퇴짜를 맞고, 통속적인 주제로 써 올 것을 요구받는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기에는 버거운 현실이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주인공의 이성이 욕구에 항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변을 밝히고 글을 쓰기 위해 초를 사러 갔다가 앞사람의 거스름돈을 받고도 모른 체하게 된 것이다. 그 돈으로 스테이크를 먹으러 간다. 그는 타협한다. ‘나라고 딴 사람보다 정직해야 하나?’(p.139) 그리고는 먹은 것을 게워낸다. 의학적으로는 너무 오랫동안 굶어서 기름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겠지만, 그는 양심의 괴로움을 토한 것이다. 결국 그는 최후의 도피처라고 생각했던 배에 올라 선원이 되어 돈벌이를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기를 잡는 대가로 쥐어지는 돈으로 위안을 삼을지, 흔들리는 배만큼이나 그의 고뇌도 폭풍처럼 거칠어질지는 알 수 없다.
. 배부른 돼지들에게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바보처럼 보일 것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겠다는 사람은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밥벌이의 지겨움과 경이로움에 탄복할 일이다. <굶주림>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영혼의 소설이라고 불리는데, 2013년 현재를 사는 독자의 영혼을 울릴 수 있을지 걱정이 든다. 이미 정신문명은 피폐화된 지 오래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무능하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첫댓글 <대지의 축복>이라는 작품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작가임에도 함순의 작품의 한글번역본이 <굶주림>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의 노년시절에 히틀러의 나치정권에 손을 잡고, 고국 노르웨이에게 도이칠란드와 함께 하기를 독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작품해설에서 전해주는 함순의 문학사적인 위치를 고려했을 때, 그의 <대지의 축복>을 접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크누트 함순(노르웨이어: Knut Hamsun, 1859년 8월 4일 ~ 1952년 2월 19일)은 노벨상을 수상한 노르웨이의 소설가이다. 1859년 노르웨이의 중앙부에 있는 구즈프란스다르라는 작은 농장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 15세 때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17세에 자비로 소설 『수수께끼에 찬 것』을 출판했으나 실패했고, 1883년 24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30세에 미국 문화의 비판서 『현대 미국의 문화 생활』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 몸을 다쳐 귀국했다가, 1886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890년 〈굶주림〉을 발표하여 이름을 떨쳤다. 체험에서 오는 심각한 심리 묘사는 도스토옙스키와도 비길 정도로 훌륭하다. 작품에 소설 《신비》, 《처녀지》와 희곡 《제국의 문턱에
말년에는 노르웨이를 침략한 나치 독일을 열렬히 지지하여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하였다
예술이란 굶주림의 예술, 혹은 결핍, 필연, 욕망의 예술인 것이다. 이 예술 속에서 확실함은 의심스러움으로 바뀌고 형태는 과정에 의해 밀려난다. 이제 임의적으로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만큼 어떤 명료성을 획득하려는 의무는 더 강해진다. 그것은 이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질문을 직접 살아 본 사람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노르웨이는 세 명의 노벨상 수장자가 있다.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는 크누트 함순(Knut Hamsun, 1859-1952)이다. 그는 노르웨이 신낭만주의의 출현을 상징하는 자전소설 <굶주림(Sult)>를 통해 문학계에서 유명세를 얻었다. 함순은 1920년 1917년에 출판된 <대지의 성장(Markens Grøde)>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함순의 작품들은 문명에 대한 깊은 혐오와 인간의 성취는 대지에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원시주의와 현대적인 것은 모두 불신하는 믿음은 그의 대작으로 여겨지는 <대지의 성장>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체로 문명에 거세게 대항하는 부랑자나 방랑자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함순의 공격적인 문체는 젊음의 상실에 대한 우울한 체념에 양보하게 된다.
그의 작품들은 노르웨이 고전 문학으로 꼽히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되는 노르웨이 문학 작품들이기도 하다. 호평을 받았던 <Enigma: The Life of Knut Hamsun>(한국 번역본 없음, 1987)에서 저자 로버트 퍼거슨(Robert Ferguson)은 함순을 지난 세기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창의력 있는 문학 스타일리스트로 꼽았다, 현존하는 유럽 및 미주 작가 중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크누트 함순은 40여 권의 책을 집필하였고, 그 중 다수는 고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굶주림의 예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크누트 함순을 두고,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여자들>에서 “크누트 함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였다” 고 말했다. 치나스키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던 어떤 여인의 마음을 함순 덕분에 아주 쉽게 사로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