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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가장 유명했던 납치 사건, 그리고 그 후
역대 가장 유명했던 납치 사건, 그리고 그 후
©Bruno Press/Getty Images
수많은 범죄 중에서도 납치는 가장 폭력적인 범죄 중 하나이며,
대개 폭력과 장기간의 신체 및 정신적 학대를 수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중 일부 피해자들은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길고 공포스러운 감금 생활을 견뎌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납치 사건은 계속되어 왔으나
그 중 가장 충격적인 사건들은 비교적 오래지 않은 과거에 일어났다.
과연 어떤 사건들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까?
천신만고 끝에 자유의 몸이 된 피해자들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다음 사진을 통해 최근 수십년 사이에 발생한
최악의 납치 범죄 케이스들에 대해 알아보자!
제이시 리 듀가드
©BrunoPress
1991년, 당시 11세였던 제이시 리 듀가드는 캘리포니아, 마이어스에서
스쿨버스를 타려다 새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유괴당했다.
듀가드는 이후 18년 동안이나 감금되어 생활했다.
필립 & 낸시 가리도
©BrunoPress
납치범인 필립과 낸시 가리도는
자신들의 자택 뒷마당에 듀가드를 감금했다.
이 기간 동안 듀가드는 학대와 성폭행을 당했으며,
필립 가리도의 두 딸을 출산했다.
발견
©BrunoPress
필립 가리도는 1976년에 저지른 성범죄로 인해
성범죄자 명단에 등록되 있었으며,
가석방 감찰관에게 주기적으로 행적을 보고해야했다.
그러던 2009년 8월 26일, 필립 가리도는
아내인 낸시 가리도와 듀가드,
듀가드의 두딸을 데리고 경찰서에 방문했다.
그리고 경찰은 겁을 잔뜩 먹은
창백한 두 딸 (당시 13세, 16세였음)을 보고
수상하다고 느꼈다. 결국 가리도 부부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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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시 리 듀가드는 만 29세의 나이로 가리도 부부의
악한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듀가드는 가능한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납치되어 겪었던 경험을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듀가드는 ABC 뉴스를 통해 만약 딸들이 원한다면
생부를 만나지 못하게 하지는 않겠다고 밝혔고,
딸들은 지금까지 생부를 만나지 않았다.
현재 듀가드의 소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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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당시 14세였던 엘리자베스 스마트는
솔트레이크 시티에 위치한 자택에서 납치당했고,
그녀의 여동생은 잠든 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스마트는 납치범에 의해 숲으로 끌려갔고
숲 속 야영장에서 9개월이나 감금되어 있었다
브라이언 데이미드 미첼 & 완다 바지
©Getty Images
엘리자베스 스마트의 납치범은 종교에
광적으로 집착하던 브라이언 데이비드 미첼이었다.
미첼은 그의 아내 완다 바지와 함께
스마트를 나무에 묶어두고 성적으로 학대했다.
탈출
©Getty Images
9개월 뒤, 스마트의 여동생은
스마트 가족이 알고 지내던 엠마누엘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납치범과 같은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납치범의 몽타주가 언론을 통해 퍼졌고 납치범 미첼의 가족이
이를 알아보고 당국에 제보했다. 납치범 미첼과 그의 아내 바지는 이후
피해자 스마트와 함께 길을 걷다가 체포되었다.
새로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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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매체에서 자신의 납치 경험에 대해
말했던 엘리자베스 스마트는
오늘 사회운동가이자 자신의 경험을 담은
여러 책의 저자가 되었다.
그녀는 U.S. News를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에게 벌을 주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패티 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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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허스트라는 이름은 현대 납치사건의 역사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이름 중 하나이다.
미디어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인 패티 허스트는
1974년에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에 의해 납치되었다.
심바이어니즈 해방군
©Getty Images
패티 허스트의 납치범들은 당시 좌익 과격파였던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에
소속된 사람들로 여러 살인 사건과 은행털이, 기타 범죄에 연루된 자들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도널드 디프리즈, 윌리엄 로턴 울프, 카밀라 할은
반란군의 지도자들로 허스트 납치의 책임자들이었다.
체포와 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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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패티 허스트는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인해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에 가입했으며,
인질들은 해방군 납치범들과 유대관계를 쌓게 되었다.
이후 허스트는 심바이어니즈 해방군에 의해 벌어진
은행강도 행각에 참가하여 CCTV에 포착되기에 이르렀다.
끝내 체포된 허스트는 7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카터 대통령의 사면을 받기까지 21개월을 복역했다.
또한 그녀는 2001년 1월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면죄를 받았다.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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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패티 허스트는 자신의 전직 보디가드 버나드 쇼와 결혼했다.
그리고 2013년 쇼가 사망하기 전까지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
1981년, 허스트는 회고록을 발간했고, 이후 여러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인생을 살았다.
사빈 다르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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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28일, 당시 12세였던 사빈 다르덴은
벨기에, 투르네에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다가 납치되어
마르시넬의 한 집으로 보내졌다.
다르덴은 그 집에서 80일간 유괴되어 있었다.
마크 듀토
©BrunoPress
다르덴을 납치한 것은 마크 듀토와 그의 공범자였다.
다르덴은 납치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듀토의 집 지하실에서 감금되어 있었으며,
목에 감은 체인으로 침대에 묶인 채 버텨야 했다.
듀토는 다르덴에게 부모님은 그녀를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으며,
몸값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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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4세였던 또 다른 소녀 레티시아 데케의 납치 사건이 일어나며
한 목격자가 듀토의 자동자 번호판을 기록으로 남겼다.
결국 경찰은 범인을 찾아냈고 자택에서 그를 체포했다.
듀토는 피해자인 두 소녀를 납치하고 성폭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듀토의 집에서는 추가로 납치된 어린이 4명의 유해와 공범이 발견되었다.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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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빈 다르덴은 2004년 가해자 듀토의 재판에서 증언을 했으며
가해자에게 왜 자신에게 범행을 저질렀냐고 묻기도 했다.
1년 후, 다르덴은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냈고 이 책은
14개국어로 번역되어 30개국에서 출판되었다.
현재 그녀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는 극히 적다.
엘리자베스 프리츨
©BrunoPress
엘리자베스 프리츨 (가운데)은 만 18세의 나이로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녀는 프리츨 가족의 자택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었으며,
이후 자신은 집을 떠났으며 찾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강제로 썼다.
요제프 프리츨
©BrunoPress
요세프 프리츨은 자신의 딸을 지하실 벙커에 24년이나
감금했으며 반복적으로 딸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수년에 걸쳐 엘리자베스 프리츨은 7명의 아이를 출산했다.
(그 중 하나는 출산 직후에 사망했다.) 그리고 요세프 프리츨은
엘리자베스에게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편지를 쓰도록 강요하여
6명의 아이들 중 3명을 공개적으로 입양했다.
나머지 3명의 아이들은 엘리자베스와 함께 지하실에 남아 있었다.
사건이 발견된 경위
©BrunoPress
그러던 어느날 지하실에 있던 아이들 중 하나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할 지경이 되자,
요세프 프리츨은 그 여자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
그리고 의식이 없는 아이를 길에서 발견했다고 거짓말 했다.
이에 의료진들과 경찰들은 아이의 엄마를 찾기 시작했고
이 내용은 TV에서도 방영되었다.
아이의 엄마 엘리자베스는 지하실에 있던 TV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요세프 프리츨을 설득하여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안전하다는 사실을 확신한 엘리자베스 프리츨은
자신이 지난 20여년간 당한 일에 대해 말했고,
요세프 프리츨은 체포되었다.
이후 요세프 프리츨은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의 삶
©BrunoPress
엘리자베스 프리츨은 현재 오스트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자신의 여섯 자녀들,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온 가족이 새로운 성으로 바꾸었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나타샤 캄푸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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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3월 2일, 당시 10세였던 나타샤 캄푸쉬는
비엔나에서 등교길에 납치당했다.
이는 8년간 지속된 끔찍한 감금의 시작이었다
볼프강 프리클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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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볼프강 프리클로필은 어린 소녀를 지하실에 가두었고,
고문하고 굶기고 성적으로 학대했다.
이 공간에는 창문이 없었으며 방음이 철저했고 철문으로 막혀있었다.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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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범과 여러 해를 지낸 후 소녀에서 성인이 된 나타샤 캄푸쉬는
납치범이 계속해서 감시하는 가운데 집 주변을 산책할 수 있었다.
그러던 2006년 8월 23일, 캄푸쉬가 납치범 프리클로필의 차 내부를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는 도중 그는 전화를 받았다.
프리클로필이 그녀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이 캄푸쉬는 도망쳐서
한 여성에게 경찰을 불러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한편 자신이 납치한 피해자가 사라진 것을 눈치 챈
프리클로필은 도주했고 이후 자살했다.
이후의 삶
©BrunoPress
나타샤 캄푸쉬의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헤드라인에 올랐다.
이후 그녀는 자신이 겪은 일을 책으로 썼고, 이 회고록을 바탕으로
지난 2013년에는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오늘날 캄푸쉬는 동물 권리 단체 PETA의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으며
, 동물 학대를 자신이 당한 학대 경험에 비유한다.
숀 혼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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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당시 11세였던 숀 혼벡은 미주리, 리치우즈에 위치한
자택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납치되었다.
놀랍게도 그는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에서
80 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서 4년간 감금되어 생활했다.
마이클 J. 데블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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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벡을 납치한 범인은 마이클 J. 데블린이었다.
데블린은 자신의 아파트에 어린 소년을 붙잡아 두었고,
성적으로 학대하며 탈출을 감행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소년은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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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납치범 데블린은 벤 아운비라는 또 다른 소년을 납치했다.
목격자는 데블린이 범행현장으로 가져온 트럭을 경찰에게 증언했고,
4일 뒤 경찰은 납치당한 두 소년을 찾게 되었다.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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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혼벡의 납치사건 이후 혼벡 가족은 숀 혼벡 재단을 설립하여
납치된 아동의 수색과 구조에 힘쓰고 있다.
이후 숀 혼벡은 또 다른 납치 아동 제이시 리 듀가드의
가족들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
아만다 베리 & 조지나 드지저스 & 미쉘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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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오하이오, 클리브랜드에서
세 여성이 납치되었다.
아리엘 카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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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카스트로는 2002년에 당시 21세였던 미셸 나이트를,
2003년에 당시 16세였던 아만다 베리를,
2004년에 당시 14세였던 조지나 드지저스를 납치했다.
카스트로의 자택에 감금되었던 세 여성은 밧줄과 사슬에 묶인 채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으며 강제로 낙태시술을 받았다.
또한 아만다 베리는 납치 기간 중 카스트로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 역시 함께 감금되어 있었다.
세 여인이 탈출한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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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6일, 카스트로가 집을 비운 사이
아만다 베리가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리자 이웃들이
피해자들을 도와 탈출시켰으며 경찰을 불렀다.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은 카스트로는 감옥에서 자살했다.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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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에 성공한 지 2달이 지난 뒤,
피해자 3명은 자신들의 탈출을 도운 이웃들과
탈출 후의 삶을 위해 기부해준 사람들을 위해
감사의 영상을 촬영했다.
2015년에 발간된 그들의 회고록에서 세 사람은
자신들이 겪었던 끔찍한 일과 이후 회복된 삶에 대해 썼다.
현재까지 이들은 서로 연락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