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평택 근처 넓은 길을 따라 동네로 들어서니 초록색 옛날 철대문이 보였다.
뭔가 정겹군..
성질은 내려 줘~ 내려 줘 하는 두 검은 악마의 발길질에도 불구하고
뭔가 여유 있는 생각이 하고팠다. 이 건 현실이 아니야~ 라는 도피적인
자기 방어였는지도.
겨우 문에 들어서서 흑염소를 내려 놓으니 두 마리는 음메에~ 뭔가 고자질하려는 듯
마당 저 멀리로 뛰어갔다.
그 중 좀 작은 한 마리를 안아 올리는 번쩍이는 비취 반지가 껴진 손가락의 소유자는..
의외로 이 동네 분위기와는 안 어울리는 화려한 아줌마였다.
그리고 그 옆엔 양산을 들고 있는 작은 소녀가 보였다.
"......."
"......."
성질은 저려오는 팔을 연신 주무르며 아줌마의 비취 반지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니가 성질이양?"
뭔가 붕 뜬 듯 비루 먹은 말투의 주인공은 역시 이 아줌마였다.
그리고 아마도 힘 좋은 청년 찾으신다는 아줌마도 동일인이겠지.
"...니가 성질이냐고옹~"
"아 예."
"쯧. 멍청하게 생겼네. 저 저- 빌빌대는 허리 라인 좀 봐."
"......"
뭐라고요.
여기서 허리 라인은 왜 찾는데요.. 정말 이 거 가정집을 가장한 호스트 빠 아냐?
안되는데..
"...근데 우리 로순이와 로돌이는 왜 울고 난린게지?"
아줌마는 흑염소의 기분 나쁜 눈을 자못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시더니 너냐? 하는
눈길로 성질을 째려 보았다.
저는 안 울렸는데요.. 근데 웬 로순이와 로돌이.. 장래에 로스트 구이라도 해 먹을건가..
성질이 소심하게 눈을 피하자 아줌마의 눈을 더욱 날카로와졌다.
그리고 땡볕 사이로 더욱 울어제끼는 (듯한) 검은 뿔의 두 악마.
그 때였다. 아줌마 옆에서 시녀처럼 서 있던 소녀가 갑자기 들고 있던 양산을 패대기처버렸다.
"으아아아아아!!!!"
깜짝! 소심한데다 심장까지 약한 성질은 아주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성질이 하얀 슬리브리스 면 드레스를 입고 있는 예쁘장한 소녀를 놀래서 바라보았지만
소녀는 아랑곳 않고 아줌마에게 악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시녀 놀이도 재미 없어!!"
"...뭐야!! 니가 한다며!!!"
"이젠 재미 없다고!!!!"
"그럼 말아라!!!!!"
두 여자는 악을 지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엄마가 이제 양산 들어!!"
"뭐라는 거야 이 계집애가!!!"
"이제 부터 내가 여왕할래. 엄마는 시녀 해!!!!"
"내가 왜!!!!!"
"지금까지는 내가 들었으니 이제 엄마가 들란 말야!!!!!!"
"싫어!!!!!!!"
"왜 싫어!!!!!!!!"
"내 맘이야!!!!!!!!!"
"나도 내 맘이야!!!!!!!!!!"
정말이지 상당한 수준의 저차원적 대화였다. 목소리 역시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
더욱 커지고..
그 때 들리는 신씨할아버지의 가래 끓는 목소리.
"칼 갈어~ 칼 갈어."
할아버지는 히죽 웃으시더니 양 손에 든 거대한 부엌 칼을 망나니처럼 휘두르시며
순식간에 싸한 분위기를 조성하셨다. 에휴...어쨌거나 일단 조용해져서 다행이다..
여자들 깽알대는 목소리는 딱 질색이야아...
흑염소가 피할 틈도 없이 불시에 똥을 눈 관계로 아주머니가 샤워하는 데
약 한 시간 걸린 듯하다.
그 사이에 성질은 집 안과 집 밖을 둘러보았다.
집 자체는 평범한 단층 집이었지만 마당이 무쟈게 넓었다.
좀 심하게 넓었다. 구석에 초록새의 배추와 고추 밭이 보이는 것 빼곤
넓은 땅이 그냥 놀고 있었다. 아까버라...
성질이 집안을 휘휘 둘러보며 할아버지가 내오신 냉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욱...커피 속에 이 게 웬 똥파리야... 흑염소 먹이실 걸 잘못 내오셨나.
얼른 옆에 있던 생수로 입가심을 하려는데 투명한 유리 컵엔 떡하니 짙은 색의
지문이 묻어 있었다.
........더블로 우웩...
굳이 결벽증의 성질이 아니라하더라도 이 집은 상당히 지저분, 너저분 했다.
그러고보니 구석에 쌓인 옷가지들, 먼지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런 저런 생각과 걱정들로 머리를 마구 굴리던 성질의 눈에 아까의 그 소녀가
눈에 띄었다. 옳지 쟤를 통해 정보라도 수집하자.
"...얘~ 아가야."
"......"
흘끔 눈을 들어올린 소녀가 성질을 잠시 바라보더니 만지작대던 흑염소 인형을 다시 조물락거렸다.
으이구.. 여기 저기 둘러봐고 그저 흑염소 투성이구나.
그나 저나 어린 것까지 나를 무시하네..우우~ 한 성질 인생 언제 피려나..
.......그래도 참자.
"얘~ 아가야?"
"......"
"이름이 뭐니?"
".....나 아가 아닌데요."
고개도 들지 않고 어린애 답지 않은 낮은 말투로 그 애가 겨우 입을 열었지만
그래도 성질은 반가웠다.
"...아저씨 보기엔 아가 맞어. 그럼 너 이름 뭔데? 몇 살?"
"....그런 개인정보를 아저씨처럼 수상한 사람에게 왜 가르쳐 줘요."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아이는 긴 문장을 막힘 없이 지껄여갔다.
여기 제 2의 강헌경 또 났네. 이 집에서 나 또 깨지는 거 아냐?
뭔가 불길한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아이와의 첫 대화였다.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2.
[ 중편 ]
인파이터 (Infighter) 5
송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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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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