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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클럽
<16>
주아파들은 어제 싸운 벌로 아침부터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주아는 짜증나는지 대걸레를 확 던져버릭는 라지에이터 위에 걸터 앉았다. 그러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곤 불을 붙였다. 은영과 나라, 새리도 들고 있던 청소 도구를 내려놓고 담배를 피웠다.
주아는 어제 은지가 말한 것이 생각났다.
‘나 서열 1위 아니야.’
은지가 서열 1위가 아니라고 했다. 은영이 분명 인천의 서열 1위는 최은지라고 했었다. 은지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니들이 말하는 인천의 짱은 누구냐? 인천 전지역 서열 1위가 누구냐고. 최은지 아니라잖아.”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이제는 말할 때도 됐다. 어차피 알게될 거 좀 더 앞당기는 것 뿐이다.
“신혜원이야. 인천 연합의 총 리더는 신혜원이라고.”
나라가 결국 말해버리고 말았다. 주아는 충격에 휩싸였다. 혜원이가 인천의 짱이라고? 서열 1위라고? 그 범생이가? 전혀 일진과 거리가 멀 것 같은 혜원이가 서열 1위라고?
“동인고 여짱도 민자영이 아니라 혜원이야.”
새리의 말.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아닐거라고 생각했고, 혹시하는 마음조차 가져보지 않았다. 차갑고 도도한 모범생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혜원이가 일진이라니... 서열 1위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걔가 무슨 서열 1위야. 장난까지마, 재미없어.”
“신혜원 서열 1위 맞아.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 앞에서는 온갖 범생인 척 다 하고 뒤에서는 호박씨 까는 부류가 신혜원이야. 그년 이중인격자야.”
친해지고 싶은 아이였다. 그녀에게 끌렸고,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런데 서열 1위란다. 주아는 권력욕이 강했으며 새로운 그녀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싶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앙은 있을 수 없으며, 그 태앙은 반드시 주아, 그녀여야만 한다. 서열 1위를 꺾고 그녀가 인천의 서열 1위로서 명성을 떨치고 싶었다. 갖고 싶은 자리, 빼앗아야만 하는 그 자리가 하필이면 그토록 친해지고 싶은 혜원이 쥐고 있을게 뭐람.
혜원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혜원을 자신의 오른팔로 만들어서 자기 옆에 두면 괜찮을 것이다. 비록 혜원일지라도 서열 1위를 빼앗아야만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혜원이 최고가 되고 싶듯이 그녀도 최고가 되고 싶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니까.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것을... 최은지가 서열 1위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이렇게 괴로울 일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
청소를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주아. 옆자리인 들과 다래와 함께 얘기하고 있는 혜원을 보았다.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 디스코 머리를 한 혜원의 단정한 머리 스타일, 어디 하나 손 댄 흔적이 없는 깔끔하고 단정한 교복. 강아지 같이 크고 동그라며 서글서글한 눈매, 투명한 혜원의 미소. 어딜 봐서 일진의 모습이란 말인가. 좀 차가운 게 흠인 것만 빼고 일진과는 전혀 상관없는 평범한 여학생의 모습이다. 털털한 성격의 평범한 학생이다.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뒷자리에 앉은 자영에게 갔다. 자영이 주아를 보고는 흠짓했다. 짜증나긴 해도 힘이 센 지라 내심 두려웠다.
“민자영, 나 좀 보자.”
자영은 괜히 불안해졌다. 쓸데없이 주아가 자기를 왜 부르는 것일까. 주아가 팔짱을 낀 채 교실을 나갔고, 자영도 불안한 얼굴을 하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반 학생들이 은근히 자영쪽을 보고 있었다.
“왜 그래?”
들이 물었다. 자영은 모른다고 하고는 교실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로 들어온 주아는 자영이 따라 들어오자 문을 잠궈 버렸다. 자영은 여전히, 아니 아까보다 더 불안해 보였다. 주아가 왜 그러는 것일까.
“민자영.”
주아가 자영의 이름을 불렀다.
“말해.”
“너 정말 동인고 짱 맞냐?”
자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주아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아는 듯한 얼굴이었다.
“맞는데?”
“정말 맞아?”
“어.”
“어차피 내게 깨졌으니 넌 동인고 짱이 아니다. 뭐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인천 연합인지 뭔지하는 일진 총 리더는 누구냐? 명성고 최은지가 확실해?”
자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해선 안된다. 주아는 지금 혜원의 것을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우상인 혜원이 자기처럼 깨지게 할 순 없었다. 자기가 총대를 매야만 한다.
“최은지가 맞냐고 물었다.”
“그건 왜?”
“맞아 틀려?”
“......”
자영은 주아를 외면했다. 절대 말해선 안된다. 혜원이 위험하게 되니까... 혜원의 친구로서 친구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런데 주아는 어떻게 알았을까?
“말 안 해?”
“....”
자영이 입을 열지 않는다. 주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신혜원 맞아? 서열 1위, 그리고 동인고 짱 맞아?”
주아가 다 알고 있다. 확인을 위해서 자신을 불러낸 것이다. 이미 다 알고 불러냈다. 제길. 자영은 입술만 깨물었다. 그런 자영을 보고 주아는 혜원이 맞을 거라 확신했다. 은영 애들 말이 사실이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제길. 왜 하필 이렇게 일이 꼬인 거야. 주아는 짜증이났다.
“대답 들을 필요도 없겠군.”
주아는 이렇게 말하고는 화장실을 나갔다. 혜원이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남을 속였단 이야기다. 저 순진한 얼굴로 잘도 속였다.
‘그년 이중인격자야.’
나라의 말이 떠올랐다. 이중인격자. 맞는 것 같다. 자신도 몰랐다는 것부터 그녀를 속였다는 것이다. 저번에 혜원에게 동인고 짱이 자영이 맞냐고 물었을 때도 입 다물고 있었다. 그것은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혜원을 믿고 너무 많은 것을 얘기했다.
“어디가?”
주아가 혜원에게 물었다.
“화장실. 왜?”
“아니, 그냥.”
혜원은 시큰둥한 얼굴로 주아를 쓰윽 보고는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그녀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화장실엔 자영이 있다. 자영과 어떤 대화를 주고받을 것만 같았다. 둘의 대화가 궁금했기에 주아는 혜원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던 자영이 혜원의 모습이 비치자 오라며 손짓을 했다. 혜원이 들어가자 철컥 문을 잠갔다. 주아는 화장실 문 옆에 바짝 기대어 섰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서다.
“왜 불렀어?”
혜원이 시큰둥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은주아가.... 다 알았어.”
그 말에 혜원의 눈이 더 커졌다.
“뭐?”
“다... 알았다고. 최은지가 얘기한 거 같아.”
혜원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결국 들켜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은주아와의 싸움을 가능한한 피하고 싶었는데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돼버렸다. 어떤 식으로든 주아와 부딪쳐야만 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더니 딱 그짝이구만?’
옥상에서 해성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굴러온 힘에 의해서 박혀 있던 돌은 어쩔 수 없이 부딪혀 그 막강한 힘에 의해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엔 새로운 돌이 박혀서 자리를 잡는 것이다. 박힌 돌은 새로운 돌의 옆자리나 혹은 저멀리 밀려나 초라한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혹은 무언가가 자신을 멈추게 할 때까지 어디론가 굴러가야만 한다. 혜원 그녀는 그러한 박힌 돌 신세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돌의 옆자리에 있던지 그게 아니면 초라하게 밀리거나 어디론가 멀리 굴러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녀는 영원히 빠지지 않는 박힌 돌이 되고 싶었다. 새로운 돌의 옆자리도, 어디론가 굴러가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역시 먼저 선수를 쳤어야 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
“은주아 그년이 네 자리 노리고 있잖아. 너도 은주아 실력 봐서 알잖아. 처음부터 짐작도 하고 있었잖아. 은주아가 알아버렸으니 너도 대책을 세워야 할 것 아니야!”
“대책....?”
대책. 생각은 많이 해봤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어떤 것이든 결국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넌 백 퍼 깨지게 되어 있다. 마음의 준비나 해라.’
해성의 말대로 모든 것을 비우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유일한 대책이면 대책일 것이다. 정말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란 말인가. 그녀는 화가 났다.
“씨발.”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주아가 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 다 들은 것이 분명하다. 주아는 싱긋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역시... 그랬구나?”
주아의 차가운 미소. 혜원도 자영의 얼굴도 일순 굳어졌다.
“감쪽같이 속았네? 신혜원 너한테?”
주아가 그녀를 비꼬며 말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주아를 바라보았다. 덤덤한 척하려 무진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절대 당하지는 않는다. 명색이 인천 연합의 서열 1위다. 그냥 당하지 않으며 쉽게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었다.
“민자영.”
자영의 이름을 부르며 주아는 여유롭게 웃어본다. 그녀의 차가운 미소에 자영은 긴장했다. 잠시 흐르는 짧은 침묵. 그러곤 이내,
퍽.
주아의 발이 자영의 복부를 걷어찼다. 윽,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자영이 배를 움켜잡으며 바닥에 주저 앉고 만다. 주아는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감히 날 속여? 어쩐지, 동인고 짱치고 너무 약하다 싶었다. 건방진데?”
짝.
날카로운 소리. 자영의 오른쪽 뺨이 붉게 물들어갔다. 혜원은 주아를 쏘아보았다. 그런 혜원에게 비소를 흘리는 주아.
“대단하군, 신혜원. 난 한번도 널 의심해본 적이 없는데.”
주아의 말에 혜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부산 서열 1위였다던 애가 그런 직감도 없다니... 어쨌든 의심해본 적이 없다니 그것 하나는 고마운데?”
“신. 혜. 원.”
주아가 그녀의 이름을 한자한자 또박또박 부르며 그녀의 앞에 섰다. 그러곤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서열 1위 자리는 내게 넘기고 넌 내 밑으로 들어와. 너도 이미 봐서 알테니 어떤게 좋은지 알 거다. 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네가 원하면 넘버 2 정도는 거뜬히 꿰찰 수 있다. 하늘에 태양 2개 떠 있는 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태양은 나야. 너는 태양이 아닌 달이나 별이 되면 돼.”
주아는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서열 1위를 내놓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혜원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었다. 넌 내 상대가 아니야. 주아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알고는 있지만 노골적으로 무시당하니 기분이 나빠지는 그녀다.
“달도 별도 되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어.”
“좋게 말할 때 넘겨.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널 잃고 싶지 않다고.”
그랬다. 주아는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유일하게 친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친구란 것을 만들지 않던 주아가 처음으로 사귄 사람이었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영원히 함께 하며 우정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를 배려해주고 있었다. 주아 나름대로 그녀를 신경쓰고 있는 것이다. 협박과 위협, 그리고 폭력. 보통 주아가 반대 세력들을 제거하는데 사용한 것들이다. 아니 거의 말보단 폭력이 앞섰다. 회유라는 것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바로 주먹을 날리던 주아가 주먹을 쓰지 않는 것은 그녀로선 혜원에 대한 대단한 배려였다. 그만큼 혜원은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존재였다.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먹을 쓰고 싶지 않았다. 웬만하면 좋게 해결하고 싶었다.
“서열 1위는 나야. 넌 끝났어.”
혜원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청천벽력 같은 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그녀는 한줄기 희망을 잃었고, 무너져 버렸다. 주아는 여유롭게 그녀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강한 자의 여유였다.
“내가 널 지켜줄게. 영원히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순순히 넘기고 내 밑으로 오면 넌 든든한 방패막이 생기는 거다.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왕이될 순 없어도 왕 못지 않은 권력을 누린 신하들도 얼마나 많아. 내가 너의 백이 되어줄게. 그러니 서열 1위 자리 나에게 넘겨.”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아를 그녀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 할까도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녀에게 필요한 것, 그녀가 원하는 것은 막강한 권력이었고, 왕좌였다. 서열 1위가 아니면 다른 것은 그녀에겐 부질없는 것이며 쓸데없는 잡생각일 뿐이다. 서열 2위로 밀려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서열 1위에서 2위로 밀려나는 건 최대의 굴욕이었다. 다른 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만만하게 여길지도 몰라 더 대항할 것이다. 게다가 밀려나는 비참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
“꺼져.”
<작가의 말>
오늘은 좀 길게 썼어요~~ 근데 오히려 길게 쓰면 잘 안 읽는 거 같아요 ㅠㅠㅠ 름이는 너무 슬포요 ㅠㅠ
**스페셜 땡스**
까꿍개구링님, 저도 님을 맨날맨날 기다리고 있다는 거 말 안 할래요~~ ㅋㅋㅋ
첫댓글 재미있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