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감말랭이
내가 사는 생활권과 거리가 제법 먼 북부 경북에 상주가 있다. 전부터 상주는 영남에서 규모가 큰 고을이라 조선시대 팔도 하나인 경상도 지명에 경주와 함께 들었다. 경상북도는 경주와 상주를 기준으로 북쪽임은 당연하고 경상남도는 말 그대로 아래쪽이다. 상주는 농경사회 시절부터 삼백의 고장으로 알려졌다. 누에가 집을 지은 고치와 벼농사의 쌀과 가을에 말리는 곶감이렷다.
함안은 창원과 인접한 행정구역이다. 함안 가야에서 멀지 않은 곳에 파수라는 마을이 있다. 남쪽으로 여항산 미산령이 우뚝한 파수 들머리는 농공단지가 들어서도 주민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곳도 감이 아주 많은 곳이라 가을이면 곶감을 말려 외지로 널리 소문을 내어 팔았다. 상주에서도 그렇겠지만 파수의 곶감도 옛날에 왕실로 올려보낸 진상품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예전 근무지서 나보다 몇 해 먼저 퇴직한 동료가 있다. 퇴직 선배는 산청 단성이 고향이고 이웃 덕산이 처가였다. 덕산은 조식 선생 산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지리산 중산리로 드는 관문이기도 했다. 그곳 덕산에도 가을이면 고종시가 많이 생산되는데 곶감이나 말랭이로 농가 소득원으로 삼았다. 예전 동료는 퇴직 후 처가를 찾아 고령의 처남댁 일손을 돕는 날이 더러 있다고 했다.
나는 교육단지 여학교에 근무할 적 그분과 짧은 기간 같이 지낸 인연이다. 수학을 가르친 선배는 교육단지 여학교에서 정년을 맞았고 나는 거제로 옮겨 삼 년 더 보내고 교직을 마무리 지었다. 창원으로 복귀해 먼저 퇴직한 선배와 몇 차례 산행과 산책을 다니며 안부를 나누고 있다. 지난가을엔 경전선 열차로 물금으로 가 임경대를 올라 강변 따라 원동까지 트레킹을 하기도 했다.
퇴직 선배는 봄여름에 덕산 처가를 자주 들리지만 가을에도 찾아가 처남댁의 곶감과 말랭이 작업 일손을 거들고 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지난봄 겨울을 넘긴 감말랭이를 맛본 기억이 남아 이번 가을에 만드는 곶감과 감말랭이를 시중 시세로 제값을 쳐 드릴 테니 얼마큼 사겠노라고 얘기해 놓았다. 우리 집에서는 아내가 먹을 과일을 상시 준비해 놓아야 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나는 지난 시월 하순 고향 큰형님 댁을 찾아 대봉감을 따는 일손을 거들고 왔다. 그날 걸음에서 상품성이 처진 대봉감을 빼곡하게 두 자루나 싣고 왔기에 아내는 여태껏 홍시를 잘 먹고 있다. 그때 가져온 단감은 아직 냉장고에 저장 중이다. 이처럼 복숭아와 포도가 사라진 가을이면 사과가 쏟아지지만 내 눈에는 찰 리 없다. 나는 당분간 과일을 사서 나를 일 없어 마음이 느긋하다.
이번은 이웃에 사는 지기 덕분 청정지역에서 생산된 감말랭이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전번 오갔던 얘기처럼 퇴직 선배는 지난 주말 처가댁을 방문해 겨울나기 막바지 일손을 거들고 온 모양이었다. 내가 지난번 먼저 제의해 놓았던 대로 몇 단계 손길을 거친 감말랭이를 가져왔다기에 황송하고 고맙기 그지없었다. 택배비도 부담하지 않고 감말랭이를 집 앞에서 편하게 건네받았다.
십이월 초순 화요일 아침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로 들린 퇴직 선배를 뵈어 근교 산자락으로 산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지기가 앉은 운전석 곁에서 베이스 목소리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길 안내를 했다. 명곡 교차로를 지나 동정동에서 굴현터널을 지나 북면 무동으로 갔다. 신도시 아파트단지 이면도로에 차를 세우고 조롱산을 건너온 산세에서 소목마을로 가 무릉산으로 향했다.
고라니가 놀라 펄쩍 사라진 작대산 기슭의 묵정밭을 거쳤다. 아스팔트가 포장된 차도를 건너 솔숲으로 들어 오솔길을 거쳐 한적한 임도를 따라 걸어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 닿은 무릉산 장춘사였다. 낙엽이 진 앙상한 나뭇가지는 겨울다운 운치를 더해주었다. 일주문을 세울 자리도 없는 산사는 대나무 사립문이 사천왕문을 대신했다. 법당에서는 비구니의 낭랑한 독경 소리가 들려왔다. 22.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