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때 ‘가족이 대리인 지정’ 신설
“기밀 열람자 많아지는 현행법 문제”
행안부 ‘범위축소’ 시행령 개정 추진
노무현재단 “대리인 지정않는건 위법”
고 노무현의 처 권양숙이 보호기간 15년이 만료된 노무현 관련 지정기록물 열람을 신청하고 자신을 대신해 열람할 대리인을 지정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이 절차 보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안전부는 열람 범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대통령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권양숙에게 “시행령 개정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대통령 유고시 유가족들이 각각 제3자를 열람 대리인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한 현행 대통령기록물관리법 규정을 먼저 손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재단은 “대통령기록관이 열람 대리인 지정 절차를 밟고 있지 않은 것은 법의 근간을 흔드는 명백한 법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 정부 “유가족 열람 대리인은 1명만” 제한 검토
행정안전부 산하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노무현의 대통령 지정기록물 8만4000여 건에 대한 보호기간 15년이 만료된 건 지난달 25일. 노무현의 유가족은 권 여사의 열람 대리인으로 오상호 전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을 지정하고 대통령기록관에 통보했다.
고인이 된 대통령 유가족이 열람 대리인을 지정한 첫 사례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12월 “전직 대통령이 사망이나 의식불명으로 대리인을 지정할 수 없는 경우 가족이 대리인을 추천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면서 가능해졌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행정안전부는 열람 대리인 지정에 앞서 ‘가족이 대리인을 추천한다’는 법조항 관련 대통령령을 먼저 개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행법상 ‘가족’은 민법을 준용하는 만큼 대통령의 부인과 자녀 등 유족 여러 명이 각각 열람 대리인을 지정하면, 국가기밀 등이 담긴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열람권자의 범위가 과도하게 늘어날 수 있다고 본 것. 전직 대통령 ‘본인’과 ‘유족’을 동등하게 볼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유족의 열람 범위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록물을 만든 사람이 아닌 유족이 국가 기밀 문서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대리인 지정의) 정당성이 약하다”며 “열람의 범위가 전직 대통령과 동일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열람 대리인을 지정하지 않고 사망한 때는 가족 중 특정한 1명만 대리인을 지정해 열람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노무현재단 “법 근간 흔드는 법 위반” 반발
그러나 고재순 노무현재단 사무국장은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지난달 16일 권양숙이 열람 대리인을 지정했다는 내용을 대통령기록관에 우편으로 보냈다”며 “공개되는 기록물을 향후 노무현과 관련된 연구 및 기념 사업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 공개 범위를 두고 전-현 정권 간 대립이 재연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5년 해제 기간이 만료되자마자 열람을 요청해 온 것은 민감한 자료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보호기간이 끝난 지정기록물에는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등 노무현 재임 기간 중 발생했던 주요 사건들과 관련된 내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노무현재단 측은 “대통령기록물은 참여정부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여주는 대한민국의 자산”이라며 “모든 시민이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기록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