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맥도생태공원
십이월 첫 주 수요일이다. 새벽녘에 잠을 깨니 일거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전날 아내가 삶아둔 무청 시래기의 껍질을 벗기는 임무였다. 텃밭 푸성귀 농사 부산물로 무청 시래기가 나왔다. 이것을 우리 집에서는 무보다 더 소중한 찬거리로 삼고 있다. 본디 내가 봄날이면 산자락을 누비면서 산나물을 뜯어 우리 집이나 지기와도 나누는데 무청 시래기는 남을 줄 여분이 없을 정도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내가 직접 지은 무 농사의 무청 시래기였다. 이전에는 고향 큰형님 댁에서 가져오거나 북면 지인의 농장에서 무청 시래기를 마련했더랬다. 이와 함께 광쇠농장 친구도 내가 시래기를 즐겨 먹는 줄 알고 협찬해주어 고마웠다. 올해 확보한 무청 시래기도 광쇠농장 친구가 보태주어 양이 늘었다. 삶은 시래기는 그냥 먹어도 되지만 껍질을 벗기면 식감이 부드럽다.
삶은 무청 시래기 줄기 껍질을 까 놓고 날이 밝아오기 이전부터 산책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대설 절기인데 보름 뒤 동지가 다가와 낮이 짧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퇴촌교에서 창원대삼거리에서 김해 선암으로 가는 97번 좌석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창원터널을 통과했다. 장유에서 김해 시내로 들어가니 출근하는 회사원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차내가 일시 혼잡해지기도 했다.
김해문화원 앞에서 내려 수로왕릉역에서 경전철을 타고 시청과 대저를 거쳐 등구역으로 나갔다. 등구는 김해공항이 가까운 강변이지만 공장이나 창고가 농지를 잠식해 예전의 평야가 아니었다. 강가답게 거북이가 뭍으로 올라왔다는 지명이 눈길을 끄는 동네였다. 강변도로를 건너 긴 낙동강 제방에서 칠십 리 벚꽃 길의 나목이 된 벚나무 열병을 받으며 맥도생태공원으로 향해 갔다.
맥도는 삼각주였던 김해평야에서 낙동강 하류 섬의 하나였으며, 맥도강은 서낙동강과 함께 본류에 딸린 지류다. 맥도강 곁의 둔치라고 맥도생태공원으로 불린다. 낙동강 하류에서는 강 건너 삼락과 화명지구와 함께 대표적인 습지 공원이다. 둑길을 따라 걸으니 강 건너편 삼락 생태공원과 북구 사상의 백양산과 승학산 기슭의 높낮이가 다른 아파트단지와 빌딩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둑길을 걷다가 둔치로 난 자전거길로 내려가 걸었다. 맥도생태공원에 이르니 드넓은 체육시설과 습지 생태 탐방로가 펼쳐졌다. 늦여름까지 무성한 잎사귀와 꽃잎을 달고 있었을 연들은 모두 시들어 사그라져 있었다. 도래한 겨울 철새 보호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을 방지를 위해 생태 탐방로는 전 구간이 폐쇄되어 물결이 일렁일 강 언저리로 나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생태 탐방로와 가까운 습지 바닥에 몸을 낮추어 엎드린 뉴트리아를 발견했다. 수달처럼 생긴 뉴트리아는 서양에서 모피 생산을 위해 들여왔다가 강변 습지로 퍼져 지금은 환경부에서 생태교란종으로 분류해 밉상으로 낙인찍혔다. 색이 바래가는 물억새와 갈대가 뒤엉켜 은신처가 되어 주는 습지 곳곳은 북녘에서 날아온 덩치가 큰 여러 마리 고니들이 부지런히 먹이활동을 하기도 했다.
맥도 생태공원 잔디밭 쉼터에서 도시락을 비우고 강둑으로 걸으니 지역 출신 두 분 독립운동가 흉상과 이은상의 ‘고향길’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수강 지사는 가덕도 천가동 태생이고 조정환 선생은 김해 녹산 출신인데 두 곳은 경남에서 부산으로 편입된 강서구였다. 강둑에는 십대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온 박목월의 ‘나그네’와 조지훈의 ‘완화삼’도 대리석 빗돌에 새겨 있었다.
을숙도가 가까워진 강둑에서 송백마을로 건너가 명지시장 활어 회센터를 둘러보고 용원으로 갔다. 부산과 경계를 이룬 용원어시장 들머리는 수로왕비 허황옥의 신행길 배가 닻을 내린 망산도가 손에 잡힐 듯했다. 어시장을 둘러보니 제철을 맞은 대구가 보이기 시작하고 살아 꿈틀거리는 물메기와 아귀도 흔했다. 선도가 좋아 보이는 삼치 네 마리를 사서 창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2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