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독 대신 딱 일주일만 비정규노동자로 살아보시라’
2월 16일 한 신문에 공안검사들이 전태일 평전을 열독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대검찰청 공안부에서 월 2회 ‘공안포럼’을 하면서 전국의 공안검사들이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고 있는데, 1월 말에 열린 첫 번째 강연회에서 강사가 전태일 평전 일독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강사였던 조영길 변호사는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태일 평전’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동시에 추천하며 균형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조영길 변호사는 정말 공안검사의 강사로 적격자다운 조언을 하신 것 같다. 균형감이란 말은 정말 좋은 말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한다’는 중용이란 그 말 만큼 좋은 말을 세상어디에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중용이 가능하려면 자본과 노동이 서로 힘의 균형을 이룰 때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깜박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오지 않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하게도 중용이란 말로 덮어버리는 가치중립적인 철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전태일 열사 분신 40주기를 맞아 노동사건을 주로 다루는 공안검사까지 ‘전태일 평전’에 관심을 갖는다니 기뻐해야 하는 일일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 아래서도 노동자의 파업을 적대시하고, 이명박 정권 들어 더욱 노동운동을 죄악시해온 공안검사들이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전태일 평전’을 읽고 당시 시다들처럼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과 ‘연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번이라도 노동자들의 천막을 방문하는 검사가 있을까?
온갖 멸시와 탄압에 시달리며 언제 잘릴지 가슴 졸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노동사건 관련자들을 대거 풀어줄 검사가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아니, 전태일 평전을 읽고 40년 전에는 어려웠지만 지금은 먹고 살만 한데 왜 파업을 하느냐며 중형을 구형하지는 않을까? ‘전태일 평전’을 읽는다는 공안검사들에 의해 지금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수억, 이동우 씨가 1년이 넘도록 차디찬 감방에 갇혀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최병승 노동자, GM대우자동차 창원공장 권순만 노동자가 오랜 세월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비정규직 다 자르고 웬 쑈냐’고 항의하며 서울모터쇼가 열리는 행사장 앞 주차장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4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연행해 28명을 기소하고, 징역살이 보다 더 무섭다는 5,100만원의 벌금폭탄을 때린 것도 모두 공안검사 나리들이다.
▲ 학교장과 교원으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여옥, 박찬숙, 권철현, 김학송 등이 그들이다. 법제처와 행정안전부, 교육과학기술부는 명백한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는데 한나라당은 뭐라고 할까?
전태일 평전 놔두고 한나라당 의원 수사나 제대로 하라.
봉욱 대검 공안기획관은 “공안포럼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에 대한 이해를 넓혀 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래서 공안검사들에게 제안한다. 전태일 평전을 열독하는 대신, 딱 한 달만 기아자동차 모닝공장에서 12시간 야간노동을 해보시면 어떨까? 화장실에 가기 위해 뛰어다녀야 하고, 숨 돌릴 시간도 없이 나사를 조이면서 시급 4,110원 최저임금을 받고 생활해보시면 어떨까? 아마 ‘입에서 단내난다’는 말이 어쩐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40년 전 전태일과 어린 시다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현대중공업 군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해 보면 어떨까? 굳이 비정규직이 아니어도 좋다. 가까운 시화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온갖 산업재해를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일해야 하는 정규직 노동자로 살아볼 것을 권한다. 한 겨울 뼈 속까지 스며드는 칼바람을 맞으며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한 대가리 깨러 새벽에 집을 나서는 건설노동자들과 같이 해 보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
한 달이 힘들다면 일주일만이라도 열악한 노동현장을 직접 경험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 단 한 명만이라도. 고시 통과한 머리 좋은 분들에게 한 마디 덧붙인다. 세상에 가치중립적인 것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당파성이라고 하는데 공안검사들은 좌편향적이라 할지 모르겠다. 브라질의 민중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는 ‘억눌린 자의 교육’이란 책에서 ‘가치중립적인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 체제 지향적이거나 반체제적이거나 둘 중의 하나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 공안검사는 체제 지향적이거나 반체제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어설픈 균형감이란 말은 저 멀리 보내라고 하지 않아도 잘 하고 있기에 두 말 하지 않겠다. ‘전태일 평전’ 열독했으니 ‘당신들 머리 속을 다 안다’는 반거충이 소리는 집어 치우고 전여옥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법을 어긴 것이나 처벌부터 하시는 게 더 낫다. 법 집행은 공평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우리 현실에서 과연 그 말이 통하는지 공안검사 나리들에게 정말 묻고 싶다. 기소독점권을 장악하고 있는 검사들이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추 신: 일용직인 건설 노동자들이 하루 일하는 걸 ‘한 대가리 깬다’고 한다. 얼마나 일이 힘들고 어려우면 ‘일 한다’가 아니라 ‘한 대가리 깬다’고 하겠는가?
첫댓글 힘과 권리는 한쪽에 치우쳐 있으면서 입으로만 중용, 결국 그냥 립서비스네요.
공안검사 나리들이 전태일 평전을 어느 분이 쓰셨는지 알랑가나 모르겠네요...
그 분의 1%만 닮아도 공안검사같은 직업은 바로 때려치우고 나올텐데..
조영래 변호사님... 담배 좀 줄이시지...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ㅠㅠ
정치적 "중용"의 개념 그 자체가 실은 현상유지에 봉사하는 가장 편리한 도구이죠. 중립, 중용의 가치관을 내세움으로써 도의적 비난을 피하는 동시에 현상을 변화시킬만한 개혁의 요구를 '중용으로 피해야 할 극단' 중 하나로 규정하여 억압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불행하게도 중용이란 말로 덮어버리는 가치중립적인 철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故하워드 진 선생의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라는 격언이 연상되네요.
원래 중용이 저딴데 쓰라고 만들어주신 개념이 아닌데ㅡ,.ㅡ
공안검사들은 전태일 평전 읽으면서 전태일 욕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