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여름에는 가뭄이 심했다. 그 중에서도 심한 지구는 전남 일대로, 신문에서는 '곡창이 탄다'는 표제를 내걸고 연일 가뭄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지난해에도 영산강의 바닥이 드러나서, 광주 지방에는 소방차를 동원하여 식수를 실어 나르는 소동을 벌였는데, 1968년에도 되풀이되었다. 육 여사는 아침 저녁 도지사 부인에게 장거리 전화를 걸어 가뭄 실정을 묻곤 했다.
"비 좀 올 것 같아요?"
"사모님, 오늘도 날이 말갛게 개었어요."
"이 일을 어떡하지, 세수도 못할 것 같고 숭늉 마시는 것도 송구스러워 못 견디겠네요."
그러다가 8월 11일, 육 여사는 직접 가뭄지구를 살펴보러 광주에 내려갔다. 일요일이었다. 더위는 31도. 그날 아침에 도지사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 준비, 차 동원, 경호 관계를 일절 못하도록 알려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현지에 도착하자 도지사 부인이 영접을 나왔다. 육 여사 일행은 그 길로 나주군 군청에 들러 공산면으로 향했다. 전남 일대에서도 그 지방이 가장 가뭄이 혹심했다. 육 여사가 온다는 기별을 받고 군수가 점심 준비를 마련해 두었다. 미리 점심 준비를 못하도록 지시를 받은 도지사 부인은 난처했다. 그러나 기왕 준비된 것이니 드시고 가라고 권했다. 그날따라 날씨도 혹독하게 덥고, 점심 시간이기도 했다.
"사모님, 날씨도 이처럼 덥고, 기왕 준비해 놓은 것이니, 군수 관사로 들어가셔서 땀도 들이시고 점심도 드시고 가셨으면..."
"목이 말라 애태우는 사람들 곁에서 그늘을 찾고 편한 것을 찾게 되었어요?"
도지사 부인을 쳐다보며 육 여사가 말했다. 도지사 부인은 몸들 바를 몰랐다. 점심도 들지 않고 육 여사 일행은 공산면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중도에서 차를 세우고, 산기슭 그늘진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미리 청와대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들었다. 점심을 마치자, 일행은 그냥 일어서려 했다. 그러자 육 여사가 구덩이를 파게 하고 찌꺼기를 모아 태우게 했다. 그것이 다 타게 되자 흙으로 덮고, 그제서야 떠나게 했다.
일행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주민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실의와 절망의 그늘이 어둡게 깔려 있었다. 초점 잃은 동공, 맥빠진 허탈한 모습, 모두 축 늘어져 있었다. 육 여사는 어는 노인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군수가 들판으로 안내하려 했다. 하지만 들판으로 나갈 것까지는 없었다. 마을 앞뒤가 들판이요, 새빨갛게 타버린 벼 포기, 말라서 큼직큼직하게 균열이 간 부연 논바닥.
부인들이 에워쌌다. 그들 얼굴도 새까맣게 타버리고 생기라곤 없었다.
"너무 낙담해서는 안 돼요. 얼마 안 있어 정부미가 내려올 테니, 이런 때 일수록 힘닿는 데까지 애써 보세요."
육 여사는 만나는 주민들에게 이렇게 되풀이해 들려주는 것이었다.
"너무 낙담 마세요..."
끝내 목소리가 울먹였다. 격려를 받던 부인들도 얼굴을 돌려 눈물을 닦았다.
육 여사는 주민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일행과도 떨어져 논두렁길로 걸어갔다. 말라 타버린 논 구석에는 양수기가 있었다. 물레방아처럼 생긴 양수기도 염천으로 맑게 갠 하늘 아래, 넋이 빠진 허수아비처럼 멀겋게 걸려 있었다. 양수기가 걸려 있는 논 구석으로 다가간 육 여사가 웅덩이를 들여다보았다. 웅덩이도 뽀얗게 말라붙어 있었다. 그러자 육 여사는 양쪽 장대를 잡고 올라서서 양수기를 발로 밟아 보았다. 빈 양수기가 찌그덕거리며 돌아갔다.
이편에서 도지사 부인이 바라보니, 논 구석에 있는 양수기를 영부인이 혼자 돌리고 있지 않은가.
"사모님이--" 하며 도지사 부인이 논두렁길로 달려갔다. 양수기 가까이 가자, 도지사 부인은 감전된 듯 발이 붙어 버렸다. 육 여사가 울고 있었다. 빈 양수기를 밟으며 울고 있었다.
"사모님" 도지사 부인도 울면서 여사를 껴안을 듯 양수기 옆으로 다가서자, 육 여사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양수기에서 내려왔다. 말라붙은 논바닥을 둘러보며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뭘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전남 나주에서 수해 자원봉사를 하시는 박사모님들,
그리고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보내시는 다른 회원님들,
여러분은 육 여사의 사랑과 봉사 정신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는 육 여사의 아들이고 딸입니다.
사랑합니다.
.............. 잠시 후 제2편이 계속됩니다 ....................
첫댓글 ....
^^* 울었습니다. "뭘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 요즘 근혜님도 나라 걱정으로 잠못드시고 맘으로 울고 계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