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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 뇌정삼식(雷霆三式)
진일문.
그는 마치 긴 악몽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그의 수중에서 뇌정도(雷霆刀)가 푸른 예기를 뿜고 있었다.
그는 뇌정도를바라보며 스스로를 향해 읊조렸다.
"기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으리라. 만일 내 본성이 마세에 대항하고자 하지 않았다면 이런 우연은 만날 수가 없었으리라. 이는 실로 하늘의 뜻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뇌정도가 순간적으로 발도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전자에 경험과는 엄연히 구분이 되었다.
그와 줄곧 의식을 같이 하며 극적인 순간에 환희밀선녀를 양단시킴으로써 마의 대법을 분쇄해 버린 것이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진일문은 벅찬 감회를 느꼈다.
우우웅......!
뇌정도는 그의심중을 알기라도 하는듯 힘찬 검명(劍鳴)을 발했다.
그러자 정기(正氣)가 어려 있는 그 음향으로 인해 법전 안에 있던 사요한 신상들은 쩍쩍 금이 가고 있었다.
진일문은 가슴깊숙한 곳으로부터 패기(覇氣)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뇌(雷)-- 정(霆)--!"
그 외침에 따라 그도 알지 못하는 엄청난 힘이 손목을 통해 뇌정도로 뻗어 나왔다.
천지간에 가장 강한 힘, 뇌정지력(雷霆之力)이 발출된 것이었다.
쩌어억--!
천만 갈래의 번갯불이 줄기줄기 뻗었다.
환희밀교의 법전 안은 삽시에 푸른 섬광으로 뒤덮혔다.
백팔개의 신상은 그 무시무시한 섬광에 휘감겨 속속 무너져 내렸다.
뇌정지력을 일컬어 하늘의 심판이라 한들 무리는 없으리라.
스스스스.......
신상들은 종내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것은 실로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덕분에 신상들로 가득 메워져 있던 석실에는 그 잔재만이 수북히 쌓이게 되었다.
진일문은 최후로 남은 단 하나의 입상인양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뇌정도를 비껴든 그의 모습은 흡사 뇌정신(雷霆神)과도 같았다.
가공할 힘을 발휘해 낸 그의 전신에서는 아직도 무한한 신비지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뇌정심법(雷霆心法)! 바로 이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지력의 비결은 이것이었구나."
그는 감당하기힘든 희열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뇌정도의 심법을 기어이 쟁취해 냈기 때문이었다.
희대의 기인인뇌환공(雷幻公).
그는 뇌정도를얻어 천(天)과 지(地)를 관통하는 뇌정지력을 불어넣은 장본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뇌정도를 움직이는 심법을 그 어디에도 따로 남겨둔 바가 없었다.
가공할 힘을 거머 쥐었으되 지극히 오만했던 뇌환공은 자신이 그러했듯 인연이 닿는 자만이 그것을 얻어 내리라 믿었다.
그는 뇌정삼식(雷霆三式)이라는 도초(刀招)를 창안해 내고도 그것을 비밀스럽게 감추어 두었다.
그리하여 천하제일도인 뇌정도는 그 이후로 대가 끊기고 말았다.
반면에 뇌환공은 괴퍅할지언정 정통을 잇는 도가(道家)의 인물로써 누구도 따르지 못할 협기를 지닌 정인(正人)이었다.
그는 체질적으로 마를 증오했고, 뇌정심법의 심득비결도 결국은 여기에 관건을 두었다.
그것은 실제로 천우신조가 따르지 않는 한 넘을 수 없는 관문이었다.
진일문.
그는 천년의 시공(時空)을 격하여 뇌환공이 터득한 뇌정심법과 만나고 있었다.
요컨대 뇌정도의 발도(拔刀)는 극강의 마성에 대응하기 위한 천명(天命)이라고 하면 옳았다.
이를 깨닫자 진일문은 마치 시야에 끼어 있던 짙은 안개가 걷혀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불현듯 청정한 대기 속에서 그의 망막에 닿아오는 것이 있었다.
"뇌정삼식(雷霆三式)! 말로만 전해 듣던 삼초의 도법,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 도법이 여기에 적혀 있었단 말인가?"
진일문은 뇌정도를 수평으로 들어 올렸다.
도신에 실낱처럼 가느다랗고 어지럽게 새겨진 문양을 보며 그는 감격해마지 않았다.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뇌환공이 남긴 뇌정도법으로써 그 문양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듯 진일문으로 하여금 환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 가게 만들었다.
무릇 억겁(億劫)도 일수유(一須臾)와 같다는 말이 있다.
이는 억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도 한순간이나 다를 바 없다는 의미로 지금의 진일문이 꼭 그러했다.
그는 도신에 새겨진 뇌정삼식의 오의(俉意)를 연구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가 소비한 시간은 억 년일 수도 있고, 찰나지간일 수도 있다. 그 흐름을 잊고 있으므로.
마침내 진일문은 어찌 보면 환영인 듯도 한 그 문양을 따라 허공에서 한 획, 한 획의 도결을 그려 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느릿하게 움직이던 그의 손이 점차 빨라지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아예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가 되었다.
위이이잉--!
도기(刀氣)가 풍차 돌듯 하며 섬뜩한 바람소리를 냈다.
또 어떤 때에는 애초보다 더 느려져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손목에 드러나는 혈관의 파동까지도 드러나 보이곤 했다.
도신에 새겨진문양은 실제로 뇌환공의 정신력이 새겨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일정한 서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감(靈感)으로써 해독하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때문에 먼저 뇌정심법을 깨우치지 못한다면 그 문양은 끝내 찾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찾는다 해도 풀어 내지 못한다.
문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그림도 아닌 기이한 문양.......
진일문은 그것을 완전히 깨우침으로써 여타의 도객(刀客)들이 천하를 떠돌며 평생에 걸쳐 무수히 연구하고 참오해낸 수준을 능가
하고 있었다.
가히 도신(刀神)이라 해도 무방할 경지로 그는 들어서고 있었다.
진일문은 명상에 잠긴 채 그대로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들어갔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짙은 오뇌(懊惱)마저 담겨 있었다.
이 때, 석실의 안쪽으로부터 혈영(血影)이 어른거리더니 그의 앞에 네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들은 붉은 법의(法衣)를 입은 승려들이었는데, 일견하기에도 중원의 복색이 아니었다.
특히 상의라는것은 그저 가로로 된 끈 하나를 동여메고 있는 형국이어서 상체의 우람한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그들 네 명의 중은 한인(漢人)이 아니었다.
눈은 푸른 빛을 발하는 벽안(碧眼)이었으며 키가 무려 일곱 척이 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그래도 보아줄 만한 것들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 머리에 계인(戒印)이 박혀 있지 않은 것까지도 괜찮았다.
그 중 두 화상의 벌거벗다시피한 가슴에 새겨진 문신(文身)을 본다면 중원의 승려들은 모두 기절을 하고 말리라.
그 문신은 다름 아닌 미녀도였다.
그것도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음탕하기 그지없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우측 화상의 가슴에는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있는 나녀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 자세란 화폭을 이루고 있는 화상과 연결을 지어보면 그야말로 묘한 해답이 나오는 것이었다.
좌측 화상의 문신은 더 노골적이었다.
그의 가슴에는 놀랍게도 두 명의 나녀가 하나의 남근상(男根像)을 사이에 두고 서로 희롱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었다.
정녕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기막힌 춘화도였으나 화상들의 신색은 그것과 심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의 얼굴에는 의외로 장엄한 빛이 어려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의 화상은 각각 핏빛의 륜(輪)과 홀(笏)을 들고 있었다.
이들 두 사람은 줄곧 눈을 반쯤 감은 채 석실 안의 광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상체에 문신을새긴 화상들도 제각기 손에 핏빛의 보리수 가지와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었는데, 그들도 역시 석실 안에 펼쳐진 광경을 보더니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네 사람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진일문에게 향했다.
진일문은 뇌정삼식을 참오하느라 몰두한 나머지 그들이 장내에 출현한 것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찢어죽일 놈!"
노성과 더불어금강저를 든 법승이 진일문을 향해 거구를 날렸다.
동시에 그는 진일문을 향해 금강저를 무섭게 휘둘렀다.
쉬이익--!
금강저는 진일문의 등뒤 삼초유(三焦兪)를 곧장 찔러갔다.
법승이 지금 펼치고 있는 것은 환희밀교의 상승기공이었다.
과연 금강저가 채 가까이 이르기도 전, 마치 산이라도 뚫어버릴 듯한 강기가 진일문의 삼초유로 쇄도해 갔다.
그러나 언제 의식이 돌아왔는지 진일문의 손이 반원을 그리며 금강저의 날카로운 예봉에 닿았다.
"컥!"
공격했던 법승의 입에서 참담한 비명이 터졌다.
금강저 끝을 통해 한 가닥 뇌전이 그의 전신을 관통해 버린 것이었다.
법승은 맥없이뒤로 나가 떨어졌다.
금강저는 그 사이에 벌써 부젓가락처럼 녹아 휘어지고 말았으며, 그의 천령개에는 시커멓게 그을린 듯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세 명의 법승은 창졸지간에 일어난 이 사태에 저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서 지켜보고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놀라운 것은 진일문의 모습이었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설사 태산이 덮쳐 든다 한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광경에 세 명의 법승은 자신들이 정말로 꿈을 꾼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들은 죽은 자와 함께 환희밀교에서 파견된 팔대법왕에 속한 인물들로써 무공이라면 적어도 교내에서는 대법왕(大法王) 다음으로 손꼽혀온 바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상대가 뻗어낸 일초에 즉사를 하게 되자 나머지 세 법승들로서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들 삼인은 뭔가 눈짓을 주고받더니 소리 없이 진일문에게 접근해 갔다.
그가 모종의 무공을 깨우치는 중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이 때를 노려 급습을 가하려는 것이었다.
진일문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뇌정도의 도신에 어른거리는 뇌정도식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죽어랏--!"
세 명의 법승이 동시에 공격을 개시했다.
위이이잉-- 휘휙--!
화륜(火輪)이 날고 홀이 벼락처럼 뻗쳤으며, 황금보리수는 허공에 어지러운 환영을 일으켰다.
이들의 합격(合擊)에는 가히 경천동지할 위력이 깃들어 있었다.
세 줄기의 막강한 강력( 力)에 석실의 사면 벽이 한 자가 넘게 깎여 나갔다.
아닌 게 아니라 진일문도 이쯤 되자 몸이 천근(千斤)쯤 되는 압력 속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아무 문제없이 움직여지던 그의 손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울러 그는 호흡마저 거북해져 오자 본능적으로 뇌정심법을 운용했다.
'아!'
진일문은 내심탄성을 발했다.
느닷없이 체내에서 진기가 수배나 증폭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더니 진기의 흐름은 생사혈관을 거꾸로 관통하고는 가공할 기세로 뻗쳐 그의 팔을 타고 손목까지 전달되었다.
그런 상태를 맞이하자 그는 지체없이 뇌정도를 떨쳤다.
우우우웅--!
뇌정도가 고막을 찢는 듯한 검명을 울리며 옆으로 휘어졌다.
실상 그것은 도신이 휘어진 것이 아니라 도극(刀極) 부분에서 시퍼런 뇌망(雷芒)이 쏟아져 나와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뇌망은 흡사 소용돌이와도 같은 기류를 일으키며 진일문의 전신을 한 바퀴 휘감았다.
삼인의 법승은 그 도세에 휘말려 그만 수중의 무기를 놓지고 말았다.
그들의 법의가흡사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마침내 그들도 필생의 공력을 끌어 올려 대항을 시도해 온 것이었다.
진일문은 그들이 이룬 삼재(三才)의 방위 한 가운데에 갇혀 있었다.
삼재진 속에서네 가닥의 각기 다른 기운이 격돌했다.
우르르릉--!
뇌음이 일더니장내는 삽시에 눈부신 섬광에 휩싸여 버렸다.
그 속에서 허파가 뜯겨 나가는 듯한 비명이 잇달아 울렸다.
"크아아악--!"
섬광은 금새 씻은 듯이 자취를 감추었다.
진일문이 비로소 긴 잠에서 깨어난 듯 눈을 떴다.
이어 주위를 돌아본 그는 크나큰 충격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아! 이럴 수가......."
그가 이렇듯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의 주변은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석벽이 온통 움푹움푹 파여 있었으며, 그 옆으로 숯덩이 같은 물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 물체란 다름 아닌 사대법왕의 시신 조각들이었다.
뇌정삼식의 위력에 그들은 처참한 몰골로 소진된 것이었다.
진일문은 수중의 뇌정도를 내려다보며 탄식을 불어냈다.
"뇌정삼식.... 과연 천하제일 도법이다. 기수식에 불과한 전궁일도(電穹一刀)가 이 정도이니 제 이식인 파천일도(破天一刀)라면 능히 천하의 만가지 도법을 말살시킬 것이다. 마지막 삼식인 무극광섬일도식(無極光閃一刀式)은 가히 하늘도 쪼갤 테고......."
진일문.
놀랍게도 그는짧은 시간 동안 천고에 드문 도법 뇌정삼식을 모두 익힌 것이다.
그렇지 못했다면 이처럼 그 위력에 스스로 놀라는 일도 없었으리라.
실로 누가 들어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대저 무공의 수준이란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 오르는 것이지 단번에 그 극점으로 도약해 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일문은 이러한 통념을 여지없이 깨부수고 있었다.
그의 수중에 쥐어져 있는 천고의 신도(神刀), 즉 뇌정도는 이제 그의 분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원하는 대로 발도는 물론 회수까지도 가능한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슷!
뇌정도는 그가진기를 거두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즉시 뇌정환으로 변신해 그의 손목에 감겨 버렸기 때문이었다.
진일문은 감정의 동요가 가라앉자 현실로 돌아왔다.
'이 곳에 온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군웅들은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눈에 안쪽의 내전으로 향해져 있는 통로가 들어왔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 곳을 지나쳐 내전으로 들어갔다.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게 꾸며진 곳.
바닥에는 광택을 자랑하는 천축산의 비단이 깔려 있었고, 벽은 금박으로 도금이 되어 있었다.
기둥에는 해독할 수 없는 문자와 그림들이 잔뜩 새겨져 있어 한층 이색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내전은역시 텅 비어 있었다.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그 흔적조차도 찌볼 수가 없었다.
진일문은 내전을 나와 안쪽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통로는 단순하게 뻗어 있었으며 여러 개의 내전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가 개중 다섯 번째의 내전에 들어섰을 때였다.
'맙소사!'
그는 아연해진나머지 벌어진 입을 채 다물지 못했다.
내전에는 수십명의 여인들이 원형의 진세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얼굴이 하나같이 밀납인형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녀들은 누군가에게 사혈이 찍혀 모두 죽은 상태였다.
여인들은 숨이붙어 있지 않을 망정 속살이 환히 비춰 보이는 투명한 망사의를 입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풍염한 몸매는 유감없이 그 굴곡을 과시했다.
진일문은 그런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슴 한 귀퉁이가 써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대체 누가 있어 이 많은 여인들을 죽였단 말인가?'
손을 대 보니 여인들의 몸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죽은지 얼마 안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진일문은 의혹에 싸인 채 다시 안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 때, 느닷없이 석부 전체가 불안스러운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
어디선가 굉음마저 울려 왔다.
진일문의 안색이 일변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형을 멈추며 청력을 기울였다.
이어 석실의 바닥에도 귀를 갖다대어 본 그는 아득한 곳으로부터 연이어 터지는 폭음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석부가 무너지려 하고 있다!'
진일문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만일 석부가 이대로 붕괴된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여하한 고수라도 출구를 찾지 못하는 한 꼼짝없이 생매장되는 것이다.
그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쾌속절륜한 신법을 발휘해 몸을 날렸다.
어물어물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판국이되, 그것은 비단 그 자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휘이익--!
바람을 가르듯통로를 내닫는 동안 진일문은 다시 몇 개의 석문을 만났다.
석문들은 모두 개방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기관장치로 열게 되어 있었으나 기관은 파괴된 지 오래였다.
한참을 달리던그는 마침내 여러 사람의 호통소리와 병장기 부딪는 소리를 접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약 십여장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는 호통소리 중에서 한 가닥 귀에 익은 음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저 음성은 황룡보주의 음성이 아닌가?'
진일문은 더 없이 다급한 심정이 되었다.
삼가의 가주들이 있다면 그 곳에는 육선고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을 가능성이 짙었다.
그는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 갔다.
석부의 한 광장.
그 곳에는 한창 숨막히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삼가의 가주들은 서로 등을 맞댄 채 귀면탈을 쓴 십여 명 괴인들의 협공을 막아내고 있었다.
녹존성군과 그의 수하들도 입장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역시 수십여 명의 괴인들에게 둘러 싸여 분전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육파의 장문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비대한 체구를 지닌 한 괴인을 맞아 싸우고 있었는데, 그 자는 몸통의 둘레가 보통 사람의 세 배도 넘을 것 같았다.
머리통만 해도어찌나 큰지 놀라움을 지나 실소를 자아낼 지경이었다.
아마도 어울리지 않게 황금으로 된 작은 관(冠)을 쓰고 있어 더욱 그런지도 몰랐다.
게다가 일신에걸친 의복까지도 소위 곤룡포(坤龍袍)인 자, 그를 보자 진일문은 심중으로 부르짖었다.
'저 자는 바로 천년마등주(千年免主)!'
그의 눈은 크게 부릅떠져 있었다.
천년마등주라면 당금 무림에서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절대마인이다.
진일문은 한 눈에 그의 존재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들인 보현을 직접 처단했기 때문으로, 보현과 그는 모습이 마치 판에 박은 듯이 닮아 있었다.
격전장의 후미에는 한 채의 가마가 놓여 있었고, 마등을 손에 들고 있는 네 명의 귀면인들이 그 가마를 지키고 있었다.
그 밖에도 또 다른 수십 명의 인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 하니 그들 중 한 쪽은 마교의 수하들, 반대 쪽은 거의 벌거벗다시피한 것으로 미루어 진즉부터 이 곳에 감금되었던 무림인들 같았다.
진일문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 빠르게 추리해 나갔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미루어 기관은 모두 파괴된 것 같다. 육누님이 멸천삼관을 발동했겠지. 이들은 이 곳의 붕괴를 예상하고는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서로 혼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장내의 난전 중에서도 유독 육파 장문인들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그들이 천년마등주 한 사람에게 연신 몰리는 것을 보자 그는 의아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도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 대 일이라면 몰라도 여섯 사람이 어찌 한 사람을 감당 못한단 말인가?'
물론 천년마등주의 무공은 개세적이었다.
그러나 육파의 장문인들이 모두 합공한 상태에서도 그를 꺾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게 했다.
그는 잠시 관찰한 후,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림의 원광선사나 화산, 아미의 장문인들이 펼치는 공격에서는 전혀 위력을 느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얼굴에는 일종의 상징성을 띈 자색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진일문의 안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독(毒)!'
상황은 실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진일문의 생각대로 육파의 장문인들은 하나 같이 맹독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렇게 된 경위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광무진인의 교활한 계략과 연결지어 본다면 범인은 역시 그 자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게다가 제대로신위를 발휘하지 못하면서도 마등주와 싸우는 것으로 보아 육파의 장문인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것 같았다.
'안된다! 저들까지 희생되어서는.......'
진일문은 내심부르짖고는 이를 악물었다.
동시에 그는 육파 의 장문인들을 돕고자 전권을 향해 망설임없이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그것은마등주의 장력이 막 화산파의 장문인인 비여청의 가슴을 때리는 찰나였다.
"크헉!"
비여청은 피분수를 뿜으며 그대로 삼장이나 날아갔다.
진일문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노호성을 발했다.
"마등주! 이 곳은 중원이지, 막북이 아니오."
이 외침은 마등주를 경동시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로 말하자면 과거에도 중원에 진출을 시도했다가 대패하고 도로 막북으로 쫓겨갔던 위인이 아닌가?
마등주에게 있어 그 기억은 하나의 약점이나 다름이 없었다.
따라서 그는 누구의 입에서건 그것이 들추어지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나머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독수를 뻗곤 했다.
과연 마등주의넓은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어떤 놈이냐?"
그는 분성을 터뜨리며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허공에서 눈부신 검광이 쏘아져 내려왔다.
"후후... 보현과 이미 상견례를 치룬 자외다."
"뭐, 뭣이? 그렇다면 네 놈이 보현을 죽인 그 놈이로구나."
마등주의 분노는 그야말로 극점을 향해 치달렸다.
타인에게는 어떤 존재로 알려져 있던, 독자(獨子)를 잃은 그의 슬픔은 천하의 어느 부모와도 다르지 않았다.
"이 찢어죽일 놈!"
결전에 있어 흥분은 절대 금물이다.
특히 고수들의 싸움에 있어서는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목숨을 잃는 수가 허다하다.
간일발의 차이로 이승과 저승을 가름하는 문턱을 왔다갔다하는 판국이니 찰나지간일지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물론 천년마등주도 평소 같았으면 가장 평범한 이 진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들을 살해한 원수가 눈앞에 나타남으로써 그는 이것을 깡그리 잊고 말았다.
하늘이라도 태울 듯한 격분이 마등주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렸다.
천년마등주는 시력을 빼앗길 정도로 눈부신 검광이 쏘아져옴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오히려 이를 부드득 갈며 쌍장을 내밀었다.
"지옥만겁수(地獄萬劫手)!"
위이이잉--!
막강한 경풍을일으키며 시커먼 묵광(墨光)이 마등주의 장심으로부터 뻗어 나갔다.
그러나 지금 그의 공세에는 본신 내력의 절반밖에는 깃들어 있지 않았다.
마음이 지나치게 동요된 상태이고 보니 공력이 제대로 운용될 리가 없거늘, 그 자신만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파앗!
천년마등주는 격타음이 울리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분명 극성의 천비수라마공(天肥修羅魔功)을 통해 전개했던 지옥만겁수가 상대의 검세를 꿰뚫었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그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기는 승리의 미소이자 아들의 복수를 이룬데 대한 만족감의 표시였다.
고작 그가 입은 상처라야 그저 정수리의 한복판이 잠깐 따끔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틀림없이 그랬다.
그런데 잠시 시간이 지나자 그의 미간 정중앙에 한 가닥 세로로 된 혈선이 그어졌다.
그 혈선은 콧등을 타고 점차 아래로 내려가, 입술을 지나더니 급기야 목울대까지 이어졌다.
"으헉!"
비로소 폐부를쥐어짜는 듯한 비명이 마등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둔탁한 소음과 함께 보통 사람의 세 배가 넘는 그의 거구가 맥없이 쓰러졌다.
그의 몸은 바닥을 나뒹구는 순간에 이미 이등분이 되어 있었다.
진일문.
그는 어느 덧 마등주의 맞은 편에 내려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들려진 비취검, 길이라야 불과 한 척 밖에 되지 않는 단검으로 희대의 대마왕을 양단시켜 버린 것이었다.
진일문도 설마하니 그 일초로 천년마등주를 꺾게 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었다.
다만 몇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나게 할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여겼을 정도였다.
일찍부터 보현과 마등주의 신체는 다 같이 도검불침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 중 공력이 높은 마등주의 호신기공이 보현에 비해 당연히 우위였다.
진일문은 천년마등주와 비취검을 번갈아 바라보며 안면 가득 의문을 떠올렸다.
'저 자가 설마 하니 이렇게 쉽게......?'
그 역시도 마등주 만큼이나 자신의 기량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오파의 장문인들은 충격을 입고 굳어져 있었다.
화산파의 비여청을 잃었으되 그들에게는 비통함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들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으로 인해 온통 경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불과 약관에 지나지 않는 청년이, 그것도 일검으로 마등주를 제거해 버렸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미타불......."
소림의 원광선사가 눈을 내리감고 불호를 외웠다.
인세를 초탈한 승인이었으나 주검에 대한 연민은 그도 늘상 느낀다.
하지만 지금은결코 그 때문이 아니었다.
놀란 나머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법력(法力)이라도 빌고자 한 것이었다.
그의 불호성에도움을 입은 것은 오히려 진일문이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든 듯 재빨리 비취검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오파의 장문인들을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다들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예를 갖춘 그의 태도에 장문인들은 얼굴을 붉혔다.
명색이 무림에서 정통의 맥을 이어 오던 명문대파의 장문인으로써 일개 젊은 청년에게 구명지은을 입게 되자 그들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상황이그렇다 해서 예를 무시하면 웃음거리밖에는 안된다.
원광선사가 대표격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시주의 무공은 가히 신인(神人)에 가깝구려. 정기가 말살되어 가는 중원무림에 소협과 같은 신성(新星)이 나타났다는 것은 홍복이 아닐 수 없소이다."
치하의 말을 듣자 이번에는 진일문이 얼굴을 붉혔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광무진인은......?"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 때문이었다.
광무진인이 마교의 주구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그들은 간접적으로 마교에 협력한 셈이 되었고, 그런 그들에게 광무진인에 대해 묻자니 부담을 줄 것 같아서였다.
원광선사가 그의 의중을 알고는 되려 장탄식했다.
"아미타불.... 진정 수치스러운 일이오. 우리들은 그 동안 허명만 얻었을 뿐이지, 강호의 정세에 대해 너무도 어두웠소이다. 뒤늦게라도 소협이 잘못된 점을 깨우쳐 주지 않았다면 천추의 한을 남길 뻔 했소이다. 이제껏 우리들 손으로 무림의 장래를 망치고자 했으니 이 죄업을 어찌 치뤄야 할지 모르겠소."
아미파의 장문인인 해공선사(海公禪師)가 계도로 땅을 찍으며 통탄해마지 않았다.
"광무, 그 도적에게 속아 그렇게 되었다지만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하겠소? 그 자의 말마따나 우리가 어리석었던 것을. 신물보전(神物寶典)까지 그에게 내맡겼으니, 크흑!"
그들의 절규는흡사 피를 토해내는 것과도 같았다.
이를 보자 진일문은 안타까운 심정이 되어 그 이상은 더 물을 수도 없었다.
그는 얼른 화제를 돌려 버렸다.
"여러분들의 안색을 보니 독상을 입으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서 요상을 하시는 것이......."
원광선사가 그의 말을 중도에서 막았다.
"아미타불... 소협께선 염려하지 마시오. 문자 그대로 자업자득이외다. 그 자는 각파의 신물들을 핑계 삼아 우리로 하여금 아홉 가지나 되는 독물을 복용하도록 강권했소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자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부터 우리의 목숨은 이미 사라진 것이나 다름이 없소."
진일문은 그 말을 듣자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체 선사께선 무슨 말씀을......?
아니나 다를까? 원광선사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미타불... 우리는 지금 상태로는 조사의 영전에 감히 얼굴도 내밀 수가 없는 죄인들이오. 아니, 사문으로의 복귀는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외다. 우리는 차라리 이 곳에서 다 함께 뼈를 묻기로 합의를 보았소이다. 그나마 부처님의 가호가 계셔서 도적을 처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목이 메이는 듯 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불심이 깃든 그의 노안에는 어느새 뿌연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진일문은 갑자기 정색을 하며 그를 비롯한 오파의 장문인들을 응시했다.
"그것은 아니될 말씀입니다. 중독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옥쇄를 감행하시려는 뜻은 훌륭하나 소생은 여러분들께서 좀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장래 일을 내다 보셨으면 합니다."
"소협, 우리는......!"
해공선사가 부정의 뜻을 전하려다 흠칫 하고 멈추었다.
진일문의 눈썹이 홱 치켜 올라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희생만으로는 결코 마교의 힘을 수그러 들게 하지 못합니다. 각파의 정기가 더욱 움츠러 들어 반대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게 될 뿐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필히 문파로 돌아가 오늘의 이 음모를 알리고, 정도무림을 새롭게 규합해 미구에 닥칠 큰 혈풍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그의 말에는 조금도 그른 것이라곤 없었다.
절절한 충절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써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각 장문인들을 감동으로 이끌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오파의 장문인들은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
분명한 것은 이 순간 그들이 벌써 수치감에서 일탈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에게 충고를 받았다 해서 자존심이 상한다던가 하는 일도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무거웠던 가슴이 탁 트이는 한편 새로운 목적지가 정해진 항해사인양 투지가 끓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노호한 바다라도 능히 헤치고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때였다.
콰르르릉--!
굉렬한 폭음과함께 느닷없이 천정의 일각이 무너져 내렸다.
덕분에 그 때까지도 도검이나 권장을 나누고 있던 장내의 인물들이 일제히 싸움을 중지하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만일 이 거대한 지하 동굴이 무너진다면 격전도, 난전도 모두 필요없게 된다.
양측이 전부 같은 무덤 안에 들게 될 테니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제 하찮은 승부수 따위가 아니었다.
오직 출로를 찾는 것만이 급선무였다.
꽈르릉--!
재차 폭음이 일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한 쪽의 벽이 무너지며 그 곳으로부터 하나의 왜소한 인영이 뛰쳐나왔다.
"육누님!"
진일문은 크게외치며 그 인영에게로 날아갔다.
하지만 그가 막 다가서서 손을 내밀었을 때였다.
인영은 되려 그에게 맹렬한 일격을 가해왔다.
"어림없다! 흉적."
쉭!
"누님! 소제, 진일문이오. 진정 하시오."
진일문은 예상치 않았던 공격에 급히 한 손을 뻗어 이를 막았다.
그러나 다른 한 손은 그대로 육선고의 무력해져 있는 육신을 받아 안고 있었다.
그는 멀리서부터 이미 그녀가 전신을 피로 적시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동생!"
육선고는 비로소 그의 품으로 쓰러지듯 안겨 왔다.
"죽어라--!"
무너져 내린 벽 쪽에서 살찬 일갈과 함께 시뻘건 장세가 몰려 나왔다.
진일문은 상황을 짐작했던지라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좌수로 비취검을 휘둘렀다.
츠읏!
비취검에서 푸른 전광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진일문이 무의식 중에서도 뇌정삼식의 기수식인 전궁일도를 펼친 것이다.
물론 뇌정도로 펼쳤을 때와는 크게 차이가 있었지만.
"헉!"
다급한 신음성이 울렸다.
이어 벽에서 튀어나온 또 하나의 인영은 바로 광무진인이었다.
그는 가슴에서 솟구치는 피분수를 손으로 막으며 경악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때, 진일문의 가슴에 안겨 있던 육선고가 숨가쁘게 말했다.
"나... 나.... 멸천삼관을... 발동시킨지 오래예요. 빨리 서쪽의 통로로.... 시간이 없어, 동생......."
상황은 너무도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진일문으로서는 더 이상 무엇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진기를 실어 외쳤다.
"모두들 불초를 따르시오--!"
다른 부언도, 피아(彼我)의 구분도 일체 필요치 않았다.
현재의 중인들에게는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돌로 된 사방 벽에 쩍쩍 금이 가고 천정이 곳곳에서 무너지기 시작한 지금, 이끌어
줄 구원자 외에 무엇이 더 요구되겠는가?
휘익--!
진일문은 앞서신형을 날렸다.
그러자 정사의 모든 인물들이 처음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그의 뒤를 따랐다.
우르르르-- 콰콰쾅--!
군호들이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광장이 허물어져 내렸다.
삽시에 광장은거대한 암석들과 흙더미에 파묻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위기의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긴 군호들은 저마다 진저리를 치며 가슴을 쓸고 있었다.
진일문은 품안에 육선고를 안은 채 계속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 달리고 있었다.
뒤쪽에서는 폭음이 연이어 울렸고, 더러는 뭇군호들의 단말마가 섞여 들려 오기도 했다.
'아! 저들은 끝내 이 곳에서 부질없이 산화하고 마는구나.'
진일문은 내심탄식해마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들로 인해 발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은 물론 자신을 따르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의식해서였다.
'일월맹! 내 절대로 용서치 않으리라.'
첫댓글 ``@-@``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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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참... 리더를 한다는게.. 얼마나...,
감사드립니다
굿,,,즐감,,,,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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