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 살게 된지 벌써 2년도 넘었는데 여태 오페라를 한번 못 봤었다.
이유인즉 좋은 자리는 거의 20만원이 넘고 한달전 그 날짜에 아침 8시부터 줄을
서야 표를 구입할수 있으니 바쁜 사람은 사러 갔다가도 좋은 공연은 미리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들 때문에 매진되기 일쑤라 보긴 싶지 않다.
여기서 살 동안 좋은 공연 몇편은 봐야한다고 조르는 남편과 너무 비싸다고 버티는
나 때문에 2년이 넘고 말았는데 지난 2월 5일에 출근하던 남편이 카드로 표를
사 버렸다.
마누리 눈치본다고 꼬래비에서 두번째로 싼 65유로짜리로 샀단다.
그것도 늦어서 식구 네명이 다 떨어져 있는 자리로 겨우 샀단다.
제목은 '라트라비아타'
너무 잘 알려졌지만, 한국에서 보는 것과는 스케일이 다른 정통 오페라를 보게 됐다는
생각에 총 260유로는 너무 비싸다고 쬐끔 앙탈부리다 그 날만 기다렸다.
그러다 지난 토요일 표를 챙겨보니 40만원이나 하는 표가 없어졌다.
서너시간동안 집안을 왠통 다 뒤집었더니 머리는 지끈거리는데 문득 며칠전 대청소하고
종이류 쓰레기 버린게 생각났다.
분명히 같이 버린 모양이라고 쓰레기장으로 가려니까 남편이 말린다.
쓰레기를 치웠을거고 그 큰 종이류 통에서 못 찾는다고.
그래도 그냥 있을수는 없어서 일톤트럭만한 종이류 통을 뒤집었다.
기꺼이 도와준 착한 두 아들과.
'오 마이 갓'
한 일주일쯤 치우지 않았는지 통에 종이가 가득이다.
밤 10시가 넘게까지 찾아 내 쓰레기는 찾았는데 표는 없었다.
아이들은 날 위로한다고 여기 없으니 분명히 엄마가 어디 잘 두었을거라고
오늘 자고 내일 잘 찾아보잔다. 엄마가 아무곳에나 두었을리가 없다고.
그 말이 더 미안하다. 무엇이든 제자리에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밤새 표를 찾아 헤매는 꿈도 꾸었다.
다음날 아침 결론은 구매처에 가서 사정해보고 안되면 못본다였다.
계속 매달려있다가는 내 머리부터 터질것 같아서.
근데 바빠서 일요일에도 출근한 남편이 출근하고 한시간 쯤 지나 전화를 했다.
출근길에 구매처에서 카드영수증을 보여주고 사정했더니 당일날 오면
어떻게든 해 주겠다고 했으니 걱정말라고.
짠돌이 마누라가 얼마나 상심할지 아는 남편의 맘 넓은 배려에 가슴 뭉클했다.
때로 내다 버리고 싶을만치 애를 먹여도 이러니 17년을 살았다.
당일 사실은 나름 투인원을 빨간색으로 카피해서 오페라하우스에 입고 가 보려고
한 꿈같은 계획도 쓰레기통 뒤집는 통에 완성하지 못해 실패하고 옷장에 옷을 다 꺼내놓고
나름 지대로 차려입고, 아들들도 양복입고 넥타이매고 오페라를 보러갔다.
총 4막으로 된 오페라는 3시간이나 공연했는데 나는 1막 첫 아리아에서부터
눈물이 나게 행복했다. 무덤덤한 성격에 남들이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하다는게
어째 좀 과장같다고 생각한 내가 소름이 끼치고 눈물이 나게 행복했다.
가끔 영화를 보면서 연극을 보면서 참 좋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제대로 차려입고 가끔하는 이런 문화생활이 인간에게 이런 행복감을 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한국에서는 중독된듯 일한다고 제대로 해 보지 못해서.
표값이 아깝다는 생각도 안 들고 또 보러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서서 보는 표는 3.5유로로 살수 있으니.
이 나라의 나이든 분들도 서서 오페라 보는 분들이 있다.
비엔나에 사는 동안 서서라도 많이많이 보고 갈거다.
어쨌든 오늘부터 2유로짜리 동전은 몽땅 모으기로 했다. 오페라보려고.
우여곡절끝에 보게된 오페라 진짜 좋았다.
. 여러분들도 돈 아깝다 생각마시고 가끔은 이런 호사를 누려보세요.
세라님이 입으신 빨간색 투인원을 보면서 이건 멋진 목걸이랑 코디해서
오페라 하우스에 딱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실팹니다.
다음에 성공하면 오페라하우스에 입고 갈 겁니다.
그런데 패키지를 할수없는 먼 곳의 내가 그 라인대로 뜰수나 있을지.
첫댓글 저도 이런 공연들을 좋아해서 가끔 찾는 편인데 클래식 공연은 남다른 감동이 있지요. 그래서 몇 백년 변함없이 사랑받는 거구요. 그 가슴 벅찬 감동 현장 아니면 느낄 수 없어요. 오디오로 듣는 것과는 비교도 안 돼죠. 드레스 입고 오페라극장 가는 서양사람들 보면 부러워요.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런 차림은 오바!로 간주하잖아요.^^ 그나마 요샌 많이 나아졌죠. 좋은 시간 보내셨겠네요.
제목만 보고 세라니트 히트작품 <그물숏재킷>을 떠올린 분들이 많을 듯^^ 그 실 이름이 <오페라>잖아요.ㅋㅋㅋ~
휴~ 글 읽는 내내 오페라 못 가셨을까봐 조바심 났더랬어요. // 위속에 밥을 꽉꽉 채워도 허기가 질때가 있어요. 이럴때는 여행이든 영화든 책이든 가슴의 허기를 채워줘야죠. // 친정아버지께서 작년 빈여행때 유명하다던 비엔나커피를 못 드시고 왔다고 내내 서운해 하셨어요. 거기에 계실때 커피도 음악도 많이 보고 즐기고 오세요. 부럽습니당.
달해님,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가 없어요. 하지만, 멜랑쥐라는 커피가 우리가 말하는 비엔나커피지요. 다음달부터는 서울에서 바로오는 직항이 생기는데 여유가 되셔서오신다면 제가 맛난 커피 많이 사 드릴수 있어요.
그렇군요. 비엔나님 그렇지 않아도 요즘 심난하니 바람들었는데 부채질 하심 어떡해요. 흑흑. 정말 가보고 싶은 도시예요.
저두 결혼하고 10년을 이러저러한 일들이며 바쁘다는 핑계로 문화생활과는 무관한 삶이었는데,,,작년 겨울에 10주년 기념으로 빅마마콘서트를 갔었지요...그때 느꼈던 해방감과 뿌듯함이란...그래서 1년에 한번은 꼭 서울로 공연여행을 가기로 했답니다... 많이 행복하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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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예요. 남편직장때문에 와서 2년 정도 남았네요. 한국에 들어갔다가 또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가겠지요.
부럽네요. 남편 덕분에 여러나라에서 살아보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