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기일·선고 방식 의견 물어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5급 이하 법원 공무원이 가입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다. 법원 노조는 지난 2005년 출범했는데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특히 목소리가 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법원 노조는 ‘판사 갑질 개선’을 위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29일 전해졌다. 노조는 지난 16일 설문 조사를 시작하며 “그동안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법관 및 재판부에서 벌어지는 갑질을 조사해 사례집을 대법원장에게 전달할 계획”이라며 “언론 제보나 국정 감사에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설문 조사는 총 23문항이다. ‘법관에게 하대나 무시, 비인격적 대우를 받은 적이 있느냐’ ‘법관으로부터 택배 수령, 인사 이동 시 짐 싸기, 각종 심부름 등을 요구받은 적이 있느냐’ 등 갑질 관련 설문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설문은 법관의 재판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 등을 제약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1월과 7월 정기 인사 이동으로 직원이 바뀌는 상황에 원활한 인수 인계나 업무 공백 방지를 고려하지 않고 법관이 인사 이동 전후로 재판 기일을 잡는 경우가 있느냐’는 설문이 대표적이다. 한 부장판사는 “판사가 재판 날짜 정하는 것까지 노조가 갑질로 본다면 국민이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며 “법원 내 갑질을 없애는 건 옳지만 노조가 요구하면 안 되는 게 있다”고 말했다.
노조 설문에는 ‘분리 선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항목도 나왔다. 분리 선고는 재판 당사자가 여러 명이거나 한 당사자에게 여러 사건이 있는 경우에 재판장 판단에 따라 판결을 나눠 선고하는 것이다. 분리 선고를 하면 기록을 여러 번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법원 직원들은 일이 많아질 수 있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분리 선고는 판사의 권한인데 법원 직원이 일이 많아지는 게 싫다고 한꺼번에 선고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며 “노조가 설문 조사에서 언론 보도나 국정 감사를 언급하며 법관을 압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옳지 않다”고 했다.
한 고등법원 판사는 “법원 노조가 대법원장 교체를 앞두고 판사 갑질 사례를 모아 대법원장에게 전하겠다고 하는데 새 대법원장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법원 노조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를 검증하기 위한 제보를 받는다고 했다가 “선을 넘었다” “노조가 해야 할 일만 하라”는 내부 지적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