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산 생태 숲길
십이월 초순 금요일은 대학 동기와 산행을 나섰다. 친구는 올여름 퇴직해 처가인 의령 가례에 귀촌하는 집을 짓느라고 바쁜 날을 보내는데 해가 바뀌기 전 완공되어 입주가 가능할 듯하다. 우리는 김해 장유와 부산 녹산을 경계로 하는 야산을 오르려고 58번 좌석 버스를 타기로 했다. 이른 아침 원이대로로 나가 창원대학을 출발해 팔룡동 버스터미널을 둘러오는 첫차 버스를 탔다.
여명에 시내를 벗어나 버스가 창원터널을 빠져가니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는데 관동지구 아파트를 지나 율하를 거칠 때 내렸다. 우리가 사는 생활권이 아닌 낯선 아파트가 빼곡하고 그 틈새 학교가 들어선 신도시 율하였다. 불모산이 화산 공군 기지를 거쳐 굴암산에서 두 갈래 지맥은 남쪽으로 더 흘러갔다. 한 줄기는 진해 웅동 보배산에서 녹산에 이르고 다른 한 갈래를 탈 셈이다.
오래전 두동의 웅천도요지 전시관 뒤에서 보배산을 올라 지사 과학산업단지를 거쳐온 적이 있었더랬다. 이번에는 굴암산이 흘러온 산자락을 올라 경마장 뒤의 낮은 산줄기를 따라 조만포로 나갈 예정이다.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서부산으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 굴다리를 지나니 암자치고는 규모가 커 보였던 약사암이 나왔다. 그 절집을 돌아 산행 들머리를 찾아 산기슭으로 올랐다.
우리는 한 번도 가지 않은 첫걸음 산행지였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은 더러 다녀 바닥의 가랑잎은 발길에 밟힌 흔적으로 반질반질했다. 산등선 이정표엔 북으로 가면 굴암산이고 남으로는 옥녀봉과 금병산이라 했다. 우리는 남으로 뻗은 부산과 경계의 경계인 금병산 생태 숲길을 택해 걸었다. 강원도 춘천에는 김유정 소설의 배경이 되는 같은 이름의 산이 있고 인근 진영에도 있다.
장유 신도시 아파트가 들어서니 당국에서는 주민들이 여가를 즐기는 산행에 나설 등산로를 잘 정비해 등정에 어려움이 없었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여 자라는 산등선 숲길을 따라 걸으니 평소 접했던 익숙한 풍광이 아니라 신선감이 더했다. 부산 녹산으로 빠지는 터널 위를 거치는 산마루에 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서부 김해 들녘과 공장이 드러났다. 오른쪽은 지사 과학산업단지였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은 평탄한 숲길을 걸어 바위가 드러난 곳에서 벗이 가져온 돌배 담금주를 몇 잔 비웠더니 맛이 상큼하고 향긋했다. 산등선의 첫 번째 산봉우리 옥녀봉에 이르니 지사 과학산업단지와 신항만과 가덕도 바깥의 아득한 바다가 드러났다. 앞으로 나아갈 금병산 아래 경마장이 위치했다. 옥녀봉에서 배낭을 풀어 온기가 남은 도시락과 남겨둔 담금주를 마저 비웠다.
쉼터에서 구불구불 남쪽으로 뻗은 산등선을 따라 곰티고개를 비롯해 몇 군데 산마루에 잘록한 고개를 거쳤다. 예전 지사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이 장유로 넘나들던 고갯마루인 듯했다. 옥녀봉 건너편의 또 다른 산봉우리 큰 옥녀봉을 비켜 금병산으르 향해 나아가니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바퀴 구르는 소리와 가락 일대 들판과 공장이 드러나 부산권이 가까워졌음이 실감 났다.
우리가 목표한 금병산은 그리 높지 않았더랬다. 신어산과 돛대산에서 끝난 낙남정맥이 용제봉에서 나뉜 지맥 한 갈래가 그곳에서 마쳤다. 금병산에서 비탈을 내려서니 대청계곡이 조만강이 되어 흘러와 서낙동강에 합류하는 조만포와 둔치도였다. 마산에서 장유를 거쳐 사상으로 뚫린 민자 건설 복선 철길은 아직 개통되지 않아 이용 승객이 없었지만 경마장역 역사는 우뚝했다.
조만포에 이르니 넓은 차도는 신항만으로 드나드는 차량으로 무척 혼잡했다. 아까 산마루에서 바라봤던 보배산 인근 흥국사가 가까운 곳이었다. 가락국기에 전하기로 흥국사는 아유타국에서 뱃길로 온 허황옥이 망산도에 닿아 두동 고개를 넘는 신행길에서 수로왕과 첫날밤을 보낸 절로 알려졌다. 동행한 벗과 짬뽕으로 하산주 삼아 맑은 술을 들면서 흥국사는 다음 산행지로 꼽았다. 22.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