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개과 맹수를 제외한 다른 식육목에 대하여 대충 개략적으로 말해 보았다. 이제 개과라는 동물에 대하여 설명해 보겠다.
개과는 조금 특이하게도 걷는 방식이 지행성(指行性)이다. 여기에서 지행성이라는 말은 발을 뗄 때 발바닥으로 걷지 않고 발끝으로 걷는다는 이야기이다. 즉, 앞발과 뒷발모두 발가락끝으로 땅을 딛는다. 따라서 달릴 때는 잘 몰라도 보통 천천히 걸을 때는 금방 표가 난다.
보행방식이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왠지 불안정하게 발발거리며 걷는 태도이다. 개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맹수들은 발바닥으로 걷는 척행성이거나 반쯤 발바닥을 땅에 밀착시키고 걷는 반척행성의 동물들이어서 안정적이다.
척행성이라하면 대표적으로 곰과 맹수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래서 곰과 동물들은 싸울 때나 정찰할 때 적을 위협할 때는 곧장 두발로 일어서기를 잘한다. 일어 서는 것 뿐만 아니라 일정 분간이나 초간을 두발로 걸을 수가 있고 뒷걸음질도 할 수가 있다. 곰은 이러한 잇점이 있기에 같은 곰끼리 전투방식에는 마치 인간으로 비유하면 레슬링이나 그래플링에서 탁월한 기량를 발휘한다.
고양이과 맹수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고양이과는 행동방식이 종에 따라 일률적이지가 못하고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자와 호랑이 표범이 각각 앞발을 땅에서 뗄 수 있는 지탱력이 다르다. 특히 호랑이가 두발로 오래 버틴다. 호랑이는 다른 호랑이와 싸울 때 뒷발로 상당시간을 버티고 서서 마치 인간의 권투시합과 흡사하게 앞발펀치를 잘 구사한다. 물론 잽과 훅 비슷한 기술 밖에는 볼 수가 없지만 그래도 연타를 계속해서 날릴 수가 있다. 스텝도 두발로 선채 모둠발로 깨금발 형식으로 밀어 붙이거나 후퇴하여 꽤 빠른 공격패턴을 보여 준다. 인간의 격투기 종목으로 말하면 동물계, 맹수계에서 입식타격기의 달인인 셈이다.
기타 다른 맹수들도 반드시 척행성이 아닐지라도 반척행성이 많다. 그래서 천천히 걸을 때도 안정적이다.
그런데 개과동물은 희한하게 지행성이다. 이점이 다른 맹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개과 맹수에게는 불리함으로 작용한다.
우선 첫째로 개과의 약점은 앞발을 쓰지 못한다. 발톱도 다른 맹수에 비하면 형편없이 무디다. 결코 발톱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조그만 데미지 하나도 입힐 수가 없다. 개과가 믿고 있는 무기는 오로지 입으로 물어 뜯는 기술, 이빨 뿐이다. 그렇다고 송곳니가 고양이과처럼 길지도 않아서 사냥감을 단숨에 죽이지도 못한다. 곰과처럼 발톱이 발달되지 않아서 사냥감을 앞발로 붙들어 놓고 마구 물어뜯어버릴 수 있는 기술도 없다. 족제비과처럼 맷집이 좋지가 않아서 강한 맹수들과 대결할 때는 대부분 위태롭기가 그지없다. 사향고양이과 처럼 동작이 잽싸지도 못하여 독사를 만났을 때 주둥이로 물어뜯어 죽일 수는 있어도 독아에 물려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개과는 독사같은 것을 족제비과나 사향 고양이과, 또는 고양이과처럼 당당하게 상대하는 일이 없다. 이런 것을 동물의 상성관계라고도 한다지만 하여튼 개과동물은 이래저래 참으로 어정쩡한 특성이 있다.
미국너구리과는 나무를 타지만 개과는 나무도 전혀 타지 못한다. 가히 초식동물수준이다.
개과동물이 무는 것이 주특기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이에나과 맹수들처럼 가공할 치악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늑대, 리카온, 승냥이(돌이라고도 하는 인도 승냥이)를 제외한 개과 짐승은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주 소형동물이라면 모를까 살상력이 너무나 형편이 없다. 굳이 예를 들자며 인간이 데리고 있는 축견(개)은 악력이 보잘 것 없어 무리로 달려들어도 멧돼지 하나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사냥개들이 비록 용맹하다고는 하나 할 수 있는 일은 사냥감을 직접 죽이는 일보다도 포수에게 짐승을 추적하여 몰아다 주는 역할이다.
상기한 예를 보아서 알 수 있듯이 개과 맹수는 곰과, 족제비과, 고양이과, 하이에나과, 사향고양이과, 미국너구리과, 물개과, 물범과 등 다른 맹수들보다 우선 하드웨어적요소에서 떨어지고 스펙에서 딸리고, 전체적으로 포스에서부터 밀린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늑대나 리카온, 승냥이들은 무리를 짓는다.
늑대무리에게 포위되면 북미대륙의 왕자로 군림하는 그리즐리도 결국 도망가고 만다. 퓨마도 죽일 수 있다. 울버린은 어지간해서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평균 3마리 이상을 넘지 않을 때의 경우이지 다수의 늑대무리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별 수가 없을 것이다. 리카온 무리는 사자를 제외한 표범, 하이에나를 종종 찢어 죽인다. 인도대륙에 서식하는 승냥이 무리는 포악하기로 시베리아 호랑이보다 더 포악하다는 밀림의 왕, 벵갈호랑이를 포위하여 살상한 사례가 종종 있다는 것이 기록에 있다. 즉, 속된 말로 다굴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이다.
개과 맹수는 두뇌가 영리하다. 고양이과보다 훨씬 영리하다고 한다. 물론 두뇌가 좋기로는 맹수가운데 곰과 동물이 좋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인간과의 커뮤니케이션, 친화력, 사회성등으로 보면 개과가 그래도 곰과보다야 낫지 않겟는가 라는 답을 얻어 낼 수가 있다. 우선 개만 보더라도 인간사회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군용견, 경찰견, 번견(경비견), 가드견(호위견), 엽견(사냥개), 투견, 맹도견(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인도하는 견), 가정견(심부름 등, 소소한 일을 도와주는 견), 영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각종 애완견, 구조견(인명구조견, 전통적으로 알프스 산악지대에서 눈에 빠진 사람을 구출해내는 일등공신으로 이름높은 센트버나드가 대표적이다)등등 말이다.
이러한 개의 생태(生態)로 보았을 때 개는 아마 인간을 등에 업고 야생에 적응하여 수만년을 살아오고 또 살아가야하는 숙명을 지닌 다른 맹수들에 비하여 더 합리적인 진화라는 생존방식을 나름대로 터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과는 무리생활을 하더라도 하이에나의 무리와는 또 다르다. 하이에나는 위계질서만 있을 뿐 수평적인 동료애가 없다. 먹이를 놓고 서로 나눠먹으려고 하는 행동은 없으며 오직 아귀다툼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리카온은 사냥을 떠나기 전에 구성원들이 둥글게 원을 만들며 일종의 동료간 유대를 다지는 의식을 한다. 그리고 사냥한 고기를 되도록 많이 먹어서 그것을 서식지로 돌아와 늙고 병들고 어린 동료들에게 토해낸다. 이렇게 하여 리카온 무리는 냉혹한 자연세계에서 잘도 살아간다.
늑대또한 리카온과 비슷한 공동생활을 하며 인도의 승냥이도 그렇게 살아간다.
개과는 무기가 이빨뿐이지만 팀플이 발달하여 사냥을 할 때 아주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지능적으로 움직인다.
서로가 지치지않게 교대로 사냥감을 공격한다. 고양이과 처럼 목줄을 물어 단번에 사냥감을 죽일 수가 없고 곰처럼 정면에서 짐승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여러마리가 협동작전으로 번갈아가며 회음같은 약한 피부를 집중공격하여 산채로 짐승을 뜯어 먹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개는 이런 방식에 의해 사향소, 들소, 누우, 얼룩말, 물소같은 대형 초식동물들도 별 수 없이 쓰러진다. 따라서 살육방식이 고양이과나 곰과맹수보다 더 무참하고 잔인하게 보인다. 고양이과의 송곳니가 한번에 내리긋는 일본도와 같은 장검이라면 개과의 송곳니는 여러번 예리하게 날질을 하는 사시미(일어, 회)용도의 칼이라 할 수 있다.
하이에나는 숫사자에게 동료가 쫓기면 멍하니 바라보지만 늑대나 리카온은 그렇지 않다. 집단생활을 하는 개과맹수는 제아무리 크고 힘세고 강한 맹수가 와도 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동료애가 유대감으로 뭉쳐있어 함께 싸운다. 교대로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동시에 돌진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과 맹수는 무기가 주둥이하나에 의지하고 잇어서인지 몰라도 주둥이가 길고 자연계의 맹수가운데 입질 속도가 매우 빠르다. 특히 북아메리카 팀버늑대같은 경우에 면도날 같은 이빨로 빠르게 물고 찢어버리는 공격패턴을 구사하고 있다.
결론을 내린다면 하이에나는 제 목구멍박에 모르는 양아치무리들이지만 개과 맹수는 의리를 아는 세련된 건달이다.
이상 말한 일련의 모든 것들이 개과 맹수를 당당하게 자연계의 비정하고 냉혹하며 약육강식의 맹수세계에서 살아 남게 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