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개월 된 손자의 3일간의 유치원 방학을 이용해
남도여행을 하자는 딸의 제안에 아내와 딸, 손자와
나 이렇게 모두 넷이 여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블과 일년 전 비행기를 탔을 때 비행기 타는 게
무서워 비행시간 내내 큰 소리로 울었던 손자가
이제는 좌석 한개를 떡 차지하고 의젓하게 앉아
연신 웃는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며 "할아버지,
나 비행기 타, 비행기" 하면서 몹씨 즐거워한다.
1년만에 이렇게 성숙해지다니 놀랍기만하다,
여수 구백식당에 들리니 막걸리 식초로 버무린
서대회, 된장을 넣고 끓인 아구탕, 소금을 뿌려
구운 씨름꾼 손등보다 더 두꺼운 갈치구이 맛이
일품이다.
이 맛에 반한 유명인사들이 여주인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들이 식당 한쪽벽을 빼곡 메우고 있다,
18세에 떠난 고향 여수를 그동안 수차례 찾았어도
올 때마다 대충 몇 군데만 둘러보고 친구들 만난 후
호텔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훌쩍 떠나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크게 마음 먹고 여수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친구를 3일간 고용해 여수, 순천, 광양 3개도시의
관광명소를 모두 둘러보기로 했다.
돌산대교, 케이블카, 아쿠아플래닛, 이순신대교,
거북대교, 순천정원박람회, 박람회내 모노레일,
광양제철, 향일함 등등...
이동하는 동안 운전석 옆에서 운전하는 친구로부터
다른 죽마고우들에 대한 근황도 들었다.
이미 타계한 친구들과 자신들의 잘못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몇몇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실한 삶을 산 결과 오늘에 이르러서는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고있다고 했다.
그러나 70후반이나 80줄에 들어선 선배들 중에는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던 분들마저
말년에 이르러서 자녀들에게 천대를 받고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았든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삶을 살았든 죽음과 가까워지면 예외없이
자녀들에 의해 요양원에 보내지거나 작은 아파트에서
외롭게 혼자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자녀들은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별로 찾아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나도 십수년후면 저리되지 않을까 생각하니 슬퍼졌다.
그런 자녀들을 탓하기 보다는 우리의 희생으로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게 된다면 우리는 거기서
위안을 찾아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부터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지말고 우리
자신들의 여생을 즐기는 데 촛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일까.
혹시 우리는 전생에 지은 죄가 있어 그에 대한
형벌로 세상에 태어났고 그 죄값을 치뤄야하기
때문에 자녀들에 대한 희생여부와 관계없이
죽음이 가까워지면 자녀들로부터 예외없이
버림을 받거나 천대를 받는 것은 아닐까.
자녀들로부터 천대받는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내가 나에게 자녀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야한다고 역설한다. 아내에 따르면 나는
너무나 자녀들에게 희생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31개월 된 손자가 잠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보이는 것마다 만져보고 보이는 문마다 손잡이를
돌려보고 보이는 엘레베이터마다 버튼을 눌러본다.
제 할머니와 제엄마는 통제할 수 없는 손자로 인해
힘들어한다. 나도 손자를 힘으로 통제하려니 여행이
점점 힘들어진다. 아예 손자에게 가방을 메게하고
그 가방에다 길다란 끈을 달아 그 끝을 손에 쥐고
천방지축 앞으로 달려나가는 손자를 콘트롤한다.
그렇게라도하지 않으면 손자가 금방 사고를 칠 것
같다. 그래도 손자가 내품에서 잠들 때면 손자의
복숭아빛 통통한 두볼과 귀여운 머리통이 내 가슴을
따뜻하게하고 고갈된 삶의 의지와 삶의 의욕을
소리없이 채워줘 그 감흥을 가만히 읊조려본다.
아가야, 너는 나의 고갈된
삶의 의지를
소리없이 채워주는 구나.
My baby,
you quietly fill me with the will to live
that's been drained from me.
무심하게 흐르는 세월마저
잠시 멈춰 경탄할 만큼
빠른 성장을 보여주는 아가야.
You are a baby showing such a rapid growth
even mindlessly-flying time stops to admire awhile.
너는 뒤늦게나마
내가 목숨 바칠 대상이 되어주고
You belatedly become the one I wish to die for,
비정한 세월이 폐허로 만든
내 가슴에 기름을 붓고
불까지 지르는구나
and fuel my heart that's been devastated by ruthless time
before setting fire to it.
아가야, 너는 나의 여생동안
내가 사는 이유가 되고,
내가 한눈 팔 때 나를
내려치는 채찍이 되리라.
My baby,
for the rest of my life
you will be the reason for me to live
and a whip to strike me when I'm distracted.
첫댓글 손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행복할겁니다.
ㅎㅎ
이재모님 안녕하세요 ~
손자분과 함께
멋진 여행하셨군요 ~
ㅎㅎ 아가야 ~
씩씩하게 자라렴 ~~
저도 3년 전에
부모님,남편, 딸
이렇게 다섯이서
남도여행했었어요
참 즐거워 하시더라구요
멋진 글 잘 감상했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