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시인과 난 화분
정 호 경
시골의 꽃밭은 대부분의 경우 장독대를 둘러싼 그 주변의 좁은 공간이다. 거기에는 보기 좋고 값나가는 꽃들이 다투어 어우러진 것도 아니요, 시골의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것들이다. 채송화를 비롯하여 봉숭아꽃, 접시꽃, 분꽃, 나팔꽃 등이며, 어느 집에서는 좁은 장독대 사이에 수탉 볏 모양의 불그죽죽한 맨드라미 한두 개가 더 서 있는 정도이다. 이는 내 어렸을 적 시골 우리 집 장독대 주변의 꽃밭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말한 것일 뿐이다.
난(蘭)은 흔히 선비에 비유되는 화초다. 하지만 난이라고 다 그런 것이 아니고 보면, 팔기 위해 말끔히 다듬어서 진열해 놓은 꽃집의 그것보다는 청빈한 서생의 책상머리에 연적과 함께 놓여 있는, 정갈한 난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내가 난초를 처음 접하기는 중학시절 친구들과 심심풀이로 집어든 화투장에서이다. 화투장에 그려져 있는 꽃들 중에 2월의 매화, 3월의 벚꽃 그리고 9월의 국화 등 모두가 예쁘고 색깔 고운 꽃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5월의 난초는 꽃도 별것 아닌 데다 일요일 오후 친구들과의 담배내기에서도 번번이 반갑잖은 껍질들끼리만 맞아떨어지는 판이어서 나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는 화초가 아니었다.
김 시인은 내가 시골로 내려와 살면서 이곳 문인협회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이다. 그를 만나면 언제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고, 가까이 가면 술 냄새가 풍겨왔다. 나이가 예순이 되도록 제 집 한 칸 없이 셋집이나 학교 관사로 이삿짐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가난 속에서 시와 함께 살아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말이었다. 자신은 나름대로 할 말이 많겠지만 속사정이야 어떻든 바싹 마른, 큰 키에 약간 앞으로 굽은 허리는 시든 난초 잎이 연상되는 모습이어서 보기에 안쓰러웠다.
이곳 문협에서는 매년 여름철 행사로 산수 좋은 고장이거나 이름난 유적지를 찾아 문학기행을 다녀온다. 어느 해인지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완도에 있는 ‘장보고’의 영화촬영 세트장을 찾아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모두들 잠깐 쉬는 동안에 김 시인과 함께 용변을 마치고 오다 보니 금방 옆에 있던 그가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도 계속 소주를 마시고 있었기에 걱정이 되던 참이다. 여기저기 휴게소 광장을 뒤지다가 발견한 곳은 생판 낯선, 다른 관광버스 일행들과 어울려 즉흥 춤판이 한 바탕 벌어져 있는 자리에서였다.
술과 시는 그의 삶이요, 가다가 가끔씩 곁들어지는, 이런 자리의 즉흥 춤판은 흥겹고도 눈물 나는 그의 삶의 한 토막 천연색 풍경이다.
하루는 뜻밖에도 김 시인이 우리 집에 놀러 오겠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그의 ‘술친구도 아닌데…’ 하면서도 집에서 담근 매실주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젊은 시인 한 사람과 함께 찾아왔다.
“이것, 오다가 하나 샀는데 향이 어떨는지 모르겠네요.”
어른 주먹만한 난 화분을 마루에 내려놓으면서 아파트 유리창 너머로 선창가에 떠 있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갈매기가 날고 있네요. 저것들은 밤에 어디서 자는고.”
술상 앞에 앉은 김 시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지면서 혈색이 돌았다. 이때가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던가. 그가 잔을 들어 한 잔 마시더니 옆에 앉아 있는 내 손을 잡았다.
“정년퇴직하면 들어가 살려고 지금 화양면 바닷가에 집을 짓고 있는데, 저녁놀이 고우니 때를 잡아 정 선생님 한번 초청할게요.”
그런 뒤 몇 달 동안이나 소식이 없어 수소문했더니 김 시인은 말기 간암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곳 삼일면 산동네에 있는 그의 동생 집을 엄 수필가와 함께 찾아갔다. 시내에서 떨어져 있는 낮선 변두리 마을이라 길가는 촌로에게 물어 간신히 찾아간 집은 산 중턱에 새로 지은 그의 동생 집이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보는 산동네 풍경이 정겹고 한적해서 좋았다.
나는 문득 그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찬 서리 속에 핀/국화 향 한 줌을/이 가을바람에 실어 보내오니/
독작(獨酌)으로 버린 속을/잠시나마 달래시고/
두 사람/기약 없는 만남일랑/그저 눈감아 주시옵기를.
<안부(安否)> 중에서
하루는 김 시인이 두고 간 거실 진열대 위의 난 화분을 집사람이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더니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난이 병이 들었는지 잎이 시들었네요. 베란다에 내다놓을까요?”
김 시인이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삼일면 산동네로 문병 갔다 온 뒤 두 달이 채 안 되는 어느 날 오후, 나는 그의 부고전화를 받았다.
노랗게 시든, 김 시인이 두고 간 난 화분을 돌아다보며 나는 병원 영안실을 찾아 문상하고 돌아왔다. 윤기 잃은 난의 앞선 죽음이 그와의 결별(訣別)을 예고해 주었던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끼리끼리의 정분과 인연은 사람이건 화초건 은연중에 닿아 있는 모양이다.
가다가 심심하면 길섶에 앉아 그 좋아하던 소주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