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후 한국 영화 시장 안에서 주목할만한 장르로 떠오른 조폭 영화가, 비슷한 소재의 비슷한 접근방식으로 식상함을 불러일으키며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장르의 생성 소멸 과정이 그렇듯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장르를 변형시키지 않으면 대중들은 금방 등을 돌리며 장르의 소멸을 앞당기게 한다. 최근에도 [목포는 항구다] 같은 조폭 영화가 생산되거나, 혹은 [맹부삼천지교]처럼 조폭들이 영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장르적 공식에 충실하면 비교적 안정권에 드는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는 위험성의 최소화 때문이다.
조폭 영화의 중요성은, 조폭이라는 권력집단의 희화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우상파괴를 시도하고 권위주의 붕괴를 드러냈다는데 있다. 90년대초 [장군의 아들]이 보여주던 세계는 의리를 중요시하던 협객의 것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은 조직화되는 폭력 집단의 내부를 비장한 시선으로 접근하면서, 도시화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신분 상승의 욕망에 불타는 젊은 영혼들의 좌절과 계층적 절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영향은 90년대 후반에 생산된 다른 조폭 영화들, [깡패수업][초록물고기][넘버 3]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2천 년대로 넘어오면서 [조폭 마누라][두사부일체][달마야 놀자]가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비장미가 사라지고 조폭 집단이 희화화되며 웃음의 코드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불법적 사회구조 안에서 조폭들은 때로는 반영웅(Anti-Hero)의 역할을 떠맡기도 한다. 비록 조폭 영화가 값싼 웃음을 양산하는 코믹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는데 혈안이 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최근의 조폭들은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며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두야 간다]의 핵심은 역할 바꾸기다. 장정일의 소설을 장선우 감독이 영화화 한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서 처음으로 아주 재미있게 시도된 역할 바꾸기는, 그 이후 한국문화 안에서 추종세력을 거느리기 시작했다. [나두야 간다]도 변신이 주요 모티브인데 이것은 다른 조폭 영화들에서도 몇 번 시도된 바 있다. [신라의 달밤]에서는 예전의 깡패 학생이 체육 교사가 되어 있고, 예전의 모범생이 깡패가 되어 있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조폭은 선생님 같고, 선생님은 오히려 조폭 같은 역할의 전도가 재미를 주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했다. [나두야 간다]도 마찬가지다. 만철파 두목 윤만철(손창민 분)은 나중에 작가 윤민이 되어 소설을 쓰고, 3류 소설가이며 윤만철의 일대기를 자서전으로 집필하던 대필 작가 이동화(정준호 분)는 나중에 조폭 두목이 되어 감옥에서 출소한 후 주먹세계를 평정한다.
조폭들을 평범한 우리의 이웃과 부딪치게 하면서 웃음을 주려는 시도는 최근 할리우드에서도 자주 시도되고 있다. 신분의 차이, 사고의 차이가 웃음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는데, 신경쇠약증에 걸린 마피아 보스와 정신과 의사가 만나는 로버트 드 니로의 [애널라이즈 디즈]나 옆집에 마피아 보스가 이사 오면서 평범한 소시민과 갈등 관계가 벌어지는 브루스 윌리스의 [나인 야드]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나두야 간다]도 자서전 집필이라는 모티브로 만나게 된 조폭과 소설가가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겪다가 역할 바꾸기로 전개되는 재미는 있다. 그러나 조폭이 갖는 사회적 함의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노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여전히 핵심은 희화화다. 말초적인 웃음만으로 관객들의 기호를 충족시키겠다는 단견은 결국 조폭 영화의 몰락을 앞당길 것이다.
손창민은 [정글쥬스]에서 조폭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후 [맹부삼천지교]를 거쳐 [나두야 간다]에 이르기까지 같은 이미지를 변주하고 있다. [나두야 간다]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감성적 조폭이다. [목포의 눈물]의 차인표가 그랬던 것처럼 살벌하고 잔인한 조폭이 아니라, 멜로 영화를 보며 눈물 짓고, 시를 좋아하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로 조폭이 그려지고 있다. 이것은 [조폭마누라]의 씨방새 농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단순한 희화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폭 캐릭터를 창출해야 한다는 갈망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위장적으로, 겉모습만 바뀌어서는 안된다. 내러티브 자체가 인간 조폭의 내면을 송두리채 드러낼 수 있게끔 재구성되어야 한다.
정준호 역시 [가문의 영광]으로 망가진 이후 [두사부일체]를 거쳐 비슷한 이미지를 반복하고 있다. [나두야 간다]의 두 주인공들은 이렇게 대중들 속에 인식된 자신들의 이미지를 갉아먹는다. 확대재생산이 아니라 반복재생산에 불과하다는데 비극이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 조폭영화들은 우리 곁을 찾아올 전망이다. 여자 조폭이라는 새로움으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 사회에 과감한 도전장을 던졌던 [조폭마누라2]는 이미 공개되었고, 스님들과 조폭세계의 한판결투 [달마야 놀자]의 속편격인 [달마야 서울가자]나, 학교로 간 조폭들의 이야기 [두사부일체]의 속편인 [투사부일체]가 곧 관객들을 다시 찾을 예정이다. 조폭 장르 영화가 갖고 있는 파괴력은 줄어들었다. 그것은 권위의 조롱이라는 희화화가 애초의 의도에서 일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기존 장르에 충격을 주는 조폭 영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