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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2019년 겨울호
민족문학의 옹호
맹문재
1.
2007년 1월 27일 민족문학작가회의 제20차 총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는 명칭 변경에 관한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 문제는 한 문학단체의 차원을 넘어 한국 문학의 향방을 시사해주는 것이어서 문학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집행부가 의도한 대로 명칭이 변경될 것이고,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예상외로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상당해 집행부는 의도했던 대로 추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절차상의 하자를 들어 명칭 변경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문제를 일단 마무리했다. 소위원회는 회원들의 의견을 소상히 수렴해 다시 명칭 변경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에 찬성하는 측이 우선적으로 제시하는 이유는 문학의 환경이 변한 점을 들고 있다. “한 관계자의 전언(傳言)이 재미있다. 외국과 사업을 같이 하려고 단체 이름을 영문으로 보냈더니 ‘민족(nation)’이란 단어를 보곤 극우 단체가 아니냐며 거부반응을 보여 명칭 변경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라는 실례에서 보듯이, 국내에서는 민족이 좌파를 가리키는 용어로 인식되고 있지만 국외에서는 극우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문학 환경은 문명사적 전개로 인해 국제관계에까지 연계되고 있다. 따라서 작가들이 민족 내부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베트남, 이라크, 팔레스타인, 몽골, 인도네시아, 미얀마, 국내의 이주 노동자들 등 약자들과 함께하는 세계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명칭 변경에 찬성하는 측의 또 다른 이유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위상에 맞는 새로운 이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회원들은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면서 한국 문단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실 출범 당시인 1987년만 하더라도 작가회의는 기존 문인협회에 대항하는 진보 진영의 소수 단체였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문단의 가장 권위 있는 단체로 성장했다. 문단의 내로라하는 작가들 대부분이 이곳 회원이다. 분단체제 극복과 민족문학 발전이라는 단체의 취지에 걸맞게 지난해에는 남측 문단을 대표해 북측과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제 작가회의는 ‘민족문학’ 진영의 단체가 아닌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단체가 된 것이다.”라는 진단에서 그 위상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외부에서는 좌익 문단 혹은 소수 단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단체로서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명칭 변경에 찬성하는 측의 세 번째 이유는 새로운 문학을 추구하는 세대의 작가들을 포용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은 정치․사회의 폭력적 현실을 경험한 앞선 세대와는 다르기 때문에 민족문학이라는 가치를 이해하기 힘들고 또 부담스러워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문학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지닌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을 포용하는 차원에서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
민족문학이란 어떤 것인가? 우선 1974년 11월 18일 창립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서 결의한 사항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학인 101인 선언’ 형식으로 결의한 사항은 1) 김지하를 비롯한 긴급조치 구속 인사 즉각 석방 2)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및 신앙 사상의 자유 보장 3) 서민 대중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 및 현행 노동관계법 개정 4)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절차에 따른 새로운 헌법의 마련 5) 우리의 주장은 문학자적 순수성의 발로이며 어떠한 탄압 속에서도 계속될 인간 본연의 진실한 외침 등이었다. 문학 동호회 같은 친목 모임 혹은 순수문학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인식으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민족 현실의 단계에서 역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민중문학을 적극 지향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보면 민족문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민족문학은 역사적 상황에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끼친다. 어느 시대이건 민족이 존재하는 한 민족문학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시대 및 사회 상황이 동일하지 않으므로 그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민족문학의 토대는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의 민요나 개화가사는 봉건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면서 서구 자본주의의 침략에 대응하고 자주 독립과 근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과제를 나름대로 반영한 산물이었다.
말깨나 하는 놈 재판소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共同山) 가고
아이깨나 노을 년은 갈보질 가고
목도깨나 멜 놈은 일본 가고
신로(新路) 가상다리 아까시아목(木)은
자동차 바람에 춤을 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다 날 넘겨주소
― 「아리랑」 전문
민중들의 삶을 담고 있는 민요가 현실적인 힘을 본격적으로 갖기 시작한 시기는 개화기 무렵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민요는 한 개인의 희노애락이나 노동의 힘듦을 토로하는 수준을 넘어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출했다. 갑오농민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이전에도 민요의 쓰임이 현실성을 띠기도 했지만, 식민지 시대에 이르러서 민족 독립에 대한 열망과 고통을 보다 광범위하고 적극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 가고/아이깨나 노을 년은 갈보질 가고/목도깨나 멜 놈은 일본 가고” 같은 토로는 조선 민중들의 실제적인 아픔이었다.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아래에서 고통 받는 조선 민중들의 실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카프 시는 이와 같은 토대 위에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덜컥 덜컥 덜컥
공장의 기계가 돌아갑니다
무수한 직공의 피 묻은 기계가
소리를 지르며 돌아갑니다
덜컥거리는 기계소리
그것은 가련한 일꾼의 울음소리입니다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
그것은 그들의 한숨의 모임입니다
비 오는 어느 날, 공장의 창문이 열리면서
핏기 없는 얼굴 하나이 가녀린 손으로 턱을 고이고
지나가는 비단옷 입은 행인을 내어다보다가
창 안에 호령소리, 그의 얼굴은 사라집데다
지금의 공장은 그렇게 고생이라니
언제나 웃음소리가 그곳에서 새어나오리까
『사람은 일해야 마땅하고, 일하면 반드시 먹는다』고
이웃집 선생님은 가르칩데다.
― 박팔양, 「공장」 전문
공장의 기계를 “피 묻은 기계”로, 또 기계 소리를 “가련한 일꾼의 울음소리”로 그리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열악한 작업조건에 시달리는 조선 민중들의 모습이 참담하다. 식민지 지배하에서 타율적으로 하는 노동이기에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노역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과중한 작업 할당량, 삼엄한 작업 감독, 열악한 작업 조건, 낮은 임금 등을 “한숨의 모임”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처럼 카프의 시는 식민지의 현실을 반영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아래 신음하고 있는 식민지 민중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반영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므로 카프의 시는 마르크스주의의 일방적인 추수가 아니라 민족해방이라는 지향을 가진 것으로, 다소의 추상적인 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가치를 폄하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민족문학이란 결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테리 이글턴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우리는 ‘문학’이라는 영역이 영원히 주어진 불변적인 사실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일 것이라는 환상을 단호하게 떨쳐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것도 문학일 수 있지만, 변함이 없고 의심할 나위 없이 문학으로 인정되는 어떤 것도 ―예컨대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문학이 아닐 수 있다. 문학연구는 곤충을 연구하는 곤충학처럼 불변적이고 제대로 정의될 수 있는 실체의 연구라는 믿음을 망상으로 간주하고 내버려야 한다.”라고 강조한 면과 같은 이치이다. 민족문학이란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또 달라져야만 그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임무를 다할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명칭 변경을 고민한 것은 이해된다. 변화하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려는 실천행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3.
민족문학의 또 다른 특성은 가치론적이라는 점이다. 민족문학이란 한 민족이 산출한 문학 전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문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는 개인의 충성심을 민족 국가에 바칠 것을 요구하는 가치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파시즘적 요소로 타민족을 약탈하고 노동계급의 투쟁을 말살하는 도구로 이용되었지만, 반대로 피지배 민족의 입장에서는 민족해방의 사상적 무기가 되었다.
우리의 경우 민족주의 문학이라는 용어가 1920년대에 있었지만, 카프 문학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물론 피지배 민족의 해방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발생 배경이나 실천행동은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1920년대의 민족주의 문학은 출발부터 다분히 계급문학에 대한 대타의식으로 나온 것으로 민족 모순의 파악에 진정성이 부족했다. 계급적인 파악 없이 심정적인 차원으로 조선의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에 한계를 갖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내용보다도 표현에 치중했는데, 민족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파악보다도 보수적인 태도로 전통을 찾고 시조부흥론을 제창한 것이 그 단적인 모습이다.
카프 문학에 뿌리를 둔 일련의 민족문학은 가치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보다는 ‘무엇’을 문학의 근본 요소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의 현재적 상황에 대한 총체적 파악과 그 극복의 제시를 중심 문제로 여겼다. “문학은 곤충들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고 문학을 구성하는 가치판단들이 역사적으로 변하기 쉬운 사실뿐만 아니라, 이 가치판단 자체도 사회의 이데올로기들과 밀접히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가치판단은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집단들이 다른 사회집단들에 대하여 영향을 끼치고 또 그 영향을 유지하는 전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박노해의 시에서 볼 수 있다. 박노해의 경우 민중문학의 창작 주체를 이전까지 양심 있는 지식인 시인에서 노동자 신분으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데, 좋은 시의 잣대로 인식되어온 형식적인 면보다도 내용적인 면을 중요하게 부각시켰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한 개인의 정서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인들의 삶과 가치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사방에 지태가 있는디
나 하나도 슬프지 않아
택균이가 종원이가 혁범이가
태춘이가 다 지태야
마을 사람 하나 하나가
다 지탠디
대추리 도두리 지킴이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아들인디
뭐 땜시 슬프겠어
나는 이제
안 꺾어지게 철심을 하나 가슴에
단단히 박은겨
내가 만일 아들보다 먼저
슬픔의 감옥에 들어앉는다면
나는 저 수많은 지태들을
정말로 감옥에 들어가게 하는 거야
아들아, 괜히 슬퍼 보여지는
깊은 주름살일랑 펴마
굽은 허리마저 더 곧게 펴마
너도 알다시피 이 에미는
대추리 들판의 흙으로 만들어진 몸이 아니냐
대추리 들판의 흙은
가둔다고 가두어지는 게 아니다
퍼낸다고 없어질 흙이 아니다
감옥도 한번 지태야 니 손으로
대추리 들녘처럼 넓게 찰지게 개간해 봐라
네 빈 자리는 걱정 말고
여기에는 지태들이 너무나 많다.
― 서수찬, 「대추리 도두리 만인보 21-황필순 할머니」 전문
박노해의 가치론적 역사관이 서수찬의 작품에서 여실히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된다. ‘황필순’ 할머니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이장이자 팽성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김지태’의 어머니이다. 황 할머니는 “사방에 지태가 있는디/나 하나도 슬프지 않”다고 노래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택균이가 종원이가 혁범이가/태춘이가 다 지태야/마을 사람 하나 하나가/다 지탠디/대추리 도두리 지킴이/모든 사람들이 우리 아들인디/뭐 땜시 슬프겠어”라고 낙관하고 있는 것이다.
황 할머니가 아들을 기꺼이 품고 있는 것은 막심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에 나오는 닐로브나가 지향한 세계인식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 출신인 아들 빠벨이 혁명 활동하는 것이 두려워 처음에는 말렸으나 점차 이해하면서 아들과 함께 혁명가로 변해간 것이다. 전태일의 어머니 또한 같은 모습을 보였다.
‘지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꼭 이루어달라’는 태일이의 이 한마디는 내 가슴에 깊이 파고들어와 박혔다.
‘태일이가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근로자를 위하는 일로서 평소 태일이의 성품을 보았을 때 좋은 일, 훌륭한 일일거야. 그렇지만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니고 이렇게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무척 어려운 일이겠지.’
나는 그 일이 고난에 찬 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미루어 짐작하였다. 그래서 조금은 망설여졌지만 입술을 깨물며 태일이의 말을 되새기고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분신한 후 병원에 실려가 임종을 앞두고 있는 전태일과 그의 어머니 간에 나눈 대화의 모습인데, 이소선 어머니의 자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숱한 고난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 힘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소선 어머니의 그 인식은 ‘황필순 할머니’에서도 발견된다. 당신의 아들이 마을 이장으로서 구속되었지만 나무라거나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옳은 일을 한다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같은 일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아들처럼 품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대추리 및 도두리가 알려지게 된 것은 2003년 제3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용산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결정되면서부터였다. 미군이 주둔국의 방위군을 넘어 아시아 지역의 군대로 위용을 갖기로 함에 따라 대추리 및 도두리 일대가 미군기지로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미군기지가 옮겨지는 일에 대해서는 나라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언론들이 자랑삼아 알리면서도 대추리 및 도두리 이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오히려 반대하는 주민들을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대추리 및 도두리 역시 노인들만 있는 소외된 마을이지만 그들의 삶의 권리는 서울 사람들의 권리만큼 소중한 것이다.
2007년 4월 2일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존재는 우리에게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자유무역협정(FTA)은 국가 간 물자나 서비스의 이동을 증진시키기 위해 무역 장벽을 제거하는 협정이다. 그 결과 무역시장이 확장되어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의 수출은 촉진되지만, 경쟁력이 낮은 분야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산물 분야의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 상황에서 대추리 및 도두리 주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은 필요한 것이다.
1988년 몇달 동안 경남 창원시 삼성중공업 현장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같은 화장실을 사용했다
우리는 일본 어느 제철공장에서 쓰다가 가져온 기계들을
일본인들의 지시에 따라 재를 털어내고 청소를 해서
라인을 조립하고 있었다
합판으로 만든 화장실의 사방 벽은
낙서하기에 좋았다. 여자의 사타구니. 정액을 흘리는 성기
잔업과 특근의 임금을 계산한 곱하기 더하기 등등
리얼하지만 가엽고 부끄러운 낙서를 진압하는
굵은 매직으로 써놓은 인간일일불독서양우(人間一日不讀書樣牛)
우리는 36년 동안이나 그들의 밑에서 신음했다
이 나라의 역사를 읽는 것은 낙서를 읽는 만큼은 재미가 없고
대한민국국민들의 집집마다에는
방문판매로 구입한 교육용 한국위인전집이 있고
반일이 위업이면 친일도 위업이다?
KBS드라마 '명성황후'에서는
문서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강화도 조약을 채결하고
그로부터 어언 백 년여
이 나라의 국민 문서 해독 능력이 OECD국가 중 최하위라는 뉴스를
무심결에 듣는다. 한일합방은 방을 같이 썼다는 뜻인가?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사죄를 요구하고
그들은 사죄하는 한편 사죄를 취소한다
우리의 잘못은 전혀 없는 것처럼
냄비 안의 국거리처럼 끼리끼리 들끓고
국민의 정서에는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인간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소와 같고
소는 반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최종천, 「한일합방」 전문
일본은 민족문학의 관점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중요한 대상이다. “일본 어느 제철공장에서 쓰다가 가져온 기계들을/일본인들의 지시에 따라 재를 털어내고 청소를 해서/라인을 조립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시아를 넘어 태평양 지역까지 침략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정복의 야욕을 접어야 했지만, 어느새 세계를 뒤흔드는 강대국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사죄를 요구하”지만 “그들은 사죄하는 한편 사죄를 취소”하는 행동을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일본은 세계 정복의 기회가 도래하면 다시 뛰어들 것이 분명하다. 이는 실로 우려할 만한 일인데, 점점 극우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과거의 원한에 얽매인 채 “우리의 잘못은 전혀 없는 것처럼/냄비 안의 국거리처럼 끼리끼리 들끓고” 있다. 그 결과 별 소득도 없이 “국민의 정서에는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따라서 국제간의 연대와 협력이 요청되는 시대인 만큼 일본과의 관계도 과거의 정서만 고집하지 말고 좀 더 미래 지향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요청된다. 올바른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교류를 가지면서 “하루라도 책을 읽”는 자세로, 주체성을 갖는 역량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4.
민족문학이 침체되고 있다고 흔히 말한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명칭을 변경하려고 한 의도에도 이러한 면이 내포되어 있다고 보인다. 민족문학이 침체된 데는 1980년대 말 소련 및 동구 유렵의 와해에 따른 사회주의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출범 등 국내외 상황의 변화로 말미암아 민족주의적 요소가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 몰락 이후 전개된 자본주의의 심화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력은 우리 사회의 그 어느 부분에도 예외 없이 미치고 있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모든 고정된 것은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듯이, 자본주의는 이제 고정되어 있는 이념, 가치, 제도 등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무너뜨린다. 민족문학은 자본주의의 이 거대한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문학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일이란 힘겹기 그지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위시해 자본주의의 논리에 영합하는 대중문화가 힘을 점점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 그 모습이다.
그렇지만 남북 분단, 정치 부패, 사회구조의 양극화, 환경오염 등의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민족문학을 포기할 수는 없다. 시대적인 문제를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도의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자본의 흐름에 영악하게 영합하면서도 허위의 명분을 가지고 있는 사이비 지식인들과 다르게, 마치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고민했던 개화기의 지식인들과 같이 진정성을 가지고 적극성을 띠어야 한다. 민족문학이 취해야 할 방향은 모순되고 부패한 자본주의 체제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그 극복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갖는 일이 필요하다.
수없이 촛불 밝혀 연대를 이루는 거리에
싸락눈 친다 뜨겁다
종이 촛불 밝은 거기
볼때기 혈관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
눈두덩이 찢기고 그늘을 뒤집어 쓴 사내들
자꾸 쓰러지는 그들과
겨울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는 여자들이
출구를 같이 쓰는 거리에서 본다
저 얼룩진 풍경들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음과
어떤 것도 될 수 없을지 모르는 우울한 저녁을
이만큼 비켜서서 건너다본다
깍지 끼고 꿇어앉는 사내들과
지하 계단 도르르 굴러내리는 얼음 알갱이들과
흔들리는 연금법과
희망 많은 보험들과도 함께
밟히고 찌그러지는
저 알록달록한 풍경들 함께
― 김만수, 「국도- 노숙」 전문
‘노숙’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요청 이후 등장한 우리 사회의 비참한 모습이다. “눈두덩이 찢기고 그늘을 뒤집어 쓴 사내들/자꾸 쓰러지는 그들과/겨울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는 여자들이/출구를 같이 쓰는 거리”의 풍경 또한 양극화된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구제금융을 지원해주면서 우리나라에 권한 밖의 일들을 요구했다. 금융시장의 완전 개방을 요구했고,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 비율 8%를 기준으로 국내 은행의 파산을 결정했고, 긴축 재정을 펼치면서 고금리를 적용시켰는데, 이는 사실상 우리의 경제를 국제통화기금에 양도한 것과 다름없다. 통화긴축재정으로 인해 시중의 자금은 부족해지고 주식 시장은 폭락하고 기업들은 부도를 맞게 되었다. 자본 시장의 개방으로 인해 국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된 국제 투기자본가들은 헐값에 기업과 주식과 부동산은 사들였다. 그 결과 외환위기가 일어난 지 불과 몇 달 사이에 영세기업에서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수천 개의 기업이 도산했고, 이들과 연관되어 있던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외환관리 실패와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성실히 일해오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중산층은 줄어들고 양극화의 사회구조는 심화되었다.
문학은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성실히 반영해나갈 때 그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노숙’을 그린 시는 시사되는 바가 크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 변경에 반대하는 측의 목소리 또한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어떤 민족이든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고, 실로 존엄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것이 자신의 이익이 되지 않을 때 폐기해버릴 대상으로 선언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민족문학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분단 시대라는 민족의 특수 상황과 민중적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성찰이 요망되는 것이다.
어느 나라이건 민족의 존재와 궤를 같이하는 문학이 존재한다. 문학은 민족과 숙명적이고 운명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민족문학이 행해야 할 과제는 민중의 현실을 담아내는 일이다. 문학의 보편성 내지 세계화라는 것은 자신의 문화전통을 토대로 삼았을 때 획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화라는 미명 뒤에 숨어 있는 자본주의의 전략을 간파하지 못하면 결국 자신의 주체성을 빼앗기게 된다. 민족문학을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기보다 자기 갱신의 푯대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것이다.
맹문재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론 및 평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