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들의 회의
닐 기유메트.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면
모든 이에게 기꺼이 베푸시고 나무라시지 않는
하나님께 청하시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약 1:5)
그날 밤도 국영 백화점의 시계들은
늘 그렇듯 수다를 떨고 있었다.
지난 몇 달 간 경기가 나빠
백화점의 거래가 시원치 않았다.
시계들은 하나같이 심심해서 몸을 비비 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날 몇 주를 계속해서
온통 사방에 똑같은 시간을 알리고 있는
시침과 분침을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싫증이 났다.
따라서 국영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팔려 나가서
나름대로의 삶을 펼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러던 중에 성격이 좀 활달한 카시오 시계가
약간의 기분 전환을 할 요량으로 한 가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토론을 좀 해봅시다!"
견디기 힘든 무료함을 달래는 멋진 제안이라며
시계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주제는 곧 결정되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인간과 시간의 관계'를
다루기로 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여러 연사들이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먼저 견고한 제너럴 전자 벽시계가 시대에 따른
인류의 발전에 대해서 소상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어서 보석이 박힌 값비싼 카르티에르 시계가
심리학적인 시간 개념을 전개했다.
그 다음으로는 박식한 론진 시계가 시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관계에 대해
다소 전문가다운 강연을 했다.
이렇게 각종 계시기(計時器:스톱 워치, 타임 레코드
크로노그래프 등)들이 주제와 관련하여
다방면으로 연설을 계속하였다.
순조로운 토론이 진행되는 도중, 갑자기
전자 수정 발진기로 작동되는 최신형
세이코 손목 시계 모델이 연단에 섰다.
대단한 효율성을 자랑하는 이 친구는
사무적인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괘종 시계와 탁상 시계, 손목 시계 여러분!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덧붙여 왈가 왈부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주제와 관련지어 볼 때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어떻게든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고자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세이코 손목 시계의 지적은 획기적이었고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사실 시간을 절약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이코 손목 시계는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인간들이 여러 가지
시간 절약 장치를 고안해 내기 위해
얼마만큼의 심혈을 기울였는지 주목해 봅시다.
자동차, 비행기, 전화, 접시 닦는 기계, 전자 레인지
일회용 기저귀, 복사기, 팩시밀리, 세탁기, 자동 녹화기
소형 카세트, 배터리 라디오, 카폰, 무선 호출기 등..."
"패스트 푸드 역시 시간 절약을 위한 거죠."
이때 두툼한 롤렉스 시계가 불쑥 한마디 했다.
"간이 식당, 사무용 컴퓨터 본체와 모뎀 장치가 연결된
가정용 컴퓨터 역시 마찬 가지죠."
날렵하게 생긴 오메가 시계도 한마디 했다.
세이코 손목 시계가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들 맞는 말입니다.
그런 발명품들은 남자든 여자든 현대인들 모두가
마침내 과학 기술 시대를 현명하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모든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함으로써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여가시간을 늘려 보고자 하는
마음이 내재해 있습니다."
세이코 손목 시계는 이런 맥락으로
꽤 오랜 시간 연설을 계속했다.
마침내 그가 말을 마치자, 듣고 있던 시계들은
깊은 감동을 받은 나머지 모두가 입을 모아
즉석에서 짧은 노래 하나를 따라 불렀다.
그 노래는 음악성이 다분한 볼루바 시계가
지은 것으로 가사는 이러하였다.
"시계들이여,
오 충실한 시계들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이가 누구뇨?
시간을 절약하는 사람이로다.
값진 금은보석처럼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로다..."
요란하게 박수까지 치면서 똑닥똑닥
틱톡택톡, 째깍째깍, 찌르릉찌르릉
땡그렁땡그렁 한바탕 불협화음이 일었다.
드디어 제차례를 맞은 고급 분디(Bundy)
할아버지 시계가 반대 의사를 발표했다.
아주 느릿느릿한 어조로 노래하듯이 말했다.
"시간 절약에 관한 세이코 손목 시계의 의견에
난 동의할 수가 없군요."
부드럽게 꺼낸 말이었지만 듣고 있던 시계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세상에 시간 절약보다
더 확실한 것이 어디 있담?
하고 모두가 의아해했다.
할아버지 시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중요한 것치고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은 없어요."
"무슨 뜻이죠?"
라도 시계가 성급하게 물었다.
할아버지 시계가 커다란 진자를 흔들며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하도록 하기까지
백오십억 년이 걸렸어요.
천하가 다아는 사실이죠.
다이아몬드 역시 오랜 시간의 산물이지요.
본래 수천 년간 굉장한 압력을 받아야 생겨나는
검은 탄소의 결정체죠. 이렇게도 생각해 보세요.
장미꽃을 더 빨리 피어나게 하고 싶다 해서
꽃잎을 잡아 뺄 수는 없잖습니까!.
우리 모두 아다시피 모든 걸작품들이
다 많은 시간을 공들인 인내의 결실이죠.
사실 인간의 마음은 완성되기까지 평생이 걸리죠.
참된 사랑의 기술을 완전히
다 배우는 사람은 드물지만요."
국영 백화점 내의 시계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 시계의 말에 골똘히 귀기울였다.
이제껏 시간에 대하여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잠자는 시간과 소화시키는 시간을 정하신
하나님이 그렇게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실 리가 없지요.
다른 것들도 좀 생각해 봐요.
십 개월이나 되는 잉태 기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모두가 잠자는 듯한 기나긴 겨울.
영겁에 걸친 종의 진화...
시간은 아껴 둘 게 아니라
잘 써야 하는 것이죠."
시간은 써야 한다는 말은 조용히 입다물고
듣고만 있는 시계들에게 마치 폭탄 선언과도 같았다.
고도의 정확성을 자랑하는 니콘 크로노그래프가
이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할아버지,
헛되이 써 버린 시간은 되찾을 수 없잖아요."
할아버지 시계는 과연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시간을 잘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되지요."
"얼마나 중요하죠?"
니콘이 물었다.
"잘 쓴 시간은 맛을 본 시간이에요."
"맛을 본다고요?"
"근사한 포도주 한 잔을 맛보듯이
위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말이죠.
야만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부르고뉴산 포도주를
꿀꺽꿀꺽 단번에 마셔 버리겠어요?
박물관을 질주한다면 무엇을 제대로 볼 수 있겠어요?
서두르면 아무것도 그 진가를 맛볼 수 없어요.
해지는 것을 힐끗 한 번 보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저녁놀이 다 사라질 때까지 오랜 시간 응시할 때만이
비로소 마음으로 느끼게 되지요."
이제 듣고 있는 시계들 모두가 할아버지 시계의 관점에
동조하는 빛이 역력했다.
할아버지 시계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다.
노래하는 듯한 베이스 음성으로 열정을 다해
할아버지 시계가 계속해서 말했다.
"생각해 봐요, 여러분,
인간들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자연과 함께
나아가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축제도 없고, 휴식이나 명상의 시간도 없고
음악회에 가거나 시를 읽을 시간도 없고
슬퍼하거나 웃을 여유도 없다면
삶이 어떻게 되겠어요?"
꽤 오래도록 분디 시계는 시간 잘 보내기에 대하여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로 시적인 언어를 써 가며
거듭 강조하였다.
할아버지 시계가 말을 마치자 똑닥똑닥, 틱톡택톡
째깍째깍, 찌르릉찌르릉, 땡그렁땡그렁 다시 한 번
한바탕 불협 화음이 일었다.
그러고 나서 할아버지 시계의 말씀을 기리기 위한
짧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
앞에서 부른 노래의 마지막 구절만
즉석에서 바꾼 것이다.
"시계들이여,
오 충실한 시계들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이가 누구뇨?
시간을 절약하는 사람이로다.
10원짜리 동전을 요긴하게 쓰듯이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로다."
곧 이어 백화점 내부가 일시적으로
조용해진 틈을 타 누군가가 아직도
아무 말 하지 않은 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것은 오래 된, 아주 오래 된 모래시계였는데
백화점 주인이 고물상에서 사들인 것이었다.
그 기원이 그리스도교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말도 있었다.
모두가 한 마디씩 의견을 내놓은 마당이었으므로
그 역시 뭐라 말을 해야 할 입장이었다.
이 세상에 오래 있었던 만큼 그 연륜에 걸맞는
지혜로운 의견이 기대되었다.
모래 시계는 나이든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주제는 퍽 복잡한 것입니다."
모래 시계는 세이코 손목 시계와 분디 시계를 향해
정중히 고개숙여 절한 다음 덧붙여 말했다.
"인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두 분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감히 말씀드린다면...
서로 반대되는 관점이지만
두 분의 의견이 나름대로
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 입니다.
세이코 손목 시계가 상기시켜 준 대로
'시간은 황금처럼' 귀합니다.
어떤 일에서든 시간 관리가 성공으로 가는
열쇠라는 말도 지당하고요.
하지만 현대인들이 언제나 초조해하며
안달하듯이 누가 부르든 언제든지
즉각 응답해야 하고, 모든 일을
당장 해결해 버려야만 할까요?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어느 것이든
다 입수해서 전달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요?
감탄할 만한 시간 절약 장치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아니
아마도 오히려 그런 수많은
시간 절약장치들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여가 시간까지 바빠지고
생활 속도가 빨라져 그 긴장감이
위험 수위가지 다다른 것이 아닐까요?
한편,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시간 절약 장치들로 인해 받는
상당량의 스트레스를 덜어 줄 수 있는
중요한 해독제라 할지라도...
내적 삶을 추구하는 데에만 시간을 온통 투
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백화점 내의 시계들이 전부 늙은
모래 시계의 말에 깊이 동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시간 절약과 시간
낭비의 딜레마를 어떻게 하면
필할 수 있을까?
"그러한 궁지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도가 전혀 없는 겁니까?"
누군가 걱정스레 물었다.
모래 시계는 안심하라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전혀 없진 않아요.
여러분, 저는 약 이천 년 전
아주 먼 나라에서 우연히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모든 인류의 문제를 해결했지요.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팔레스티나의 나자렛이라는
마을에서 온 사람이었지요."
"그가 뭘 어쨌길래요?
뭐라 말했죠?"
듣고 있던 시계들이 일제히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입을 모아 재촉했다.
모래 시계는 되도록이면
잘 설명해 보려고 노력했다.
"인간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작 인간이 아껴둔 시간을 참으로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잘 쓰는 것이
인간의 몫이라면 거기에 완전한
사랑의 의미를 부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시죠.
다시 말씀드리자면...
나사렛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언제 시간을 절약해야 하고, 언제 시간을 써야 할지
분별할 줄 알게 됩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그분의 임무이지만
예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며
허송세월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일을
차근차근 착착 진행시키는 분이죠.
감히 충고 한마디를 한다면...
올바른 시간 사용법을 알고 싶으신 분은
그때 그때 예수님께 물어 보십시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쉴 것인가?
일할 것인가?
놀 것인가?
예수님처럼 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모래 시계가 말을 마치자 거기 있는 시계들
모두가 놀란 나머지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인류의 참 행복을 보장하는
엄청난 비밀을 공표했으니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겠는가!
잠시후 갑자기 마법에서 풀려난 듯이
열렬한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모래 시계가 내놓은 해결책을
만장일치로 환영한다는 소리였다.
똑닥똑닥, 틱톡택톡, 째깍째깍
찌르릉찌르릉, 땡그렁땡그렁...
백화점이 떠나갈 것만 같았다.
곧 이어 앞에서 불렀던 짤막한 노래를
다시 한번 합창했는데...
이번에도 마지막 구절의 가사를
새로 바꾸었다.
"시계들이여,
오 충실한 시계들이여!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이가 누구뇨?"
시간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로다.
나사렛 예수처럼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로다.
'영혼에서 샘솟는 아름다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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