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늘 따뜻함이 배어 있다. 어릴 적 고향동네의 이웃집 언니같기도 하고, 학창시절 단아한 국어선생님
같기도 하다. 환한 미소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아나운서 정은아, 그녀는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고
기분좋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그래서일까, 브라운관을 통해 그녀를 만난 지 십여 년이 훌쩍
지났건만 늘 사람 냄새나는 방송인으로 겸손하고 친근한 모습은 변함이 없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산의 스튜디오를 찾은 날은 제법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날이었다. 아침 생방송을 마친 그녀는
특유의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녀가 올해 한국골수은행협회 홍보대사직을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혈모세포기증 운동본부 홈페이지에서
정은아씨의 사진을 봤을 때 맨처음 느낌은 “참 잘 어울리는구나”하는 생각이었다. 한국골수은행협회에서
홍보대사직을 제의받았을 때 처음 기분은 어떠했을까?
“처음에는 협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모르고 있었어요.
하지만 조혈모세포 이식이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에도 기증자를 찾지 못해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더구나, 적은 예산, 적은 인원으로 홍보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기에 내가 할 일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수락할 수 있었어요.”
그후 그녀가 처음 홍보대사직을 맡고 수여식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 날 행사장에는 소아암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많이 참석했다고 한다.
“어린 자녀를 둔 터라 아직 젊은 부모들도 많이 참석을
했더라구요, 그런데 그분들이 내 손을 잡고 고맙다고......, 너무나 감사하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저는 아직 아무런 일도 시작조차 안했는데도요. 그분들 마음의 간절함이 가슴으로
다가오더라구요. 아, 정말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요.”
이 때, 그녀는 기증자를 기다리는 분들의 가족 입장, 특히 부모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골수이식에 대한 자료를 구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조혈모세포 공여를 결심했다. 그저
이름 뿐인 직책을 싫어하는 그녀의 모습이 묻어난다. 조혈모세포 공여를 결심한 그녀에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처음에는 남편도 선선히 그러라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곧‘차라리 내가 하면 안 되겠니?’하며 걱정스러워 하더군요.” 결국 그녀는 남편을
설득하여 조혈모세포 공여에 함께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오래 전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낸다.
“중학교 때, 좋아하던 국어선생님이 계셨어요. 참 아름다운
분이셔서 저 말고도 인기가 많았거든요. 근데 그 선생님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 때가
첫경험이었어요.”
그 후 아나운서가 되었고, 몇 년 전 성덕바우만 소식이 소개되면서 국민적인 관심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녀 또한, 진행하던 KBS ‘아침마당’을 통해 성덕 바우만 특별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성덕 바우만에 대한 사회적 관심만큼이나 기증자가 참 많이 늘어났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관심이
시들해져 많이 줄었다고 한다.
“더구나, 기증자를 찾고도 세월이 흘러 이제는 맘이 변했다,
부모님이 반대하신다 등등의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사례가 참 많다고 해요. 동일한 골수조직을 찾아서
희망에 부풀어 있을 환자와 그 가족들을 생각해 보세요. 결국은 그분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되지요.
조혈모세포 공여는 본인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의지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조혈모세포 기증을 하고 싶다는 마음과 달리 무섭다는 생각에 선뜻 결심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조혈모세포에 대한 일반인의 잘못된 인식이 동일한 세포조직을 가진 사람을 찾고도
결국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톨릭의대 혈액내과 김춘추 교수의 “조혈모세포는 채취 후 1개월 뒤 그 만큼의 분량이
다시 생기고, 통증이나 후유증도 2∼3일 후면 거의 사라지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한번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데는 사전 혈액 채취와 검사, 2박 3일간의 입원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하는 전문가 의견을 소개 해 준다.
“골수라는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 것 같아요. 뼈에 사무친다, 아니면 골(腦)을 연상하죠,
그래서 일단 무섭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혈모세포로 점차 용어를 바꾸어가고
있어요. 협회 명칭도 바꾸자는 얘기도 나왔는데 이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진 이름이라 그냥
사용하고 있죠.”
“기증을 하는데 회사에서도 휴가 등 배려를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개인 휴가를 사용해야 하고 완전히 개인이 희생해야 하잖아요.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이제는 사회적 제도장치가 먼저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조혈모세포 공여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 주장도 잊지 않는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나운서나 MC라는 직업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방송반을 만들려고 하는데 내 발음이 정확하고 좋다 하시며 한번 맡아보라는 권유를
하셨어요. 그 말씀이 칭찬으로 다가와서 자부심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기고 참 좋았어요. 그때 첫
방송반이 만들어진 거죠. 스튜디오에 혼자 앉아 있다는 것이 참 뿌듯하더군요. 그렇게 고등학교
이후로도 계속 방송반을 했지요. 하지만 그때는 취미로만 생각했지, 진짜 아나운서가 될 줄은 몰랐어요.
친구들도 내가 아나운서가 된 걸 신기해 하더라구요. 대학 졸업 후 아나운서 시험을 보았고, 취미가
지금까지 직업이 된 것이죠. 학교 다닐 때 특별활동이 인생을 결정지을 수도 있고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취미로 시작한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10여 년을 MC로서
아나운서로서 정상의 자리에서 늘 단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치열한 자기관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특별한 운동을 찾아서 하지는 않는다. 가끔씩 도보나 달리기를 하는데 속도감은 없지만 지구력이
강한 편이라 오랫동안 끈기있게 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일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그녀의
건강비결이라고 살짝 귀띔한다.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그 외의 시간에는 스케줄을 잡지
않아요. 그리고 11시가 되면 잠을 자야만 해요. 일주일에 이틀은 쉬어주고요. 술도 안하고.
잘 자고, 잘먹고. 그게 건강비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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