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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야기] 01
S#1. 도로 / 낮
공중촬영으로 보이는 도로. 달리는 차들 중에 냉동트럭 하나가 보인다.
작지 않은 덩치의 차가 난폭하게 다른 차들을 추월하며 질주하고 있다.
이제 달리는 트럭의 옆에서 보이는 운전석,
추운 겨울 날씨. 질주하는 차량의 속도만큼 휘몰아치는 바람 사이로 열려진 창문이 보이고.
운전대를 잡은 사내의 팔 부분이 보인다. 트럭과 어울리지 않는 정장 상의.
그 정장과 어울리지 않는 눌러쓴 모자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S#2. 방송국 외부 전경 / 밤
방송국임을 알 수 있는 HBS 로고가 박힌 건물.
방송국의 주차장 쪽에서 보도 차량이 한 대 나오고 있다. 차에도 HBS라는 방송국 로고가 보인다.
나오는 보도차량과 엇갈려서 냉동식품 트럭이 들어간다. 퓨처냉동의 상호가 찍힌 트럭이다.
S#3. 방송국 주차장
트럭은 운전자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급하고 어지럽게 주행하고 있다.
주차장의 바닥이 바퀴와 마찰하여 소리를 낸다.
S#4. 스튜디오
생방송을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HBS 시사광장‘ 이라는 제목의 세트가 준비되어 있고.
(메인 앵커가 각 기사에 따라 담당 기자나 관련 전문가와 대담을 나누며 뉴스를 전하는 형식)
남녀 메인 앵커 둘이 가운데에 자리를 잡는다.
S#5. 지하주차장
트럭이 직원용 입구 앞에 선다.
운전대에서 내리는 사내의 하반신이 보인다. 검은 정장의 하의. 그의 손이 꺼내드는 첼로케이스.
콰앙 닫히는 트럭문.
S#6. 스튜디오 연출 부스
한쪽에 놓여진 모니터에서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11시 타임 로고가 보인다.
음악과 함께 '11시를 알려드립니다.' 멘트가 들려나온다.
S#7. 스튜디오
그 멘트가 들리는 가운데 카메라 앞에 한 무릎을 꿇은 FD가 앵커들을 향해 손가락 카운트를 세어 보인다.
그의 카운트에 따라 타이틀 음악이 들려나오며 남자 앵커가 멘트를 시작한다.
남앵 : HBS 11시의 시사광장입니다. 서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날씨가 더욱 추워졌습니다.
S#8. 방송국 내부 복도
걸어가고 있는 사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검은 정장에 손에 들린 첼로 케이스. 악단의 한명쯤으로 보인다.
그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도 그에게 신경 쓰는 자는 아무도 없다.
저만치 스튜디오의 문들이 보인다. 목표하는 스튜디오의 팻말이 보인다.
사내의 심정처럼 문이 쿵쿵 다가든다.
이제 카메라의 시야는 바로 문 앞에 있다.
문이 조심스레 열린다. 안에서 나오는 스텝 하나. 엿보이는 내부. 들리는 멘트.
S#9. 스튜디오 내부
여앵커 :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피부로 다가오는 관심사는 바로 먹거리에 대한 것입니다.
스튜디오의 문으로 사내가 들어온다. 앞의 환한 조명에 비해 문쪽은 어둠에 쌓여있어 아직 그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 위로 계속되는.
여앵커소리 : 그에 대해 집중적으로 취재하고 계신 김문석 기자 나와있습니다.
미리 자리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김문석. 그를 비추고 있던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김문석 : 안녕하십니까. 특별기획 먹거리. 그 세 번째로 집중취재한 곳은 바로 서민들의 먹거리 광장입니다.
카메라와 스텝들 뒤로 사내가 앞으로 나온다. 이제 보이는 얼굴. 김신이다.
지금 스튜디오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한 김신을 스텝 중의 하나가 돌아본다.
문석소리 : 이른바 먹자골목, 다들 아실 겁니다.
김신이 카메라의 옆으로 지나쳐 나아가려 한다.
스텝이 놀라서 나오며 김신을 잡으려 한다.
순간 김신의 손에서 열려진 첼로의 케이스가 스텝을 향해 휙 던져진다. 케이스를 안으며 뒤로 넘어질 뻔하여 멈추는 스텝.
이제 앵커도 놀라서 본다. 김문석도 본다.
이제 김신의 손에는 케이스에서 꺼낸 석궁이 들려있다.
놀란 스텝들이 우루루 김신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김신이 석궁에 화살을 재며 휘익 360도 돌린다.
석궁의 과녁이 된 자들은 경악을 해서 멈추거나 주저앉거나 재빨리 뭔가의 뒤로 엎어져 숨는다.
김신의 석궁이 김문석을 향한다.
김문석 도망갈 기회를 놓치고 얼어붙는다.
S#10. 연출부스
화면 가운데 들어서고 있는 김신의 뒷모습.
각 카메라에는 다양한 각도의 김신이 보이게 되었다.
연출이 벌컥 일어나며
연출 : 저거 뭐야.
그 옆에서 누군가 외치고 있다. '경비 불러!'
연출 : (다급해서) 브이시알 스타트
S#11. 스튜디오
김신이 거침없이 김문석의 앞으로 다가선다.
옆의 남자앵커가 구르듯 도망친다. 비명을 지르려던 여자 앵커는 무너지듯 테이블 아래로 숨어내린다.
얼어붙은 김문석의 이마 중앙에 겨누어지는 석궁에 재워진 화살.
문석, 자기 앞으로 뭔가가 날아와 떨어져서 비명을 지른다.
김신 : 읽으십쇼.
둘둘 만 종이다.
신이 여전히 김문석을 겨눈 채 천천히 옆으로 돌아 카메라와의 사이를 비워주며
김신 : 김문석 기자. 국민들이 기다리고 있잖습니까. 당신 기자 아냐? 뉴스 하라고!
(앞의 카메라를 향해. 버럭) 국민여러분. 당신들 아메바 아니지? 뇌세포 살아 있지? 그럼 좀 들어봐.
S#12. 연출부스
부스 안의 스텝들이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다.
연출 : 브이시알
스텝 : 나가구 있어.
연출 : 오디오. 오디오.
수많은 모니터에 김신이 비치고 있다. 그러나 중앙 모니터의 화면은 김문석 기자의 거리 리포트가 흐르고 있다.
다른 대기 화면들에는 김신은 김문석의 머리통에 석궁을 겨눈 채 뭐라 소리질러 대고 있는데 이제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대신에 들리는 김문석의 거리화면 인터뷰 소리와 연출이 소리지르는 소리가 합쳐지며
/화면 내부
먹자 골목에 늘어져 있는 순대니 떡볶이 같은 먹거리들을 배경으로 김문석 기자가 카메라를 향해.
김문석 : 여기는 소위 먹자골목이라 불리는 서민들의 식당가입니다.
연출 : 경비 뭐해? 경찰 불렀어?
S#13. 스튜디오
문으로 달려 들어오는 청경들.
그러나 경찰에는 관심없는 김신이 한곳을 본다. 무대 옆의 모니터에 비춰지고 있는 브이씨알 장면.
김문석이 시장 상인과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다.
김신 : 뭐야.
김신이 카메라를 돌아본다. 카메라맨은 이미 렌즈 안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
카메라의 빨간불도 꺼져있다. 다른 카메라들도.
김신 : 왜 안 찍어. 생방송이잖아. 왜 껐어.
이미 내부에는 몰려든 경비들이 스튜디오의 세트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포위하고 있고.
김신이 석궁의 끝을 김문석의 이마에 박다시피 댄다.
숨이 넘어갈 듯 공포에 질린 김문석.
김신 : 당장 카메라 돌려. 이 놈 죽는 거 볼거야?
카메라 감독이 다급해서 연출부스가 있는 이층을 올려다본다.
석궁의 방아쇠에 걸린 김신의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그 과녁 끝의 김문석이 김신 쪽을 차마 보지도 못하고 거의 울고 있다.
김신이 옆을 돌아본다. 모두 일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기를 보고 있다.
다시 김문석을 보지만 쏠 수가 없다.
순간 김신이 으아아 소리를 지르며 석궁의 끝을 올리며 방아쇠를 당긴다. 조명에 화살이 박히며 박살이 난다.
그 순간 덮치는 청경들. 김신이 깔리며 손이 꺽어지고 석궁은 빼앗긴다. 김신이 악을 쓴다.
김신 : 할말이 있다고오. 내가 국민들한테 할 말이 있는데. 왜 안 들어줘. 왜애.
그러나 누군가 김신의 머리통을 바닥에 박아 버리고 그 모습조차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침묵....
S#14. 경찰서 단독 취조실
옆으로 기울어져 보이는 출입문.
멍한 머리속처럼 멍한 화면.
형사소리 : 인나라.
잠시 후 따악 소리와 함께 (머리를 수첩으로 맞는 바람에) 앞의 시야가 흔들린다.
책상에 볼을 대고 엎드려 있던 김신이 부시시 상체를 세운다. 수갑을 찬 상태.
그 앞에 형사가 김신의 머리통을 때린 수첩을 옆에다 던지고 노트북을 펼치고 취조 준비를 하며
형사 : 니가 무슨 양궁선수냐. 그리고. 활 들구 설치는 놈이 머얼리서 쏴야지 왜 코앞에 가서 쑈를 해? 이름.
김신 : (멍하니 보는)
형사 : 이름 몰라? 니 이름.
김신 : ....
형사 : 얘 왜이러니. 이르음..!
신이 다시 책상 위로 고개를 박아버린다. 그 위로.
경아소리 : 김신.
S#15. 피시방 내부
피시방 알바가 삼분 라면을 먹다가 멍해서 본다.
두툼한 점퍼 아래 미니를 입은 경아의 다리가 늘씬하다.
경아소리 : 몰라요? 여기 단골인데.
알바가 고개를 들어본다. 경아가 섹시하게 미소를 짓더니 얼굴을 가까이 해서 나긋하게 묻는다.
경아 : 신. 김신. 주접스럽게 생긴 백수.
알바가 라면이 목에 걸려 대답을 못한다.
경아가 단념하고 피시방 내부를 둘러본다. 밤새 게임을 하던 꼬장장한 몰골의 사내 몇이 버엉해서 보고 있다.
경아가 부츠 소리를 울리며 또박또박 걸어가자 얼른 시선을 피한다.
경아가 가까운 책상에 엎어져 자고 있는 남자의 뒷덜미를 잡더니 우아하게 들어서 자는 얼굴 확인하고는 다시 우아하게 놓는다.
그 바람에 사내가 얼굴을 책상에 처박는다.
한쪽의 소파에 사내 하나가 쳐박혀 자고 있다.
좁은 소파에서 삐져나온 사내의 엉덩이가 옆의 탁자에 걸쳐있다.
또각또각 다가선 경아가 탁자를 툭 찬다. 탁자가 빠지며 굴러떨어진 사내가 잠에서 덜 깬 얼굴을 보인다. 아니다.
한숨을 쉬며 돌아서던 경아. 구석 책상에 엎어져 자는 김신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키보드 옆에 널부러져 자고 있는 김신. 밤을 새서 게임을 하고 난 뒤 꾀죄죄한 모습.
키보드 옆에 널려있는 삼분 라면 봉지와 짜장면 빈그릇. 화면에는 게임의 로그인 화면에 멈춰져 있는 게임.
그 뒤에 버티고 서더니 나긋한 목소리로.
경아 : 김신아.
입이 헤 벌어져서 완전 잠들어있는 신.
경아 옆에 반쯤 남은 생수병을 들더니 김신의 머리 위에 줄줄 붓는다.
김신.. 어어 하면서 잠은 못 깨고 있다. 그 귀에 대고 부드럽게.
경아 : 영원히 자고 싶니? 자게 해줘?
김신 어리버리 고개를 들고 화면을 보다가 으아아. 급히 로그인을 하려고 애쓰며
김신 : 미치겠다. 레이드하다가 잠들어버렸네. 나 우짜냐. 나 이거 완전 차단감인데.
그 머리를 경아가 빈 물통으로 파앙 때린다.
S#16. 거리. 트럭 내부
방송국에 갔던 퓨처냉동의 로고가 찍힌 냉동트럭이 이른 아침의 거리를 달리고 있다.
조수석에 앉은 경아가 화장을 고치며 나른한 목소리로.
경아 : 겜방에서 밤샐거면 돌빡아. 배달트럭은 놔두고 와야지. 그리고 핸드폰은 왜 안 받아.
내가 너 땜에 꼭두새벽에 니 형수님 전화를 받아야겠니.
김신이 운전을 하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경아 : 어쭈. 지금 타이밍이 하품 타이밍이냐?
신이 : (귀엽게 머리를 갸웃하며 귀여운 목소리로) 미안해.
경아 : 또.
신이 : 고마워.
경아 : 그리고?
신이 : 사랑해.
경아 : 맞을래?
신이 : (앞을 보면) 저거 뭐냐.
경아 : 잔수 부린다아.
신이 : 방송국차 아냐?
그제야 경아도 돌아보는 곳.
저 앞에 퓨처냉동의 공장이 보이고, 정문으로 들어가는 보도차량이 보인다. HBS의 로고가 선명하다.
(그다지 크지 않은 중소기업 규모의 공장)
S#17. 공장 내부 마당
공장감독인 이부장이 달려 나오며
이부장 : 차를 인제 갖구 오면 어뜩해. 새벽 다섯시엔 나갔어야 하는 찬데.
신 : 죄송합니다.
이부장 : 뭣들 해. 얼렁 실어.
남자 직원들이 만두 박스들을 트럭 뒤에 싣기 위해 달려나오고 신은 저만치를 기웃거린다.
거기 세워져 있는 보도차량에서 김문석 기자와 카메라맨 등이 내려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다.
이부장 : 김신아.
신 : 예?
이부장 : 자네 아무리 사장님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지만 말이야.
신 : 진짜로 죄송해요. 인제 안 그래요. (한손을 들며) 맹세. 김신이 다시 그럼 만두자식이다. 도장꽝. 근데 쟤들 뭐에요?
이부장 : 방송국 기자래.
신 : 기자가 우리 공장엔 왜요.
이부장 : 찍구 싶은 게 있대.
신 : 뭘요.
S#18. 공장 일각
카메라맨이 여기저기를 찍고 있다.
김문석이 앞서 다니면서 찍을거리를 찾아내고 있다. 그들은 주로 식재료가 쌓여있는 곳을 찾고 있다.
그 위로.
이부장소리 : 그게 뭐든 간에 좋은 거 아녀? 방송국 기자가 찍어가면 우리 이름이 뉴스에 나올 거고. 그럼 광고잖아. 텔레비 광고.
우리가 죽었다 깨도 못하는 텔레비 광고.
김문석이 뭔가를 발견한다. 커다란 통의 덮개를 벗겨낸다. 그 안에는 가득 담겨있는 무 말린 재료.
회심의 미소를 짓는 김문석.
S#19. 공장 내부 일각
만두를 만드는 공장의 스케치 잠깐. 그 한쪽에
흰 앞치마에 비닐 장갑을 낀 김욱(김신의 형)이 조리팀과 둘러서서 테스트용으로 만든 만두 속을 만들며 맛보고 있다.
맛을 보는 김욱을 모두 기대에 차서 보고 있다.
팀장 : (중년 여) 어때요.
김욱 : (진지하게 익히지도 않은 속을 또 집어 먹으며 음미하는)
아줌마 : 아무래도 고기가 안 들어가니까 뭔가 심심하긴 해.
팀장 : 웰빙 다이어트 만두래니까. 요즘 여자들이 이런 걸 원한다는 거 아냐.
김욱 : 버섯이 얼마나 들어간 거죠?
팀장 : 이십은 넣었는데 왜요.
김욱 : 버섯이 안 씹혀요. 당면맛 밖에 안나.
팀장 : 아이구 사장님 우리도 남는 게 있어야지.
하면서 자기도 집어 먹어본다. 다른 이들도 다 먹어보는.
그러다가 모두 놀라서 돌아본다. 갑자기 한쪽으로 달려가는 김욱.
거기 들어서던 김신이 형을 보더니 으앗해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공장을 뱅뱅 돌며 쫓고 쫓기는 형제.
S#20. 공장 내 사장실
김신의 목을 한팔로 끌어 잡고 들어오는 김욱.
김욱 : 너 이눔의 자식.
신 : 아이구 혀엉 캑캑 경아야 나 좀 살려.
사무실에는 미리 와서 잡지를 뒤지던 경아가 늘 보던 것을 보듯 심상하게 본다.
김욱 : (신을 질질 끌어 책상으로 가서 책상 위의 이력서를 집어주며) 이거 채워.
신 : 뭔데
김욱 : 하라면 해.
신 : 이 목 좀.
욱이 머리통을 한 대 때리고 놔준다. 캑캑거리며 형이 밀어준 서류를 보는 신.
신 : 뭐야 이거.
김욱 : 첨 봐? 뭔지 몰라?
뒤에서 건네다보는 경아.
경아 : 이력서네.
김욱 : 거기 딱 앉아서 빈칸 채워. 여기 볼펜.
신 : 엇다 넣을라고.
맞을 뻔 해서 얼른 이름을 쓰는 신.
김욱 : 청수의 오사장이 일단 받아주겠다구 했어. 군소리말구 가서 하라는 거 해.
청소 시키면 청소 하구. 배달 시키면 배달하고. 경아씨.
경아 : 네. 형님.
김욱 : 이 놈. 더 이상 용돈 나올 데 없으니까 앞으로 데이트 비용 못 벌거든 냅다 차버려요.
경아씨는 더 이상 이놈한테 커피 한잔 사주지 마.
경아 : 네에 네.
김욱 : 도대체 뭐가 문제야. 대학 멀쩡하게 나오고. 군대 멀쩡하게 갔다 온 놈이 대체 왜 그러는데?
왜 잡아준 직장마다 석달을 못 넘겨. 너 사회관계 문제 있어? 너 알고보면 정신병이야? 나만 몰라?
신 : 아아참 혀엉. 내 여자 듣는데서 너무하네.
경아 : (남자 목소리 흉내내어) 형님. 패는 건 제가 해도 됩니까?
하며 잡지를 말아 쥐며 다가서는데 열리는 사장실 문.
들어서는 김문석과 카메라 들.
김문석 : 여기 사장님 되십니까? HBS에 김문석 기잡니다.
S#21. 모텔 안 (밖은 밤)
여기저기 벗어던진 신과 경아의 옷가지.
전형적인 모텔 내부를 스케치하는 위로.
경아소리 : 그저 그런 대학을 졸업한지 이년반. 형님네 얹혀 사는 백수. 실력도 없고 비전도 없고 야망도 없어.
침대에 누워있는 신과 경아.
신 : 게다가 잘 생겼어.
경아 : 그러구 살면 겁 안나니? 앞날이 무섭지 않어?
신 : 괜찮아.
경아 : 어뜩게 괜찮아.
신 : 난 키스를 잘하니까.
경아에게 덤비려는데 경아는 빠져나와 옷을 걸치며.
경아 : 하긴 내가 무슨 상관이라구 이렇게 걱정을 해주고 있니. 어차피 너한테 시집갈 것두 아닌데. ..알지?
신 : 알아. 너 델구 갈려면 최소한 10억짜리 이상 집에 일억짜리 이상 차가 있어야 된다는 거. (김새서 텔레비전 리모콘을 찾는)
경아 : 지 회사가 있든가. 아니면 지 아버지 회사가 있든가 그도저도 아니면 연봉이 일억 넘든가.. 너 죽었다 깨도 안되겠지?
신 : ..안될 걸.
심드렁하니 티비를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경아 : 너 머린 좋잖아. 그렇게 땡땡 놀면서두 대학에 들어간 머리잖아. 심지어 졸업두 했잖아.
신 : 하나만 약속해.
경아 : 뭘.
신 : 그런 남자 만나게 되면. 확실하게 보고해 줘. 그럼 내가 꽃다발 안겨줄께. 뭐.. 가는 길에 뿌려주든가.
있잖아. 그 시. 갈래면 가라. 가는 길에 진달래꽃 뿌려주겠다. 사뿐히 밟고 가라. 그런 거.
경아 말을 말자 해서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빗다가 멈춘다.
경아 : 신아. 인터넷 쇼핑몰 같은 거 안해볼래? 너 인터넷 잘 하니까 웹관리를 하는거야. 옷은 내가 사오구.
니가 사진 찍어서 올리고.. 주문 오면 포장해서 택배 부치고..
돌아보다가 이상해서 본다. 어느새 바로 앉은 신이 굳어서 화면을 보고 있다.
경아도 티비 화면을 본다. 화면 안에서는 정시간 대의 뉴스가 진행 중이다.
앵커 : 버려야할 자투리 무를 가지고 농업용수를 사용해 만두소를 만들어 납품한 업자들이 적발됐습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만두소의 절반 이상이 몇년 동안이나 이 불량 만두소로 만들어져 팔렸다고 합니다.
S#22. 김욱의 집 거실 / 밤
(서른후반 평형의 평범한 아파트)
김욱의 처인 명선이 두 살짜리 아들, 이를 안고 넋이 나가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옆에는 여섯 살 정도의 큰 딸 유리가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그 위로 들리는 김문석의 멘트.
문석소리 : 이곳은 경기도에 위치한 모 냉동식품업체입니다.
문이 열리며 신이 달려 들어온다. 형수가 보는 텔레비전을 본다.
화면에는 김욱의 공장 내부를 스케치한 그림이 흘러가고 있다. (앞의 씬은 정식 뉴스. 이번 거는 HBS 시사광장)
그리고 자투리 무가 쌓여져 있는 곳을 비춘다.
그 앞에서 그 무를 뒤적이며 리포트를 하고 있는.
문석 : 보이십니까? 이게 바로 문제의 자투리 무입니다. 이 식품업체의 대표인 이모씨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이 무를 반죽해서 만두소 재료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어지는 화면에는 김욱이 등장한다. 그 얼굴은 모자이크를 했으나 대충 알아 볼 수 있겠다.
신과 있을 때의 그 흰 앞치마 옷차림.
김욱 : (더듬거리며) 그게 만두 속에 들어가는 거 맞는데요.
김문석 : 이 공장에서는 이런 만두 속이 들어간 제품이 하루에 얼마나 출하되고 있습니까?
명선 : (신을 돌아보며 겁에 질려) 애들 아빠 맞죠. 삼촌. 저 사람..
김욱 : 성수기에는 50톤 정도 출고되고 있습니다. 만두가 저희 회사에서 가장 비중이 큰 품목이고요..
S#23. 거리 /아침
신이 모는 트럭이 달리고 있다. 트럭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 방송
아나운서소리 : '쓰레기 단무지 만두'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오늘
'쓰레기 만두'의 유통, 제조와 관련된 업체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S#24. 김욱의 사장실
문이 열리며 들어서려던 신이 멈칫해서 본다.
이부장과 팀장 등 간부들이 모여서 있는 가운데 형이 있다.
형이 보고 있는 신문을 모두 고개를 모으고 보고 있던 중이다.
이부장이 형의 손에서 신문을 뺏으며 다시 들여다본다.
이부장 : (멍해서 주변에 묻기라도 하듯) 왜 있을까. 우리 이름이. 여기 왜 들어 있을까아.
(그러다가 들어서는 신을 본다. 신에게 하소연하듯) 우리가 쓰레기 만두를 만들어 팔았다고 여기. 응?
그런 업체라고 여기 봐봐. 신문에 났어. 왜 그랬을까아.
욱이 신을 돌아본다. 망연해서 신을 보는 형의 시선.
S#25. 대형수퍼마켓
마켓 직원들이 이미 진열되어있던 만두들을 죄다 끌어내어 수레에 싣고 있다.
옆을 지나가던 주부들이 수군거린다.
S#26. 퓨처냉동 공장 앞
트럭이 세워져 있고, 식품 상자들이 거칠게 내려지고 있다.
이부장이 격앙되서 항의를 하고 있다.
이부장 : 아니 반품을 하려면 만두만 해야지. 이거 동그랑땡은 왜 반품해. 얘가 무슨 죄라고.
그 뒤로 하얀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다 일손을 놓고 멍하니 보고 있다.
거칠게 던져진 상자의 일부가 녹으며 찢어져서 내부의 만두가 드러난다.
저만치 벽에 기대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신이 몸을 돌린다.
S#27. 사장실 앞 복도
신이 걸어온다. 사장실의 문을 열려다가 멈춘다. 안에서 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욱 : 일주일이면 됩니다. 일주일이면 이자 뿐 아니구요. 원금의 일부도 갚을테니까..
신이 문을 조금 밀어서 안을 엿본다. 욱이 전화를 붙잡고 서서 허공에 대고 머리를 조아려 가며 사정을 하고 있다.
욱 : 좀 봐주세요. 우리 아버지때부터 그 은행하고만 거래했잖아요. 삼십년 고객이라구요. 그런데 일주일을 못 기다려줍니까?
우리 부도나면 우리 공장 사람들. 직원들 어쩌라구요. 예? 아니 저기.. 지점장님.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가 끊어진 모양이다.
신이 다시 문을 조심스레 닫는다.
S#28. 은행 지점 홀
문이 열리며 경아가 들어선다. 두리번거리다 보면 저만치 대기의자에 신이 우두커니 앉아있다.
그 옆에 가 앉는 경아.
경아 : 뭐해.
신 : 생각 중.
경아 : (웃는) 김신이 은행에서 생각할 게 뭐있어. 평생 저축같은 거 해본 적도 없으면서.
신 : 이런 작은 지점에는 얼마쯤 있을까.
경아 : 뭐가.
신 : 돈이.
경아 : 있으면.
신 : 털라구. 어디 가서 총 한자루 훔쳐와 가지구. 바방..
총 쏘는 흉내를 내다가 경비와 눈이 마주친다.
경아 : 인나. 암만 커피값이 없어두 나이가 있지. 애인더러 은행에서 만나자니. 어이구 주접아.
신 : 따뜻하잖아. 지금은 겨울이구.
경아 : 나가자.
신 : (꿈쩍도 않는다)
경아 : (일어나려다 다시 앉아) 공장은.. 괜찮아?
신 : 닫았어.
경아 : 결국.. 부도 처리 난거야?
신 : 그런가봐.
경아 : 느네 형 회산데. 그런가봐? 남에 일이야?
신 : 귀찮아. 그런 거.
아예 경아의 무릎을 베고 은행의 대기 의자에 드러눕는다.
옆의 다른 고객이 언짢아서 피한다.
아예 잠이라도 잘 듯 눈을 감고.
신 : 그냥 하루 세끼만 먹구 살면 안되나. 만두 공장 문 닫으면 포장마차 하면 되지.
난 돈이 아주우 귀찮던데. 그 귀찮은 거 많아봤자 뭐해.
경아 : 형님은 뭐하구 계신데.
신 : 뛰어 다니구 있지. 공장 문 다시 열겠다구. 명예를 다시 찾겠다구. 살아보겠다구.
경아 : 넌 여기서 뭐하구 있는데.
경비소리 : 뭐하구 계십니까?
신이 눈을 떠보면 경비가 내려다보고 있다.
신 : 난.. 현실 도피중인데요.
S#29. 식약청 건물 앞
건물 외경 위로 들리는 절박한 김욱의 목소리.
김욱 : 재조사를 해주세요. 예?
S#30. 식약청 내 복도
성가신 듯 걸어가는 담당 과장을 줄줄 따라 가는 김욱, 가슴에는 만두상자를 안고 있다.
(욱은 너무 소리 지르거나 비장하지 않게. 기본적으로 성질을 내거나 달변인 성격이 아니라
어눌하게 더듬거려도 좋으니 간절하게 열과 성을 다해서 설득하겠다는 입장)
김욱 : 이거 우리 만둡니다. 퓨처냉동. 쓰레기 단무지 사용한 거 아닙니다. 모양만 그렇지 그거 쓰레기 아니구요.
그 짜투리 무. 우리가 어떻게 소독하구 요리하는지 먹을수 있는건지 아닌지 제발 좀 조사해주세요. 예?
과장이 들어가려는 문을 막아서며 사정하는 김욱.
과장이 할수없이 보며
과장 : 안그래도 지금 조사하구 있어요. 그러니까 기다려보세요.
김욱 : 아니. 그런데요. 제가 하나 너무 궁금한게요. 어떻게 조사두 안하구 발표부터 하셨는지..
과장 : 우리도 괴롭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인터넷에 좍 퍼지구 방송부터 터져서요. 우리도 괴롭다구요. 아무튼 가서 기다리세요.
S#31. 김욱의 아파트 건물 앞 / 새벽
욱이 새벽 공기 속을 오락가락하며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기다리던 신문배달 자전거가 온다.
욱이 달려가 신문을 빼앗다시피 해서 펼쳐들고 가로등 불빛에 비추어 기사를 찾는다.
돌아본다. 거기 아파트 입구에 나와 있던 명선이 불안해서 본다.
욱이 비장한 얼굴로 신문을 소리내어 펼치더니 읽기 시작한다.
욱 : 조사결과 경찰이 밝힌 불량만두 제조업체 스물다섯개 회사 중에
(점점 크게 동네 사람 다 들으라고 크게) 열네개 업체가 무혐의인 것이 밝혀졌다. 그 중에 퓨처냉동이 있습니다. 동네사람들.
퓨처냉동. 무혐의. 죄 없대요. 여러분. 신문 좀 보세요. 우리 만두 멀쩡해요. 먹어두 된다구요.
김욱이 좋아서 사방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명선의 두 손을 잡고 돌며.
S#32. 방송국 내부
신사복을 입은 욱과 여전히 불량한 옷차림의 신이 용감하게 걸어온다.
신은 신문을 들고 있다.
신 : 형 흥분하지 말고.
욱 : 안해. 나 냉정해.
신 : 더듬거리지 말구. 천천히 할 말 다하라구.
욱 : 임마. (멈춰선다) 내가 니 형이야. 니가 내 동생이고.
신 : 안다구. 아니까. 형. 흥분하지 말구.
욱 : 안해. 나 냉정해.
다시 걸어가는데 저 앞에 어느 사무실 문이 열리며 김문석 기자가 나온다.
욱. 순간 굳어 서는데. 그 등을 신이 밀어낸다.
욱이 밀려서 달려가 (역시 성질내지 말고. 끝까지 소리지르지 말고. 울고 싶은 마음이지만 웃으려고 애쓰며)
욱 : 저 아시겠습니까? 김문석 기자님이시죠?
김문석 : 누구신지..
욱 : 저 퓨처냉동에 김욱입니다.
김문석 : (이제 생각났다. 피할 생각이 앞서서) 예 예.
욱 : (막아서며 신문을 보여주며, 피하는 김문석을 따르며) 여기 아침 신문 보셨어요? 우리 만두 무혐의 판정 받았거든요.
보세요. 여기 우리 회사 이름 있어요. 퓨처냉동. 여기.
신이 말없이 가로막는 바람에 피하던 길이 막힌 김문석이 짜증이 나서 욱에게.
김문석 : 제가 지금 취재 약속이 있어서요. 좀 비켜주실래요?
욱 : 정정 보도 안냅니까? 알고보니 혐의 없다구 말씀 안해줘요?
김문석 : 신문에 났잖아요. 뭘 또 내요.
욱 : 이렇게 쪼끄맣게 나서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저 좀 인터뷰해주세요.
김문석 : (어이없다는 듯 웃는)
욱 : 기자님 보도 나가구 우리 반품된 만두가 3만 상자가 넘습니다. 우리 공장 매출 지난달 제로였어요.
우리 공장 직원 오십육명. 봉급도 못 줬구요. 결국 부도 났어요. 다시 좀 살게 해주세요.
김문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저만치 있던 청경을 손짓해 부른다.
욱 : 여기 신문 보세요. 여기 나왔는데 너무 작아서.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구요. 그러니까 이거 테레비에다 말 좀 해주시면..
청경 둘이 다가온다. 김문석이 가려는 것을 김신이 잡는다.
신 : 우리 형이 말하는 중이잖아요.
김문석 : 이분들 좀 내보내세요. 입구에서 뭐한 겁니까? 개나소나 다 들어오게 하믄 어뜩해요.
신 : 지금 뭐랬는데. 개? 소?
험악해지다가 청경들에게 잡힌다.
신이 성질이 나서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소란스러워진다. 다른 청경도 달려온다.
욱은 여전히 김문석에게 매달리고 있다.
욱 : 길게 안해두 되요. 딱 일분만 말할게요. 예?
그러나 욱도 청경들에게 잡혀져 벽으로 밀쳐진다.
S#33. 방송국 앞 길
옷차림이 흩어진 형제가 오고 있다.
거기 길가의 주차공간에 세워져 있던 냉동 트럭.
먼저 도착한 신이 갑자기 돌아서더니 형을 밀어낸다.
신 : 형. 가서..
욱 : 뭐
신 : 가서.. 맥주 한잔 하구 오자.
그러나 욱은 신이 감추고 싶어하는 것을 봤다.
그들의 냉동트럭. 퓨처만두의 그림과 로고가 그려져 있는 트럭에 마구잡이로 낙서가 되어있다.
쓰레기 만두. 양심 불량. 사형시켜라. 죽어!!
S#34. 퓨처냉동 공장 외경 / 밤
닫혀진 대문 앞에 [휴업]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S#35. 공장 내부
욱이 직원들과 둘러서서 새 제품을 시식하던 장소.
모든 기계는 멈춰져 있고. 곳곳에 쓰레기만 딩굴고 있다.
불이 꺼져 있어 어두운 분위기.
그 위로 들리는.
욱소리 : 만두회사 개놈들.
S#36. 내부
내부는 모두 불이 꺼져 컴컴한데 저만치 사장실에만 불이 켜져 있어 열린 문으로 복도를 비춘다.
욱소리 : 감방에 다 쳐넣고 죽을때까지 만두만 쳐먹여라.
S#37. 사장실 내부
모니터에 가득한 댓글들. 불량만두 기사 밑에 달려 있는 댓글들이다.
자극적이고 모욕적인 댓글의 제목들.
욱이 차근차근 하나씩 아래로 내리며 글들을 읽고 있다.
욱 :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 디져버려.
입구에 선 신이 한심해서 보고 있다.
욱 : 니 새끼도 처먹였니. 쓰레기 만두.
신 : 들어가자.
욱 : 자살해라. 자살하기 전에 남은 만두는 니 가족들 다 멕여라.
신 : 형수님 기다려.
욱 : 한강에는 빠지지 마라. 강물 더러워진다.
신 : 꺼. 그거 끄라구 형.
욱 : 한강에는 빠져죽지 말래.
신. 벌컥해서 아예 전원을 뽑아버린다. 깜깜해지는 컴퓨터 화면.
신. 간신히 언성을 낮춰서
신 : 집에 가자. 엉?
욱 : (어수선한 책상을 여기저기 뒤지며) 내가 정부에다가 탄원서 보낸 거 알지? 오늘 답장 왔다.
(서류 하나를 찾아 읽는) 다 없던 일로 하고 기업활동에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없던 일로 하재.
자기들은 그게 되나봐. 없던 일로 하는 거.
신, 불안해서 형을 본다. 욱은 뭔가 핀이 하나 나간 사람같다.
신 : 우리도 그러지 뭐. 없던 일로 하자구. 이까짓 만두 때려친다고 형이 할 일 없겠어?
욱 : 아버지가 만든 공장이야.
신 : 아버지가 만든 건 만두 가게고. 그걸 회사로 키운 건 형이잖아. 형은 기가 막히게 유능한 젊은 기업인이잖아.
그니까 아하하. 웃어. 웃고. 다른거 하자. 내가 도울게. 청소하라면 청소하고. 배달 가라면 배달가고. 뭐할까? 어? 형이 말만해.
욱 : 부도 막아보겠다고. 사채 끌어 쓴 게 있어.
신 : ..얼마나..
욱 : 근데.. 오늘 처리됐다. 우리 회사 부도 처리됐어.
신 : (끄덕인다) 좋아. 잘됐어. 질질 끌 필요없지 뭐.
욱 : 유리엄마. 니 형수. 잠시 친정에 보내야겠다. 며칠 내루 집 넘어갈 거야.
신 : 알았어. 내가 뭐하면 돼?
욱 : 너두 알지. 우리 만두 괜찮았어.
신 : (누르고 참던 것이 벌컥 터지며) 아 진짜. 그 놈의 만두 얘기 좀 고만 하지? 솔직히 만두.. 만두.. 구역질나지 않아?
나 태어날 때부터 만두가게 자식이었어. 내 기억 속에 엄마 아부진 말야. 그냥 만두만 빚고 있어.
뭔놈의 돌아가신 엄마아부지 기억이 만두 밖에 없냐구. 꿈 속에 엄마가 나왔는데 만두만 빚고 있드란 말야. 내가 아주 미쳐.
욱 : (말없이 신을 보는)
신 : 내가 평생 만두를 다시 먹으면 인간 새끼가 아니다.
욱 : 우리 만두. 아버지가 만든 것만큼은 아니어두 괜찮았어. 쓰레기라니.. 아니야.
신, 울컥해서 그냥 나가버린다.
힘껏 닫아버린 문짝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S#38. 피시방 입구
중국집 배달원이 양쪽에 철가방을 무겁게 들고 계단을 달려 올라온다.
그가 들어가는 곳은 피시방이다. (시내의 화려한 곳이 아닌 서울 외곽의 외진 곳.3부에 나오는 피시방과 같은 장소)
S#39. 피시방 내부
중국배달원이 각 책상 위에 짜장면이니 볶음밥을 나누고 있다.
그다지 크지 않은 피시방은 모든 책상 앞에 사내들이 각각 앉아서 뭔가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다.
보기에도 백수같은 이들. 십대로 보이는 애들도 몇 있다.
그들이 치고 있는 화면이 배달을 하는 와중에 보이는데.
--음식 가지고 장난 친 인간말종들. 구속시키고 만두만 먹여라.
--18 엿같아서. 지네는 만두 안 먹겠지. 18
--만두판놈들 너희들이 개새끼 짐승이지 사람이냐?
그 중에 하나, 십대로 보이는 애가 열심히 치는 글자가 하나씩 보인다.
--쓰레기만두= `쓰`레기같은 인간은 `레`미콘속에 넣어 `기`분좋게 버물려서
`만`두처럼 만들어 `두`메산골 응달진곳에 매장해버려라.
입력해놓고 자기 작품에 만족해서 케케케 웃는다. 옆에서 자장면을 비비며 들여다보던 또래의 친구가 킬킬대고 웃는다.
입구 근처에 벽에 기대 서있는 케이가 그런 내부를 둘러보며 핸드폰에 단축번호를 누르고 상대가 받기를 기다려서.
케이 : 케입니다.
S#40. 도우의 사무실.
유리창으로 보이는 강남의 거리 풍경.
전화를 받는 도우의 뒷모습. 아직 얼굴은 보이지 않는 상태.
유리창 밖 풍경에 이어 사무실 내부의 스케치가 흐르는 가운데.
(각종 차트가 띄워진 여러대의 모니터. 사무실 한쪽에 어울리지 않는 고가의 전축세트.
그리고 창을 향해 돌려 앉은 도우의 뒷모습)
도우가 전화를 받고 있다.
도우 : 거기 애들은 오늘까지만 일 시키면 되겠다. 이젠 걔들 아니어두 들러붙어서 떠들어줄 놈들 많으니까.
..그래. 일당 주고 해산시켜.
끊은 핸드폰을 책상 위로 틱 던지는 도우의 손. 그 손이 리모콘을 찾아든다.
버튼을 누르면 여러 장의 시디를 작동시키는 플레이어가 알아서 하나의 시디를 플레이한다. 재즈가 흐른다.
도우의 손가락이 까닥까닥 리듬을 타며 조금씩 움직인다.
S#41. 밤거리
재즈의 음악처럼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흐른다.
//번화가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남녀들이 가득 흘러간다.
//그 사이에 구걸을 하는 사내가 잘린 하반신을 끌며 진행한다.
//동숭동쯤인지 젊은 비보이들이 춤을 춘다. 재즈 음악의 배경으로 보이는 젊은 아이들의 격렬한 춤이 언밸런스하다.
둘러서 구경하는 이들이 몸을 흔든다. 그 중에 경아와 신이 있다.
경아도 흔들거리며 음악에 몸을 맞추고 있고 신은 경아의 등 뒤에서 감싸 안고 같이 흔들다가 갑자기 경아를 끌고 간다.
웃으며 보는 경아. 점점 빨리 달려가는 신. 그 뒤로 흐르고 있는 자동차 불빛.
S#42. 욱의 아파트
명선이 걱정이 되서 어린 누리를 업고 어두운 아파트 베란다 밖을 내다보며 서성거리고 있다.
그런 명선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는 유리.
유리 : 아이스크림. 엄마. 아이스크림.
명선 : (건성으로) 안돼. 이 닦았잖아. 내일 먹자. 응?
비죽 입이 나오지만 얌전하게 옆의 인형을 집어들어 노는 유리.
명선이 전화기를 들어 번호를 누른다. 소리샘으로의 안내방송이 이어진다.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삐 소리가 난 후..'
거실의 테이블에는 소주와 안주 등이 곱게 차려져 있다.
명선 : 어디서 뭐해. 왜 안 들어와. 여보. 유리아빠. 소주 사놨어. 집에 와서 나하구 같이 마셔.
자기 좋아하는 김치전했어. 다 식겠다. 얼른 와. ...전화래두 좀 해줘. 나 기다리다 죽겠어.
하는데 현관의 벨소리.
명선, 전화기를 던지다시피하고 현관문 쪽으로 달려간다.
명선 : 유리아빠?
벌컥 문을 열다가 놀라 뒷걸음질.
우루루 밀고 들어오는 험상궂어 보이는 사내 둘과 신사복의 사내. 신도 벗지 않은 채 집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신사복 : 김욱 사장님댁이죠?
명선 : 누구세요. 뭐에요?
신사복 : 잘 부탁드립니다. 명성 금융에 과장 되는 사람인데요. 집구경 좀 왔습니다.
명선 : (놀라서 뒤로 밀리는데)
신사복 : 보자아... (손에 들린 서류를 뒤적이며 집 내부를 둘러보며) 아니 담보 잡은 놈 누구야.
이딴 집을 이 돈에 잡아주면 어쩌라는 거야.
사내 하나는 거실 탁자에 차려놓은 김치전을 먹고. 다른 사내는 부엌 쪽으로 간다.
명선 급히 유리를 잡아 안아 피하며.
명선 : 애들 아빠 집에 없어요. 나가 주세요. 경찰 부를 거에요.
신사복 : 부르세요. 전화기 거기 있네. 근데 값나가는 그림이나 도자기 같은 거 없어요? 인테리어 감각이 좀 아니시네.
사내하나가 냉장고를 뒤진다. 냉동고를 열어 손에 잡히는걸 꺼내 던진다. 아이스크림 통을 찾아든다. 뚜껑을 열어 먹기 시작한다.
겁에 질려 보던 유리가 울기 시작한다. 그 소리에 명선의 등에 업힌 누리도 운다.
우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던 사내가 킬킬 웃는다.
S#43. 거리 / 밤
밤 11시가 가까운 시각.
오가는 사람들. 그 중에 욱이 혼자 걸어오고 있다.
축 쳐진 어깨. 우울한 얼굴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S#44. 락까페
음악이 가득한 가운데, 신이 춤을 춘다. 그 앞에서 맞춰주는 경아. 어이없어 웃는다.
신의 춤이 점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격해지고 있다. 그러다가 경아의 웃음이 조금씩 사그러든다.
앞의 신은 그냥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뭔가 속에 있는 것을 터져내지 못해서 발악을 하는 듯이 심해지고 있다.
신의 주위에서 춤추던 이들도 뜨아해서 거리를 벌린다.
신이 발광을 하며 춤을 추며 커다란 스피커 앞에까지 진출하더니 스피커에 대고 춤을 추며 악을 쓰기 시작한다.
S#45. 서울역
표를 파는 매장 앞에 욱이 우두커니 서있다.
욱의 눈에 보이는 안내판에는 기차가 가는 곳의 지역 이름들이 주욱 나와 있지만 시선이 멈추는 곳은 없다.
누군가 지나치며 욱의 어깨를 치는 바람에 정신이 든다.
S#46. 김욱의 집 거실
사내들이 가고 난 뒤의 거실.
차려놨던 술상은 엉망이 되어있고.
부엌 바닥은 아직 어질러져 있고.
소파의 옆에서는 유리가 훌쩍거리며 울고 있다.
명선이 눈물을 닦으며 떨리는 손으로 전화 버튼을 누르고 있다.
애써 진정하려고 소주병을 들어 마신다.
명선은 신에게 전화를 하는 중이다.
S#47. 락까페
경아가 신을 끌어내고 있다.
신은 경아를 붙잡아 갑자기 난데없는 탱고 스텝을 흉내내며 이리저리 걷는다. 옆의 사람들이 불쾌해하고 있다.
그러는 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반쯤 삐져나온 핸드폰.
시끄러운 음악소리. 그의 주머니 부분에서 핸드폰이 울리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다.
신이 경아의 허리를 뒤로 꺽어 안는다. 준비 안된 경아와 비틀거리다가 넘어진다.
그 바람에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구른다. 통화를 원하며 울리며 외부 화면이 번쩍거리고 있다.
S#48. 강가 도로 / 밤
욱이 걸어가고 있다. 문득 바라보는 저만치의 한강다리. 불빛이 화려하다.
옆을 흐르는 어두운 강물.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욱이 혼자 웃는다. 그러더니 돌아선다. 그의 앞으로 차들이 쌩쌩 지나쳐 달리고 있다.
핸드폰을 꺼내 단축번호를 누른다. 화면에 우리집이 뜬다. 귀에 대지만 뚜뚜 통화음만 들린다.
명선은 신에게 전화 중이다.
욱의 앞으로 대형 트럭이 위험스럽게 지나간다.
S#49. 아파트 앞 / 밤
택시가 선다. 경아와 함께 내리는 신. 신이 비틀 넘어질 뻔해서 경아가 잡아준다.
아파트 앞에서는 명선이 아이를 업은 채 서성거리고 있다가 신을 보고는 달려온다.
신 : 하이 형수님. 부르셨슴까.
명선 : 삼촌.
신 : (군대식) 삼촌 김신. 형수님 호출받고 이렇게 달려왔슴다. 제가 춤을 이렇게이렇게 추다가.. 이렇게..
명선 : 삼촌. 유리 아빠가 이상해요.
신 : 아아 우리 형? 그 인간 원래부터 좀 이상해요.
경아 : 김신. 너 계속 취한 척 할래.
신 : 오우 경아씨. 내 여자.
명선 : 이거 좀 봐주세요. (핸드폰을 내밀어 보이며) 그이가 문자를 보냈는데. 여기 이거 좀.
신 보기싫다. 춤 스텝을 비틀거리며 밟으며 딴 데로 빠지려 한다.
그런 신의 옷자락을 경아가 잡는다.
명선 : 미안하대요. 그렇게 써보냈어요. 미안하다구.
신 : (성질 나며) 그게 뭐요. 미안한데 뭐 어쩌라고.
명선 : 보험 들어놨대요. 여기 생명보험이라구. 보험 증서가 집에 있다구.
신 : (멈췄다)
명선 : (결국 울며) 왜 이런 문자를 보내요. 이게 뭐래요. 그 사람. 내 전화에 대답을 안해요. 전화를 안 받아줘요. 왜 그런대요오.
신이 고개를 돌려 명선을 보는데 이미 취기는 없다. 명선의 등 뒤에서 깬 누리가 울기 시작한다.
경아가 신을 돌아본다.
신은 명선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고만 있다. 받아들어 확인할 용기는 못 내고.
S#50. 구치소 앞
//호송 버스가 들어온다.
// 버스 문이 열린다. 아직 사복을 입은 사내들이 내린다. 포승줄에 수갑을 차고 있다. 신도 내린다. 굳어있는 얼굴.
S#51. 구치소 내 검색소
// 사진 찍는 곳이라는 명패. 밑으로 눈금이 그어진 화이트 칠판.
그 앞으로 들어서는 신. 정면 사진이 찍힌다. 눈부신 플래쉬.
옆으로 돌아선다. 사진이 찍힌다.
//주욱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수감자들. 저마다 가방이며 보따리 등. 자신의 소지품을 안고 서 있다.
긴장으로 누군가는 다리를 떨고 있고, 나이 든 누군가를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벽에 가득 걸려 있는 액자들. 입소절차 안내. 법무부 인권국 진정 안내 등등..
앞에 책상에서 한 사내가 소지품 검사를 받고 있다.
가방에서 꺼낸 팬티며 메모 등을 뒤져보는 교도관. 그 옆에서는 구치소의 비둘기색 복을 내주고 있다.
옷을 받은 자는 옆의 탈의실로 들어간다.
유리창 너머로 머뭇거리며 들어서는 그 자의 모습이 보인다.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
다음 차례는 신이다. 혼자 빈손이다.
처음 보는 세상에 어쩔 수 없이 긴장하여 차례를 기다리는 신. 힘이 잠깐 빠지는 무릎을 다시 세우고 다가선다.
교도관이 신을 본다.
교도관 : 소지품 없어요?
신이 고개를 젓는다.
S#52. 탈의실
구치소 옷을 안고 들어서는 신. 옆을 본다. 유리창 너머로 감시하고 있는 교도관의 시선이 느껴진다.
신이 옷을 벗기 시작한다. 벗은 옷이 바닥에 툭 툭 떨어진다.
문득 멈춘 신이 천정을 본다. 창백한 형광등 하나.
S#53. 구치소 감방 안
구치소 복장을 한 신. 구석에 앉아 천정을 보고 있다. 밤이라서 다른 수감자들은 잠이 들어있다.
어두워서 천정은 보이지 않는다.
신이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신 : 어제밤에 우리 아빠가
처음에는 하도 작아서 끊어졌다 이어지던 노래가 점점 커진다.
신 :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S#54. 한강 도로변/ 밤
대형 트럭이 위험스럽게 지나간다.
그 뒤로 보이는 욱. 핸드폰에 문자를 하나하나 찍고 있다. 전송을 누른다.
핸드폰 화면에 전송되었습니다. 라고 뜬다.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들. 그 위로 계속되는 신의 노래.
신 : 그릴 것은 너무 많은데 하얀 종이가 너무 작아서 아빠 얼굴 그리고 나니 잠이 들고 말았어요. 음음
밤새 꿈나라에 아기 코끼리가 춤을 추었고 크레파스 병정들은 나뭇잎을 타고 놀았죠 음음
욱이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본다. 그러나 어떤 차도 멈추지 않는다.
욱이 지나가는 차들에 대고 말하는 거처럼 중얼거린다.
욱 :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미안해.
또 하나의 트럭이 달려오고 있다.
욱이 그 트럭을 눈부신듯 바라본다. 후두둑 길을 향해 걸어나간다.
S#55. 감방 안
자던 수감자들이 이게 뭐야..하며 깨어나고 있다.
신이 똑바로 서서 한 손을 흔들어가며 마치 군가를 부르듯, 울부짖듯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 : 어제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수감자들이 성을 낸다. '이 새끼가 미쳤나. 디비져 안 잘래.'
그런 수감자 중에 고범환이 있다. 한쪽에서 자다가 천천히 일어나 앉아서 신을 본다.
수감자 중의 하나가 신을 밀어제끼는 바람에 신이 범환의 앞까지 밀려와 범환의 위에 넘어진다.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신.
범환이 신을 잡아 일으키는데. 느닷없이 신이 범환에게 박치기를 해버린다.
범환, 순식간에 당해서 코피가 난다. 흐르는 코피를 확인하고 어이가 없는 범환.
신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며 계속 노래를 하며 닥치는대로 주위 사람들을 패려고 덤벼들고 있다.
이제 성이 난 수감자들이 신을 잡아 패는데 신은 절규하듯 계속 노래한다.
신 : 밤새 꿈나라에 아기 코끼리가 춤을 추었고. 크레파스 병정들은 나뭇잎을 타고 놀았죠.
밖에서 교도관들이 달려온다.
그 위로 쌔앵 지나가는 차소리. 복잡한 도시의 소리.
S#56. 강남
달려지나가는 차들.
강남의 빼곡한 건물. 너른 길에 빼곡한 차들. 그 중의 한 고층 건물. (최고급은 아닌. 중간 정도급의)
그 건물 입구에 건물의 명패가 붙어있다. '채동건설'
그 입구로 들어서고 있는 케이와 오이사.
케이는 깔끔한 정장차림임에도 불구하고 엄청 큰 키와 등치가 어쩐지 어색하고 위압적으로 보인다.
S#57. 상층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케이와 오이사가 내린다.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은 내부. 오너인 채회장은 인테리어에 돈을 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복도의 한쪽에 자리한 도우의 사무실. 다가서던 케이가 멈춘다.
문이 열리며 안에서 나오는 도만희.
케이는 여전히 무표정인데. 어쩐지 굳은 기분. 옆의 오이사는 얼른 도만희에게 아부섞인 미소를 보낸다.
오이사 : 도선생. 내려오셨었네. 난 상무님께 보고할 게 있어서.. 잠시..
도만희 닫혀진 문 앞에 우뚝 선 채 미소지으며 오이사를 주시하고 있다. 오이사 불안해지며
오이사 : 이따 평창동 갈 거에요. 거기서 또 뵙겠네. 헤헤.
도만희 여전히 미소지으며 오이사에게 짧게 끄덕여보이고 지나쳐 간다. 그러면서 케이의 어깨를 투욱 짚어준다.
케이. 불쾌한 얼굴로 빳빳이 서있다가 스윽 뒤를 돌아본다.
도만희가 코너를 돌아가며(엘리베이터에 타며)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문에 노크를 한다.
잠시 후 문을 열다가 눈을 찌푸린다. 안에서 환하게 비춰나오는 햇살.
S#58. 채도우의 집무실
열리는 문으로 보이는 도우의 집무실
가장 처음 보이는 것은 방 가운데 비춰드는 햇살이다. 그리고 재즈음악이 흐르고 있다.
창 밖에서 비춰드는 햇살이 한쪽 벽면을 메우고 있는 거울에 비춰서 방안 한 지점에 모여들고 있다.
그 햇살 가운데 도우가 서 있다. 눈을 감고, 햇살을 음미하며. 재즈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
방안의 입구 안에 들어선 케이는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그 옆의 오이사가 기다리다 못해 앞으로 나서려는데 그 앞을 가로막는 케이의 팔.
오이사 못마땅하지만 참는다.
이윽고 햇살이 움직이며 도우의 얼굴을 비추던 빛도 옮겨간다. 아쉬운 듯 눈을 뜨는 도우.
오이사 이제 나서려는데 여전히 막대처럼 막는 케이의 팔.
도우는 오이사는 아랑곳없이 책상 위를 본다.
방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책상 위에는 열대에 가까운 모니터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다.
각각의 모니터에는 대부분 증권관계 챠트들이 보이고 있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장세도 나타나있고.
도우가 무심한 얼굴로 모니터들을 본다. 아직 리듬을 타고 있다.
손은 마치 지금 흐르는 재즈음악의 베이스를 연주라도 하듯이 까딱거린다. 그러면서 머리 속에 복잡한 계산을 해내고 있다.
문득 생각난 듯 오이사를 돌아본다.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을 작동한다. 음악 소리가 낮아진다.
오이사 : (기다리느라 쉰 목을 가다듬으며) 다녀왔습니다.
도우 : (다시 모니터들을 보며 리듬을 타며 부드럽게) 그런데요.
오이사 : 아무래도 이번 건은 힘들 거 같습니다.
도우 : 어째서 그럴까요.
오이사 : (아직 도우의 무서움을 모르는 상태) 전에 말씀드렸었는데요. 아무리 만두 문제가 있었다고는 해도
벽제원은 작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두세째 안에 드는 식품회삽니다. 회사 이미지도 좋구요.
물론.. 잠시 매출은 줄었지만 회사를 넘기진 않을 거에요. 이거 전에 제가.. 말씀드렸는데..
도우가 책상 위 스피커폰의 버튼을 누르고 조용히 지시를 한다.
도우 : 일단계 준비하시고..
S#59. 작전실
따로 마련되어있는 작전실.
대여섯개의 책상 앞에 늘어앉은 직원들. 각자의 책상 위에는 또 서너대의 모니터가 늘어서 있다.
중앙 자리에 앉은 팀장이 헤드셋을 끼고 신중하게 듣는다.
도우소리 : 갑시다.
팀장 : 한양 매입. 고우.
각 직원들이 날렵하게 키보드를 두들기며 매입을 시작한다.
S#60. 도우 집무실
모니터 중의 하나는 한양의 챠트이다.
모니터를 보던 도우가 그제야 시선을 떼고 오이사를 돌아본다.
도우 : (미소지으며 묻는) 언제 무슨 말씀을 하셨다구요?
오이사 : 그러니까 지난 4월말. 회의 때 제가..
도우 : 그 회의 때 그런 말씀도 하셨지요? 벽제원의 적자가 100억이 넘기 전에는 엠엔에이 명함도 들이기 힘들 거다..
오이사 : 글세 그거야..
도우 : 그런데 지난 한달만으로 백제의 적자 43억이에요. 이번달 적자는 그 두배를 예상하고 있고.
금융권 대출도 당분간 힘들게 해 놨고. 내가 그렇게 만들어드렸잖아요.
오이사 : 회장님께서도 처음부터 탐탁치 않게 생각하셨던 일입니다. 상무님께서 아직 이 바닥을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이러다 진짜 큰 손해 보십니다. 늦기 전에 손을 터시는 게 좋을 거에요.
도우 : (미소가 사라진다)
오이사 : 우리 채동은 원래가 건설업으로 큰 회삽니다. 굳이 식품회사를 원하시는 이유가.. (멈칫)
도우가 다가오고 있다.
오이사 : (저도 모르게 더듬어지며) 아니 제 말은 회장님께서..
결국 말이 멈춘다.
도우가 바로 오이사의 앞에 와 선다.
오이사가 다급해서 케이비를 돌아본다. 아무 표정없이 가구처럼 서있는 케이비.
도우 : 오이사님.
오이사 : 예?
도우 : (조용히) 내가.. 결정했습니다. 벽제원. 내가.. 이 채도우가 전화번호부 펼쳐놓고 아무거나 찍어서 결정했다고 생각하세요?
오이사 : 아니 그건..
도우가 손을 드는 바람에 움찔. 도우는 오이사의 넥타이를 잡아 바로 잡아준다.
도우 : 내가 결정했어요. 벽제원 먹겠다구. 그럼 그렇게 하는 거에요. 나 지금 쉽게 말하고 있는데 이해 됐어요?
오이사 저도 모르게 끄덕인다.
도우 : (속삭이듯) 부탁인데요. 내 앞에서 내가 틀렸다고 하지 마세요. 나.. 안 틀려요.
고개를 갸우뚱해서 넥타이를 체크한다. 아무래도 비뚤어진 거 같다. 반대로 움직여준다.
심리적 압박감으로 오이사의 얼굴이 뻘개져있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못하는 오이사.
도우가 다시 넥타이를 바로 잡는다. 만족했다.
숨막혔던 기침을 하는 오이사.
도우 : 벽제원의 차명계좌나 우호 지분 더 찾아보시구요. 그리고 거기. 최사장. 만나고 싶은데. 은밀하게요.
대답도 못하고 끄덕이는.
도우 : (미소) 가보세요.
오이사가 엎어질듯 나간다. 어느새 도우는 스피커폰의 버튼을 누르고
도우 : 여기까지. 쉬어가면서 다져가면서 슬슬 갑시다.
리모콘을 누른다. 음악이 다시 커진다.
도우가 눈을 감는다.
재즈의 음악이 클라이맥스로 오르고 있다.
S#61. 평창동 채회장 저택 앞
자동차가 와서 선다. 뒷좌석에서 내리는 오이사.
안에서는 이미 밖의 객을 확인했는지 자동으로 대문이 열린다.
S#62. 정원.
저택의 이층 데크에서 보이는 정원.
오이사가 종종 걸음으로 오고 있다.
내려다보고 있던 은수. 부지런히 데크 안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집안에서도 불편해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있다.
S#63. 저택 내부 복도
긴 치마를 걷어쥐고 달려가는 은수.
오래되고. 장중한 가구들로 장식된 긴 복도.
마지막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S#64. 방안
창고로 쓰이는 방. 막대기를 들어 다락으로 통하는 계단을 끌어내린다.
S#65. 다락 안
올라오는 은수.
오래된 가방이며 상자들이 어수선하게 쌓여있는 다락이다.
은수가 익숙하고 날렵하게 방의 한 구석으로 간다.
그곳 벽의 한 부분을 떼어낸다. 그 앞에 퍼질러 앉아 귀를 기울인다.
오이사 : 상무님께선 절대 벽제원을 포기하지 않으실 모양입니다.
은수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벽의 한 부분(구멍)에서 주욱 아래로.
S#66. 채회장 서재
거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느낌으로 벽난로가 있다.
오이사 : 최사장을 은밀하게 만날테니 자리를 마련해라.. 이렇게 지시를 하셨는데 어쩌지요?
채회장 앞에 오이사가 바른 자세로 앉아 보고를 하는 중이다.
그다지 품위없는 모양새로 시가를 뻑뻑 피고 있는 채회장. 그 뒤에는 말없이 우뚝 서 있는 도만희.
채회장 : 그래서 먹을 거 같아? 그 벽제원인지 뭔지.
오이사 : 글세요. 성공을 하신다해도 이번엔 방법이 좀.
채회장 : 방법이 뭐.
오이사 : 벽제원의 주가를 떨어뜨리겠다고, 만두파동을 일으킨 거 까진 좋았는데요.
그 바람에 엄한 다른 만두회사들까지 줄초상이 났습니다.
채회장 : 들었어. (시가가 꺼져간다. 신경질적으로 뻑뻑 빨아댄다)
오이사 : 그 중에 한 중소기업 사장은 실제로 죽었습니다.
채회장 : 왜.
오이사 : 차사고로 죽었는데 현재 보험회사에서 조사 중이랍니다. 신문엔 벌써.. 그렇게 났습니다. 만두공장 사장이 자살했다고.
채회장 : (캑캑 기침을 한다)
오이사 : (얼른 물잔을 내밀어 주는)
채회장 : (귀찮아 치우며) 대체 이 놈의 시가란 종자는 왜들 그르케 피워대는거야. 우라지게 비싼 것이 도대체가 메리트가 없어.
메리트가. 그럼 그놈은 또 누구야. 방송국에서 생쇼를 하다 잡혀간 놈? 만두때매 그랬다며.
S#67. 다락
은수가 듣고 있다.
오이사소리 : 그게 바로 그 죽은 사장에 동생이랍니다. 뉴스하는 방송국에 총인지 화살인지를 들고 쳐들어갔다는데요.
은수가 손에 든 작은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다.
어린애같은 무늬의 수첩에 별로 잘 쓰지 못하는 글씨로 '만두. 자살. 동생. 석궁.' 이라고 쓰여져 있다.
채회장소리 : 그래서 죽였어? 아나운서를 죽인거야? 그건 왜 죽여? 걔들이 뭘했다고. (괜히 성질내고 있다)
S#68. 구치소 내 접견실
국선 변호사가 귀찮은 듯 서류를 뒤지며,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땀을 닦으며
변호사 : 그래서. 그때 형을 인터뷰해간 방송국 기자를 죽이겠다고 한 겁니까? 복수할려구요?
신 : ....
변호사 : 설사 그렇다해도 그렇게 얘기하시면 안됩니다. 듣고 있어요? 김신씨. 살인미수 7년입니다. 7년.
구치소복을 입은 신은 멀뚱히 천정을 기웃해서 올려다본다. 천정의 한 구석에 습기가 찼는지 얼룩이 있다.
변호사 : 듣고 있는 거에요? 내가 변호사인 거 알고 있지요? 김신씨.
신 : (그제야 돌아보는)
변호사 : 혹시 정신에 문제 있어요? 그쪽으로 해볼래요? 생방하는 방송국 스튜디오에 쳐들어간 거. 충분히 이상하거든.
정신이상. 괜찮겠는데.
신, 멀뚱히 변호사를 보다가 엄지. 검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변호사의 얼굴에 가까이 댄다. 변호사 흠칫해서 뒤로 물리는데.
신이 변호사의 수염에 묻은 휴지 조각을 집어낸다.
신 : 아무 것도 안할 거에요.
변호사 : 김신씨.
신 : 상고고 항소고 안해요. 그래서, 그러니까, 아저씨 해고라구. 해... 고.
S#69. 법정
소리 : 기리입.
우루루 일어서는 사람들 앞에 판사가 들어서고 있다.
피고석에는 김신이 포승줄에 묶여 서있다.
판사가 앉고.
소리 : 착서억.
우루루 앉는다.
김신이 앉기 전에 잠시 망설인다. 못 참고 뒤를 돌아본다.
그다지 많지 않은 방청객들. 그 중에 울음을 참고 있는 명선이 보인다. 그러나 명선의 옆에 경아는 보이지 않는다.
신과 시선이 마주친 명선이 울음이 새어나오는 입을 틀어막는다.
신은 웃어보이려고 하지만 잘 안된다.
S#70. 선산
욱의 새 무덤.
명선이 무덤 앞에 주저앉은 채 하염없이 무덤을 쓸어내리고 있다.
그 뒤에 누리를 안고 우두커니 서 있는 신. 옆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놀고 있는 유리.
경아가 신의 뒤로 다가선다. 뒤에서부터 신을 안아준다.
돌처럼 굳어 있다가 경아의 체온에 잠시 눈을 감는 신.
경아가 뒤에서 떨어진다.
경아를 돌아보다가 경아가 보는 것을 신도 본다. 저만치에 사채업자 세 사내가 오고 있다.
그 중 신사복은 넉살좋게 무덤 앞으로 다가온다.
명선이 놀라 돌아본다.
신사복은 명선을 향해 인사까지 하며 친근한 척 하더니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낸다. 이빨로 뚜껑을 따더니 무덤 위에 뿌려준다.
신, 안고 있던 누리를 경아에게 넘겨주고 형수의 앞을 막아선다.
신사복이 신을 향해 웃어 보인다.
신사복 : 참으로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하고요.
신 : 느들 뭔지 아는데. 여기 느들 올 데 아니니까. 가라.
신사복 : 어허. 짧은 세상 좋게 사는 게 좋은데.
신 : 우리 형수님하고 애들 앞에서 꺼지라고.
신사복 : 갈겁니다. 가는데. 그건 어찌 되가고 있는지 고것만 알고 갈게요. 언제 나온댑니까? 보험금.
경아가 달려나온다. 마악 신사복을 향해 덤벼들려는 신을 잡는다.
경아의 품에 안겼던 누리가 겁을 먹었다.
명선도 달려들어 아이와 신을 한꺼번에 잡는다.
그 사이에 신사복이 슬슬 뒤로 빠지면서
신사복 : 그게 가서 꼬장을 좀 부려야 빨리 내줄 것인데..
신. 미쳐 터질 것만 같다.
S#71. 보험사 사무실 복도
명선이 머리칼이 흐트러진 채 달려 들어가고 있다. 눈에 띄는 아무나 잡고.
명선 : 아니에요. 잘못 아신 거에요.
사람들이 미친 여자 보듯이 피한다.
명선은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을 미친듯이 찾으며.
명선 :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그이가 우릴 놔두고. 나하구 애들을 놔두고 그럴 리가 없다고요. 이봐요.
그 위로 들리는 사무적인 보험사 직원의 목소리.
소리 : 고객님께서 가입하셨던 사망보험금의 경우, 가입자의 자살로 인한 사망시에는 보험금 지급이 불가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납입 기간이 이년 이상이라면 일반보험금 지급률에 따라 지급이 됩니다만
고객님의 경우에는 가입하신지 일년 팔개월이므로 해당 사항이 없겠습니다.
명선 : (또 다른 사람을 잡고 늘어지며)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되지. 우리 그이가 왜 자살을 해. 당신들이 뭘 알아.
우리 애들 아빠에 대해서 뭘 안다구.
뒤늦게 달려온 신이 명선을 잡는다.
명선 : 삼촌 이 사람들한테 말 좀 해줘요. 나 돈 안 받어.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다리에 힘이 빠져 무너지며 울며)
제발 우리 그이가 우리 애들 놔두구, 지 목숨 지가 끊었다구. 그런 말은 제발 하지 말라구. 말 좀 해줘요오.
신, 그저 형수를 부축하여 안아 줄 뿐이다.
신. 우는 형수를 감싸며 뭔가를 결심하고 있다.
S#72. 할인화장품 가게
뚜벅뚜벅 걸어가는 시선으로 보이는 상점가의 쇼윈도우들.
그 중에 할인 화장품 가게로 성큼성큼 들어가는 시선. 거기 경아가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마악 손님에게 웃으며 물건을 팔고 쇼핑백에 넣는 중이다.
경아가 이쪽을 본다. 놀라 웃는 경아의 손목을 나꿔채는 신.
경아가 머라 말하기도 전에 경아를 끌고 나오는 신. 경아 간신히 옆에 있던 제 가방을 나꿔채 든다.
손님도 다른 점원도 어이없어 본다.
S#73. 밤 거리
경아의 손을 잡고 뭐가 급하기라도 한 듯 걸어가는 신.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경아 : (불안해서) 왜. 무슨 일 있어? 뭔데에.
신 : 가만 좀 있어봐. 생각중이잖아.
경아 : 글쎄 무슨 생각.
신 : 어뜩하면 너를 감동시킬까. 뭘해주면 니가 평생 기억할까.
경아 : (버팅겨 서며) 무슨 소리야. 뭘 평생 기억해.
신 : 내가 원래 그렇잖아. 일단 저지르고, 저지르면서 생각하잖아. 그래서 지금 생각중인데..
하다가 옆을 본다. 거기 제법 고급의 레스토랑이 있다.
신 : 이태리 레스토랑이랜다. 너 이런데 좋아하지?
다짜고짜 경아를 끌고 들어선다.
S#74. 레스토랑 내부
품위 있는 분위기에 음악이 흐르는 곳.
아직 저녁에는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별로 없다.
신은 무조건 경아를 끌고 입구의 점원에게 가며
신 : 저기요.
점원 : 두분이십니까? 예약은..
신 : 하루밤 얼마면 됩니까?
점원 : 네?
신 : 이 레스토랑 하루 빌리는데 얼마냐구요. 여기 내 애인하고 둘이서만 식사를 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자. 여기 카드. 이걸루 알아서 긁으세요. 제일 비싼 와인, 샴펜. 다 내오고.
아 그리고 여긴 밴드같은 거 안 불러주나. 있잖아요. 그 왜 바이올린이니 뭐.. 좀 우아한 밴드.
점원 : (당황해서) 저기 손님. 그게..
경아 : (신이 내놓은 카드를 나꿔채며) 이 놈 미친 놈이에요. 상대하지 마세요. (신을 끌어내려 하며) 나가자.
신 : 왜 여기 맘에 안 들어? 그럼 프랑스 식당으로 할래? 너 한식은 별루 안 좋아하잖아.
경아 조용히 돌아서는가 싶더니 가방으로 신의 등짝을 냅다 후려친다.
S#75. 강변
나란히 앉은 신과 경아.
경아가 생수병의 뚜껑을 따서 한모금 마시고는 신에게 던진다. 신이 물이 튀는 것을 간신이 받는다. 신. 물을 마신다.
경아가 자기 가방을 뒤지더니 봉투를 하나 꺼낸다. 신에게 던져준다.
신이 그것을 받으려다가 물을 쏟는다. 무릎에 쏟아진 물을 털어내며.
신 : 뭐야. 이건.
경아 : 요즘 은행 이자 얼만지 알지? 그거보다는 두배로 받아야겠으니까. 차용증 써.
신이 봉투를 열어본다. 저금통장과 도장이 나온다.
잠자코 통장을 한장씩 넘겨본다. 매달 십삼만원씩이 입급된 적금통장이다.
신. 말을 못한다.
경아 : (주섬주섬 찾아낸 수첩과 볼펜을 내밀며) ....안 쓸거야 차용증?
신 : (말없이 받아든다)
경아 : 아 지장두 찍어야지. (립스틱을 찾아내어 뚜껑을 열어 색을 보며) 이거 발라서 찍으면 되겠네. 손 내봐.
아주 다섯 손가락 지장 다 찍자구.
신 : 너..
경아 : 나 왜.
신 : 안한대매.
경아 : 뭘.
신 : 나 같이 비전 없는 놈. 사랑 안한대매.
경아 : ...안해.
신 : 근데 이거 뭐하는 짓이야.
경아 : (그렇게 말하는 신이 야속해서) 미친 짓이다. 왜. 잠깐 미쳐서 그러니까. 내 정신 돌아오기 전에 받어.
받아서 형님 사채빚 조금이라도 갚으라구. 안그럼 느네 형수님. 무슨 짓 당할지 모르잖아.
신. 갑자기 킬킬 웃는다. 킬킬대고 웃으면서 경아의 가방에 통장이며 수첩, 도장을 도로 쑤셔 넣는다.
경아 : 그냥 주는 거 아니잖아. 이자 쳐서 갚으라니까.
신 : (웃음 끝에 기침을 한다. 심호흡을 두어번하며 마음을 정하고 경아를 돌아본다) 꼴랑 오백만원짜리 적금. 그것두 넣다 만 거.
누구 코에 붙이라고.
경아 : 뭐?
신 : 우리 형 빚이 얼만데. 너 진짜 디게 웃긴다. 응? (웃는다)
경아 : (그렇게 말하는 신이 낯설다)
신 : 내가 오늘 왜 너 델구 이태리 식당 가서 쑈할라구 했는지 아니? 너한테 부탁 좀 할라구.
경아 : (낯설어서) 무슨 부탁.
신 : (핸드폰을 꺼내서 보여준다. 배경화면에 경아의 웃는 얼굴) 니 사진 이거 들고 가서 좀 알아봤거든.
너 정도면 선불 천만원 바로 땡겨준대.
경아 : 장난 치지 마. 재미없어.
신 : 거기 아주 물 좋은데래. 재벌 이세들도 많이 오고 벤처 사장에 연예인에..
경아 : 하지 말라구.
신 : 나하구 가볼래? 여기서 별루 안 멀어. 거기 마담한테 오늘 너 델구 간다구 했거든. 그냥 가보기만 하자. 응?
경아 일어나 걸어간다. 그런 경아를 집요하게 쫓으며
신 : 너만 잘해봐. 혹시 아냐. 얼빠진 재벌이 한놈 걸릴지. 니 소원이잖아. 재벌하구 결혼하는 거.
경아가 멈춰서는가 싶더니 가방으로 신을 닥치는대로 때린다. 때리는대로 맞으면서
신 : 내가 니 매니저 해줄게. 미용실도 델구 가주고. 술마시고 토하면 약도 사주고. 그럴거니까 너 버는 거에서 조금만 떼주라. 응?
경아가 울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을 힘껏 패더니 달려간다.
신은 더 이상 쫓아가지 않는다. 우울하게 바라보는데 달려가던 경아가 비틀 넘어지려 한다.
신이 저도 모르게 움찔 달려가려다 멈춘다. 경아는 이제 절뚝이며 걸어간다. 계속 울고 있는 모양이다.
신. 저도 모르게 울컥 솟구친 눈물을 두손으로 얼굴을 부벼 훔쳐낸다.
S#76. 도심 뒷골목
지저분한 뒷골목이다. 오래된 건물들의 후문이 늘어선 우중충한 거리.
그 중 한 건물의 삼층 정도. 누군가 브라인드를 걷어올리고 있다.
유리창에 붙어있는 급전 당일대출 등의 간판 글자.
S#77. 사채 사무실
블라인드를 걷어 올린 사채업사장이 배를 긁으며 돌아선다.
사장이나 그 옆에서 고스톱을 치다 돌아보는 사내들이나 한눈에 조폭 건달들 분위기가 난다.
거기 탁자 앞에서 서류를 읽어보고 있는 신.
사장 : 길지두 않은 걸 뭐 그리 오래 읽어보나. 간단하잖아. 때되면 이자 꼬박꼬박 갚아라. 돈으로 못 갚으면 몸뚱이로 갚아라.
뭐가 어려워.
고스톱을 치던 사내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신. 분위기에 눌려서 옆에 놓인 인주를 엄지 손가락에 묻힌다. 그러나 선뜻 찍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앞까지 다가온 사장.
사장 : 근데에.. 아가야. 자알 생각하구 찍어라. 응? 집문서도 없고. 월급 나오는 데두 없는 너 같은 애. 뭘 보고 돈을 빌려주겠니.
우리. 제대로 된 루트 끼고 국제 무역하는 사람들이야. 간이니 허파니. 눈알 같은 거. 너 보아하니 신체 건장한 게
값은 좀 나가겠는데... 자알 생각해. 이자 꼬박꼬박 갚을 자신 없으면 그냥 가아. 아깝잖아. 새파란 니 청춘.
신이 다시 서류를 내려다 본다. 서류의 제목은 [신체포기각서]이다.
신. 결심을 하고 지장을 꾸욱 찍는다.
S#78. 뒷골목
뒷문으로 나오는 신. 거기 기다리고 있던 사채업자 신사복과 사내 둘이 다가온다.
양쪽이 마주선다. 신사복이 손을 내민다. 그러나 신이 마주 손을 내민다. 먼저 내놓으라고.
신사복이 허허 웃더니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펴서 보여준다. 모든 빚을 청산했다는 내용의 글이 적힌 영수증이다.
신이 종이를 잡아채더니 메고 있던 더플백을 던져준다.
사내들이 더플백을 열어 안에 들어있는 현금을 확인하는 동안, 신이 걸어간다.
신사복이 신의 등에 대고
신사복 : 걱정 마쇼. 그쪽 형수님은 다신 우리 얼굴 안 볼거니까.
아 그리구 내 명함 갖구 있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 오셔. 김신씨라구 했죠?
신은 그저 걷는다.
걸어가는 신의 위로
판사소리 : 피고 김신.
S#79. 법정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다.
판사 : 형법 제 250조와 254조에 의거 살인미수죄를 적용,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석에 앉은 김신. 억지로 허리를 펴고 앞을 본다. 이미 다 포기한 얼굴.
판사 : 피고 김신. 징역 3년 6개월.
쾅쾅쾅. 내려치는 망치.
S#80. 영등포 교도소
철문이 콰앙 닫힌다. 또 하나의 문이 콰앙 닫힌다.
S#81. 내문
양쪽에 경비대가 주욱 늘어서 있다.
그 가운데로 이동하고 있는 수감자들. 이제 청색의 이동복을 입고 있다.
그 중에 신이 보인다. 지나가는 이들 중에는 고범환도 있다. (조직폭력배 형님답게 중량감이 느껴지는)
뒤로 절컹 문이 닫긴다. 절거덕 잠긴다. 그 옆으로 높다란 담이 주우욱 이어져 있다.
(경비하는 초소 등.. 건조하게. 스케치. 빠르게)
S#82. 교도소 안마당
신입들이 교도관들과 함께 줄줄이 들어온다.
거기 안마당에서 풀 뽑는 작업을 하던 수감자들이 이쪽을 돌아본다.
그 중에 여럿이 일루 달려온다. 하나같이 조폭처럼 생긴 이들이다.
교도관이 대충 앞을 막는데 아랑곳 않고 그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조폭들 : 형님 오셨습니까
그들이 인사하는 대상은 고범환이다.
범환, 여유있게 인사를 받다가 돌아보는 곳. 신이다.
신이 그를 보다가 아차 싶어서 얼른 시선을 피한다.
그랬다가 다시 돌아보면 이제는 범환 뿐 아니라 그 아우들도 모두 신을 보고 있다. 아우들 중에 하나, 용식이 묻는다.
용식 : 저 놈입니까. 형님 코를 건드린 놈이.
교도관들이 앞을 헤치며 수감자들을 데리고 가던 길을 진행한다.
신이 머뭇거리며 따른다. 따르며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니 하나씩 둘씩 불어나는 수감자들.
그들은 범환에게 인사를 하거나 신을 노려보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교도관들이 있어도 아랑곳않고 넌 죽었다는 표시를 보내온다.
앞날이 캄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