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은 김상훈 회원의 아버님 제사일이기도 합니다. 2003년 음력설날 밤 상훈이로 부터 걸려 온 부고전화를 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해서 벌써 8주기가 되었습니다. 세억이, 승훈이와 함께 祭酒를 들고 식게 먹으러 다녀왔습니다. 마침 상훈이 모친께서 상경하셔서 세배도 드렸습니다. 상훈이 모친의 진두지휘 아래 민석母께서 준비하신 제주식 제사음식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랫만에 먹어 본 빙떡, 상훈이 모친께서 손수 만드셨습니다. 이 귀한 빙떡을 반도 타고 왔습니다.
침떡과 송편도 직접 만들었네요. 쌀은 제주쌀, 팔도 팥은 높으신 분께서 下賜하신 걸로만 알려 드립니다.
방어 적갈도 있었는데...
下賜 떡국~!
옛날 제삿날에는 집에서 만든 甘酒를 내놓았는데, 세월이 변하면 음식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
빙떡
제주의 전통음식은 대부분 한결같이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음식들의 맛 또한 독특하다. 그러한 제주 음식들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한 맛을 내는 음식을 꼽으라면 필자는 단연 빙떡을 꼽는다. 빙떡의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맛 때문인데 한마디로 아무런 맛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오묘한 그 만의 맛이 다시 중독성을 갖게 하는 참으로 독특한 음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빙떡의 재료는 단순하다. 메밀가루로 만든 묽은 반죽에 무채나물이 전부다. 심심한 메밀 겉싸개와 심심한 나물 속을 조합하여 만드는 음식에서 무슨 맛을 기대하겠는가? 당연히 심심한 맛이 빙떡의 맛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 맛을 보는 사람들은 이걸 무슨 맛으로 먹는가 하고 고개를 가로젓기 일쑤이고 제주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 빙떡을 먹어온 토박이 제주사람들에게는 가장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이고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고향의 맛으로 주저 없이 꼽는다.
▲ 제주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으로 오명을 쓰고 있는 차롱 속 빙떡.
하지만 설명하기 힘든 그 오묘한 맛이 진짜 제주의 맛이다. ⓒ양용진
10여년전 서울에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시는 5~60대 고향 어르신들과 제주음식 얘기를 하는데 그분들 모두 가장 먹고 싶은 고향음식으로 빙떡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외지인 몇 사람이 도대체 어떤 맛인데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빙떡을 찾느냐고 궁금해 했는데 결국 아무도 그 맛을 바로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다. 빙떡이란 그런 것이다. 설명할 수 있는 맛이 아니다. 그리고 한 두번 체험한다고 느낄 수 있는 맛도 아니다. 제주사람의 정서와 제주사람의 생활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빙떡의 맛을 느낄 수가 없고 반대로 빙떡의 맛을 음미할 정도가 되었다면 비로소 제주 사람이 다 되었다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빙떡의 유래는 일려진바 없으나 주재료인 메밀의 전래과정을 살펴보면 탐라가 고려 말 100년간 원의 직접 지배하에 있을 때 받아들여졌다고 하니 육, 칠백년 정도로 추정할 수 있겠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원의 관료들이 제주사람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소화도 잘 안되고 독성이 있는 작물로 알려진 메밀을 전해주었으나 제주 사람들은 메밀을 가루로 내어 소화 효소가 풍부한 무와 함께 메밀을 조리해 아무런 탈 없이 먹음으로서 원나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하는데 무와 함께 조리한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메밀 조배기와 빙떡이다.
이후 메밀은 제주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작물이 되었다. 쌀에 익숙한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는 곡물이었으나 강원도와 북부지방의 산악지대와 제주처럼 돌이 많고 척박한 땅에는 더없이 좋은 작물이었다. 특히 재배기간이 길어도 100일을 넘지 않고 가뭄에 강하며 높이가 1미터도 되지 않으니 바람이 거세고 척박한 제주 땅에 이렇게 적합한 곡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다만 거피작업이 힘들고 그로인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탁월한 소화효소를 함유하고 있는 무를 함께 섭취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우리 선조들은 보여주었고 그렇게 메밀은 버릴 것 없는 제주의 대표적 구황작물이 되었던 것이다. 주로 초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시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하여 먹었는데 주곡이었던 보리와 함께 활용도가 가장 높았던 곡식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쌀이 귀한 제주에서 쌀을 대신하여 떡을 만드는 재료로도 많이 활용되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빙떡이다.
빙떡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무나물을 싸기 이전의 메밀전병을 ‘빙’이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국자를 빙빙 돌려가며 부친다고해서 그렇게 이름 붙었다고 말하는데 정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또한 빙떡을 ‘정기 떡’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정지(부엌)에서 부쳐 먹는 떡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보다는 제사상에 제물을 진솔할 때 밑의 받침으로 빙을 사용하면서 그릇을 의미하는 정기 떡이라 이름 붙었다는 설이 더 그럴 듯 하다하겠다.
이처럼 독특한 빙떡이 한때 제주에서도 아주 사라져 버릴 뻔 했다. 빙떡은 평상시 만들어먹었던 음식이 아니었고 주로 관혼상제의 대소사를 치를 때 만들었던 행사용 음식이었던 탓에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국가적인 시책으로 가정의례간소화운동을 벌이면서 과거의 행사용 음식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고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국풍80’이라는 대규모 문화행사를 벌이면서 여의도에 각 지방 전통 문화를 집결시켜서 근 한 달여 동안 축제를 벌였는데 이때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 공식적으로 출품이 되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이후 부분적으로 만들어 선보이다가 관광객들에게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하여 다시 사장되는 듯 했는데 90년 후반대로 접어들면서 추억의 먹을거리가 상품화 되면서 되살아났고 이제는 제주의 모든 지역 문화 행사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빙떡을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반죽은 메밀가루에 물을 섞어 장시간 치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찰기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만들고 있는 빙떡을 보면 메밀반죽이 잘 안 부쳐 진다고 하여 메밀가루 반죽에 밀가루나 찹쌀가루, 계란 흰자 등을 섞어서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 도청이나 시청 등 관공서의 공식적인 인터넷 사이트에까지 전통적인 방법이라면서 이러한 잘못된 지식을 게재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속을 채우는 내용물은 가을부터 겨울, 초봄까지 무가 제철이라 반드시 무채 나물을 만들어 넣는데 이때 쪽파와 소금 간 이외에는 별도의 양념을 하지 않는다. 여름철에는 무가 맛이 없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팥고물을 넣거나 콩나물을 소로 이용하는데 현대의 떡처럼 팥고물이 달거나 콩나물의 간을 세게 하지 않고 심심한 맛을 유지해야한다.
빙떡은 처음 먹는 사람들에게서 맛을 제대로 평가 받기는 힘들다. 처음 빙떡을 접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자반생선을 같이 곁들여 맛을 보게 하면 십중팔구 맛있다고 한다. 특히 잘 말린 옥돔을 구워 그 쫄깃한 살코기 한 점을 빙떡위에 얻어서 한입 베어 물면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너번만 먹다보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빙떡만 먹어도 그 맛을 즐기게 될 것이다.
요즘 빙떡은 과거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한입에 먹기 편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의 노점 등에서 만들어 팔고 있는 곳을 간혹 볼 수 있다. 가장 제주다운 음식이 좀 더 많은 곳에서 만들어 지기를 바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빙 떡의 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양용진의 제주의 맛 2탄 빙떡> 제주의 소리 2009. 11. 26
땅을 상징하는 침떡
생활은 돌바닥 위에 농사를 짓는 것처럼 어려웠지만 제주선인들의 정신이나 지혜로움은 결코 위축되지 않았음을 나이들면서 알게 되었다. 설 차례상만 하더라도 그렇다. 차례상에는 국밥, 채소, 고기, 제숙 등과 함께 떡이 올라간다. 시루떡(쌀떡과 좁쌀떡), 새미떡, 곤떡, 절변, 반착곤떡(솔변), 멍석떡, 전 지진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떡들은 단순히 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떡들은 천지일월성신운무(天地日月星辰雲霧)를 상징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시루떡(침떡)은 땅을 상징한다(팥고물로 싸여있어 검붉기도 한다). 새미떡은 하늘을, 인절미는 다시 땅을, 곤떡은 해를, 반착곤떡은 달을, 또한 조그만 곤떡은 별을, 전(煎) 지진 것은 구름을 각각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진성기선생의 제주도민속(세시풍속) 편에도 소개되고 있다.
- 강문규의 칼럼에서 발췌 <한라일보 ‘세시풍속에 깃든 멋과 지혜를 읽는다’> 2009. 1. 20
동넷집 식게 넘어나민 사을 불 아니 나
제주에서 식게떡은 세미와 인절미, 송펜, 곤떡, 침떡과 제펜 등이주마는 어멍아방 식게엔 시집간 이 지물(祭物)로 빙떡 한 차롱 영오는디, 모멀를로 크게 지졍 그 소곱에 삐채 놩 떡이라. 또 세미나 인절민 여름엔 보리나 밀를로 숙성시켱 멘들곡, 저실엔 보통 모멀를로 엿주. 조침떡은 올리지 아녕 먹기만 는디, 좁를에 감저 썰어놩 시리 아래쪽에 놓곡, 상에 올릴 제펜은 우티만 를로 놩 쳐서.
제파지 끝낭 우알녘집의 불 싸져시문 차롱착에 침떡 두어빗 고 떡 꼼 놩 “삼춘, 잠수강?” 멍 울담으로 넹기곡, 불꺼져시문 새벡이 나먹엇주. 경곡 동네 나이 든 어른이나 얻어먹은 디 시문 핑계에 가프멍 살아서. ‘동넷집 식게 넘어나민 사을 불 아니 나’ 는 속담은 그만큼 어렵게 살앗젠 소리고. 이젠 우알녘집의 누게가 살암신지도 몰르곡, 시상 인심은 갈수록 으서가난 큰일이라.
- 김창집 작가· ㈔제주어보전회 운영위원
첫댓글 상훈아버님 돌아가셨을때 눈이하영 와서 돌아오는길에 빙판에 차가 미끄러진 사고도 있었고,다음해 일주기때는 눈이 너무
내려 차가움직이지 못할정도라 친구들이 가지못했던 기억이 나네.내년 기일에는 나도 불러도라...
순철아! 그 당시를 기억해줘서 고맙다!! 서울에 오게되면 내년부터는 꼭 연락허마!!!
순철아 안 그래도 식겟날 저녁 속으로 올라와신가 전화허잰 허단 못 했저...
이젠 올라 온건가?
AMBI 회원 여러분! 설 명절은 잘 지내셨는지? 아버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지가 8년이 지났습니다!!명절 날 세배도 다 받으시고 저녁식사까지 다 하신후 어지럽다고 하시더니 유언 한마디도 없이 그대로 영영 이별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사를 명절 날 저녁에 하다보니 가족들이 다 모일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쓸쓸함을 느낍니다. 몇일전 얘기를 나누다가 제삿날을 알게된 몇몇 회원들이 찾아와 함께 해줘서 참~고마웠습니다!! 명절 연휴기간이라 차마 싯게 먹으러 오라는 청을 할 수 없었기에 김영철 회장님에게도 얘기를 못했답니다!!!이해를 바랍니다~~~회원 여러분,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요!!!
先親께서 돌아가신 날을 함께 추모하지 못하여 미안할 따름이다. 경허젠 안 해신디 경되부난 홀 수가 어쪄. 이 세상에는 이름하여 생물학적 父일 뿐인 아버지도 많다.先親께서는 참으로 훌륭하신 어른이셨는데,갑작스런 別世의 여파가 아직도 계속되는 것으로 안다. 달리는 말에서는 내릴 수 없고, 이미 내리고 있는 비는 멈추게 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경해도 어떵허느니 힘내라.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잖아. 빡시게 살자. 새해에는 소망하는 모든 것들이 몬딱 이루어지길 바란다.
진우야! 고맙다!! 생각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고 이 시대를 함께하는 동료임을 느끼게 되는구나!!!
내년 설 명절 저녁에는 식사를 같이 하도록 하자!! 현감사는 9일 10시 30분쯤 차 한잔 하기로 했다! 그 날 아침에 전화 통화하자.
살아계신 부모님도 돌아가신 부모님도 잘 기억하고 잘 모시는 것이 오래 보존해야할 우리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상훈님의 효성과 제사 먹으레 간 친구들의 우의에 박수를 보냅니다.
김영철 회장님! 고맙습니다!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잘 모시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게 그렇게 혼자만의 뜻대로 되느건 아닌가 봅니다! 너무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가 복잡하고 냉정하고 야속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나마 정서적으로 통하는 몇 몇 친구들이 있어서 위안이 되긴 하지만~~~그래도 잘 해 보려고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김영철 회장님 어머님도 몸이 안 좋으셔서 지난번 병원에 입원하신 걸로 아는데,
요즘은 좀 쾌차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노환으로 6개월째 병원에 입원 중이십니다만 병세가 점점 호전되어가고 있습니다.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김회장 자당께서 병환 중인 사실은 처음 알았습니다. 노심조사가 크겠습니다. 부디 쾌차하셔서 천수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김학장님! 어머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계신걸 몰랐습니다!! 전에 서울대병원에서 수술 받으셨을 때 문병갔던 기억이 나는데....
암튼 관심을 갖지 못하여 미안합니다!!! 노환이긴 하지만 효심이 지극한 아들의 정성이 대단하기에 쾌유 하시리라 믿습니다!! 힘내시고 서로서로 잘 모시도록 합시다!
금년 88세이셔서 걱정 많이 했는데, 호전되고 계셔서 걱정을 줄이고 있습니다. 자식된 도리도 한계가 있는 일...현대 의술에 기대어 삽니다.
그당시 gastric cancer 로세계최고권위자 김진복 교수가 수술집도 했는데 당시 서울지검 검사인 김학장 교수신디 꽤 욕먹었주 ..쾌유를 기도중에 함께하겠습니다.
고인이신 김진복 교수님께 아직까지도 감사한 마음 갖고 있습니다.
부모님중 한분많이라도 살아계신 친구들은 정말 좋겠습니다,살아계실때 좋은 식당에 모셔서 맛있는 음식 대접하세요,다들 부럽고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부모님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그리고 아프지 마시고 건강 하셔셔,오래오래 사세요!!!!
오승훈 거사님! 진심어린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주변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몇 몇 친구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그나마 어머님이 살아계신것이 참~다행입니다!!! 이제 더 이상 고향에 별 볼일이 없어진 주변의 친구들을 생각하며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 가겠습니다!!아직도 부모님이 건재하신 모 모씨를 비롯한 몇 분은 전혀 그런 안타까움을 모르겠지만~~~늘 남의 일이니까.......
쾌차하시길 바람니다,김진복 교수가했으면 그당시에는 잘했을것같은대 나아는 사람도 했는대.... 요즘 살아계신 부모님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느낌니다
난 맨날 불효자로 괴롭다마는....
김세억님! 아직 어머님이 건재하신걸로 압니다만......워낙 효자라서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예~! 어머님이 살아계신것 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순둥이님! 어머님이 살아계시다는게 행복입니다!!
세억이 어머님은 옜날 미스탐나 출신 아니냐!!!다들 행복 하게 살아갑시다!!!!말씀에 병이없기를 기대도 하지말아야 합니다,쾌차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아직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워낙 과거 공화당 시절 제주를 대표하는 여성국장으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으며 키도 훤칠하시고 미모가 매우 뛰어난 분이신 걸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미스 탐라 출신인지는 잘 모르겠고요~~~
옛적엔 이쁘시긴 이쁘셨을 용모이셨습니다!
우리어멍 들으면 엄청 조아헐거여마는 엤날이나 지금도 집 사람 한테 마마보이가~ 하는소리들을정도로 기가쌨는데,요즘은 많이 불쌍하신 생각만 든다.아프고 거동도 시원치 않고.내가해드릴수있는것도 한계가있고.상훈이 어머님 별명이 꼿맬이라 하셨다는대 기품 있게 나이가 드시고 예쁘셨던 모습이 지금도 어디가도 푸로포즈바드커라라.
살아 계시면 살아 계신대로, 돌아 가셨으면 돌아 가신대로 각자 사부곡, 사모곡을 읊어들 봐~
맞다! 바로 이런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情의 교류가 아닐까? 못 본척 모른척 하기 보다는 자신의 처한 입장을 여러 회원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지낼수 있다면 이 또한 큰 힘이 되지 않겠는지??
암튼 서로가 잘 지낼수 있도록 노력은 해보자구!!!
상훈아! 어딘지는 모르지만
잘 갔다오라~! ^^
양훈아! 비우고 낮게,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3박 4일간의 여정을 떠난다!! 많이 채워서 오마!!!
어디감서?
걱정반 두려움 반이믄...
빠따 맞이래 가는 것 말고 또 이시카? ㅎㅎ
세억아! 어디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암튼 잘 갔다 왔쪄!!
양훈아! 내 인생에 가장 길게 느껴졌던 3박 4일간이었다고 밖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값진 시간 보내고 왔으리라 생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