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부각
김귀선
빤히 올려다보는 모양새가 자못 도전적이었다. 은근히 약이 올랐다.
‘뭘 봐? 쳐다보면 어쩔 건데.’
‘괜히 시비야?’
‘지금 날 비웃고 있잖아.’
‘가만있는 내가 뭘? 샘나면 샘난다고 인정하시지.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하릴없어 애먼 고추부각에다 신경전이다. 분홍보자기를 낭창하게 깔고 앉은 식탁 위의 고추부각은 남편이 모임에 나갔다가 들고 온 것이다.
그 반찬은 내가 즐기는 부식이다. 양념장을 살짝 묻혀 따뜻한 밥과 씹으면 맵싸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좋아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음식이다. 해마다 가을볕에 잘 말린 부각을 시골 언니가 챙겨줘서 아쉽지 않게 먹었는데 지난해엔 미처 준비를 못했는지 주지를 않았다. 그런 차에 오늘 남편이 고추부각을 들고 온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소리를 지르며 좋아해야 할 텐데 나는 되레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이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다스려야하나.
자정이 가까운 좀 전이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밀자 남편이 각이 반듯한 체크무늬 쇼핑백부터 쑥 내밀었다. ‘어! 오늘 무슨 날이지?’ 했다. 저녁만 먹고 올 거라며 스스로 말해놓고는 밤늦게 왔으니 미안한 마음에 특별한 날을 핑계 삼아 선물이라도 사온 걸까 여겼다. 너무도 당당하게 쇼핑백을 내밀기에 그렇게 믿었다.
“반찬이 하도 맛있어서 좀 사 왔어.”
또 반찬을? 무지러진 내 기대는 반감으로 솟았다. 평소에는 마트도 잘 가지 않은 사람이 아닌가. 의아해 하는 내 모습에 뒤가 당겼던지 옷을 갈아입으려던 남편이 잠바 한 쪽 팔만 벗은 채 안방에서 나와 중언부언 설명했다. 식당에 갔다가 반찬이 맛있어서 좀 팔라고 했더니 마지못해 통에 담아주었단다. 손사래 치는 주인에게 억지로 값을 치러주고 왔다는 것이다. ‘맛있는 반찬이 식당에만 있나. 요즘 반찬 전문점이 얼마나 많은데 뭐가 답답해서 사정하면서까지 살까?’ 들어보나 마나한 남편의 해명을 귓등으로 흘리며 쇼핑백 안을 힐끗 봤다. 분홍색보따리가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초등 동기 모임을 갔다 올 적마다 남편은 반찬을 사 가지고 왔다. 어느 해는 양념이 반지르르하게 발린 깻잎 장아찌, 또 어느 해는 잘 삭힌 갓김치, 작년 봄엔 아삭한 총각김치를 들고 왔다.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이다. 그것은 내가 맛나게 만들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출처가 모호한 쇼핑백 속의 분홍보따리를 끄집어내어 식탁 위에 올렸다. 도대체 이번엔 무슨 반찬일까. 묶는 데도 성심을 다한 듯 보자기의 네 귀가 또렷하다. 그 식당의 주인은 참으로 괜찮은 분인 모양이다. 판매하지도 않은 반찬을 팔라고 억지 부리는 손님에게 이렇게 정성을 들이다니. 비아냥거림이 묻은 감정의 손끝으로 보자기의 고름을 풀어 젖히자 황갈색 튀김옷을 입은 고추부각이 보라색 테를 두른 사각 통에 한 가득이다. 적당한 온도에서 잘 튀겨졌다는 게 한눈에 느껴졌다.
알맞은 온도란 정성으로 다스린 온도가 아니던가. 맛깔나 보이는 모양에서 문득 맵찬 음식 솜씨의 야무진 여자를 상상한다. 평소 내가 만든 반찬에 정성이 없다는 남편 말이 떠올라 또 약이 오른다.
‘사실 대로 말해 봐 어느 여자가 보낸 거야?’
‘역시나 너도 속 넓은 여자는 아니구먼.’
‘그래 나 속 좁은 여자야?’
‘솔직하게 자격지심이라고 실토하시지’
점점 속이 메슥거린다. 고추부각 낱낱마다 고물처럼 묻었을 정성이 심기를 건드린다. 하필이면 내가 잘 못 만드는 반찬이라니.
초등 동기 모임에 다녀올 적마다 식당에서 샀다며 반찬을 들고 오는 남편, 오지게 무딘 사람이 아니라면 그 말에 편안해질 여자가 얼마나 될까. 애달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적당히 넘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평화를 유지하는 고단수의 방법일 텐데. 느긋함으로 다독여도 삐죽삐죽 삐져나오는 이 불편함을 무엇으로 뭉그러뜨려야 하는지 자꾸만 갑갑해진다. 태연하고 싶지만, 거미줄을 뒤집어쓴 듯 찜찜하다. 보자기를 풀어본 내 반응을 지금쯤 남편도 궁금해 할 것이다.
‘그래! 같이 나이 들어가는 마당에 뭔 이 정도 가지고 샘을 낼까.’
한마디 반응은 보여야할 것 같다. 숨을 몰아 감정을 정돈하고 아랫배에 힘을 준다.
“와~고추부각 진짜 맛있게 보이네요. 꼭 집에서 한 것 같아요.”
하이 톤으로 미끄러지는 영혼 없는 말, 그 난간에 끝내 갈고리 하나 걸어두고 말았다. 못 들었을 리 없을 텐데 소파에 앉은 남편은 티브이만 쳐다본다. 칼로 물배기라고 하지만, 서로의 이성에 대해선 별것 아닌 일에도 부각처럼 쉽게 바스러지는 것이 부부관계가 아니던가. 어쩌면 남편은 모른척하며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맛있게 보이지만, 결코 쫄깃하게 씹어지지 않을 고추부각이다. 그 통이 바닥 날 때까지 누군가의 정성이 식사 때마다 우리 주위를 얼쩡거릴 것 같다. 남편이 그의 여자 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이라면, 넥타이나 지갑 보다는 먹거리가 차라리 덜 불편하다는 지인의 말이 되살아나 위로가 된다. 은밀하게 남편 몸에 붙어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일 게다.
반가우면서도 개운하지 않은, 꼬치꼬치 출처를 확인하려니 별것 아닌 것에 딴지나 거는 속 좁은 여자로 보이는 것 같아 자존심 상하고, 그렇다고 감지되는 촉을 모르쇠로 무시하기엔 왠지 자신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아 씁쓸한, 볼 때마다 여자의 감정을 미세하게 건드리는 이 물건.
‘이깟 반찬 한 통에 흔들리다니’ 들러붙는 눅눅함을 애써 떼어내며 적어도 며칠간은 고추부각에 밀려날 냉장고 안 내 손맛 반찬들을 차곡차곡 안쪽으로 정리해 놓는다. 문을 닫으려는데 맨 앞쪽의 고추부각이 빤히 내다본다. 옆의 김치통을 쓱 당겨 가려버린다. 눈을 내리깔며 도도하게 냉장고 문을 척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