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0.주일오후찬양예배 설교
*본문; 신 6:4~5
*제목; 사도신경(2)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가 믿습니다!
1. 지난 주는 사도신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서론적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도신경은 신앙의 가장 기초되는 사도적인 고백이요, 성경의 요약본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교회가 먼 것이 아니라, 집이 먼 것입니다.)
믿음을 위해 “내가” 들어야하고, 레마로 받아야 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2. 오늘은 그 사도신경의 첫 번째 고백인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의 첫 소절을 배웁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첫 번째는 “나는”입니다.
지난 주에도 이야기 나누었지만, 신앙의 고백은 “credo”입니다. 즉, “내가 믿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도 바로 자신입니다. 또한 그 결과도 오직 자신이 누리고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핑계는 신앙에서 가장 큰 적입니다.
두 번째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고백이 없으면 우리 신앙은 빈껍데기입니다. 고백하지만 제대로 믿지는 않는 신앙인 것입니다.
전능하다는 것은 크게 다섯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 영원성을 말합니다. ‘시 102:27’에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시 102:27)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그 분으로부터 시간이 나오고, 그 분이 시간 자체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시간도 이기시고, 시간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둘, 전지성을 말합니다. ‘사 46:10’입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 46:10)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까지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항상 옳으십니다.
(시간의 중심이신 하나님, 시간의 중심에서 각 호의 꼭지점을 동시에 보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십시오.)
셋, 무소부재성을 말합니다. ‘엡 4:6’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6)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 분이십니다. 이 단어를 표현한 라틴어가 바로 “ubiquitous”(유비꾸이토우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든든한 지킴이(보디가드)를 가진 것입니다.
넷, 정의성을 말합니다. ‘욥 34:11’입니다.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욥 34:11)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의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cuique suum”(쿠이꾸 숨) 즉,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그 사람의 것, 그 사람의 선과 악, 그 사람의 죄와 벌, 그 사람의 상과 복을 분명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섯, 전선성입니다. ‘롬 8:28’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으로 바뀌어가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의 능력(영원성, 전지성, 무소부재성, 정의, 전선성)이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대표적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신다는 고백은 그래서 우리 신앙의 가장 기초되는 고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이 하나님과 통하는 코드는 두 가지입니다.
이 하나님과 통한다면 인생이 바뀌어질 것입니다. 그 분과 통하는 코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고통의 코드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고통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저술가 ‘C. S. 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확성기”라고 말합니다.
둘째, 불안의 코드입니다.
우리 안에는 늘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이 느낄 때 우리는 공허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 경보기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에너지가 고갈되고, 내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아니면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려 갈 때에 이 경보기는 울립니다. 외롭습니다. 고독합니다. 공허합니다. 이 시간이 바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하는 시간입니다.
4. 정 리
신앙은 결단코 개인의 결단입니다. 모든 결과와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신이 납니다.
하나님은 전능성은 영원성, 전지성, 무소부재성, 정의, 전선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하나님과 통하려면 하나님의 코드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 코드는 바로 고통과 불안입니다. 이 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과 통하여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이 사도신경의 첫 번째 소절의 고백입니다.
첫댓글 신앙은 결단코 개인의 결단입니다. 모든 결과와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신이 납니다. 하나님은 전능성은 영원성, 전지성, 무소부재성, 정의, 전선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하나님과 통하려면 하나님의 코드를 맞추어야 합니다. 그 코드는 바로 고통과 불안입니다. 이 때를 놓치지 말고 하나님과 통하여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