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나, 운 좋은 그들?
가난할 때 우리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부자들 중 많은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진실한 우정과,
온갖 의무로부터의 자유를 부러워한다.
부자가 되는 것은 단지 '가난한 자의 고통'을
'부유한 자의 고통'과 바꾸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수입이 끊어지는 것은
'부자의 고통'을 '가난한 자의 고통'과 교환하는 것이다.
불쌍한 나, 운 좋은 그들!
이것은 독신자가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결혼한 사람이 혼자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과 같다.
결혼을 할 때 우리는 단지 '혼자 사는 사람의 고통'을
'결혼한 사람의 고통'과 맞바꾼 것이다.
그러다가 이혼을 했을 때 우리는 단지
'결혼한 사람의 고통'을 '혼자 사는 사람의 고통'과 맞바꾼 것이다.
다른 무엇이 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에 불과할 뿐이다.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은 단지 한 가지 형태의 고통을
또 다른 형태의 고통과 맞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결혼을 했든 독신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신참이든 고참이든 지금의 당신에 만족할 때,
그때 당신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운 좋은 나, 불쌍한 그들!
* 19세기 영국의 소설가 버틀러는 에레윈(Erehwon)이라는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낙원' 또는 '이상향'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는데
이 제목을 거꾸로 읽으면 nowhere,
즉 '어디에도 이상향은 없다'는 뜻이 된다.
반면에 그것을 떼어서 읽으면 now here,
즉 이상향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뜻이 된다.
<아잔 브라흐마 스님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중에서>
출처 : 불교는 행복찾기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