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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재밌게 봤다.
아니 마지막엔 감동적이기 까지 했다.
그래 분석하는 재미가 있을거 같다.
근데. 이 영화의 전제. 이거 참...뭐랄까...
고아원에서 자라서 가족의 사랑다운 사랑 받아보진 못했고. 늘상 외로워서 힘들어 한다.
그래 그건 좋다. 그런 사람들 많다.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보면 자주 볼 수 있는 거다.
직장에서 짤리고 삶의 의욕도 희망도 없는 성만.
자살을 결심했다가 어찌하여 다시 산다.
죽을려고 해도 도통 죽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에게 어느 순간부터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보이고. 이거 참...어디가도 미친놈 취급밖엔 못받는다.
귀신이 네명이나. 저렇게 붙었다.
그런데 이렇게 암울한 성만인데. 거기다가 귀신이 붙었다는데. 이거 행복한 영화란다.
말도 안돼. 원래 우울한 영화에 괜한 드립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무로 돌아가는 코미디의 성질상.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니까. 이거 그럴수가 있다.
귀신이 나오지만 코미디다. 귀신은 있지만 귀신이 무로 돌아간다는거다.
그런데. 그 후에 이상한게 자꾸 보이기 시작한다. 뭔가 이거.
골초 아저씨가 보이고, 울기만 하는 아줌마가 보이고, 땡깡부리는 어린애가 보이고, 색골 영감님이 보인다.
그것도 다 귀신이다. 그 덕분에 입원하기 까지 한다.
거기다가 집에와서는 진짜 사람처럼 행동한다. 같이 티비보고 밥 먹고...
늘상 혼자였던 성만의 일상. 갑자기 분주해진다.
텔레비젼앞에 함께 모여있는 귀신들을 보라. 저게 무슨 귀신처럼 보이나.
여기서 tele라는 뜻이 뭔지 한번 살펴볼 필요도 있다. 텔레. 뭐냐?
텔레란 함께 하나가 되어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뜻 아니었던가?
저 모습. 진짜 텔레비젼 앞에서 함께 하나가 되어 즐거운 모습이다. 유쾌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귀신이 더 살아있는 사람같고 살아있는 성만이 오히려 시체같다.
저 장면에서. 성만은 귀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대체 나한테 원하는게 뭐냐? 뭘 원하길래 내 자살을 자꾸 막고. 죽지도 못하게 만드냐?
여기서 하나를 뽑아내자면. 인간 그자체가 오히려 죽음을 욕망하지 않는가? 라는 거다.
귀신이 붙어서 담배를 시작하고 술 많이 먹고 단거 많이 먹고 수시로 울고...
이거 건강생활에 해가 된다고 귀신들에게 짜증까지 낸다.
근데. 생각을 해보라. 곧 죽을작정한 사람이 건강생각한다는 거 말이 되나? 안된다.
그런데 생각한다는 거다.
기묘하게도. 이 장면이 히스테리증자와 강박증자 사이에서 나타나는 관계처럼 독해되긴 한다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는게 더 흥미롭다.
한맺힌 귀신. 이건 히스테리를 말하는거 아닌가? 시체를 살려놓으려는 히스테리증자의 요구를 이 장면에서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죽은 시체같은 남자를 살려놓기 위해서 끊임없이 잔소리 하는 것과 같으니까.
결코 움직이지 않는 남자에게 '우리 뭐할까?' ' 뭐 재밌는거 없을까?'라고 제안하는 여자친구처럼 말이다.
그러던 중 나타난 마음 따뜻한 간호사. 와. 성만의 시선을 한번에 잡아버린 그녀.
허허. 이거 참. 아무것도 없는 텅빈 공백속에서 찾아온 사랑이라. 현실에서 어떻게 두 사람의 접합점. 찾을 수도 없고.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잖아! 진짜 안타깝다.
일상이 텅빈 공백과 같았던 성만의 삶에 뭔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찾아야되고, 차 도둑질도 해야되고, 로보트 태권브이도 봐야 되고, 음식까지 해야된다.
성만의 공백을 채워야할 어떤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할 필요도 없던 일인데. 아무런 소통이 없던 성만의 삶에서 소통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뭔가 주고 받는 것들. 반복되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죽음을 꿈꾸던 성만의 일상에서 뭔가 색다른 어떤 것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주친 연수라는 간호사. 태권브이를 보러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연수라는 간호사. 자동차 훔치러 갔을 때 중고차 주인 부인을 찾아주면서 만난 연수. 카메라를 돌려주기 위해서 다시 만난 연수. 저녁식사도 같이 하게 된 연수.
그들은 왜 이렇게 연결되어서 상만에게 다가왔을까?
왜? 하필이면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냐는 말이다.
죽다가 살아나서 귀신을 보게 된 사람과 죽은자의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
이 둘의 관계는 대체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나?
'죽음'이라는 거.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것. 죽음.
그 죽음을 통해서 둘은 맺어지는거 아닌가?
상만이 귀신들과 함께 있으면서 듣게 되는 말 .
이런 가족에 대한 '말'을 상만은 듣게 된다.
결혼하면 둘이 살게 되고. 둘이 셋이사는 거지.
그럼 배로 힘들지 않아요?
힘이 두배가 되고 세배가 되는거지.
인간은 말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 말들은 지속적으로 상만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그래 그놈의 말.
귀신들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나.
하긴. 귀신이 빙의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표정도 변하고 말도 변하고 행동도 변하고.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이 과연 무엇때문이냐는 말이다.
결국 죽음이 연수와 상만 둘에게 무엇을 불러오기에 그 둘을 이렇게 필사적으로 연결짓는지. 영화를 계속 봐야 안다.
영화 말미에서 그 모든것.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겠지만 말이다.
상만이 운전면허도 없이 오래된 택시를 몰고가다가 담배꽁초투기로 경찰의 검문을 받게 된다. 그래 그건 좋다.
그래서 경찰서에 들어가니. 보호자를 불러오라고 한다. 아놔. 천애고아로 자란 상만.
과연 자기를 보호해줄 보호자가 어디에 있나? 아무도 없다.
단지 연락처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호스피스 병동의 연수. 그 사람 뿐이다.
상만. 참 서럽다. 세상에 찾아주는 사람. 내가 찾을 사람 하나없고. 고독한 외톨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
아무도 내 이야기 들어줄 사람 없을때. 혼자 중얼중얼 거린다.아니 옆에 있는 귀신들에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에 자살하는 사람이 외 많은줄 알아? 외로워서야. 나만 이모양으로 살잖아? 내 인생은 이 모양이야. 가족이 세트로 태어나나. 하나씩 만들면 되는거지...'
그런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연수. 상만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마치 습관처럼. 무엇이 두 사람을 이어 준것인지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다가와서 습관처럼 그 사람의 심장고동을 확인한다.
'심장이 잘 뛰는지 궁금했어요...아주 건강한 심장소리에요....'
세상에 어떤 누가. 어떤 사람이. 어떤 존재가. 내 가슴속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를 알아주나?
그 누가 그 소리에 귀 기울여주나?
대체 누가?
그런 사람 아무도 없었는데. 이런 만남의 장면.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그에게 어떤 의미가 막 생기는 순간이라는 거다.
무기력하고 정해진 대로만 사는 좀비같은 삶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또 그걸 온몸으로 느끼며 살수 있는 사람으로 한발 내딛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상만. 참.....자기도 심장소리가 궁금하다며 연수의 심장소릴 듣는다.
'콩닥콩닥콩닥.' 되게 빠르게 뛰네요.
심장뛰는 소리. 들어본 사람은 알거다. 아마 그 소리에 묻혀 지내도 행복할것만 같다.
그 규칙적인 리듬과 함께. 무언가가 이루어진다. 서로의 심장박동. 그것을 확인하면서.
두 사람사이에는 어떤 감정의 싹이 자라난다.
바로 이 감정의 싹. 이게 에로스를 알리는 길이요. 죽음을 뛰어넘는 그 무엇아니던가?
결국 이 시점에서 발생한 감정. 그게 나중에 상만이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내게 만들어주는 어떤 카테고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 말미에. '사람이 충격을 심하게 받으면 기억을 잃어버린다.'라는 말과 무심결에 말해버린 엄마가 김밥에 넣어준 '미나리' 이 두가지가 기묘하게 연결되면서 어린 시절 사고를 기억해내게 된다는 거.
그에게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것. 바로 그 기억.
자기 혼자만 살아남아야만 했던 그 처절했던 기억. 억압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야만 했던 그 기억. 어릴적의 소중한 그 기억들....고스란히 사라졌다가...죽음 직전에 그 기억들이 다시 돌아오는 거다.
돌아온 그런 기억들이 비록 '유령'의 형태로 나타나 있지만. 그리고 그 유령들이 애도되지 못했던 '가족'의 모습이었지만.
결국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던 상만에게 다시 돌아온 가족의 기억은 새로운 가족을 안겨주는 마무리를 보여준다.
여기서 확실하게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돌아온다는 것이고 기억되지 않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그가 기억의 저편에서 기억하고 있지 못했던 가장 소중했던 가족에 대한 추억.
그런 기억이 돌아오는 과정.
바로 그 기억에서 돌아오게 된 것은 '사랑'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성만이 해야 햇던 그 모든 것들은 가족들이 성만에게 반드시 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죽어서 라도 지켜주고 싶었던 사랑의 멩세였고. 사랑받음의 증거로써 제시되는 것딜일 테니까 말이다.
이런 영화를 보고 나서. 귀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기보다는.
귀신이라는 형태의 사랑을두고서. 무슨 말을 해야할까?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존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라는 말 이상 할 수 있는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