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쾌유(快癒)를 기원하는 마음
― 문병(問病)을 불편해하는 환자의 처지도 고려해야
■ 필자의 말
150만 전 현직 경찰관과 그 가족이 애독하는 경우신문(警友新聞). 경우신문 편집국장이 오늘자(2026.8.31.) 발행된 신문 PDF 파일을 필자에게 가장 먼저 보내왔습니다. 필자의 졸고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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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에세이】
쾌유(快癒)를 기원하는 마음
― 문병(問病)을 불편해하는 환자의 처지도 고려해야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윤 선생, 내 봉투도 하나 써주시오.”
과거 공직 생활할 때였다. 애경사나 병문안할 일이 생기면 직원들이 내게 ‘봉투’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붓글씨가 남다르니, 기왕이면 졸필보다는 ‘달필 봉투’가 낫지 않느냐는 이유에서였다.
‘축 결혼’, ‘축 화혼’과 같은 혼사 축하 봉투 쓰기가 가장 많았고, 당시에는 ‘축 고희’나 심지어 ‘축 회갑’과 각종 생일잔치 봉투를 쓰는 일도 자주 있었다.
그다음으로 많이 쓴 봉투는 ‘부의(賻儀)’나 ‘조의’였다. 더러는 ‘병문안 봉투’를 부탁하는 상사나 직원도 있었다.
◆ 조심스러운 ‘병문안 인사말’
문병(問病)에 주로 썼던 봉투 글씨는 ‘쾌유 기원(快癒 祈願)’이었다. 이 글씨는 한글보다는 한자로 써야 뜻도 잘 살아나고 보기도 좋다.
최근에 어느 문인단체 단톡방에서 원로 회원 한 분이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갑작스러운 입원 소식에 모두가 안타까워하면서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위로의 인사말이 다양했다. 가장 많은 인사말은 “빠른 쾌유를 기원합니다”, “빠른 쾌차를 빕니다.”였다.
여기서 문장이 좀 낯설었다.
오랜 세월 공직 생활을 하면서 각종 인사말 쓰기를 전담하다시피 해온 필자로서는 “빠른 쾌유”, “빠른 쾌차”라는 말은 익숙지 않았다.
‘쾌(快)’ 자가 어떤 뜻인가. ‘쾌할 쾌’라는 한자는 ‘시원하다’, ‘상쾌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빠르다’, ‘즐겁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미 ‘쾌’ 자에는 ‘빠르다’라는 뜻이 들어있으므로 “쾌유” 앞에 굳이 “빠른”이라는 중복된 수식어를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과거 직장 동료 중에는 한글 쓰기를 고집하는 직원도 있었다. “쾌유”라는 말 대신 창의적으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쓰는 것이다.
가령, “하루빨리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편안히 쉬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기원합니다.”라는 다소 긴 인사말도 봉투에 쓰는 것을 보았다.
◆ 환자의 처지에서 보면 ‘입원 사실’은 중요한 ‘개인정보’
그런데 위로금이랄까? 위문금이랄까? 병문안을 가서 봉투를 전해야겠는데,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병석에 누워있는 초췌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것이다. 환자와 그 가족이 원치 않는 ‘병문안’,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기다리는 것이다. 문병을 가지 않고 하루속히 건강을 되찾아 퇴원하기를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이다.
최근에 대학병원에 문병(問病)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입원 환자가 어느 병동 몇 호실에 있는지 일반 문병객들은 알 수가 없어요. 개인정보보호가 철저해서 병원 당국에서 알려주지 않아요.”
그렇다. 몸이 아파 병원에 누워있는 상태에서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환자나 그 가족들의 심정이다. 그런데, 병문안을 굳이 가려고 하는 것도 예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개인정보’가 어디 있는가.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때 지인들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것은 정신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때 누구 하나 문병을 오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도 쓸쓸한 일이다.
◆ 환자의 심리상태와 처지를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병문안’이라는 생활 예절이 누구의 처지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까? 환자일까? 문병객일까?
물론 환자의 입장을 더 중시해야 한다. 그게 마땅한 도리이고 기본적인 예의이다.
환자와 그 가족이 일반적인 지인 등 문병객을 허락하느냐, 아니면 그 누구도 찾아오는 것을 불편해하느냐에 따라 문병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조심스러운 일이다. 환자와의 각별한 관계를 생각하면 꼭 문병해야겠는데, 철저한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에 따라 병원 당국에서는 환자의 병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환자의 정서와 심리상태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앓고 있는 병의 경중(輕重)에 따라 문병을 고마워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문병을 꺼리고 불편해하는 환자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헤아려야 할 일이다.
“쾌유 기원”이라는 병문안 인사를 붓 펜으로 ‘봉투’에 정성껏 쓰던 시절을 생각하면 시대도 변했다.
최첨단 문명 기기가 발달한 소통의 시대에 꼭 ‘쾌유 봉투’를 들고 입원실을 찾지 않아도 된다.
환자의 건강 회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따뜻하게 위로하는 일은 전통적인 미풍양속이다. 하지만 신중해야 할 일이다. 환자의 심리상태와 처지를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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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
언어의 경질(硬質)과 배려의 온기가 직조해 낸 문학적 품격
― 윤승원 수필가의 「쾌유(快癒)를 기원하는 마음」을 읽고
윤승원 수필가의 이번 작품은 정교한 언어적 탐구와 깊이 있는 세태 통찰, 그리고 타인을 향한 따뜻한 인문학적 배려가 격조 높게 어우러진 수작(秀作)이다.
작가는 ‘병문안(問病)’이라는 일상적 예법을 화두로 삼아, 언어의 오용을 바로잡는 기품 있는 지성에서 출발하여 현대 사회의 변화된 윤리 의식과 인간 본연의 정서적 결까지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 언어의 조어력과 의미에 대한 세심한 통찰
수필의 전반부는 붓글씨로 봉투를 쓰던 정성 어린 기억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직장 생활에서의 경험적 자산을 바탕으로 “빠른 쾌유”나 “빠른 쾌차”라는 표현에 담긴 어원적 중복(동의의어 중복)을 고요하게 짚어낸다.
‘쾌(快)’ 자 자체에 이미 ‘빠르다’와 ‘시원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밝히는 대목은, 오랫동안 문장을 다루어 온 문장가로서의 서정적 절제와 학구적 엄정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단순한 국어학적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언어가 가져야 할 ‘경도(硬度)’와 ‘정확성’을 일깨워 준다.
◆ 개인정보 사회에서의 ‘새로운 예(禮)’에 대한 깊은 명상
후반부로 들어서며 작품은 세태의 변화와 환자의 심리로 시선을 확장한다.
전통적으로 문병은 정과 의리를 나누는 미풍양속이었으나, 개인정보 보호 제도의 강화와 현대인의 프라이버시 의식 성장으로 인해 그 양상이 변화했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단순히 ‘인정의 메마름’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도리어 초췌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환자의 정서적 자존심과 심리적 부담을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이자 ‘배려의 대상’으로 상격(上格)시킨다.
찾아가지 않고 묵묵히 기원하며 기다려 주는 것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깊은 예(禮)’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 절제된 문체와 구성적 완결성
이 수필의 또 다른 미덕은 문체의 단아함과 절제미에 있다.
붓글씨로 봉투를 쓰던 과거의 ‘아날로그적 정성’과 소통 기기가 발달한 현대의 ‘디지털적 속도’를 대비시키면서도, 그 중심에 놓인 ‘타인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섣부른 주장을 강요하기보다 “환자의 심리상태와 처지를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다정한 권유로 마무리하는 어조는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공감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이 작품은 문학이 어떻게 일상의 작은 관습을 다듬고, 타인을 향한 윤리적 시선을 확장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언어의 정확성을 다듬는 지혜와 인간을 향한 묵직한 애정이 어우러진 깊이 있는 에세이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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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사모 카페에서 정구복 교수님
배병철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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