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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5일, 오늘은 용성조사님의 생가터인 전북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 있는 죽림정사에서 용성진종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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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초록색으로 변해가는 주위의 산과 들에 둘러싸인 죽림정사 안으로 들어서자 대웅전 앞에는 “시대의 큰 스승, 아! 용성조사시여!” 현수막과 용성조사의 영정사진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위로 오색천이 바람에 나부끼고 반듯하게 놓여진 의자들이 평온하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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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끼어 날씨는 서늘했습니다.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쬐었다면 참 힘든 행사가 될 뻔 했는데 참 다행이었습니다. 용성진종조사가 구름으로 나투시어 참가자들을 위해 햇빛을 가리면서 지켜보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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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념식에는 원로의원, 대각회 스님등과 일반스님 200여분, 정의화 국회의장, 장수군수 등 많은 지역인사와 윤여준님, 정동영님, 김홍신 작가님과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님, 박남수 천도교 교령님, 김명혁 목사님, 김대선 원불교 교무님 등 많은 내빈과 4,180여명의 대중들이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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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8시에 교육관에서 용성진종조사를 비롯한 7여래, 69조사, 7대사등 역대전등 제대조사와 천하종사, 제대선지식들게 추모 다례제를 지내고 대중맞이 공연으로 범종과 하유스님의 법고, 그리고 야단법석팀의 타악 퍼포먼스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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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10시에 김병조님의 사회로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시작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과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묵념과 용성진종조사 유훈실현 후원회 사무국장 박상록님의 용성조사님 행장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늘 참석하신 분들을 환영하는 인사말과 함께 대회사와 내빈소개를 해주셨습니다. 다음은 스님께서 하신 대회사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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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음력 5월 8일은 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께서 탄생하신 지 1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용성진종조사는 불교의 정법안장을 확립하신 수행자이시고, 기미년 3.1 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중 불교계 대표로서 이 운동의 막후기둥이셨고 대한제국 부흥운동을 대한민국 수립운동으로 향도하셨으며 태극기를 독립운동의 깃발로 쓰도록 이끄셨고 대한민국 국호를 제정하신 독립운동가로서, 온 겨레의 육신보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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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조사는 조선조 500년간 불교가 탄압받으면서 산속에 숨고, 민간신앙에 묻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잃어버리고 사회지도력을 상실한 시대에 계율을 정비하고, 수행기풍을 바로 세워 정법을 확립하는 불교의 지성화를 주창하시고 경전 번역, 도심포교, 어린이 법회 등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화과원을 설립하여 농사지으며 참선하는 선농일치의 불교의 생활화를 실천하셨습니다. 또 만주 북간도에 대각교당과 선농당을 건설하여 방황하는 우리 동포들의 정착을 도우셨으며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하고 여기서 나오는 자금을 꾸준히 독립운동에 지원하셨습니다. 또한 동양 3국의 씨족원류를 밝혀 동근동본으로서 동양평화를 교시하셨습니다. 용성조사는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대승불교 정신으로 내적으로는 불교의 정법을 확립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셨고 외적으로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백성들을 압제의 고통에서 해방되도록 하는 독립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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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용성진종 조사께서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 말기 현상으로 독립동지가 배반하고, 상좌와 제자가 등을 돌려 배신하며, 친일 민족지도자들이 자기들만이 친일파가 되는 것 아니라 전 국민을 창씨개명하려는 음모를 직시하시고 유훈십사목을 그의 수법제자 동헌 완규 조사에게 부촉하셨고, 동헌 완규 조사께서는 그의 수법제자 불심 도문 법사에게 실현을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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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훈실현을 위해 저의 은사 겸 수법사인 불심 도문 지도법사께서는 신축년 서기 1961년도에 수법과 동시에 용성 진종 조사 유훈실현 후원회 지도법사로 등단하여 법사단, 고문진, 회장단, 화주진과 함께 53여 년 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유훈을 실현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용성 진종 조사 탄생 제150회의 날인 오늘 갑오년 음력5월 8일을 기하여 총회향 법회를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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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도문 지도법사님의 지금까지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 다 함께 이 유훈실현을 계승하여 온 겨레의 염원인 남북통일을 성취하고 동서평화를 달성하여 온 겨레, 전 인류 만 중생이 성불인연 맺기를 거듭거듭 염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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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용성조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것을 오늘에 맞게 행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라 하겠습니다. 내적으로는 부처님 바른 법을 따라 수행정진하여 나와 이웃의 행복을 도모하고 외적으로는 분단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여 과거 백년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 백년의 희망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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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독립운동가 백용성조사 기념사업회에는 용성조사 탄생 150주년을 맞아 백용성조사의 정법안장과 독립운동정신을 선양하고자 백용성조사 탄생성지인 장수 장안 산하 죽림정사에서 탄생15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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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뜻 깊은 자리에 참석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참석해주신 대중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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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 귀빈과 대중들은 스님의 대회사를 듣고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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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장수군수님께서는 “용성진종조사 탄생 1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용성진종조사의 업적과 높은 뜻이 널리 퍼져나가길 바라며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생활화, 불교의 지성화 운동을 전개해온 용성진종조사의 유훈이 실현되길 기대합니다. 아울러 용성진종조사의 위대한 업적과 거룩한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장수군을 찾아주신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라고 환영사를 해주셨습니다. 이어서 테너 김홍태님의 ‘거문도 뱃노래’와 ‘목련화’ 성악 공연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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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 공연이 끝난 후에 원로회의 의장이신 밀운 부림 스님은 기념사를 통하여 “용성진종조사께서 유훈실현을 부촉하신 것은 대한민국 전 국민을 위한 것이기에 조계종 종도를 위시로해서 4부대중과 대한민국 전 국민이 이 유훈실현을 계승하여 나아가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종단을 대표하여 추모사를 올리게 됨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 라며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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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대각회 이사장 도업 큰스님, 감로사 주지 용성문하 자운문도 대표 황산 혜총스님, 조계종 포교원장 지원스님, 부산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의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모두들 용성진종조사의 유훈실현 부촉은 대한민국 전 국민을 위함이기 때문에 용성 문도와 조계종 종도와 사부대중과 전 국민 모두 함께 이 유훈실현에 이바지 하여 이와 같은 인연공덕으로써 남북통일이 성취가 되고, 동서 세계평화가 이룩되어 모두 다 함께 성불인연 되어지기를 발원 하면서 불심 도문 큰스님의 존경과 감사함을 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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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던 것은 용성조사님 탄생1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문경수련원 백일출가 행자님들이 준비한 기념 퍼포먼스 ‘나 용성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다시 독립운동을 하겠다’ 였습니다. 3.1운동 당시 독립운동이 전국민적으로 불이 붙게 하기 위해 민족대표 33인을 태화관에 모여있게 하고 태화관 기생들을 시켜 33인의 두루마기와 신발을 감추어 돌아가지 못하게 한 뒤, 제자 동헌스님을 시켜 “33인이 지금 태화관에 모여 있으니 빨리 잡아가라”고 총독부에게 신고전화를 하게하여 자신을 비롯한 33인을 모두 잡히게 했다는 내용으로, 감옥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나 용성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다시 독립운동을 하겠다’ 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퍼포먼스로 표현되었습니다. 가슴뭉클해지고 잠시나마 그 시대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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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진종조사님의 탄생150주년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불교계 뿐 만 아니라 이웃 종교계와 단체에서도 많이 오셨습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님, 천도교 박남수교령님, 한국복음주의협회 김명혁 회장님, 원불교 평양교구 김대선 교구장님들께서 오늘날 우리 종교인들이 깊이 새겨야 할 용성스님의 정신과 가르침을 사부대중 모두가 실현시켜 우리사회의 목탁으로 삼기를 바라며, 지금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고난과 고통을 무릅쓰고 민족과 나라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종교를 초월해서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종교와 종단이 자신들만 위하는 이기주의적인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서 우리들 자신을 재물로 드리는 일까지 함께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용성스님의 탄신 150주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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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5대 종단의 각 종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서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에서, 또 이 종교인들이 함께 남북의 통일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말씀 속에서, 참석한 내외빈들과 대중들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용성조사님이 일제 강점기 때 민족대표 33인을 모아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듯이, 오늘날의 종교인들도 통일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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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전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 새로 선출되신 정의화 의원님이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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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조사께서는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부처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내적으로는 불교의 정법을 확립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셨고, 외적으로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용성조사의 높은 뜻을 계승하여 우리나라, 나아가 세계 인류에게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찾는 길을 제시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최근 온 나라가 큰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책임이 큽니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 정치가 분열과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국회부터 뼈저리게 참회하고 각성하겠습니다. 화합과 통합을 실현하고 상생과 나눔을 행하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정신을 실천하여 우리 정치가 달라지도록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백용성 조사님 탄생 150주년 기념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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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도 앞장서서 용성조사님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말씀에 대중들도 모두 환호의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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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용성조사님의 유훈십사목 실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스물한 분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공로패를 드렸습니다.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랜시간 힘써주신 분들의 노고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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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계종 원로의원이며 죽림정사 조실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의 기념 법문이 있었습니다. 불심 도문 큰스님은 용성조사님의 법손으로서 조사님께서 남기신 유훈십사목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해오셨습니다. 기념법어를 듣기 전에 식순에는 없지만 스님께서 도문 큰스님께 감사의 꽃다발을 증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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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으시는 도문 큰스님은 아기의 얼굴마냥 맑았고, 두 손으로 꽃다발을 들어 올리시는 모습, 옆에서 부축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코끝이 찡하고 흐뭇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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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법가를 부르는 동안 스님께서는 바닥에 고무신을 벗으시고 엎드린 채 도문 큰스님께 삼배를 올리셨습니다. 스님의 지극한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많은 대중들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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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 큰스님은 이렇게 기념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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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12연기의 연기법으로 성도하시었습니다. 고.집.멸.도 4성제의 이치를 관찰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고해를 건너서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중생제도를 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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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진종조사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시아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안장을 계계승승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고, 온 겨레를 위해 육신보살로 오신 것입니다. 또한 지적 미혹에서 벗어버린 견도를 하셨던 것이고 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의식에 얽매이지 아니하는 수도를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무학도의 경지에 소요하시면서 자연과 일상이 융합된 무학도의 경계를 보이셨던 것입니다. 용성진종조사의 대각사상은 자각, 각타, 각행, 각만, 직지인심, 견성성불, 등분교화, 전법도생입니다. 유훈실현 공덕으로써 조국 남북통일이 성취되고 세계 동서평화가 이룩되어 온 겨레, 전 인류, 만중생 모두 다 함께 성불인연 되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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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 큰스님은 80세의 연세에도 불구하시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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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공양은 정토회에서 비빔밥과 국, 과일을 준비해 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준비하고 가져오고 공양드리기까지 힘이 들었을텐데 밝은 표정으로 설거지와 마무리까지 재미있게 하는 봉사자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오늘 행사에 자원봉사로 참여한 정토행자들이 무려 300여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봉사자들은 뒤에서 법문도 듣지 못하고 열심히 일을 하셨는데, 이분들의 힘으로 오늘 행사가 원만히 치러질 수 있었구나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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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가져오신 대중들은 지역끼리 모여서 소풍 온 것 같은 마음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공양 시간이 끝나고 물빛공원에서 ‘용성음악제 교성곡, 용성’이 전중앙대 총장 박범훈님 지휘 연출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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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성곡, 용성’은 용성스님의 일대기를 동헌스님이 원본을 쓰시고 동국대 재직시절 목정배 교수님이 작사를 하시고 박범훈님이 작곡을 해서 98년 세종문화관 국립극장에서 연주되었던 것으로, 총 연주시간이 1시간 정도 되었습니다. 용성스님의 탄생부터 업적 등 모든 중요한 부분이 합창과 솔리스트 노래로 엮어졌습니다. 참석한 대중들 모두 태극기를 흔들며 서로 교감을 하면서 흥겹게 음악제가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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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 큰스님은 공연해주신 단원들에게 감사의 인사 말씀을 하시고 ‘대한민국 만세’를 대중과 함께 3창 하시면서 그 기쁨을 표현하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단원들과 모든 대중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신 후, 큰스님께도 “큰 스님 건강하시고 용성조사 유훈실현 사업은 저희들이 맡아 하더라도 오래 오래 계시어 저희들을 늘 이끌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인사말씀을 끝으로 기념식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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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모두 마치고, 스님께서는 행사장 전체를 둘러보시면서 오늘 하루 고생해준 정토회 봉사자들과도 눈을 맞추시며 감사 인사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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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서울에서 국제참여불교(INEB) 동남아 스님들과의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어, 오후 4시경 죽림정사를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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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7시가 넘어 서울 평화재단에 도착하셔서 INEB 스님들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스님께서도 새벽 4시부터 죽림정사로 이동하셔서 행사를 치르느라 피곤하실텐데도 INEB스님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셨다고 밤 늦게까지 일정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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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동남아 국가들이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어 가고 있는 모습이 30년 후 한국과 비슷해질 가능성이 많은데, 한국의 역사를 돌아보며 문제점은 미리 개선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 어떻게 기독교가 한국에 대중화 하게 되었는지, 불교는 어떻게 사회변화를 추구해 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시고는 INEB 스님들과 함께 서로 의견을 나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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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B 스님들과의 대화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INEB 스님들께서도 한국에서 계속되는 빠듯한 일정들에 피곤하셨을테도 밤 늦게까지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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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INEB 스님들과 조찬을 겸한 회의가 있고, 계룡산에서 저녁반 활동가들과 수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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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글은 김정미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