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전인 1984년 2월 중순으로 시계 바늘을 돌려 보았습니다.
금년 여름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큰 딸이 한 달 전에 태어났습니다. 사원 연수과정에 있었고 당시 신입사원 급여의 80%
인 28만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사립대학 등록금이 30만원 수준이었던 시절입니다.
신정동 단독주택에 2백만원 짜리 단칸 전세를 살고 있었고 세 평이 채 안되는 방에 비키니 옷장(비닐로 만든 조립식 옷
장), 앉은뱅이 책상이 있었고 책꽂이에는 몇 년 동안 모아 놓은 주간지로 가득채워져 있었습니다. 산모 및 어린아이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 외에는 몸 돌릴 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큰 아들 대학교육을 어렵게 시켜 동생들 뒷바라지를 일부하면서 집안 경제 문제 지원을 은근히 기대했던 어머니의 꿈
은 산산히 부서지고 아들이 처자식 먹여살리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그 해 여름에 부천의 13평 주공아파트에 현금 7백만원에 장기 융자 4백만원을 끼고 이사했는데 이후 처가에서 빌린 돈
및 융자금 상환, 월 5만원짜리 재형저축 등을 부담하고 살아가면서 아내는 몇 번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석달에 한 번
나오는 보너스가 있어야 수지가 맞는 초긴축 살림에 과도하게 지출하는 술값 때문입니다. 예상보다 월 2만원만 더 써도
살림에 적자가 났습니다.
대리 진급 후 급여인상, 재형저축 만기도래, 회사주식 판매 등을 통해 5년 정도 후에 비로소 망령처럼 따라다니던 돈 문
제에서 벗어나 숨을 쉬게 되었는데 상계동 주공아파트 21평에 입주하면서 처음으로 식탁, 냉장고, 진공소제기 등을 사
게되었고 아내는 세상을 얻은 것 처럼 기뻐했습니다.
종합상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룹 채용 원서에 1지망 회사부터 3지망 회사까지 전부 (주)선경으로 채웠고 어
떤 일을 할까 다소 우왕좌왕 하다가 경공업본부에 동료 7명과 함께 지원을 했는데 영업부서에서 6명 밖에 뽑지 않아 본
부 내 관리부서 배치를 받았습니다. 서운했지만 당시 영업부서에 뽑혀간 친구들의 우수성을 감안할 때 당연하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경공업본부 관리부 기획과 배치를 받자마자 저는 현실과 이상 속에서 많은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씩 영업부서 실적을 문의하여 UP-DATE하는 것이 일의 전부였고 입구에 자리가 있다보니 내방객 안내가 주요 업무(?)
였습니다. 한편, 선배사원 두 명과는 관계가 좋았으나 성격이 좀 괴팍한 부서장님과는 주파수가 맞지 않아 마음 고생이
좀 되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는 문제, 월급을 받기 부끄러운 업무 및 직장인으로서의 가치에 대한 회의, 인간관계 등의 문제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아내는 정 괴로우면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1984년에 겪었던 내적 갈등은 이
후 인생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지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당시에 제가 생각하던 것이 오늘날 현실에 맞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그때에도 살았
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한 두 가지 선배사원으로서 조언을 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우선 "가치"라는 단어를 평생 기억하고 살도록 권고합니다.
자신과 자신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치"라는 잣대로 재보고 그 내재 가치를 높이는 쪽으로 DRIVE하도록 권
장합니다. 노력을 하는 가운데 두 가지 성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우선 본인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 향상될 것이고 둘
째는 그와 같이 향상되어가는 가치관에 따라 부수적인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 예로 회사업무를 들 수 있습니다. 본인이 하는 업무가 본인의 발전과 회사의 발전, 그리고 사회의 발전에 어떤 가치
가 있는지 크고 작은 업무를 막론하고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빠르게 그러나 지속적으로 SCREENING을 해가면서 수행
방법을 바꾸어 갈 수가 있습니다.
신입사원 때에는 내용도 잘 모르는 가운데 선배사원들이 시키는 일을 하게되고 부서 여건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시간
적 여유가 좀 있는 일도 있고 아무 생각없이 바쁘게 움직여도 항상 일이 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가치 판단을 우선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입사를 하는 순간 우리는 "기업의 경제적 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하고 그 댓가로 개인의 경제 생활 영위에 필요한 급여
및 기타 패키지를 받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깊이 해본적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바뀔 수 없는 사실이
며 직장생활을 해나가면서 회사가 내게 어떻게 하든 내가 한 약속에 대한 책임이 희석되거나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약속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서 회사를 그만 둘 때 비로소 중단되는 것이며 직장을 다니는 한 개인 임의의 기준
에 의해 상계처리 되지 않습니다. 연봉을 마음에 차지 않게 받았다고 해서, 회사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
해주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상사가 쓸데 없이 괴롭히는 것 같아서 이것을 본인의 회사 가치 제고 책임 LEVEL과 마이
너스 상계 처리를 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더 어려운 점은, 자신의 업무와 관련하여 본인이 믿고 있는 기업가치 제고 방향과 동료, 상사, 조직이 내게 원하는(때로
는 강요하는) 방향이 다른 것 같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많은 유능한 인력들이 퇴사를 하거나 근무를 하면서
PERFORMANE LEVEL이 떨어지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바로 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에 대한 대부분의 해답은 자신의 가슴 속에 있기 때문에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최후의 선택
은 항상 본인이 해야한다는 것 입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견해가 다를 때 물론 해야 할 첫번째 일은 양쪽을 다시 한번 점
검해보는 일이고 그래도 차이가 있으면 자신의 생각을 알려야 하며 그 이후 어떤 길이든 선택을 해야 할 것 입니다. 양
쪽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주변(직장 내외)의 도움을 가능한한 많이 받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 프로농구 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마이클 조던의 뒤를 이을 선수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
가 자주 지목됩니다. 그가 작년에 동 팀의 또 다른 스타 플레이어 샤킬 오닐과 갈등을 일으키고 명코치 필 잭슨으로부
터 많은 질책을 받으면서 불만은 쌓이고 팀성적은 떨어졌습니다. 팀 우승이라는 절대 목표에 대한 책임 수행 및 개인의
성공에도 장애가 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키 위해 코비 브라이언트가 찾은 사람은 다름이 아닌 필 잭슨 산하에서 6번
NBA 챔피언에 오른 마이클 조던이었고 조던은 "JUST DO WHATEVER PHIL SAYS, THEN EVERYTHING WILL BE
ALRIGHT."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 이후 이야기는 말씀드리나마나가 되겠습니다. 마이클 조던이라는 훌륭한 조언자
가 있었지만 결국 그 말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는 코비의 선택이었습니다.
인간사회는 불완전한 사회이며 회사 내의 모든 움직임이 기업 가치 극대화 하는 쪽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 등 현실과 타협토록 유인하는 많은 요인들이 생겨 본인이 설정한 가치관을 갈
고 닦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질 것 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신입 사원 때 너무 일찍 현실과 타
협하는 습관을 길러서는 안 될 것 입니다.
현실타협을 뒤로 미루고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정신적 고통은 물론 때로는 물질적 고통이 뒤따를 것 입니다. 본인의 캐
리어를 뒤바꿀 수도 있는 리스크에도 노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역경에서 오는 임팩트가 작은 신입사원 시
절에 이것을 극복하는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이후 더욱 기회는 줄어들 것이며 본인이 원하는 인생과 다른 삶을 사는 본
인을 미워하거나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살아야 할 것 입니다.
이와같은 제 말씀은 현실을 무시하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현실은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해야 하며 "WHAT
IS"가 "WHAT SHOULD BE"와 다르다면 이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어떻게 개선을 해나아가야 할지 고민을 계속해야 할
것 입니다.
저보다 최소한 18년은 LONGER-TERM VISION을 갖고 있을 신입사원께서 단기적인 어려움에 꿈을 쉽게 꺽지 않기를
바라며 어떤 일을 하더라도(하다못해 선배의 복사 심부름을 하더라도) "기업 가치 극대화" 및 "개인 발전" 이라는 두 가
지 가운데 본인이 가치판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적어도 후자는 항상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직장생활을 하
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두번째로 건전하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도록 권장합니다. 85년 부서를 바꾼 후 말 그대로 일에 파뭍혀서 몇 년을 지냈
는데 지금 기억을 더듬어도 그 기간동안에 회사 일 한 것 밖에는 도무지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고 성
취감을 맛보는 것보다 더 이상 재미있는 것도 없었으니 일이 취미요 취미가 일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보통사람들은 이와같은 "혹사 수준의 일하는 재미"를 어떠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40년동안 NON-STOP
으로 유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관계에 따른 갈등, 개인의 사생활 변화, 가치관 변화, 건강 악화, 경제환경의 변화, 스
트레스, OVER-PACE 등의 장애요인이 발생하게되고 본인이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해 회의가 생기고 근로의욕이 저하
되는 상황이 항상 생기게 됩니다.
건전한 취미 생활은 크고 작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재충전을 시켜주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합니다. 한편, 일이 절대
적 취미인 특이체질의 경우도 건전한 여타 취미생활은 인생을 더욱 윤택하게 살고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하는데 도움
을 줄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장애가 왔을 때 일시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다른 OPTION이 없는 인생은 그 슬럼프 극복이 상대적으
로 무척 힘들 것 입니다. 취미생활 가운데에서도 그런 상황이 생기는데 골프가 유일한 취미인 경우 골프칠 환경이 안되
면 무엇을 해야하나 걱정됩니다. 경영이나 사업에 관련된 책을 보다가 지치면 소설책을 읽어야 하는데 소설에 취미가
없다면 무엇을 읽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취미생활은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하며 지적 수준을 높여주며 대화를 풍요롭게 하고 대인관계를 넓혀줄 것 입
니다. 직장생활을 효과적으로 하고 개인의 종합경쟁력을 자연스럽게 제고시켜 줄 것 입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일을 좀 더 해야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없다고 누
가 주장한다면 저는 그것을 한마디로 BULL-SHITTING 이라고 부릅니다. 의지와 취미만 있으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취
미생활을 만들어 낼수가 있으며 탐닉하지만 않는다면 본인의 업무 PERFORMANCE에 아무런 악영향을 끼치지 않습니
다. LONG-TERM으로는 분명 본인 및 조직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왕에 인연을 맺은 SK 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권장합니다. 작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어디 간들 이만
한 직장생활 못할까?"라는 촌스럽고 패배주의자적인 생각을 하기 전에 불과 몇 개월 전에 했던 내 최선의 선택(능력을
포함)이 그와같은 작은 어려움 때문에 바뀌어야 하나? 라는 생각을 먼저해보시고 그래도 아닌 것 같으면 그 때 결정해
도 늦지 않을 것 입니다.
항상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MEASURE하고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더 높은 가치가 있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는 인간,
그리고 이에 장애가 생기면 일시적 희생이 따르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을 기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FUN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행복감은 뇌와 신경체계 간의 교류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
는 무엇엔가 재미를 느낄 때 가장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