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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 원문보기 글쓴이: 김영대(창덕궁토요1반 )
조선 초기는
청화백자(靑華白磁) 등에서 원·명대(元明代) 북종화가의 필법에 못지 않게 격조 있는 회화적 장식무늬가 그려지며,
나아가서는 명대 후기부터 성행한 남송화풍의 영향으로 수묵화를 주로 한 운치 있는 문인화풍의 의장무늬도
성행하게 되었다.
조선 중엽에는
산수·인물뿐 아니라 영모(翎毛)·화조(花鳥)·묵매(墨梅)·묵죽·포도 등의 그림 소재가 무늬의장으로 성행하며
조선 후기에는
산수무늬를 중심으로 장생(長生)무늬, 어개(魚介)무늬, 용과 범, 그리고 여러 가지 길상도(吉祥圖)로
당시의 자연관과 행복관을 반영한 해학적인 생활문양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문양은
삼국시대 이래 대체로 불교적 요소가 많지만, 그와 더불어 유교·도교적인 요소도 포용하고 있다.
공예미술에 특징적으로 쓰인 길상적인 문양은 다복(多福)·다수(多壽) 및 다남(多男)·다손(多孫) 등
자손 번영을 상징하는 소재가 많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문양요소는
선사시대부터 믿어 왔던 천명관(天命觀) 속에서 팔괘(八卦)와 태극(太極), 일월상(日月象) 등의 상징적 도상을 나타내어 길리(吉利)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또 불교적인 길상무늬인 칠보(七寶)·팔보(八寶)의 문양은 여의(如意)·길경(吉慶)·장명(長命)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도가에서도 팔선(八仙)의 상징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도자기와 금공의장 및 건축의장에 많이 나타나는 여의두문(如意頭文)·연판문(蓮瓣文)·보상화문 등의 화문형식은
고대의 운문(雲文)과 연화문 등에서 발전시킨 도안문양으로서 다양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如意頭文은 심(心)자의 고자(古字)에서 상징화되어 운문· 여의두문· 보상화문, 그리고 변천하면서 평안(平安)·
여의(如意)·화합(和合)·길경(吉慶)·길리(吉利)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가구나 기물의 장식무늬로 가장 많이 쓰였고 유·불·선의 복합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또 민간생활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월과 오악(五嶽)이 상징화된 문양도 회화적인 산수풍경무늬로 그려져,
장생신앙(長生信仰)을 내포한 이른바 십장생무늬로 나타나 여러 종교적 요소를 함축한 길리적인 것이 되어
건축·가구·복식 및 잡기물(雜器物)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건축에 나타나는 창호(窓戶)의 창살무늬와 단청의 금문의장(錦文意匠) 등에 주로 보이는
만자(卍字)무늬· 아자(亞字)무늬· 정자(井字)무늬·
전자(田字)무늬· 귀갑무늬· 사슬[鎖]무늬· 금강저(金剛杵)무늬와
각종 추상적인 무늬도 거의 장생신앙과 벽사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문양요소는 아주 오랜 전통적 생활관념 속에서 복합적인 신앙요소를 지니면서
그 의장과 시문기법에 따라 다양하게 변천, 발전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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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와 고려시대의 문양특성
조선시대
거칠고 투박한 문양 /분청사기,백자 항아리
조선시대에는 청화백자와.공예품에 많이 사용된 문양의 소재이다
고려시대
정교한 문양 /불교적인 문양, 신선ㆍ봉황 등 /순청자 / 고려시대에는 상감청자에 운학무늬가 많이 시문됨
와당의 부착 방향이 고려시대까지는 기와에서 직각으로 꺽이는데 비하여
조선시대에는 둔각을 이루며, 시대가 하강할수록 각도가 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흉배 문양 : 조선시대 왕, 왕세자, 문무백관의 관복의 가슴과 등에 장식한 표장(表章)
황제용 금수오조원용보흉배
황제용 금수오조원용보흉배 (1896년경)
문관용 운학흉배
문관용 운학흉배
무관용 호표흉배
무관용 은수웅비흉배
흉배 문양으로 살펴 보자면
공작 - 공작은 열대에서 사는 새로 날개의 색이 오색이므로 오행설(五行說)과 관련시켜 현세에 있는 조류 중
길조 라고 생각했다.이를 흉배에 수 놓으면 성군을 모시는 충신이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호문 - 호랑이의 위엄과 용력, 날카로운 발톱 등을 사물(邪物)을 물리치고 주술적 힘이 있는 것이라 믿어
호랑이를 산신으로 여겼음
운학 - 장생물의 한가지로 학은 일명 일품조(一品鳥)라 하여 새 중에서 으뜸으로 천년을 산다는 장생물이다.
운학은 신선계(神仙界)를 뜻하고 예로부터 학은 양(陽)을 나타내어 화정(火精)의 상징 동물이다.
따라서 고제(古制)에 문관(文官)의 관복에서 품계(品階)를 나타내는 흉배(胸背)에 수(繡)를 놓았다.
연화문 - 연꽃 무늬. 인도에서 불교 문화가 전래될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고려 때부터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적(赤), 청(靑), 백(白), 황(黃) 색의 연화가 있으며 진흙 속에 살면서도 항상 깨끗하게 자라고 잎에
먼지가 묻지 않아 속세를 떠난 청결함을 상징한다. 새, 나비, 물, 구름과 함께 표현됨
공작 - 공작흉배는 단종(端宗) 2년에 12월에 만든 문관(文官) 1품의 것으로, 공작새 2마리가 중앙에 수놓아 있으며
나머지 공간에 모란꽃 무늬와 물결, 산, 파도 무늬 등을 배치했다.
기린 - 기린흉배는 대군(大君 : 왕의 첫번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 사용했던 흉배이다. 기린은 살아 있는 풀을 밟지 않
고 생물을 먹지 않는다는 상상의 동물로, 사슴의 몸, 소의 꼬리, 이리의 이마, 말의 다리가 달렸으며, 머리에
뿔 하나가 있다.
거북 - 거북흉배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입었던 자적단령(紫赤團領)에 붙였던 것으로, 흥선대원군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고 추측한다. 거북은 고대 중국에서는 용, 기린, 봉황과 함께 4령(四靈)의 하나로 귀하게 여겼
으며, 장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거북을 중심으로 좌우로 구름 무늬가 있고, 밑에는 산, 물결, 불로초 등을 수놓
았다.
웅비 - 웅비흉배는 무관(武官) 3품의 흉배이며, 가운데에 곰 2마리를 수놓고 주변에 구름 모양을 수놓았다.
운안 - 구름과 기러기의 모양이 그려진 운안흉배는 문관 2품의 흉배. 위쪽에는 구름이 떠있고, 왼쪽의 모란꽃과 오른
쪽의 연꽃 사이에 기러기 2마리가 위아래로 날고 있다.
단학 - 한마리의 학이 그려져 있는 단학흉배는 3품 이하의 계급을 가진 신하인 당하관(堂下官)이 사용했다. 가운데에
불로초(不老草)를 입에 물고 날개를 활짝 편 학이 있고, 위에는 구름이, 아래에는 산, 파도, 물결, 바위 등이
수놓아져 있다. 학은 깨끗한 선비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장수(長壽)를 의미한다.
쌍학 - 2마리의 학이 그려진 쌍학흉배는 3품 이상의 계급을 가진 신하인 당상관(堂上官)이 사용했던 흉배로, 기품있고
늠름한 2마리의 학과 산, 물결, 파도, 불로초 등의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다.
단호 - 단호흉배는 쌍호흉배와 같이 신하들의 예복에 달았던 흉배이다. 중앙에 흰 호랑이가 당당하게 앉아 있으며, 위
와 좌우에는 구름이, 아래에는 산, 구름, 물결 등이 수놓아져 있다.
쌍호 - 쌍호흉배는 당상관의 예복에 달았던 흉배로, 중앙에 2마리의 호랑이와 주변에 구름, 물결 등의 모양이 수놓아
져 있다. 옛날부터 호랑이가 악귀를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으며, 용, 봉황, 거북, 기린과 함께 오령(五
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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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귀족들에 의하여 지배되어온 왕가로서 고려조와 다른 점은 이 배불숭유사상(排不崇儒思想)은 소수의 선비계급들만에 의하여 그 문화가 유지 발전되었기 때문에 시민계급의 형식이나 그 문화적인 발생을 보지 못하고 오직 문인들의 기호에 부응하는 공예적인 예술로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시대에 주로 사용되어온 문양은 건축에 있어서는 연화문이 퇴화하면면서 용문, 봉황문, 귀면문, 초화문, 당초문 등이 사용되었으며 조선조 문양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은 도기예술(陶器藝術)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조선조 도자기는
청화백자(靑華白磁)로 대표되는데
순수 감상용으로 애용되면서부터 그 예술성을 높이기 위하여 회화적인 장식이 가하여진 까닭이다.
따라서 도안적인 장식문양 이외에 순수회화가 문양화로서 시문되기 때문에 다양한 성격을 띄게 된다.
당시대의 회화가 문인, 사대부의 취미, 기호에 따라 소재가 선택되기 때문에 문양화의 내용도 여기에 일치하여
산수도, 화훼절지(花卉折枝), 사군자, 동물 및 십장생 등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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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草라는 뜻은 당풍 즉, 당나라 이국풍의 덩굴이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식물의 실제적 생태를 본떠서 일정한 형식으로 도안화시킨 장식 무늬의 유형이다.
문양을 보아하니 고려불화에 자주 등장하는 문양입니다.
문양의 형태는 연꽃과 당초문양으로 구성되있고요.
연꽃
연꽃은 연화 또는 하화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부용,수화,부거라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연꽃은 옛날부터 생명의 창조, 번영의 상징으로 애호되었는데 그이유는 연꽃 씨앗의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천년 이상 땅에 묻혀 있던 연꽃 씨앗을 근래에 발아시킨 예가 있을 정도로 연꽃의 생명력은 매우 강하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청결,순결의 상징물로 여겼는데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오니(汚泥)에 물들지 않는 속성에 기인하고 있다. 연꽃의 이런 속성을 불교의 교리와 초탈, 보리,정화등 관념의 상징으로 간주 하였다.
인동
인동초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등지의 산악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겨우살이 덩굴 식물이다.
이 덩굴은 겨울을 견뎌낼 뿐만 아니라 덩굴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뻗어 나가기 때문에 연면의 상징성을 획득하였다.
인동이 문양으로서 우리나라에 처음 나타난 시기는 불교 전래를 즈음한 시기로 보고 있다.
당초
당나라 풍의 덩굴 무늬라는 뜻이다.
당초 문양은 고대 이집트에서 발행하여 그리스에서 완성되었으며 북아프리카,시리아,메소포타미아,서아시아, 페르시아 등의 제국과인도, 중국과 한국,일본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 당초 문양도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과 더불어 동방에 전래되어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에 보상당초문으로서 성립을 보게 되었고 다시 중국에 전래되어 불교 문화의 융성, 완성된 장식 문양으로 발전하였다.
곧이어 삼국시대를 즈음한 시기에 한반도에 전래되어 고분 벽화나 불교 미술에서 다채로운 양상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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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戶
한옥의 매력 포인트 제대로 볼 수 있는 곳
집을 사람이라고 한다면 얼굴이 되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전통 한옥이라면 '창호', 그러니까 '문'이 바로 사람의 얼굴 같은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엇비슷해보이는 한옥들의 분위기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으로 창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흔히 문이라고 말해도 되는 창호는 '窓 + 戶'가 되어 나온 말입니다.
창(窓)은 빛과 바람이 들어오라고 만드는 통로입니다.
호(戶)는 방과 방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이 두가지 기능을 합한 창호는 사람이 드나들 때는 문이 되고 가만 있을 때는 통풍과 채광을 하는 창이 됩니다.
이 창호를 온갖 다양한 무늬로 만드는 것이 우리 한옥의 특징입니다.
중국과 일본과 비교해봐도 전혀 그 디자인 감각이 달라 우리 한옥만의 표정을 만들어냅니다.
좌우로 밀어서 닫기도 하지만 여름에는 동시에 위로 열어 올려놓기도 하고, 모양과 기능도 다양한 우리 창호입니다.
사실 한옥 구경하기는 무척 힘듭니다.
누구나 한옥에 관심을 갖지만 막상 그 겉모습만 볼 수 있을뿐 그 내부는 들어갈 만한 곳이 없으니까요.
최근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문을 연 `청원산방'(02-715-3302)은 누구나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만든 한옥입니다.
이 청원산방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것이 바로 창호입니다.
한국 전통건축에서도 창호는 건축물을 구성하는 필수요소로서 당대의 주거환경과 생활방식,
문화적 배경, 자연법칙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발달해 왔다.
일례로 들어열개분합문을 들 수 있는데,
뚜렷한 사계절 기후와 대가족제도의 생활 양식에 맞게 공간 활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추운 겨울 방 안 공기의 손실을 최대한 막으면서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눈곱재기창이나 필요에 따라
부위별로 다른 두께의 창호지를 발라 채광을 조절하는 불발기창은 과학성과 예술성 두 가지 모두를 담고 있는
우수한 우리 전통문화이다.
고궁이나 고찰 외에서는 전통창호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최근 전통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통창호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 아파트나 빌라에서도 전통창호를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卍’ 자나 ‘亞’ 자 같은 기하학적 패턴이 반복되는 전통창호와 현대식 공간은 은근히 잘 어우러져
정갈하고 단아한 멋을 자아낸다.
창호뿐 아니라 문살 찻상이나 탁자, 병풍 같은 가구를 한쪽에 놓아도 그윽한 기품이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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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창호에는 예부터 한민족의 자랑거리로 여겨지는 춘양목을 주로 사용하는데,
송진 함유량이 적당하여 조밀하고 단단하며 잘 썩지 않아 색이 곱고 아름답다.
더욱이 시간이 지날수록 솔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와 사람의 몸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매력과 장점 때문에 전통창호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청원산방은 서울 가회동 동사무소 맞은편 재동초등학교 옆 골목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윗 사진 왼쪽이 재동 초등학교 담장입니다. 이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오른쪽 사진의 청원산방이 나옵니다.
안국역 2번출구에서 북으로 도보로 5분 ~ 7분 거리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한옥보다 훨씬 화려한 느낌입니다. 일반 가정집이었다면 좀더 차분하게 했겠지만,
이 집은 창호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온갖 다양한 창호들로 꾸몄기에 당연한 노릇이라 하겠습니다.
능가산 대웅보전 꽃살창호 (해바라기꽃 문양)
능가산 내소사 대웅보전 꽃살창호 (모란꽃 문양)
능가산 내소사 대웅보전 꽃살창호 (국화문양)
능가산 내소사 대웅보전 꽃살창호 (분타라/芬陀羅 문양)
능가산 내소사 대웅보전 꽃살창호 (굴마라/屈摩羅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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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일대 문양
문화재청이 까다로운 고증을 거쳤다며 지난 2009년 공개한 현판과 지금 걸린 현판을 비교해봤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건 단청입니다.
2009년 현판의 단청이 노란색 위주로 칠해진데 비해 지금 단청은 녹색이 많아 뚜렷이 차이가 납니다.
2009년 현판에 있던 단청안 꽃 무늬도 지금 현판에서는 사라졌습니다.
취재결과 지난 2009년 현판 단청은 화학 안료로 칠했다가 그 후 천연 안료로 칠을 다시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복원 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판을 복원했다며 국민들에게 공개한 겁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1년 봄, 기와 제작 석 달 만에 돌연 제작 중단을 지시했습니다.
62년 숭례문 보수 공사때 올렸던 기와를 그대로 생산해달라고 주문했는데 이 기와가 일본식이라는 것을 뒤늦게 안 겁니다.
그런데도 문화재청은 생산했던 기와 3천 5백 장 가운데 절반만 폐기하고 나머지는 용마루에 사용했습니다.
결국 지붕은 전통기와, 용마루는 일본 기와로 복원된 겁니다.
문화재청은 감사원 감사가 진행중이어서 공식입장을 내놓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하경입니다.2013.11.25
스페인 문양
유적지의 웅장하고 섬세한 문양
거리를 걷다가 무심코 어디에나 있는 소박한 문양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촘촘하게 반복되는 문양 속에서 오히려 삶의 여유를 느끼게한다
스페인등 유럽서 발견되는 삼태극 문양
아람브라 궁전 문양
궁전의 화려한 내부장식들은 유수프 1세(1354 죽음) 때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데,
1492년 무어인들이 축출된 뒤 대부분의 내부장식이 없어졌으며 가구들은 파괴되거나 철거되었다.
왕과 후궁들이 거주했던 '사자 궁전'
아벤세라헤스가의 방
아름다운 문양의 '두 자매의 방'
아라야네스 중정
아벤세라헤스의 방, 종유석 모양을 형상화 한듯..
아벤세라헤스 : 그라나다왕국의 유력한 귀족 가문
왕국말기의 정쟁때 모반을 의심받아 가문의 우두머리인 남자들이 모두 처형당했다.
살해현장이 궁전 안이었다하며 지금도 아벤세라헤스의 방으로 남아 있다
레이스 같은 아름다운 선들의 모습과 기하학적 무늬가 인상적이다
아람브라 궁전에는 어빙이 머물며 집필하던 방,
이름하여 어빙의 방이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건너편으로 알바이신 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알바이신 지구는 옛날 아랍인들의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꼬불꼬불 골목길과 하얀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왕의 집무실 근처 복도는 대부분 호화 찬란한 이슬람 문양으로 장식
무어인들이 만든 전형적인 아라베스크 양식의 기둥들
대부분의 방 입구는 이렇게 장식되어 있고
복도는 이렇게 화려한 기둥들로 만들어져 있으며 복도벽에는 화려한 이슬람 문양까지
천정의 환기시설 및 간접적 햇빛이 들어오도록 설계
창문을 통해서 본 '그라나다' 시가지
코르도바 성당
자련을 이용한 가우디의 구엘공원
가우디의 성갸족성당
당
모로코 문양
즐거운 스페인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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