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이나 되면 그마나 좋을 텐데 세상의 모든 흐름이 편지 않다
나라도 반쪽인데 반쪽도 안되는 것같고 인간도 반쪽인데 반쪽은
커녕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느낌이다. 이 어설픔과 모자람이 극치를
이루는 것 같아 어지럽다. 교회도 반쪽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반쪽도
못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반쪽도 안되고 있다. 동계올림픽도
반쪽이 될까 마음 조리고 안타깝다.
반쪽이란 절반의 유효를 말한다. 절반의 긍정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농사를 짓고 추수할 때 반타작만 되어도 다행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 백번 양보하고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반쪽, 반타작만
기대하기로 하자. 문제는 반타작도 안되고 반쪽도 안되니 걱정이다.
나라의 지도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 그리고 성공과 출세의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반쪽도 안되고 있다.
오늘 새벽에 반쪽도 못되는 목사, 박종근은 반성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반쪽도 못되는 목사다. 그래서 다시 저 밑바닥부터 훓어
보기 시작했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이것이 오늘 새벽의 기도
였다. 모든 것 중심에 "나"가 들어가 있다. 오늘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나때문에 나는 반쪽도 못된 것이다. 목사가 반쪽도 못되니 성도들이
무엇을 배웠겠는가?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몸둘바를 모르겠다.
최근 들어 회개의 메시지를 많이 전했다. 회개없는 한국교회를 나
스스로 꼬집었다. 물론 나도 그 속에 들어있다. 어찌 내가 그 상황을
비켜나갈 수 있을까? 나를 몰아내는 거룩한 작업이 진행중이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고 육신적인
생각때문에 하나님의 고유사역이 실행되지 않는 현실을 보았기에
나는 나 스스로를 내려놓고 질책하고 다시는 다시는 어설푼 반쪽도
못되는 그런 자리에 머물지 않기를 기도하고 기도했다.
나(목사)와 성도들이 촉각을 세우고 긴장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흥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 개인의 생각도 중요하고 우리 공동체 전체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상위층의 기대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기대와 헌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하심앞에
무릎꿇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얼마나 위대
한가를 우리가 보아야 한다. 내 힘은 반쪽이다. 내 실력도 내 경험도
반쪽일 뿐이다. 때로는 내가 죽도록 충성을 했음에도 반쪽일수 있다.
반쪽에서 벗어나자. 충성과 헌신과 희생의 반쪽에서 탈피하자.
우리가 전심으로 산 제사를 드리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오직 주님을 보자. 십자가의 주님을 보고 그분으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의 단비를 맞자. 흠뻑 맞자. 그리고 다시 부르셨던 자리로 가자
거기, 갈릴리 호수에서 역사의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의 사랑을 다시
경험하자.
반쪽에게 베푸실 하나님의 은혜를 강하고 격하게 기다리고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