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앞길을 가로 막는다. 눈보라는 거세게 몰아치면서도 오가는 사람들의 호흡이나 숨결에 스며들어 그들의 걸음을 숨차게만 한다. 한길 쪽으론 눈길이 수없이 이어지고 포장도로는 벌써 살얼음이 서려 사람들은 미끄러질세라 난간에 기대어 조심조심 길을 훑어보고 있었다. 플랫폼 기둥에 꽂혀있던 광고지는 눈에 젖어있어 그 무게로라도 한 푼여치를 받으려는지 노인들은 누가 가져가지 전에 먼저 자신의 구루마에 실고 간다. 눈길 속에서 빌빌대는 사람, 횃불에 둘러 앉아 제 몸보단 눈을 녹이는 사람들이 밤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이봐요 김씨 오늘은 어디서 추릴려고요?”
영화는 같이 불을 쬐던 김씨에게 말했다.
“ 그야 될 대로 되지 않겠어 우리네는 언제 시와 때를 알고 살아가던가
그냥 가다가 추우면 움크리고 그러다 안되겄다 싶으면 배째라 하면 되겄지 ”
영화는 이제 갗 50대에 다다른 어느 평범한 중년 남성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에게 가장 큰 결핍은 그는 추울 때 횃불을 벗삼아야하고, 배고플 땐 주린 배를 추리기 위해 누구에게든 구걸해야하고, 잠을 자야할 땐 언제나 역 대합실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노숙자였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삶이 노숙자의 삶은 아니었다.
“ 이렇게 눈이 내릴 때는 우리네는 하늘을 원망하여야 하지요
차라리 먼저 알려주고 내리면 모를까 안그런가요? 하늘도 뭐 하자는 심보인지
난 우습기만 하구려 ”
그는 우스운 것보다는 이런 추위에서 떨어야 하는 지금 상황이 매우 난처하고 궁핍하기만 했다.
“ 역전에는 지금 자리가 다 찼다지?!
그 놈들도 지들이 세 놓은 자리도 아니건만, 나 참, 저그들끼리 내 땅! 네 땅!
하지 머여! 또 그 뿐이더건가 배째라는 식으로 누워버리면 잽싸게 이불을 뺏더니
지들끼리 패를 몰고 왔던지, 발로 이리 까고 저리 까고 하지머여 나 참, 이젠 그 지들도 내 땅, 저 땅하는 시대가 왔구만 ”
김씨는 어제 있었던 얘기를 영화에게 털어놓는다. 대합실엔 자정이 다 될 무렵이면 하나하나 자기들 구역을 정해놔야 한다. 조금이라도 출입구에서 떨어진 곳이 바람이 덜 불고 매표소 안에선 잘 수 없도록 자정정각에 철창문이 내려지기 때문에 되도록 일찍 떠돌고 먼저 와서 이부자리를 펴놓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때론 그들끼리 패를 몰고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역 안은 출구와 입구가 마주 보게 되있어 누구든 지나가면 그곳은 세계 가면(假面) 전람회의 한 구역을 지나가듯 그들이 펴놓은 침낭과 이불, 혹은 신문지와 먹다 만 컵라면들의 전시회를 보는 듯한 것이다.
“ 김씨 오늘 배식은 언제쯤 하려는가요
전번에는 점퍼를 하나씩 주던데 어찌나 빠른 놈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는지
배 주린 개때들도 아니고, 걸귀 들린 놈들도 아니고 내 것도 못 건졌지머요 ”
“ 작년 연말에는 여기저기 무슨 단체, 머 어쩌구 저쩌구 정나누고, 사랑 베풀자 하 더니만 올해는 영 입맛이 달짝지근하네
배식도 순서를 잘 서야 되지, 나중 탄놈은 건더기는 커녕 국물에 금강산 이만봉 도 구경하기전에 벌써 쓰러지겠지 머야 ”
김씨는 담배 한 대를 피워 물면서 말했다. 영화에게도 담배 한 대를 건내지만, 영화의 속은 담배를 태우기에 개운치 않았다. 벌써 2주째 제때 밥을 챙겨 먹어 본 적이 없으니깐 항상 어중간한 시간에 밥을 먹고 하루에 한 끼를 먹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네 끼를 연달아 먹곤 했으니깐
역 창문 너머로는 눈보라가 하나, 둘 그들의 졸린 눈망울처럼 스쳐 지나가고 영화는 가방에서 묶어 두었던 담요를 풀더니 어깨에 덮으면서 말한다.
“ 남쪽 나라는 여전히 따뜻하다지요? ”
영화는 예전부터 김씨에게 꼭 한 번 이 말을 해봐야지 하면서도 실상 그 얘기가 허구성 같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 그것도 옛날 얘기지 내 이 생활에 10년을 몸담아 왔지만, 그 전에 내 아는 사람 말로는 거지들도 계절에 따라 옮겨 다니고도 했었다지 머, 또 어디가 잘 살고 못 살면 그곳에 조금이라도 빌붙어볼까 생각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젠 어딜 가나 다 똑같은 김치에 보리밥뿐이니깐 ”
“ 그래도 따뜻하다지요? ”
졸린 눈에 한 점의 눈발이 스쳐가듯 영화는 되물었다.
“ 따뜻하기야 머 이불을 뒤집어쓰면 더 따뜻할 거고, 다 사람 사는 데라 별반 다를 것 없다. 돈 없으면 어딜 댕기나 다 허둥대거나 춥기는 마찬가지 일거니깐 ”
역 시계가 자정을 훨씬 넘었다. 다음날도 추리기 위해서는 충분히 체력도 비축해 둬야 될 듯싶은데 역 조명은 반 쯤 꺼져서 희끄무레하기만 하고 영화는 왠지 잠이 오지 않는다. 담요 한 장! 추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생활에 뛰어 든지 채 5년이 안 되었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는 때가 많았다. 잠이 안 올 때는 그저 거리를 쏘아 다니거나 누군가 구겨놓은 신문지를 읽으면서 지루함을 달래곤 하지만, 오늘은 그러기에도 날씨는 너무 춥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적만이 그에게 그만 잠에 빠져들라고 속삭일 뿐이었다.
거리에는 밤새 눈 내린 흔적으로 자욱하다. 무엇보다 얼어붙은 땅, 눈을 쓸지 않은 채 방치하다보니 눈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굳어버리고 온실마저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는 거리를 얼리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오늘도 횃불 앞에서 손을 녹이고 있었다. 그의 유일한 동반자인듯한 김씨와 함께
“ 오늘은 제법 날씨가 쌀쌀하구만 ”
김씨는 두 손을 기도하듯 비비며 말한다.
“ 하기사 눈 온 뒤 아침은 말할 것도 없잖아요
그저 이런 아침엔 순대국 한 그릇 먹으면 속이 좋아야 겉도 좋다고 다들 그러지 않나요? ”
영화는 자신의 호주머니를 뒤져본다.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달랑 구겨진 천원짜리 2장과 백원짜리 3개, 십원짜리 2개 그것들은 그에게 “오늘의 삶을 책임져 드리지요” 말하듯 번득이다가 다시 그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 어디 갈데는 정해두었나요 ”
영화는 얼어붙은 콧물이라도 녹이려는 듯 횃불에 얼굴을 좀더 바싹 기대어 말한다.
“ 나야 머 갈데 있나
그저 저기 비둘기처럼 어디로든 가게 되겠지, 그보다 지금 여기도 머 괜찮은데 “ 역 앞에는 콜로세움의 광장만은 못해도 언제나 비둘기 떼들이 모여들어 멀찌감치 보면 횃불에 불을 쬐는 노숙자와 비둘기 밖에 안 보인다.
“ 전에 보던 안씨 할매는 어떻게 된거요?
“ 그 할매 말이지? 지금은 병원에 치료중이라던데, 하긴 그 할매도 가족이 있어야지 가진 게 없으면 건강이라도 좋을 것이지, 무슨 병으로 쓰러졌다고는 하는데 그 할매가 구루마를 지고 오다 쓰러졌을 때 한 6시간동안은 거리에 누워있었다지
누가 봤으면 술에 취해 밖에서 자거나 아님 정말 노숙자라 여기서도 잘 수 있구나
사람들은 생각했겄지
“ 아직도 입원중인거요?
영화는 안씨 할머니와 별로 친하진 않았다. 그래도 궁금했다. 예전에 자신에게 쓸어주던 국 한 그릇이 아직 밤하늘에 별처럼 그의 마음에 남아떠도는 까닭이랄까
“ 입원중이다마다, 의식은 없고 말도 못하니, 머 병원비를 청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산송장인마냥 내쫓을 수도 없고 그냥 내비둔채로 겨우 수발 들어줄 간호사만 붙 여놨다지. 매일 여기저기 피시방, 호프집, 아님 머 아파트, 상가를 돌아다니며 캔 이나 박스를 실고 다니며 했는데... 그 굽어진 허리가 얼마나 버틸지 난 충분히 짐작 했어 그래도 남들보다 일찍 인나서 누가 먼저 가져갈까봐서 할매에게 이 세 상의 욕심은 그것뿐이 없었는데. 그래서 항상 말을 뿌리고 다녔지... 자기가 새벽에 캔이나 박스를 가져갈 테니 제발 남에게만 주지 말고 잘 간직해달라고 ”
바람이 차갑게 그들의 목덜미를 스쳤다. 그 지나간 자리엔 칼에 베인 듯 선명한 바람자국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영화는 문득 안씨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도 자신이 할머니 문병을 간 들 무얼 할 수 있으랴? 그는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보호자 취급하면 순대국 한 그릇도 못 대접할 궁핍한 사정에 오히려 설상가상 할 뿐이니깐......
그날도 어제 밤 눈발을 소화하지 못한 듯 역하게 부는 바람이 역 광장을 맴돌면서
갈피를 못 잡으며 불고 있다. 영화는 김씨와 늘 붙어 다니기를 1년, 그의 과거를 묻거나 앞으로의 계획등을 물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김씨가 자신에게 그러지 않듯 똑같은 감정이었으리라... 한 때 부두에서 어업에 종사하며 그럭저럭 살 만 했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운도 적당히 따라 주었지만,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잃는 것은 결국엔 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그는 이제서야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 김형 머 갈데 있는거요 ? ”
오늘만 두 번째, 이제껏 수백 번은 족히 될 질문이다.
“ ........ ”
김씨의 대답이 이러했던 적도 한 두 번은 아니었다.
그의 입술이 떨리는 것과 함께
오늘도 눈이 내릴 것처럼 하늘이 금방 시야에 잠겨간다. 비둘기들은 이쯤 어디를 향해 날개 짓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자고 눈 뜨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할 뿐 왜냐건 그들을 깨우고 재우는 것은 하늘과 바람의 몫이므로
2.
" 아저씨 여기서 이렇게 죽치고 있으면 어떡해요 ”
30대는 족히 된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말한다.
“ 손님들이 곧 들어올 거란 말이에요. 아저씨 때문에 손님들 다 도망가면
책일질 거에요? 이미지가 중요하단 말이에요 ”
그 젊은이는 연신 험난한 말투를 당장 여기서 꺼지라는 식으로 쏘아 붙는다.
그는 백화점 무슨무슨 판매 매니저라는 명찰을 왼쪽 자켓 위에 붙이고는 영화의 옷깃을 잡아매고는 백화점 정문 앞에서 힘껏 밖으로 밀쳐낸다. 영화 자신도 왜 여기서 하룻밤을 묵었는지 다만 아연실색할 뿐이다. 아마 어제밤 누군가 남기고 간 술을 주워 먹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만 취해, 이곳까지 끌려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 이미지가 중요하다고? ’
영화는 속으로 생각한다. 영화가 속으로 내뱉은 그 한 문장에는 분노도 섞여있었고 자신의 처량함을 그는 실컷 비웃었을 것이다! 생각하지만, 오랫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고 빨지도 안으면서 이 복장으로 이곳저곳 허우적댄 것은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 젊은 녀석은 이왕 말할 것이면 곱게 말할 것이지 ‘ 나도 너보다 연배는 배로 먹었어, 네 부모 앞에서도 너는 그런 식으로 말하냐 ’ 이 말을 못 해준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 김형은 요 몇일 동안 뵈지 않는단 말이야 ’
김씨가 그의 앞에서 종적을 감춘 지는 몇 주쯤이 되었다. 그는 그가 없어진 뒤의 나날을 일일이 새보진 않았다. 어차피 다음날 일어나면 똑같은 하루고 또 후회할 것도 없는 어제였으니깐...
‘ 이 추위에 어디서 동사나 했을지 몰라
요즘 역에서 얼어 죽는 이들을 보긴 했는데 하긴, 그들 중에는 질병을 앓고 있거나, 원래 죽을 몸도 있었지만 말야 ’
대합실에선 다음 차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방송으로 울린다. 그런들 그에겐 아무 목적이 없는 음성이었다. 그는 출구 앞에서 연신 쪼그리며 돈 통이 채워지길 기다리거나 동전 소리가 땡그랑 들렸다 싶으면 그의 피는 살보다 먼저 알고 잽싸게 외투 안으로 집어넣곤 했다. 그는 힘도 말발도 없었기 때문에 구유의 예수처럼 감싸주는 이도 없이 누워 있으면 알아서 돈통을 채워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 이렇게 불쌍한 표정을 짓는데도 다들 그냥 지나치는구먼 ’
시내의 싸이렌과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계속 머리 위를 스쳐가고 있다. 길을 헤매는 사람들, 시비조로 말하는 사람들, 계단을 내리고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그의 주름살처럼 폈다 지었다 했다. 많은 인파 속에서 영화는 스스로 정착할 점을 내린 것이었다. 그곳에는 동냥그릇 하나와 머리 언저리로 난간에 내려앉은 비둘기 한 마리 그게 전부였지만
‘ 너에게도 동냥 그릇이 있다면
누군가 마음을 다해서라도 너의 동냥 그릇을 채워줄 수 있을까
차라리 해질녘 함께 가자꾸나 ’
영화가 머리맡에 앉은 비둘기에 손을 다가가려 하자 비둘기는 서슴없이 날아가 버렸다. 비둘기가 떠난 자리에는 그의 희빛 머리카락만 황혼과 함께 물들어 가고 있었고
계속되는 추위로 이젠 옷을 겹겹으로 껴입어도 추었다. 그보다 이젠 입을 수 있는 여벌도 부족한 상태였다.
‘ 장갑이 필요해
아주 두꺼운 것으로 말이지 이왕 솜털이 부섬부섬 나있는 것으로 하면
더 좋을 것 같애 비싼 건 아니래도 좋아... 내 손만 가릴 수 있다면 ’
그의 손으로 추위로 많은 부분이 부릅떠 있었다.
‘ 김씨의 행방을 알 수 없으니 나로서도 답답해 미치겠군 ’
아마 어딘가 죽어있을지도 몰라?! 요즘은 누군가 죽어 나자빠져 있어도
그냥 모른 채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하도 많으니깐...
어딘가 죽어 쓰러져 있는 그를 분명 본 사람이 있어. 아니, 아직 죽지 않고
의식이 남아있는데 뒤늦게 병원으로 데려가고선 그를 죽게 내버려 뒀는지도 몰라
그는 여기 아니고선, 어디든 발을 못 붙이는 성격이니깐. 맞아! 그는 그런 사나이였어!
올림픽대로 다리 밑으로 비둘기들이 날아간다. 허공에 떠있는 다리 밑에는 어쩌면
비둘기들이 둥지를 치고,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들의 울음만 있을지도 모른다. 차들은 질주하고, 그 옆에는 비둘기들이 전신주에 오르듯 하나, 둘 서있고 그 밑 벤치에 앉아 있는 영화의 몸은 여느때보다 한기가 가득했다. 백화점을 코너에 두고 그 뒤편을 돌아 후문 쪽으로 내려오면은 비둘기들의 광장이 있었지만 비둘기 모인 숫자만큼 이글거리고 헤진 옷을 입은 노숙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 저 사람은 못 보던 얼굴인데 ’
영화는 낯선 얼굴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이정도 생활을 해왔으니, 이 주변에 거지들 낯이나 행동, 생김새쯤은 자신은 다 간파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 중에 누구는 어떤 질병을 앓고 있고, 어떤 생활을 해오던 사람이고, 가족과 친지들이 있어도 이 생활, 이 상태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억울하게 이곳까지 온 사람들도 하나하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낯선 얼굴이 나타나게 되면, 처음엔 옷차림이 허름하다! 여기 사람은 아니겠지! 생각하면서도 그의 안색이라던지 숨소리만 봐서라도 곳 이곳에 머물게 될 사람이구나 하고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 횃불 앞에서 우린 손을 문지르며 진실을 말하곤 하지
오늘은 벌이가 어떻다는지등, 아님 월척을 낚았다!
더러 구걸하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등
그때는 거지들만의 세상을 우린 횃불 앞에 펼쳐놓곤 하지 ’
영화는 자신이 여기서 보낸 일들을 누군가에게라도 한 편의 소설처럼 비록 감성적인 부분은 없어도 유쾌하게 말 할 자신은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옆에 앉아 얘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이가 없었던 것이지,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들 들어주려고 하지 않고 이리저리 피하기만 할 뿐이지
“ 담배 한 대만 줄 수 있소? ”
영화는 역 후문 앞에서 내려오는 이에게 담배를 구걸하는 중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이 달라고 했으면 담배가 다 떨어져 빌려준 것이나 그냥 준 것으로 치겠지만 영화한테는 이것도 구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보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할까 남자는 영화에게 담배 한 가치를 내어주고 영화가 불이 없다는 듯 계속 담배만 불고 허우적대는 시늉을 하자 불을 붙여준다.
“ 고맙소. 복 받을거유 ”
영화는 담배를 피어보려고 얘를 쓰지만, 생각보다 잘 빨리지 않는다. 요즘들어 속이 쓰린 대다가 따뜻한 곳에 있어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몸이 이상해졌다. 몸이 나른한 듯 하면서도 심장이 얼어붙어 피가 차가워져 온 살결로 몸에 한기가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 될대로 되라지... 고기국을 안 먹어서 몸이 차가워 진거겠지
이럴 때 그냥 소주 몇 잔 들이키면 다시 몸이 따뜻해지는 법이니깐... ’
비둘기 몇 마리가 흩어진 과자 조각을 주워 먹더니,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자 다시 어디론가 날아갔다가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허기와 웃음을 쪼아 먹듯 다시 모여든다.
“ 오늘밤은 더 추울 것 만 같은데 ”
영화는 혼잣말로 말했다.
“ 이젠 역도 추워서 잘 수 있어야지”
그의 옆에 있던 한 노인이 말했다.
영화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일이 너무나 힘겨워졌다. 더군다나, 요즘들어 아무리 침낭과 옷을 겹겹이 입어도 어디서 구멍이 새어드는지 아님, 자신의 가슴 속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는지 배고픈 것보다 오히려 추위를 버티는 것이 삶의 시련처럼 힘겨워진 것이었다. 그의 입술이 부릅떠가듯 그의 몸도 점점 추위로 갈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 시기가 계속된 나머지 영화는
‘ 저기 비둘기 둥지 속에라도 몸을 숨기면 안될까?
짚이든 어디서든 주워온 전선이나, 쓰레기등으로 지어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렇게 살아있잖아.. 어떻게든 추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살아가는데 춥고 배고프지만 않으면 모든 되지 않겠어? ’
역 출구를 따라 무수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날따라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진다는 기상속보가 있어 사람들은 저마다 조끼에다 코트를 겹겹이 껴있고, 목도리를 코밑까지 두르고 나오고 있다. 영화는 대합실 벽에 기대고 앉아 바라보지만 자신은 저 품속에 들어가기엔 너무 처량한 듯 그저 고개만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3.
" 여러분 조만간 새해가 다가옵니다. 내 이웃과 친구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어 주세요. 여기 이 자선냄비는 여러분의 사랑과 정성으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
이맘때면 구세군의 종소리가 번잡한 거리를 매우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종소리 앞에만 서면 웃음을 띠고 모금하는 가 하면은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숱하게 있는 것이었다. 영화는 왠지 이들이 자신의 구역을 침입하고 자신의 수익을 때어가는 것 같아서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어차피 그 모금이 자신에게 다시 돌아 올 것이란 생각은 안하면서도 그저 당장 배를 채울 수 있고 소주 한 병을 살 수 있는 돈 만 있으면 그것이 전부다 생각하는 것이다.
“ 오늘은 저것들 때문에 다 장사하기 글러 먹었네그려 ”
예전 젊었을 때도 그는 모금이란 것에 큰 관여를 해본 적이 없다. 매일 같이 갓 잡아온 배에서 생선을 옮겨다가 실고 정오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그 힘겨운 일과 속에서 자신은 모금에 일가견이 없다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아니, 그보다 스스로 모금 할 수 있는 형편도 못 되었다.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그에 대한 죄를 지어서 하늘이 내게 다신 일을 하지 못할 몸을 주신거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젠 자신이 적선을 받아야 될 입장에 처해 살아온 것이었다.
“ 적선도 벌이가 되어야지, 벌이도 안 되는데 무슨 놈의 적선
제 몸 먹고 살리기도 바쁜데, 다른 놈 못 먹고 살던 제 몸이 신경이라도 썼겠어?! ”
영화는 갑자기 속이 답답해졌다. 가슴 속에 분이 싹 가시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울컹거리면서도, 저녁이라도 잘 못 먹은 듯 배속이 빳빳이 조여 왔지만 이 번 것은 이제껏 과는 다른 통증이었다.
“ 종소리도 머든 다 듣기 싫다 ”
추위에 약한 몸을 감당하면서도 영화의 발걸음은 광장을 향하고 있었다. 안에 있으면 답답한 것도 있었지만 바람이라도 쐬면 조금 낫을 듯 싶어 무작정 화로 같은 몸을 이끌고 나온 것이다.
밖은 눈이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영화는 광장 앞 벤치에 앉아 모이를 쪼아 드는 비둘기를 바라본다.
‘ 저 비둘기들은 적선도 필요 없고
그저 자유롭게 날지 않는가
비둘기들을 위해 간밤에 보리나 좁쌀을 뿌려놓곤 하는 걸 봤는데
그럼 다음날 비둘기들은 여기서 아침을 해장하곤하지 ’
영화는 몸이 갈수록 추워졌다. 너무 추워서 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가슴이 팍팍 조여 왔다. 옷자락이 꾸겨질 정도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핏기가 선 고드름처럼 그의 이마까지 가득 찼다. 무어든 잡을 수만 있는 것이 있었다면 그는 두껍게 뭉친 눈덩이라도 움켜쥐었을 것이다.
‘ 가, 가슴이 너무 아파 ’
영화는 갑자기 발의 힘이 풀리고 가슴팍이 안에서 창으로 찌르듯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처럼 아픈 적은 처음이다. 자신의 병마를 오래되록 간직한 것이 지금에야 후회되었지만, 별 수가 있던 들 치료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그럴만한 형편도 못 되었을 것이다.
‘ 다리도 결리는데 어쩌지? ’
다리의 힘이 완전히 풀어졌다. 이젠 술에 취한 듯 한기가 그의 몸에서 가지를 뻗어 번져가는 것 같았다. 오후에 마신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통 때보다 몸의 균형도 많이 기울어져 있었고 의식도 희미해져있었으니깐. 그는 무언가를 잡고 기대고 싶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잡은 것은 손에 쥔 눈송이 뿐......
비둘기들은 눈에 섞인 제 모이를 쪼아 먹느라 바쁘다. 눈에 섞여 희미한 달빛에 비치는 것이 눈을 쪼아 드는 것인지 흩뿌린 좁쌀을 먹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 두 마리는 횃불 근처로 날아가고 또 다른 비둘기는 제 배를 채우고선 다리 밑으로 제 집을 찾아간다. 영화의 전신만 단 한 곳에 고정된 채 그의 몸의 윤곽만 눈길이 되어 선하게 틔어 나와 있었다.
첫댓글 노숙자의 애환과 비극을 그렸구나. 묘사도 뛰어나고 기본 줄거리도 나쁘지 않구나. 다만 아주 눈물을 쏙 빼게 슬프거나 감동할만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더욱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