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에는 실제 정황을 소재로 하여 사실감을 더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주인공 이몽룡이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였다는 점이다.
1999년 KBS 〈역사 스페셜〉 제작 팀은 여러 경로의 취재를 통하여 이몽룡이 실존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몽룡은 실존 인물이었다'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1607년(선조 41)부터 1611년(광해군 3)까지 남원 부사를 지낸 성안의의 아들 성이성과 이몽룡의 행적이 거의 유사함을 밝혀 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성이성은 13세부터 17세까지 아버지의 임지인 남원에 머물렀으며, 33세 때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과거 급제 후 사헌부·홍문관·사간원 등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네 차례나 암행어사의 임무를 수행했는데, 인조 25년의 암행 업무를 기록한 『암행일지』도 전한다. 이처럼 성이성의 행적에서 소설 속 이몽룡과 흡사한 면을 상당 부분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 남원 지도『춘향전』의 배경인 광한루와 오작교가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은 조선 후기에 이 작품이 크게 유행한 사실을 보여 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변 사또의 생일잔치에 걸인 차림으로 참석한 이몽룡이 남긴 시 또한 성이성의 문집에서 비슷한 글귀를 찾을 수 있어 이몽룡이 실존 인물이라는 정황에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백성들의 고통을 집약적으로 표현하여 『춘향전』의 구성을 보다 극적으로 연출한 아래의 시를 보자.
금동이의 잘 빚은 술은 많은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을 짠 것이라
촛불의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 원성 높구나
이몽룡이 지었다는 이 시가 성이성이 호남 열두 고을 수령의 잔치에서 읊었던 시와 거의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시는 원래 중국에서 유포되었는데, 성이성의 스승 조경남(趙慶男)이 임진왜란 때의 전투 상황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난중잡록』(亂中雜錄)에도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성이성 또한 스승의 영향을 받아 이 시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춘향전』의 주제 의식을 선명히 보여 주는 시가 성이성의 행적을 기록한 문집에 나타난다는 점은 무척이나 주목된다. 현재도 성씨 문중에서는 이몽룡의 모델이 성이성이라는 이야기가 대대로 전해 오고 있는데,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은 기생과의 사랑에 빠진 양반 자제의 이름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이성이 이몽룡의 모델일 가능성을 보여 주는 마지막 단서는 춘향의 성이 성씨라는 점이다. '성이성'임을 짐작할 수 있는 '성몽룡'보다는 차라리 춘향에게 그 성을 주어 '성춘향'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계서당경북 봉화에 위치한 창녕 성씨 마을의 종택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성이성이 1613년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 김성철
첫댓글 머쪄유~~~굿
여기 살던 이도령이 워째 남원 사는 춘향이를 만났을까?
@발길따라(지경광) 13살때 남원부사발령받은 아버지따라가서 17실까지 살고......
32세에 과거합격하여 암행어사로 전국을 다니다가 45세에 남원에 다시 가서 ......
@발길따라(지경광) 인조5년에 과거를 봐서 33명중 11등을 한 ........성이성이 실존인물이랍니다.
@에덴의 동쪽 (조석행) 해박한 조소장,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