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이향숙
유난히 더운 여름이다. 태양도 화가 난 듯, 온 힘을 다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희붐한 새벽, 동산을 내려와 아파트에 들어서니 밝은 빛이 앞을 비추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무궁화였다. 붉은색, 보라색, 흰색의 무궁화가 단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어린나무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다니 정말 대견했다.
이들이 자라나면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워질지 상상해보았다. 지금은 작은 꽃들이지만, 몇 년 후 이곳은 무궁화가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으로 변할 것이다. 이 꽃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매일 지켜볼 수 있다면, 힘든 여름도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이 불볕더위 속에서 나도 저 무궁화처럼 맑은 향기로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무궁화는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우물가에도 무궁화가 있었다. 아버지가 학생 때 심은 것이라 하셨다. 이맘때 보라색 꽃이 가득 피면 아버지는 흐뭇하게 바라보곤 하셨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나무는 어김없이 꽃을 피워 우리를 맞이했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학생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면 신사참배를 강요당하곤 했다. 그때 아버지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절을 반대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 하라 하면 뒤로 하고, 그 때문에 선생님께 야단도 많이 맞으셨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민족정신이 강했던 아버지가 무궁화꽃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내가 느끼는 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바라보았던 그 꽃이 가진 의미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무궁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며 조용히 아침을 여는 꽃이었다. 끈질긴 생명력과 자손의 번영을 상징한다. 자세히 보면 다른 식물과는 다른 점이 있다. 가지가 나올 때는 세. 네 가지씩 한 번에 나온다. 마치 자손을 번식하듯 여러 형제를 탄생시킨다. 아파트 단지의 무궁화나무도 누군가의 손길로 심어졌을 것이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해본다.
아버지가 무궁화를 심을 때 가졌던 마음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무궁화꽃이 오늘따라 특별히 내 마음을 감동하게 만든다. 하얀 꽃잎이 햇살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반짝였고, 그 잔잔한 향기가 새벽 공기와 어우러져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오늘이 광복절이었다.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유공자들에 대한 방송이 나오고 있다. 화면 속 연사는 공군 장교였다. 그는 미국에서 자랐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국가유공자의 가족을 극진히 예우하며, 후손들도 큰 자긍심을 품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도 한국에 와서 공군에 지원했다고 했다. 장교로 근무하면서 부대원 중 한 명이 국가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오히려 그 후손이라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해 놀랐다. 그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 공부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고 틀어놓았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국가유공자 후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유공자를 찾아 국가가 후원하도록 돕는 일을 해왔다. 갖은 어려움을 견디며 싸워온 그들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도와야 하는 책임이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아들딸들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국내뿐만 아니라 그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상해 임시정부를 돕는 독립운동을 했다.
동양의 가난하고 작은 나라 세계인의 마음속에 우리나라는 없었다. 그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모든 굴욕을 감내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러움을 몰랐고, 꿈이 있었기에 좌절할 수도 없었다. 이런 선조들이 있었기에 광복할 수 있었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역사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후손으로서 그분들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오늘도 무궁화꽃이 피어난 정원을 찾았다. 햇살이 서서히 퍼져 나가는 시간, 새벽 공기 속에서 무궁화의 은은한 향기가 유난히 달콤하게 느껴졌다. 무궁화 꽃잎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꽃이 품고 있는 역사와 의미,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아버지 세대의 고난을 다시금 떠올렸다. 어린 시절 겪었던 일제의 압박과 그 속에서 품었던 민족정신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마주 앉아 학창 시절에 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께서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시절 지역 학생회장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꼭꼭 숨겨온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신사참배의 굴욕과 학생으로서 느꼈던 감정들을 듣고 나니 많은 생각에 잠긴다.
비로소 아버지가 느꼈던 감정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아버지는 단순히 한 소년이 아니었다.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결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우리는 모두 그들에게 갚아야 할 빚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궁화꽃 앞에 섰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광복절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매년 우리가 각성하고 되새겨야 할 날이었다. 아름답게 피어난 저 꽃들이 말없이 용기를 주고 있었다. 무궁화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이 꽃처럼 꿋꿋하게 서 있을 것을 다짐했다. 우리의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이 땅에서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