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4년 7월 22일 월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목백일홍 꽃그늘에서 보낸 한철
고재종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노래한 시인은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고 적었네
오늘 나는 목 백일홍 꽃그늘에서
석 달 열흘은 사랑하리라고 적어도
나의 큰 죄과는 어쩔 수 없네 늘 삶의 바깥에
숨은 음모가 있는 거라고 핑계 댔으니
불행은 내가 창조한 신이어서
저 황홀한 아편 송이송이 같은 색들
아편 맛 같은 색정에 저항하지 못하는
삼복염천의 호사를 어찌하랴
회의하다니 몽상하다니 고통은 여기 있고
우울이라니 동경이라니 죽음은 내가 원했다
새 애인을 만나 전 남자의 아이를 지우러 가는
여자가 걷는 길처럼
내가 걷는 길은 언제나 나의 형벌이었으니
삼복염천 개는 제발 목 달지 말고 피비린내는
참수의 무리가 닥치기 전에
온통 색뿐이어서 색정뿐이어서
천지가 따로 없는 저 황홀로 터지며
석 달 열흘은 사랑하리라 해도 복날
개처럼 늘어진 환멸 때문에
마냥 긁어대는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가 나는
내 비명의 송이송이의 목백일홍만을 보네
♦ ㅡㅡㅡㅡㅡㅡ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백일동안 꽃이 피어있다고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실상은 먼저 핀 꽃이 지면 이어 새 봉오리를 피운다. 한 나무에 수많은 꽃이 피고 지면서 석 달 열흘이 환한 것이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관점에 따라 느낌과 해석은 달라진다.
시인은 ‘삼복염천의 호사’라고, 목백일홍꽃을 아편 송이송이 같은 황홀한 꽃이라고 한다. ‘저 황홀한 아편 송이송이 같은 색들 / 아편 맛 같은 색정에 저항하지 못하는’ 마음을 석 달 열흘은 사랑하리라 해도, 결국 어리석은 몽상임을 알기에, 오로지 피고 지는 꽃의 무심을 알기에, 자신의 내면을 관(觀)하는 것이리라.
회의와 몽상, 우울과 동경 따위에 따르는 갈등과 고통은 자신이 만든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망을 ‘삶의 바깥에 숨은 음모가 있는 거라고 핑계’를 대보지만, 그 시작과 끝은 자신의 몫이다. 모든 것은 자신이 지어 자신이 받는다.
시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거듭 꽃을 피우는 목백일홍처럼, 사람도 자신이 일으키는 갈등과 고통 속에 자신을 관(觀)하면서 사람으로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