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원과 곽종근
현대사를 역동적으로 움직여 인구에 회자 되는 말이 있다. 먼저 20세기의 개혁 개방이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선언했다, ‘낡은 체제를 고치고 세운다’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 최초의 민주화였다. ‘개방’ 또는 ‘투명성’의 글라스노스트는 정부의 정보 공개와 언론 통제 완화 정책이다. 이 글라스노스트는 전 세계의 호응을 받았으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자국의 경제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의 결정적인 이유이고 동유럽 민주화와 냉전 종식에 이바지했다.
또 한 세기의 중국을 살려냈다며 백년소평 칭송을 받은 덩샤오핑의 ‘검든 희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1979년의 ‘흑묘백묘’ 역시 개혁과 개방이다. 그렇게 낡은 것을 새롭게 하는 개혁은 용기, 규제를 푸는 개방은 결단이며 20세기를 바꾼 이념이다.
그렇게 20세기의 개혁과 개방은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용기와 결단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세기에 식민의 굴레를 벗고, 민족 특유의 용기와 결단으로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뤘으며, 케이팝으로 일컫는 한국문화까지 전 세계의 추세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12·3 비상계엄은 이 모든 걸 한 방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헌정사상 처음 현직 대통령으로 구속수감 된 윤석열의 변명 또한 가관이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한다고 강변하고도 ‘정적과 판사 등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 또 ‘의사 처단도 그냥 해본 말이었다’. 그저 ‘경고하고 호소하려 했다’. 나아가 ‘의원은 요원’이고, 싹 다 잡아들일 대상은 ‘간첩’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내란의 힘 정치인, 아스팔트 종교인, 성조기 극우들은 일심동체로 내란 대통령을 지지하고, 서부지법 침탈 폭도를 애국전사로 치켜세우며,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우긴다. 그러니까 계엄은 희생을 각오한 숭고한 용기이고, 국민을 위한 구국의 결단이라는 것이다.
더하여 ‘누가 다쳤느냐? 두 시간짜리 계엄이 어디 있느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무슨 지시를 하고 지시를 받았다고 하느냐? 두 눈 지그시 감으니 그저 호수 위에 뜬 달그림자를 쫓는 느낌이다’라고 한다. 잠시 화성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참으로 허접하다.
하지만 그 찌질한 억지 궤변에 세금 내는 국민의 속은 시커멓게 타고, 그 망상의 망언에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고 참담할 뿐이다. 그럼에도 쓰레기장의 장미꽃처럼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국가와 정의를 위해 진정한 용기와 결단을 내린 사람이 있다.
먼저 홍장원이다. 국정원 1차장이던 홍장원은 12·3에 대통령 윤석열로부터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와 방첩사령관 여상현에게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민의 힘당 대표 등 14~16명 체포명단을 받은 사실을 용기와 결단으로 증언했으나 해임되었다.
다음으로 곽종근이다. 특수전사령관 곽종근은 12·3에 국회 장악을 위해 출동한 내란 주요종사자로 이때 내란 수괴로부터 ‘의결 정족수가 아직 안 채워진 거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 국방부 장관 김용현으로부터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곳, 더불어민주당 당사, 여론조사꽃 등 6곳을 확보 봉쇄하라고 지시받은 것을 용기와 결단으로 증언했으며 현재 구속수감 중이다.
앞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망국의 계엄과 엉뚱하게도 달그림자나 쫓는 망상의 권력자가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망국의 계엄을 단죄할 수 있도록 용기와 결단을 내린 홍장원은 복직되고, 곽종근은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범위에서 선처됐으면 한다.
20세기의 개혁과 개방을 고르바초프와 덩샤오핑으로 대변한다면 21세기의 용기와 결단은 홍장원과 곽종근의 선택이기도 하다. 이 용기와 결단은 세상의 평화를 위한 우리 모두의 필요불가결한 가치이며 행동하는 양심이고 다음 세기에서도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