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내인생(人生)
의 길동무
어느새"을사년(乙巳年)"도
깊어가는
가을의
길목에서,
"나"를 둘러싼 "만남"들을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지금 나의
곁에는
누가 있는지,
내 맘 깊은곳에
누가 있는지,
눈감으면
떠오르는
얼굴들..
지난 세월에
나는 어떤
만남과"동행
(同行)"했나
돌아봅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름들..
궂은일을 만나
함께 걱정하며,
좋은일을 만나
기쁨을 서로
나누는사람들..
서로 아끼며
행복을
건네준 사람들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나의 삶이
더욱 복되고,
내인생은깊이를
더해 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난
생각해봅니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의미의 사람이었으며,
어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
"인생(人生)"의
삶에서
나도 남들에게
좋은 만남으로
남기 위해
더욱 노력 해야겠습니다.
처음처럼 오늘도
고귀한 분과 "인생의 길동무"가
되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귀한 만남의 "인연
(因緣)"을 준
당신을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오늘도
행복함 속에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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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 불성
(無汗不成)👍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땀 흘리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조선 숙종(肅宗)이 암행(暗行)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충청도 충주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다리 밑의 거적때기 움막에 사는 아버지와아들이 이(蝨)를 잡고 있었다.
아들이 “왕이 잡혔어요! 하고 말하자.
아버지가 “그래도 임금이 아니냐! 살려주어라”라고 말했다.
숙종(肅宗)은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에 관심이 쏠려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부실하지만 식사대접도 받았다.
숙종(肅宗)이 아버지의 언행(言行)과 인물(人物)을 살펴보니 여느 필부와 달리 비범해 보였다.
그래서 숙종(肅宗)은 그 아버지에게 과거시험을 보라고 권유했다.
그러자 그는 “무화불성(無貨不成)이라 부질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원래 이 말은 무한불성(無汗不成)으로 ‘땀이 없으면 이루지 못한다!’ 는 얘기다.
뜻인즉, 자신(自身)은 돈이 없기 때문에 과거(科擧)를 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부패(腐敗)하고 타락한 세태(世態)를 한탄한 것이다.
숙종은 내년 봄에 꼭 한양(漢陽)으로 올라와 과거를 보라고 신신당부하고 떠났다.
다음 해 그는 과거를 보러 한양에올라왔고 과거시험문제는
사자성서 "무한불성(無汗不成)"이아니라 "무화불성(無貨不成)"이었다.
그는 장원급제했다.
여기서 한 가지 얻은것은아무리 타락하고 부패(腐敗)한 세상이라도
제대로 된 임금을 만나면 그의운명(運命)이 바뀐다는 것이다.
‘땀 없이는 성공(成功)할 수 없다’는 무한불성은
최선을 다한 후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 무한불성(無汗不成)! 땀 없이 이루어지는것은 아무것도없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는가?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어난다.
비바람에 흔들리면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아픔을 겪은 후에야 아름다운 꽃이 피기 마련이다.
부(富)도 땀을 흘려야 이룰 수 있고 사랑도 땀을 흘려야 얻을수 있다.
명예나성공이라
는 것 역시 노력(努力)이란 땀을 흘려야 이룰수 있다.
뭉클하게 느낄 수있는짜릿함도
온몸이
후줄근해지도록 땀을 흘렸을때 더 달콤하지 않던가?
그리고 거저 좁듯이이루어지는 사랑보다는
애태우는구애(求愛) 끝에 이루어지는 사랑이 더 달콤하지 않은가?
태고(太古)부터 인간들이 할 수 있었던 모든 결과는
땀을 흘려야만 이룰 수 있었고 땀을 흘림으로 이루어졌다.
땀이 있어야만 결실을 얻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건만
우리 사회는 땀을 흘리지 않고 불로 소득으로 부를 누리는 사람이 많다.
땀을흘리지않고 명성(名聲)을 얻은 사람들 때문에 사회는 혼란스럽다.
세상의 순리(順理)와 이치를벗어났기 때문이다.
흔히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한다.
맞는 얘기다.
노력(努力)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은
결코 없다.
자신(自身)의
인생은 결국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眞理)다.
그런데도 가끔씩 이러한 진리를 망각(忘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수없이생각하고 잊어버려도 또다시끊임없이 기억해야만하는
진리(眞理)가 바로 이 ‘무한불성’의 정신이다.
특히 예체능
분야(分野)는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이룰수 없다.
스포츠나 예술, 공부, 기술 등 그 분야의 최고 선수들을 살펴봐라.
박지성과 손흥민,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어땠던가?
조선시대이건창
은 13세에,
정순교는
85세에 과거
(科擧)에 급제
(及第)했다.
이들이 땀 없이 그자리에우뚝서
있을 수
있겠는가?
결코 아니다.
남들이 하는 일은 간단하고 쉬워 보이지만
막상 내가 하려면 무한한 땀과노력이필요
(必要)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최선(最善)을 다해야 한다.
최선(最善)을 다하지 않고서는 무슨 일이든지 결코 이루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다.
포항교도소의 정문(正門)을 지나 면회실로 가다 보면
돌비석에 "무한불성(無汗不成)"이라고 새겨진 글귀가 있다.
‘땀을 흘리지 않으면 성취(成就)할 수 없다’ 는 이 사자성어는
쉽게 이루려고 하다가 교도소(矯導所)에 수감 된
죄수(罪囚)들만을 위하여 생겨난 글귀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이 글귀를 한번 되짚어 볼 만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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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4공화국
政治 秘史》
✡️하와이병상의
이승만대통령☆
JP는 1962년 11월 미국 중앙정보국
(CIA) 초청으로 미국 으로 가는 길에 하와이에 내려 태평양 사령관의안내로 일본으로부터 기습 (1941. 12. 7)을 받았던 현장을 둘러보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병 문안을 갔습니다.
이승만대통령은 호놀룰루 동쪽 산기슭에 있는 요양원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와이키키 해변이 멀리 내려다 보이는 핑크빛 3층 건물의 202호 였습니다.
병원장의 안내로 병실에 들어가니, <프란체스카>여사가 맞이해 주었습니다.
이승만대통령은 두팔을기부스
한째로 천정에 묶여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셨느냐고 물으니, 어제 "내가 왜 여기에 누어 있느냐, 나는 서울로 갈거야!" 라며 소리치다 침대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JP는 老대통령을 한참 지켜보다가 너무 안타까워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고 합니다.
JP는 호주머니에서 2만달러가 든 봉투를 꺼내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드리면서 "이 돈은 서울을 떠나올때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께서 이보다 열배를 드려도 모자랄텐데 부족하지만 <프란체스카> 여사님께 전해 드리라며 챙겨주신 것입니다."라고 박정희대통령의 안부를전했다고 합니다.
봉투를 받아든 <프란체스카> 여사는 목이 메인듯 말을 못하고 눈물만 주르르 흘리더니, 잠시 후 눈물을 닦고나서 박정희의장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당시2만달러는 한국의 지도자가 만질 수 있는 최고 액수 였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JP는 너무가슴이아파 외면하였다고 합니다.
일국의 영부인이셨던 할머니가 허름한 옷을 입고 부군의 간병을 하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웠던 것입니다.
연금도 없이 남의 나라의 신세를 지며 살아가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것인가?
분명히 조국이 있고 그 조국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쳤고 건국을 하였으며 6. 25전쟁에서 풍전등화 같은 나라를 지켜낸 영웅을간병하며 조국이 아닌 남의 나라의 병실에서눈치를 받아가며 사는 푸른 눈의 <프란체스카> 여사를 두고 떠나려니 너무 가슴이아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옆방에 나와서 박정희 의장에게 그런 사정을 말씀드리니, 모셔왔으면 좋겠다는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장을 만나 한국으로 모시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더니, 병원장은 "지금 상태로는 비행기를 탈수가 없고 가다가 운명하실 수 있다며 건강이 회복되면 그때 모셔가라고 만류하여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그 뜻을전하였는데 건강이 회복되지않아 살아서돌아오지 못하고 1965년 7월23일차거운 시신으로 고국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박정희 대통령은 이효상 국회의장과 조진만 대법원장, 정일권 국무총리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유해를 영접
하였습니다.
그당시 세간에서는 박정희대통령이 이승만대통령을 못들어오게 막았다는소문이 있었는데그것은 새빨간거짓말이
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좌파들이 박정희대통령을 음해하기 위해 퍼뜨린가짜뉴스였던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유해는 65년 7월 21일 밤 11:00시에 미군 수송기에 실려 호놀룰루 공항을 출발하여 23일 오후3시 김포
공항에 도착
하였습니다.
수송기 안에는 6.25 전쟁 때 가장 친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한국을 도왔던 <밴플리트> 장군이 항께 타고 왔습니다.
<밴플리트> 장군은플로리다 고향집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바로 하와이로 달려왔으며 유해운구를위해 미군 수송기를 협조해주는 등 여러가지를 도와준 은인입니다.
그리고 미공군 장병들은 이승만대통령의 운구를 맡아 수송기에 정중하게모시고 영결식 까지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외국 원수의 유해에 대한 예의도 깎듯하게했다는 미담이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에서 선진국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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