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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구 없이 발암물질 세척, 이주노동자의 충격적인 노동환경
살인적 단속과 강제추방, 인격모독 등 이주노동자가 한국땅에서 겪는 반인권적 실태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주노동자가 감내하고 있는 충격적인 노동환경도 폭로되고 있다.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를 악용하여 최소한의 보호구, 방호장치조차 갖추지 않은 채로 유해물질을 사용케 하고 위험작업을 시키는 초법적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주의 위법행위를 단속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는 마치 법의 적용 대상도 되지 않는 양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은 국내법이 보장하는 산업안전 상의 정당한 보호와 권리조차 전혀 누리지 못한 채로 그 생명과 건강을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세척액과 쓰러져 나가는 이주노동자
4월 초 사업장의 열악한 환경문제로 고통을 받고있는 필리핀 노동자 3명과 상담을 진행하며 이들이 일하는 사업장의 충격적인 작업 환경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이들이 일하는 회사는 김해에서 축산기자제를 제조하는 회사로 수많은 특허와 함께 미국에도 지사가 있을 정도로 성장한 기업이나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이들은 용접공으로 취업했으나 거의 모든 공정에 투입되어 시키는 대로 일을 했다. 특히 세척작업은 이주노동자들이 도맡아 하는데, 공정마다 나오는 스테인레스 제품을 코를 찌르는 용액으로 분진마스크 하나만 낀 채 세척하였다. 세척 때마다 이들은 극심한 두통과 현기증, 구역 증상, 가슴 통증, 심장박동 이상, 불면 등의 증상을 겪었으며 급기야 몸과 다리에 힘이 빠지기도 하고 사고능력이 매우 둔해지는 걸 느꼈다고 한다. 이들은 계속되는 통증으로 필리핀에 가져온 약을 복용하며 하루하루를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힘들게 버텨야 했다.
급기야 작업 중 질식하여 쓰러지는 노동자도 속출하였으나 사업주는 작업환경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산재사실을 은폐하였고 고통을 호소하며 작업환경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본국으로 추방하겠다는 각서까지 요구하였다.
세척 용액이 든 스틸 드럼통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는데, 어느 날 사장이 드럼통에 붙은 스티커를 몰래 떼서 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상담 첫 날, 사장이 쓰레기통에 버린 스티커와 세척액을 조금 덜어 가지고 와서 도대체 이 물질이 무엇인지 물어왔다. 스티커에는 ‘염화메틸렌‘이라고 적혀 있었다. 염화메틸렌(디클로로메탄)은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인체발암추정물질로 분류한 유해물질로 피부와 호흡으로 누출되며 오심, 두통, 사지의 둔화, 폐렴과 중추신경계 장해, 퇴행성 뇌질환과 간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관련 규정도 엄격하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온 세척액 샘플을 고신대학교 직업환경보건센터에서 분석한 결과 사염화탄소, 클로로포름, 디클로로에테인, 디클로로메탄, 노말헥산 등 10가지가 넘는 치명적인 독성물질과 발암물질들이 검출 되었다. 세척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유해한 화학물질을 섞은 화합물로 드러났고 결과적으로 순수한 디클로로메탄 보다 더욱 유해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엉터리 작업환경측정, 적발되어도 푼돈 과태료가 양산하는 사업주의 범죄행위
이 사업장은 작업환경측정에서도 전체 공정의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세척작업은 아예 누락되어 있었고, 때문에 세척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특수건강검진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공정조차 파악하지 않는 부실한 작업환경측정이었다. 작업환경측정대로라면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도 필요 없고, 물질에 대한 안전교육도, 보호구나 방호설비도 필요 없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법에 명시된 사항을 모조리 어기며 최저임금(실수령 임금이 약 115만원)으로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목숨을 쥐어 짜낼 수 있었던 건 단지 ‘악덕’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주노동자가 겪고 있는 참혹한 현실은 최근 몇 건의 진정 건과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조사, 처리결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발암물질인 6가크롬 용액으로 이주노동자에게 보호구도 없이 맨손으로 도금작업을 시킨 한 사업장의 실태를 접수받고서 관할지청이 한 일이란 사업주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고서는 1주가 지나서야 겨우 현장조사를 나와 사업주의 말만 듣고 가버린 일이었다. 사업주의 위법행위가 워낙 심한 나머지 도저히 감출 수가 없어 과태료가 부과되기는 했지만, 그 액수는 겨우 46만원이었다. 발암물질로 한 이주노동자의 건강을 농락한 결과가 환풍기 설치값도 안 되니, 이는 알아서 법 위반하라는 고용노동부의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이외에 역시 보호구도 없이 MEK, 톨루엔 같은 독성물질을 이용한 세척작업을 이주노동자에게 시킨 다른 사업장에 대한 고발도 겨우 8만원의 과태료로 끝이 났다. 이주노동자가 지금 겪고 있는 심각한 노동환경의 문제가 구조적인 이유이다.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쟁취를 위한 지역단체의 연대
이에 지난 5월 8일 부산울산경남의 지역 노동단체들이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침해라는 구조적 문제를 사회에 고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김해지역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대책모임”을 구성하였다. 대책모임은 해당사업장을 관할지청에 고발하고 일부는 근로감독관과 함께 현장조사에 참여하여 사업주의 위법사항들을 적발하였다. 또, 현장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사업장 앞에서 집회를 열어 노동부의 부실한 관리감독을 규탄하고 해당 사업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사업주 처벌, 유해물질 취급 노동자에 대한 조치, 부실한 측정기관에 대한 퇴출을 요구하였고 계속해서 이주노동자 고용사업장, 영세 사업장에 대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들을 펼쳐 나갈 것을 결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