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고 현세적이며 감각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인들은 그러한 현대 풍조로부터 자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분명 우리 시대 교회는 너무도 가볍고 현세적이며 또 감각적이다. 그것이 성경의 정신이 아닌데도 아니, 계시의 정신과 반(反)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는 것이 바른 지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 교회는 성경을 말하고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정작 그 정신에서 멀다.
무엇이 성경이 말하는 본질이며 거기에 따르는 삶인지 모든 것이 뒤섞여 버렸다.
만약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을 바르게 알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 땅에서 누리고 얻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땅에서는 고난과 시련을 겪게 되지만 내세에서 전 삶을 통해 대망(待望)하던 주와 함께 말할 수 없는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됨을 믿고 살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정신이며 하나님의 계시의 핵심이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복음을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을 ‘램프의 요정 지니’ 쯤으로 전락시키고 우리의 소원과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세상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고지(高地)를 지향하라고, 사회의 지도층이 되어 전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는 무관하게 내가 판단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그 이름을 가져다 붙이기만 하면 되는가? 정말 그러면 되는가?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믿는 이에게 있어서는 이 땅에서의 위로와 풍요가 최고의 관심사가 된다. 멀리 보이는 하늘도성이나 이 땅에서 ‘전투하는 교회’에 대해서, 그런 삶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나의 부요와 사회적 성공, 가족의 행복과 건강이 주관심사인데도 거기에 하나님 영광을 칠해(?) 놓고는 스스로를 속이고 위로한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욥과 같이 하루아침에 그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많은 재물 다 팔아 주를 따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내가 하나님 이름과 그 영광을 위해 산다고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의 현세적인 풍요와 행복을 약속받거나 누리게 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고 믿는다.
성경은 우리의 눈을 이 땅이 아닌 하늘을 바라보라고 하는데도 우리시대 교회는 우리의 눈을 현세 지향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이란 성품을 이용하여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종교’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그런 설교를 듣고 그런 대화를 나누며 또 그런 책을 읽으며 우리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부패한 본성을 그렇게 많이 거스르지 않고 교회생활을 하며 또 그렇게 가치관이 형성되고 다시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기도의 목적이 무엇인가.
성공과 취직과 대박과 위기관리 때문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의 뜻을 맞추기 위해 발버둥치며 그분의 은혜로 자녀답게 살아가는 ‘방편’이 기도다.
신앙함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 땅에서 복받고 천국가기 위해서인가?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을 알고 죄된 본성을 아파하며 제시된 유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받아 하나님과 베푸신 은혜를 영원토록 즐거워하고 기뻐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죄악된 나에 대한 처절한 절망과 고통이 없는 낭만적인 그리스도인이 참 기독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오늘날 교회는 반쪽짜리 복음에 ‘그을러진’ 기독인들을 양산하고 있다.
분명 그것은 성경의 정신이 아니다.
성경은 아브라함도 이삭도 다윗도 하나님의 도성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고 증거하고 있다. 주 예수 때문에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배척과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세상의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 예수보다 부모나 친척이나 재물과 명예를 더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껍질만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 내 잇속을 차리고 십자가를 들먹여 나를 합리화하고, 양자(養子)됨을 이유로 이 땅의 보화에 집착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우리의 생각도 우리의 가치관도 이러한 왜곡된 복음에 잘못된 신앙에 푹 절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지나치다고 생각되는가.
각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를 살펴보면 그런 시대의 문제점을 볼 수 있다.
또 기독서점에 가보면 그러한 현실을 바로 인식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어떤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지, 사람들의 동선이 쉽게 연결되는 코너에 어떤 종류의 책들이 꽂혀있는지를 보면 현대 교회의 문제점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베스트셀러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성공, 출세, 돈, 명예에 관한 주제의 책들의 몫이다.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보여지는 많은 책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주제를 신앙의 이름으로 덮어놓은 것이 많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본성상 더 끌리는 책들이 있다. 만약 우리시대에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얻게 해 주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은 삽시간에 동이 나고 전무후무한 판매고를 올릴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절묘하게 자극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도 적지 않은 관심을 모을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 부패한 본성을 가진 존재란 점이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는 본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비록 거듭난 존재라 하더라도 그런 쓴뿌리가 남아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일, 그분이 싫어하는 죄를 더 즐기는 본성적 요인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독교계와 세상을 막론하고 잘 안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라 판단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 읽었으면 하는 책들은 어김없이 대박을 터뜨린다. 소싯적에 불량식품에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냈던 것과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음식을 생각해 보자.
몸에 좋은 음식은 그리 맛이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약은 쓴 약이 좋은 약이란 말도 있다.
반대로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어떤가. 아예 입에서 살살 녹는다. 그 유혹을 끊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몸에는 좋지 않다. 거친 보리밥에 김치, 풋고추와 된장은 입에는 별로지만 건강에는 최고다.
운동도 그렇다. 과정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 열매는 달다.
공부는 어떤가. 몸이 비틀리고 똬리를 틀게 만들지만 그 보람은 해본 사람만 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그렇지 않은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우리를 유익하게 해 줄 수 없다. 오히려 힘겹고 어렵게 취한 것들이 우리를 건강하고 유익하게 해준다.
하지만 부패한 본성을 가진 우리들은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럽고 나를 즐겁게 해 줄 것들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몸에 좋지 않음을 알지만 그 유혹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우리시대 베스트셀러들을 보자.
역사를 통해 검증을 받아온 이른바 고전들은 우리시대에 외면당하고 있다. 고루하고 딱딱하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가볍고 얕은 책들이 호평 받는다.
거기에 부귀영화와 성공과 출세를 누리는 비결을 곁들인다면....
오늘 날 크리스천들의 독서습관이나 형태는 어떤가.
우리는 절대적으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책들을 읽어야 한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과 그런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책이 아니라 어렵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
죄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교회에 대해, 십자가에 대해, 신앙고백과 교리에 대해 쓰여진 책들, 그것도 오랜 기독교 역사를 통해 검증을 받아온 그런 책들을 읽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시대정신이 혼합된 복음이 아닌 순수한 복음으로 돌아가 성경이 말하는대로 ‘세상이 감당치 못할’ 교회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 우리 속 깊이 자리잡은 부패한 본성에 충실한 본능을 제어하고, 올바른 하나님의 뜻에 나의 생각과 삶, 습관을 맞춰나가려 노력이 필요하다.
첫댓글 원래 훔쳐먹는 재미가 맛이 있다고 하잖아요. 결국은 쓴맛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이건 내가 전공인데 잘 보셨습니다. 사회도 성굥과 출세와 돈버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교회도 한수 더 뜨서 성경으로 포장을 잘하여 그게 하나님듯인냥 기만하는 애용의 책들이 소위 베스트셀러 진열장에 전시되어 읽히게 하는것을 볼때 마음이 아픕니다. 좀 내용이 묵직하고 현실을 개혁하고 잘못되어가는 사회를 복음으로 바로잡아보자는 고민은 없고 같이 희희낙낙하며 살아가는 교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량식품은 색깔이 알록달록합니다. 설탕대신 인공감미료를 많이 넣어 당도가 높습니다. 불량식품은 가격이 싸고 학교앞에서 구하기도 쉽습니다. 이런 식품에 오랫동안 노풀되다 보면 아토피나 소아암내지는 백혈병등에 노풀되기가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불량복음은 듣기가 쉽습니다. 귀가 즐겁고 부자가 된다는데 싫을 이유도 없습니다. 이런 불량복음에 익숙하여 오래동안 먹게되면 영적인 질병에 노출되며 영적암에 걸려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탄의 하수인이 되기가 쉽습니다.
ㅋㅋㅋㅋ. 기학님이 전공 맞는 것 같습니다. 요즘 잘 지내시죠? 오는 주일 저녁에 뵙겠군요.^^
사람들의 눈는 불량식품에 현혹되기 쉬운 모양입니다. 처음엔 단것처럼 느껴져도 결국에 사망일뿐인데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