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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남구 서초동에서도 교통 중심지인 남부터미널 근처에
위치한 지하 7층, 지상 24층짜리 거대한 빌딩에 이범형 이지매트
회장의 회사가 있다고 했다. 한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내로
라하는 프린터용 드럼 생산업체를 진두지휘했던 그인지라, 강남
요지에 사무실을 내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으리으리한 집무실과 널찍한 사무 공간, 바삐 오가는 직
원들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지매트 여직원이 알려 준 위치를 받아 적을 때부터 고
개가 갸웃거려졌다. 그 큰 빌딩의 지하 1층 14호로 오라는 것이었
는데, 대개 지하층에는 식당이나 잡화점, 미용실 등이 모여 있다
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층 로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내려갔지만 이지매트
라는 회사는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혹시 여직원이 잘못 가르쳐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며 회사 위치를 다시 물
어볼 요량으로 핸드폰을 꺼내들 즈음 건너편 한 점포 입구 유리창
에 ‘(주)이지매트’란 조그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여기저기 매트 원단이 어지럽게 쌓여 있고 홍보 배너가 걸려
있는 사이로 책상 네 개가 비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백전노장 이범형 회장이 구축한 ‘진지’였다.
주력 부대는 충북에, 사령부는 서울에
사무실이 생각보다 작은데요?
“하하, 좀 그렇죠? 그런데 처음부터 이곳으로 오려고 했던 건 아니
었습니다. 집에서 걸어 다닐 만큼 가깝고 해서 이 빌딩에 입주하
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막상 와 보니 자리가 없더군요. 그래서 일
단 좁으나마 이곳에 세를 얻었습니다. 이 자리도 원래는 전시 공
간으로만 쓰려고 했던 것인데, 어쩌다 보니 사무실 겸해서 쓰고
있습니다. 위쪽 사무동에 자리가 나는 대로 사무실을 따로 마련
할 계획입니다.”
그럼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십니까?
“주로 이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충북 음성
에 있는 공장에 내려가 일을 봅니다. 그곳에 생산라인을 마련했
습니다.”
그렇다면 회장님의 ‘진지’는 충청북도에 있고, 여기는 ‘사령부’
라고 보면 되겠네요?
“그렇습니다. 30억 원을 투자해 지은 공장이 금년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습니다. 매트리스 기준으로 월 6,000장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입니다.”
전에 계시던 백산opc도 그 부근에 있지 않았나요? 왜 하필 충
북을 택하신 겁니까?
“말씀하신 대로 아무래도 많은 세월을 충북에서 보내서 그런지 우
선 그쪽으로 발걸음이 가더군요. 인력 수급이라든가 지자체 해외
마케팅 지원 정책, 그리고 제가 현재 무역협회에서 맡고 있는 일도
있어서 충북 음성 땅에 공장을 짓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회장님께서는 무역협회 충북무역상사협의회 회
장님이시기도 하죠?
“네, 좋은 분들도 많고 제 능력도 부족한데 어떻게 하다 보니 연임
하고 있습니다. 도내 무역업계와 함께 충북의 수출을 더욱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무역협회와 충청북도, 그리고 여러
임원들과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맙게도 작년에 충북 지역 수출이
100억 달러를 돌파해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분수대 인근에 100억
달러 수출 기념탑을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던 일이 기억에 남네요.”
백산opc 창업의 주인공 이지매트 이범형 회장에게는 흔히 ‘백전노장’, ‘사라지지 않는 노 병(老兵)’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년 전인 76세의 나이에 자 본금 5억 원으로 이지매트를 창업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에 앞 서 그의 나이 61세 때는 충북 진천에 기업을 세운 바 있다. 프린 터·복사기의 핵심 부품인 드럼의 국산화를 이뤄낸 백산opc의 창 업자가 바로 이범형 회장이다. 하지만 이 회장을 단지 ‘실버 창업의 전형’이라고 부를 수만은 없 는 이유가 따로 있다. 그의 간단치 않은 이력이, 앞서 언급한 수식 어가 어울릴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다. 1933년생으로 서울이 고향인 이 회장은 육군 중령 출신이다. 인 천 제물포고등학교 재학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듬해인 1951 년 육군보병학교에 들어가 6개월간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해 소 대원들을 이끌고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누볐다. 한국전 쟁이 끝난 뒤에는 군인의 길을 계속 걷기 위해 미국육군보병학교 와 병참학교에 잇따라 연수를 다녀왔고, 1968년부터 2년간은 베 트남전에 파병돼 정글을 수색했다. 그러던 이 회장이 어느 날 제대를 결심했다. 중령 월급으로는 1남 3녀의 교육비조차 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고지식하고 원칙을 중 시하는 그의 성품이 윗사람에게는 부담스러웠는지 승진도 잘 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나이 마흔한 살 때인 1974년, 방위산업체인 삼선 공업에 들어가 이사로 일했다. 당시 그 회사는 포탄 신관과 소총 몸 체 등의 소재로 쓰이는 알루미늄합금을 만들었다. 이때 이 회장은 알루미늄의 물성을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프린터 드럼을 만드는 한정밀공업(지금의 백산opc의 전신)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한 일본 친구가 알루미늄으로 만든 프린터용 드럼을 보여 주면 서 개발해 보라고 권유한 게 백산opc 창업의 계기가 됐습니다. 당 시 프린터 드럼 시장은 일본의 미쓰비시와 후지, 독일 AEG, 대만 시노라 등이 석권하고 있었고 국내에는 삼성전기가 버티고 있었 지만, 알루미늄의 물성을 훤히 꿰고 있던 터라 개발에 자신이 있었 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세운 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관련 자료 를 구해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다국적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 에서 명함을 내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고, 제품 개발도 쉽지 않았습니다. 용도가 다른 제품마다 코팅액을 달리 써야 하는 데다 내구성을 높이는 게 생각만큼 간단치는 않았습니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 자금난에 스트레스까지 겹치다 보니 두 번 이나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결국 군대 후배의 출자를 받아 최대 주 주 자리를 넘겨주는 아픔까지 겪었다. 하지만 그에게 ‘오너’라는 자 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목표는 ‘고지 점령’, 제대로 된 프 린터 드럼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죽음과 대면하는 전쟁터를 무수 히 누빈 용사답게 1997년 드디어 자기만의 프린터 드럼을 생산하 는 데 성공했다. 그러고는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두루 갖춘 ‘신무 기’를 장착하고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세계 프린터시장을 쥐락 펴락하는 미쓰비시, 후지 등 일본의 메이저 기업들이 하나둘 이 회 장 앞에 무릎을 꿇었고, 결국 일본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 며 최대의 프린터 드럼 공급업체로 올라섰다. 세계시장에서 누구 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치까지 회사를 끌어올린 것이다. 백전노장, 새로운 전선에 서다 이지매트를 창업할 때가 2009년 7월, 그러니까 회장님 연세가 일흔여섯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모님은 꽤 반대하 셨을 것 같습니다만. “당연히 반대했죠. 세 딸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동안 고생도 할 만큼 했으니 백산opc 주식으로 편하게 노후를 보낼 것 이지, 또 뭐 하러 일을 만드느냐고 극구 말리더군요.” (그러면서 이범형 회장은 백산opc 시절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당시 개발에만 2년 이상을 쏟아부었고 쓰다 버린 코팅액만 수억 원어치에 달했지만 세상에 내놓을 만한 제품과는 거리가 멀었습 니다. 그러다 두 번이나 쓰러졌죠. 그때도 집사람과 가족들은 ‘이 제 그만하라’며 말렸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일류 기업 하나 만들어 보고 죽자’는 생각에 출근길을 가로막는 자식들 을 뿌리치고 회사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편안한 노후를 보내시기는커녕 미국에 있는 외아들까 지 사업에 끌어들이셨습니다. “하나 있는 아들이 백산opc 미국 지사에서 6년째 품질개발과 영업 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제 사업에 합류시켰습니다. 그만큼 이 사 업이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범형 회장의 아들인이우성 부장은 현재 이지매트에서 국내외 영업을 맡고 있다. 그에 게 앞으로 사업이 어떻게 전개될 것 같은지 물었더니 “워낙 다른 분야라 초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극복한 상태이 며 비전이 있습니다”라는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전에 하시던 일과는 180도 다른 분야 아닙니까? “그렇죠. 프린터 드럼은 일반인은 거의 알 수 없고 또 복합기나 복 사기의 부분품으로 쓰여 보이지도 않지만, 이지매트에서 생산하 는 매트리스, 요, 베개, 방석, 쿠션 같은 제품은 일반 소비자들이 매일 접하고 쓰는 생활용품이죠.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어떻게 하다가 침구류 쪽 일을 하시게 된 겁니까? “저도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당시와 비교해 보면 대한민국은 참 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산업 측면에서만 봐도 반도체나 자동차, 휴대폰 같은 분야에서 우리나라 제품이 세계 최고를 자랑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제품임에도 유독 발전이 없었던 분야가 침구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내게는 큰 기회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도 어떤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제가 한때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는데, 그때 ‘언제나 편하게 잠 들 수 있는 침구 소재가 없을까’ 고민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 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일본인 친구가 병원에서 사용하는 수액(주 사액) 주머니의 재료로 쓰이는 폴리에틸렌을 녹여 실처럼 뽑아낸 뒤 그걸 재료로 매트를 만들면 솜이나 스펀지보다 훨씬 부드럽고 탄력 있다고 이야기하는 걸 듣고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그래서 곧 바로 돈을 투자해 신소재 공동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그게 오늘의 이지매트를 탄생시킨 것인데, 수액주머니, 식품포장용기 같은 걸 재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친환경산업이자 자원재생산업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생산과 판권은 일본 기업에게 있는 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제가 지분 투자도 했고 영업력도 있기 때문에 해외 판 권은 모두 이지매트가 갖고 있습니다. 또 제품 일부는 충북 음성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개발은 일본 업체가, 생산과 판매는 이지매트가 하는 방식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지매트의 침구류가 그렇게 새로운 겁니까? “생각해 보세요. 지금 우리 가정이나 병원에서 쓰는 침대의 가장 큰 단점이 무엇입니까? 무거운 데다 오염돼도 사실상 세탁이 어렵 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지매트 제품은 그런 단점을 말끔하게 해소해 줍니다. 매트의 90% 이상이 공기층이기 때문에 무척 가볍 고 바람이 잘 통합니다.
물에 쉽게 빨 수 있고, 금세 마릅니다. 진
드기, 곰팡이 등 유해 세균의 번식도 효과적으로 억제하죠. 뿐만
아니라 환경호르몬,중금속,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 물질이 발생하지 않아 인체에 무해하고 100% 재활용이 가능해 친환경적입
니다. 거기다가 푹신하기까지 합니다.”
과학적으로도 입증이 됐나요?
“일본 화학실험연구원에서 8만 번 이상의 압축 복원 테스트를 실
시해 압축 회복력과 내구성에 관해 인정을 받았습니다. 탄력성이
워낙 뛰어난 데다 완충 능력이 고루 퍼져 있어 요통과 골격 변형을
방지해 주기까지 합니다.”
현재 제품 라인업은 어떻습니까?
“작년 말 기존 매트 위에 까는 토퍼를 비롯해 매트리스, 요, 베개,
방석, 쿠션까지 개발을 끝냈습니다. 내년에는 자동차용 시트 등
침구류 이외 분야로까지 영역을 넓힐 예정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충격을 완화해 주는 산업용 및 도로용 펜스나 아파트 층간 소음을
줄여 주는 방음재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외서 승부 낼 것”
이지매트는 지난 3월 일본 아토피협회에 매트를 공급, 현재 환자
를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아토피 방지에 효과가 있
다는 점이 입증될 것으로 보이는데, 협회에서 제공하는 마크를 획
득하면 판로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그런가 하면 편의점 세븐일레
븐을 보유한 일본 굴지의 유통업체인 이토요카도와의 접촉도 순
조롭다. 조만간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월 10만~50만 달러
정도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8월부터는 일본의 TV
홈쇼핑을 통해서도 소개될 예정이다.
일본 외에도 말레이시아, 대만, 호주, 뉴질랜드, 미국 업체들과
상담을 진행중이다. 세계적인 침구 메이커인 킹코일 말레이시아
법인의 경우 이지매트 제품을 가져다 6개월 이상 시험하고 있는
데, 곧 첫 오더가 올 것으로 보인다. 대만 킹코일과도 접촉하고 있
다. 금년 말에는 북미와 중남미 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지사 및 창
고를 운영할 계획이다.
“전에 사업할 때도 그랬지만, 제가 진출할 시장은 해외입니다.
이지매트가 취급하는 아이템 자체가 매우 보편적이기 때문입니
다. 대한수면의학회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평균 수면 시간이 6시
간 36분인데, 이 말은 우리가 하루의 4분의 1 이상을 침대 매트리
스에서 보낸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시장은 활짝 열린 것이나 마
찬가지 아닙니까?”
해외 마케팅 강화를 위해 이범형 회장은 오는 11월 유럽에서 열
리는 한국 상품전에 이지매트 제품을 직접 들고 나갈 예정이다. 또
매년 초 미국 시카고와 홍콩에서 개최되는 세계 최대의 소비재박
람회에도 부스를 차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해외 영업은 진정성이 생명입니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는 바이
어도 이쪽에서 진심을 갖고 대하면 통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리
고 바이어가 궁금해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은 아무리 사소해도 놓
치지 않고 대응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조그만 약속도 반드시 지
키고, 미팅 장소에는 항상 5~10분 전에 나가 상대를 기다립니다.”
이 회장은 바이어가 원하기 전에 의중을 알아내고 미리 준비한다
는 뜻에서 이런 모든 것을 통틀어 ‘비포 서비스(before service)’라
고 이름 붙이고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래 전에 일본
바이어가 ‘딸을 캐나다로 보내 공부시키고 싶은데 현지 사정을 알
아봐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을 때, 숙소와 아르바이트는 물론
일자리까지 구해줘 두고두고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
다”라며 일화를 소개했다.
국내에서는 4월 초 유명 침구업체인 이브자리와 첫 납품 계약을
맺은 게 눈에 띈다. 또 7월 안에 G마켓, 옥션 등 국내 오픈 마켓에
도 매트리스 등 침구류 일체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지매트의 신소재는 쓰임새가 무궁무진합니다. 탄력과 충격
흡수율이 좋아 자동차·고속철도 시트와 안전 펜스 등에 두루 활
용될 수 있습니다. 올해는 매출 목표 60억 원, 영업이익 20억 원으
로 잡고 있는데 이 중 80%를 해외에서 달성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는 2016년까지 매년 40%의 신장률을 이어가 매출 400억 원, 영
업이익 100억 원이 되면 코스닥에 입성할 것입니다.”
‘이범형=열정’
여든을 눈앞에 둔 나이에도 이범형 회장은 무척 건강해 보였다.
비결이 무엇인지 물으니 6시 전에 일어나는 습관을 오래도록 유
지하고, 스스로 개발한 맨손체조로 몸을 푼 뒤 업무를 본단다. 저
녁에는 러닝머신 위에서 한 시간 이상 걷거나 달리면서 몸을 푼
다. 물론 그가 격무에 시달리고도 새벽이면 거뜬하게 일어날 수
있는 비결은 폴리에틸렌 신소재로 만든 이지매트 매트리스와 베
개 덕이다.
“요즘 들어서는 바빠서 술을 잘 안 하지만, 자리가 되면 언제든
지 한잔할 자신이 있습니다.” 이범형 회장은 이전 직장에 근무할
때도 직원들 회식 자리에 곧잘 어울려 친목을 도모하곤 했다.
이 회장의 책상 위에 빨강 표지의 조그만 책자가 있고, 그 위에
돋보기가 놓여 있었다. 무슨 책인지 물었더니 일본 교세라의 이
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집필한 책이란다. 책의 제목은
‘성공에의
열정
’이었다. 열정(熱情)과 이범형 회장. 참으로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