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들을 만났을 때(눅13:1-5)
2022.11.6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서 156명의 귀한 생명들이 좁은 골목길에서 압사를 당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부상자들도 많이 나왔다. 희생자들 중에는 외국인들도 26명이 있다. 이번 참사로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을 잃은 미국인 스티브 블레시(62) 씨는 뉴욕타임즈(NYT)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을 잃은 참담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냥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수억 번을 동시에 찔린 것 같았다"
“수억 번을 동시에 찔린 것 같았다”는 표현에 깊은 공감이 간다. 그 누구라도 자녀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함께 안타까워하면서 아파하고 있다. 애절한 사연들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이번 일로 어려움을 당한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부상자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란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이번 참사에 대한 책임론이나 비난하는 말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이번 일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일들이 다 그렇듯이 모든 것을 다 예측하고 완벽하게 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내와 언론에서 지적하듯이 경찰이나 해당 기관의 사전대비 그리고 사후에 이를 대하는 높으신(?) 분들의 태도는 너무 너무 너~무 아쉽기만 하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도 있듯이 “설마타령”만 하지 말고 사전에 좀 더 적극적인 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번 참사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사실은 예기치 않은 각종 사고나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만날 개연성을 늘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어려움들을 만난 이웃들을 보았을 때나 또는 자신이 직접 당사자의 처지가 되었을 때, 성도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여러 가지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시간에는 가장 긴급하고 절실한 두 가지를 함께 나누고 기도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역지사지란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사고를 당한 당사자라면, 내 자녀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내가 희생자의 가족이라면 등으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들의 말이나 태도에 조금 더 변화가 생기지 않겠는가? 우리는 희생자들의 가족이 된 심정으로 쉽게 비난하고 정죄하는 말들을 자제해야 한다.
물론 이번 핼러윈 축제에 있던 13만 명이나 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극소수는 덕스럽지 않은 의도를 가졌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경찰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우려했고 단속하려고 사전에 회의도 했었다는 뉴스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그냥 단순히 놀러갔거나 바람 쐬러 나갔다가 변을 당했을 뿐이다. 그 뿐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서 함부로 비난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 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갑자기 극한 어려운 일들(사고, 질병, 기타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럴 때 어떤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죄지은 것이 있어서 벌 받은 것이다”라는 식의 말을 용감하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것에 자신의 짐작을 더 보태서 진짜처럼 퍼뜨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들을 가짜뉴스나 험담이라고 한다. 신자든 불신자든 상관없이 또는 어떤 일을 대하든지 이런 식의 태도는 매우 적절치 않다. 특히 성도들이라면 더욱 더 이런 식의 말이나 태도를 해서도 안되고, 덕스럽지 못한 그런 사람들의 언행에 동조해서도 안된다.
성경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어도, 자신이 죄 지은 것이 없어도 때로는 사고를 만나거나 질병이나 장애나 고난의 문제들이 찾아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한다. 심지어 목회자도 사고를 당하거나 암과 같은 질병을 만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려움을 당한 분들을 향해 너무 쉽게 용감한 말을 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도 이런 점들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은 그 당시의 있었던 두 가지 큰 사건을 실례로 들면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어서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주님의 실례를 든 첫 번째 사건은 빌라도 총독이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었던 일이다(눅13:1-3).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눅13:1)
이 내용은 예수님 당시 유대의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온 몇 명의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내용이다. 왜 학살했는지는 본문에서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만 않지만, 고대 역사학자였던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 로마군대의 장교들은 사소한 일로도 꼬투리를 잡아서 성전에 온 순례자들을 공격하고 죽이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주님은 그들의 죄가 많아서 인과응보 식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셨다(눅13:2-3). 그들은 그냥 억울하게 죽은 것뿐이다.
“2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2-3)
또 주님은 예루살렘에 있던 실로암 망대(탑)가 무너졌을 때, 마침 그 밑에 있던 열여덟 사람이 치어서 죽었던 사건 역시도 동일한 맥락에서 말씀하셨다(눅13:4-5). 이 말씀들은 죄나 믿음의 유무와 상관없이도 누구나 예기치 않은 사고나 재난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주님은 우리들도 언제든지 갑자기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준비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회개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번 이태원 참사나 우리 주변에서 어려움을 만난 분들을 대할 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데서 비롯된다”는 말도 있듯이 무엇보다 입을 조심하고, 이런 일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서 자기 자신의 삶과 영적인 상태를 돌아보고 계기를 삼아야 한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다.
마지막으로 사회가 혼란스럽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들이 긴급하게 가져야할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계속해서 자이언트 스텝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있고, 북한은 연일 미사일과 각종 포를 쏘면서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지금 이 시대 우리 사회는 영적으로 볼 때, 마치 창세기 요셉시대의 칠년의 가뭄기간과도 같다. 강력한 분열의 영이 우리나라를 어두운 먹구름처럼 덮고 있다. 주님이 친히 지적하신 것처럼 마귀 사탄은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다(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거짓의 영이 국민들을 마음을 미혹해서 편가르기와 이간질에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사사건건이 상대편의 말에는 무조건 반대하게 하고, 서로 트집만 잡고, 서로를 적군으로 여기도록 부추킨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TV에 나와서 정치토론을 하는 패널들이 툭하면 좌파, 우파라는 이분법으로 국민들을 편가르기 하는 태도는 도가 지나쳐서 봐주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여기에 각종 이단들과 스스로 스승을 자처하는 자들이나 무속인들은 ‘물들어 왔을 때, 노 젓자’는 식으로 혹세무민하면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이러한 때 성도들은 그 옛날 십팔만 오천 명의 앗수르 군사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을 때, 히스기야가 옷을 찢고, 성전에서 올라가 앗수르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치고 기도했던 것처럼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 밤에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의 대군을 일시에 물리쳐 주셨다.
“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15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왕하19:1-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는 늘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자. 무엇보다 히스기야 왕처럼 간절히 마음을 찢고, 나라를 위해 중보기도하자.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이 이 나라 국민들의 마음과 생각을 덮고 있는 각종 분열의 먹구름을 걷어낼 수 있다. 우리들이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더욱 찬란한 축복의 은총을 강하게 비춰주실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