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성황리 삼층석탑 /전남 유형문화유산
- 전남 광양시 성황동
높이 3.5m. 고려 후기 석탑으로 여긴다. 1976년 일부 파손된 기단부 등을 보수하였다.
2층 지붕돌이 1층과 3층에 비하여 두껍다. 기단 받침돌과 몸돌에 받침기둥과 모서리기둥을 새겼다.
구봉산 용장사, 용장사가 삼층석탑을 돌보고 있다. 석탑이 있는 이곳에 옛날이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기록은 아직 없다.
보광사 / 전통사찰
- 전남 광양시 광양읍 칠성리
순천 송광사 광양 포교당이다.
1965년 취봉(翠峰, 1898-1983)이 구산(九山, 1909~1983)의 수행을 돕기 위해 민가를 개조하여 법당을 만든 곳이다.
취봉스님은 하국전쟁으로 불 탄 송광사를 재건하는데 공력을 드린 분, 공사 구별이 명확하셨고 검소하신 분.
일제강점기 때 일본 유학을 다녀오신 분으로 학승임을알 수 있다.
구산스님은 1969년 송광사가 조계총림이 되었을 때 처음 방장을 맡으셨던 분이다.
지금의 송광사가 있기까지 취봉과 구산, 이 분들의 공력이 지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인터넷 찾아보기로 편집)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 보물
- 전남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높이 380㎝, 기단 너비 240㎝.
받침돌 앞면에는 2구의 인왕상, 양 옆면에는 1구의 사천왕상, 뒷면에는 2구의 공양상(供養像)을 조각했다.
1층 몸돌 각면에 여래상을 조각, 3구는 앉은 자세(좌상)이며 1구는 서 있는 모습(입상)이다.
전체 비례가 알맞고 상층기단과 1층 몸돌(옥신)에 새겨진 조각상에서 장식화의 경향,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긴다.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 국보
삼층석탑과 같이 있었다. 이것은 모형이고 실제는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
중흥사(中興寺)
쌍사자 석등과 삼층석탑이 있는 곳, 신라 때부터 절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말은 있지만 절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알 수 없는 일이다.
옥룡면은 도선국사와 인연이 있는 곳이므로 이 주위에 있는 절이 오래되었다면 도선국사와 연결할 수도 있다.
도선국사도 사료로 '이 사람이다'라고 말 할 수 잇는 건 아니다.
임진왜란 때 승병이 활동하였던 곳으로 왜군이 절을 불 태운 뒤에 폐사로 법문을 잇지 못하였다. 근래 다시 세운 것 같다.
절 규모는 있지만 여러 사람이 다닌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도 이 귀부는 있었다. 어느 고승의 탑비와 승탑이 세워질까?
대웅전 안
백운사(白雲寺) / 전통사찰
- 전남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백운산(해발 1,222m) 900m쯤에 절이 있다. 백운사와 부속 암자 상백운암까지 봤어야 한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게 여유롭게 와야 한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상백운암도 보고 싶다.
이 절도 기록으로 남은 사적은 없는 것 같다. 전하는 이야기로 사적기를 적었다.
도선국사가 이곳에 수행을 하였으며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다시 지었다.
1914년 눌암 손치현이 또 다시 지었으나 1948년 여순사건으로 불에 타버렸다.
1963년 순천 송광사 첫 방장이셨던 구산께서 절을 복구하였다.
대웅전 옆에 있는 건물은 요사같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비구니가 쌀을 말린다. 인사를 하였다.
자신의 모습이 나오지 않도록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혹여 뒷모습이 찍힐 수도 있다고 하니 짜증을 낸다.
우연이라도 자신의 모습이 나오면 안 된다면 짜증을 내기에 당황하였다.
나도 목소리가 커졌다. 그런 사진이 있다면 꼭 삭제하겠다고. 마음이 불편하다. 절도 밉다.
절을 떠날 때 나는 비구니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았다. 비구니도 내게 인사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가 무너졌다.
무량수전, 문이 잠겼다.
안에 이런 목조 불상이 있을 것이다. 복장유물은 따로 보관할 것이고.
모두 성불하면 지구엔 무엇이 남을까? 식물만 남을 것 같다. 동물에게도 불성이 있다면. 나는 성불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개똥같은 세상이지만 이곳에서 살 동안 괴로워 하고 즐거워 하며 살 것이다.
광양 송천사지 회은장로비(光陽 松川寺址 悔隱長老碑) / 전남 유형문화유산
- 전남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
회은(1587∼1672)은 남원 사람으로 자는 응준(應俊), 회은은 호이며 속성은 기씨(奇氏)다.
15세에 출가, 1636년 병자호란 때 스승 각성 벽암(1575~1660)을 따라 승병이 되었다.
1647년 팔방도총섭(八方都摠攝, 승병장)이 되어 남한산성에 큰 공을 세웠다.
1651년에 남옹성(南甕城)을 쌓은 공으로 가의(嘉義)로 승급, 1660년에 자헌(慈憲), 1663년에 정헌(正憲)으로 승진되었다.
1672년에 86세로 입적하였다.
전라도순찰사 박신규(1631~1687)와 광양현감 안시익(1630~ ? )이 송천사 승려들과 협력하여 비를 세웠다.
백곡 처능(1619~1680)이 글을 짓고, 서화가 낭선군 이우(1637~1693)가 글씨를 썼다.
네비게이션을 따라서 오면 바위식당이 나온다. 바위식당 주위가 옛날 송천사 절터였다고 한다.
바위식당에서 계곡을 건너야 한다. 다리는 없다. 물이 적게 흐르면 건널 수 있지만 내가 간 날은 물이 제법 많이 흘렀다.
포기하고 나오다가 길 옆에 오래된 안내판을 보고 좁은 시골길을 따라 가다가 마을주민을 만나서 길 안내를 받았다.
탑 앞까지 가는 길이 있다. 가다가 콘테이너 앞ㅇ서 개와 노는 주민을 만났다. 그에게 또 물었다.
사진 건너편 식당이 바위식당, 바위식당에서 주차장으로 ㅆ는 곳 그 주위가 옛 절터였다고 한다.
회은장로비가 있는 곳은 옛 나한전 터였다고 한다. 비 뒤편 산으로 오르면 또 다른 절터가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곳 토박이인 분에게 들었다. 콘테이너 앞에 계신 분을 나오는 길에 만나 30여 분을 이야기하였다.
비가 있는 곳은 밤밭이다. 땅에 떨어진 꽤 실한 밤을 주웠다.
전남 광양시 전통사찰은 보광사와 백운사 두 곳이며 불교 문화유산도 그렇게 많지 않다.
예전에 성불사(봉강면), 옥룡사지에 간 적이 있다. 광양읍, 봉강면, 옥룡면에서 헤매면(?) 거의 다 본다.
2024년 10월 8일(화)
김해(12시)..마창대교..진주IC..동광양IC..성황리삼층석탑..보광사..중흥사(삼층석탑)..회은장로비..백운사..회은장로비
....보성군 벌교읍에서 잠을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