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적인 FA 계약을 선보인 손시헌. 인터뷰는 FA 계약 전에 이뤄졌고 손시헌의 부탁대로 FA 이후 기사화했다.(사진=이영미, 장소협찬 릴리앤폴)>
손시헌(37·NC)과 인터뷰를 마치고 저녁을 먹었다. 인터뷰 분위기가 좋았는지, 아니면 맛있는 고기만 먹기가 아까웠는지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한다는 소주를 시켰다. 손시헌이. 젊은 시절에는 시즌 중에도 술을 마신 적이 있지만 NC 다이노스로 팀을 옮긴 후에는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가정에 충실하려고요”라고 답한다. 술을 안 먹다 보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차(tea)의 신세계를 맞보고 나면 사우나에 가서도 차를 마시며 하루 종일 수다를 떨 수 있다는 그이다.
손시헌과의 인터뷰는 녹록치 않았던 그의 야구 인생만큼이나 주제가 다채로웠다. 술 한 잔 곁들인 인터뷰라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녁을 마무리했을 때는 손시헌의 부탁도 이어졌다. 자신의 FA 계약이 발표된 후에 기사화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행여 인터뷰가 먼저 나가면 구단에 부담을 줄 수도 있을 거란 우려 때문이었다. 약속대로 12일 만나 진행한 인터뷰를 NC가 손시헌, 이종욱, 지석훈의 FA 계약을 완료한 18일에 게재한다.
베테랑들의 출전 제한, 실력으로 되찾았다
2013시즌 마치고 생애 첫 FA를 선언한 손시헌은 이종욱과 함께 NC로 팀을 옮긴 후 4년간 주전 유격수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2015 시즌에는 35세의 나이에 140경기에 출전하며 건강함을 증명했고 2016 시즌에는 생애 첫 3할 타율도 달성했다. 2017 시즌에는 124경기 출전해서 타율 0.350 안타 122개 등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지난 4년이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크고 작은 위기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가장 최근에 겪은 위기가 2017 시즌을 맞이하기 전이었다. 세대교체를 천명했던 김경문 감독이 이호준, 이종욱, 손시헌 등이 포함된 베테랑 선수들을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명단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2016 시즌을 마치고 김경문 감독의 주선으로 베테랑 선수들과 식사 자리가 마련됐고, 이 자리에서 김 감독은 자신의 새해 구상을 밝힌 터였다. 손시헌은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감독님과 식사를 나눈 후 부모님을 찾아뵙고 상황 설명을 드려야 했어요. 부모님은 지난 십 수 년 간 TV에 나오는 아들의 야구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거든요. 그 낙을 제가 못 지켜드릴 것 같아서 미리 말씀을 드리려 했던 거죠. 부모님께 여쭤봤어요. ‘제가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했으면 좋겠느냐’라고. 아버지는 1년만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어머니는 2년을 거론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합이 3년이니 앞으로 3년간 더 뛰어보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그리고 2017 시즌부터는 제가 자주 TV에 나오지 않더라도 섭섭해 하지 마시라 했더니 아버지가 깜짝 놀라면서 이유를 물으시더라고요. 팀의 리빌딩을 위해선 나이 많은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드렸는데 아버지는 ‘아직 생생한데 무슨 소리야!’라고 화를 내셨어요. 아버지의 눈에는 제가 나이 먹은 선수로 안 보이셨던 거죠.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시려는 부모님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선수로 뛸 수 있는 동안 개인 성적보다는 팀을 위해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손시헌. 그는 내년 시즌에도 팀 주장을 이어간다.(사진=이영미)>
14년간의 몸무게, 73kg 유지
손시헌은 2016 시즌 내내 오른 팔꿈치 통증으로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거의 수비 훈련을 하지 않고 타석에 들어섰을 정도이다. 2016시즌 5월에 시작된 통증이 시즌 종료 후에도 계속됐다고 한다.
“제가 TV를 통해 경기 중계를 다시보기 해도 송구할 때의 표정이 너무 일그러져 있더라고요. 아는 사람들 마다 괜찮은 거냐고 인사를 건네는데 그 말조차 듣기 싫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러다 야구를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요. 시즌 마치고 수술하는 걸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선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술을 감행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결국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했고 그 덕분에 2017 시즌 시범경기부터 개막 이후에도 팔꿈치 통증을 느끼지 못했어요. 너무 멀쩡해서 오히려 불안했을 정도였죠. 그 후론 공 던지는 걸 쉬지 않아요. 쉬면 아플까봐 시즌 끝난 지금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공 던지기를 해요. 공 받아줄 사람이 없을 때는 벽을 향해 던지기도 하고. 가족 여행갈 때도 공 던지기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속 운동을 해서인지 프로 신인 때 70kg이었던 체중이 이듬해 73kg이었고, 지금까지 73이란 숫자를 유지하고 있어요. 프로 생활 13년 넘게 체중의 변화가 없었던 거죠. 그건 좀 자랑할 만 하네요(웃음).”
젊은 시절에는 비시즌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요이 땅’하는 심정으로 승부의 세계를 벗어난 즐거움을 만끽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단기간에 몸을 만드는 어려움을 절감했고, 캠프 시작할 때 뒤처지기 싫어서, 나이 먹었다고 손가락질 받기 싫어서, 그는 지금 거의 매일 공을 던지며 체력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문 감독님 때문에 NC를 선택했었다”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온다. 손시헌은 2016 시즌 종료 후 가졌던 김경문 감독과의 식사 자리가 그를 좀 더 단단한 정신 세계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일단 제 몸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몸이 건강해야지 감독님에게 ‘그게 아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거잖아요. 1차 스프링캠프 명단에선 제외됐던 게 오히려 몸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감독님이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밖에 없다고 하셨지만 젊은 선수들이 제 역할을 못할 경우 그 기회는 우리한테 올 수밖에 없거든요. 미리 좌절할 필요도, 걱정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에 겨울 내내 쉬지 않고 재활 훈련을 하며 몸을 만들었어요.”
손시헌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김경문 감독은 2차 스프링캠프 때 손시헌을 캠프에 합류시켰다. 당시 손시헌은 팔 통증도 없었고, 컨디션도 최상으로 끌어올린 상태였다.
그러면서 한 가지. 손시헌은 큰 깨달음을 얻는다.
“감독님이 베테랑 선수들과 식사하시면서 했던 말씀은 어떤 메시지였어요. 그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길 바라셨는데 우린 출전 기회가 줄어든다는 서운함이 앞선 나머지 감독님의 진심을 외면했던 것이죠. 그걸 뒤늦게 알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감독님과 소통을 위해 나름 노력했습니다. 이유요? 전 감독님을 바라보고 이 팀에 왔으니까요.”
2017 시즌 손시헌은 장타율 0.447 OPS 0.833을 기록했고 유격수 포지션 849⅔이닝을 소화했다.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는 2.55승으로 역대 KBO리그 37세 이상 유격수 최고 기록이다. 손시헌이 얼마나 이를 악물고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맞서 싸웠는지, 그걸 이겨냈는지를 증명해주는 숫자들이다.
NC를 정말 사랑하는 남자
올시즌에는 유독 많은 동료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정재훈, 김성배, 최경철, 차일목, 정성훈 등 그라운드에서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의 은퇴와 방출 소식을 접했던 손시헌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현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NC 다이노스는 제게 매우 특별한 팀입니다. 물론 젊은 시절의 추억은 두산 베어스의 손시헌으로 남아 있지만 NC에선 야구를 보는 시각에 변화를 갖게 해줬어요. 전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의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제가 갖고 있는 타격법이나 수비 관련해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100% 비법을 공개합니다. 철이 덜 들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면 제 자신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그러다 나이를 먹고 팀을 옮긴 후에는 제 자신이 아닌 팀을 먼저 챙기게 되더라고요. 선수로 뛴 날보다 선수로 뛸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지금은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후배들이 예뻐 보이기도 해요.”
손시헌은 NC란 팀을 깊이 사랑했다. 4년 동안 NC에서 활약하며 구단이 선수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에 감동했고 팀을 생각하는 마음은 배가 됐다. 비즈니스 논리가 강한 프로의 세계에서 구단과 동행한다는 느낌은 손시헌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손시헌의 야구에 깊은 공감을 준 선배, 이호준의 은퇴식 장면.>
손시헌의 남다른 FA 협상 전략
18일 오전 발표된 대로 손시헌은 NC와 2년 총액 15억 원(계약금 5억 원, 연봉 5억 원)에 FA 계약을 맺었다. 기자를 만났을 때만 해도 FA 계약을 맺기 전 상황. 이미 구단과 두 차례 만나 의견 조율을 이룬 만큼 재계약은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영업 비밀이 없다는 손시헌은 구단과의 협상 전략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FA는 선수와 구단이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어요. 선수는 지금까지 해온 성적에 대한 보상을 바라고 구단은 미래의 기대치를 계산하게 되고요. 나이 먹은 선수를 젊은 선수들처럼 대우해주길 바라는 선수는 거의 없을 거예요. 모두가 자신의 위치를, 현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전 이번 FA 협상 때 다른 방법으로 진행했어요. 구단에서도 제 성적이 아닌 기대치를 내세웠기 때문에 성적에 대한 기대보다 역할 부문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내년 주장을 맡게 되면서 선수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과 제2의 유격수를 발굴하는데 적극 돕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전 계속 김경문 감독님 밑에서 야구하고 싶고, 다른 팀으로 갈 마음도 전혀 없고, NC에 올인하겠다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때론 선배로, 때론 고참 선수로, 그리고 때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NC가 명문팀으로 가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 NC를 위해 다 줄 준비가 돼 있거든요.”
올시즌 은퇴한 이호준은 한 인터뷰에서 NC의 차기 리더를 묻는 질문에 손시헌을 꼽은 적이 있었다. 손시헌은 이호준 얘기를 꺼내들었다.
“호준이 형이 2015 시즌 마치고 가진 회식 자리에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시헌아, 네가 48타석 무안타를 기록하고 49타석 만에 안타를 치며 KBO리그 기록을 세웠을 때 내가 너였더라면 그 스트레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거야. 숱한 비난이 퍼부어도 묵묵히 지그시 밟고 이겨내면서 올라오는 모습 보고 네가 보통 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때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호준이 형은 시즌 중에는 한 마디 말씀도 안하셨는데 시즌 종료 후에 그 얘기를 꺼내신 거예요. 호준이 형이 제게 ‘강한 놈’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큰 힘이 됐어요. 형이 생각하는 강한 놈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요. 호준이 형은 NC란 팀의 색깔을 만든 분이에요. 저랑 (이)종욱이는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고요. 호준이 형이 어렵게 만들어 놓은 팀 색깔을 잘 유지하고 싶어요.”
손시헌은 ‘손빠’를 자처하고 있는 박민우에 대한 애정도 듬뿍 담아냈다.
“민우는 영리하고 예쁜 후배예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배들이 민우를 예뻐합니다. 예뻐하긴 해도 혼을 많이 냈어요.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데 서투른 모습을 보여 잔소리도 했었죠. 야구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면 긴 시즌을 치르는데 영향을 받게 되거든요. (나)성범이처럼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닌데 사적인 자리는 가급적 내 핑계를 대서라도 거절하라고 말했어요. 이후 제 이름을 꽤 많이 팔았더라고요. 지인들이 만나자고 하면 ‘시헌이 형 때문에 못 나간다’고 하면서. 이후에는 저한테 밥 사달라고 해서 좀 귀찮았지만(웃음) 선배의 조언을 흘려듣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는 후배가 고맙더라고요.”
<박민우와 손시헌의 조합도 NC 팬들의 또 다른 볼거리이다.>
슬럼프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들
손시헌은 인터뷰 중 공개하기 어려운 얘기를 털어 놓았다. 자신이 너무 맨 정신으로만 야구하는 것 같아서 인터넷 검색 끝에 종로에 있는 대한최면심리학회장 유한평 박사를 찾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선수들 인터뷰를 보면 야구에 미쳐서 하는 선수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전 미쳐있는 것 같지 않았어요. 왜 난 야구에 미치지 못할까? 왜 난 맨 정신으로만 야구를 하는지 궁금했고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싶었어요. 마땅히 물어 볼만한 곳이 없어서 혼자 인터넷 검색을 했고 유 박사님을 찾아냈던 거죠. 박사님을 만나 상담했던 건 ‘미친 놈 처럼 야구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야구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야구에 미치고 싶어서, 맨 정신은 내려놓고 미친 상태로 야구하는 걸 느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최면술을 사용하시더라고요. 불을 끄고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눈을 감고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박사님께 많은 말씀을 드렸던 것 같아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둔 상처들을 끄집어냈던 일이 큰 위로가 됐어요. 최면에서 깨어난 후에는 제가 죽을 때까지 보고 싶지 않았던 실책 영상들, 실수했던 장면들을 다시보기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니까요. 실수했을 때 도망가지 말고, 피하지 말고 그 속으로 들어가라는 박사님의 메시지가 치유가 된 시간들이었습니다.”
손시헌은 처음에는 최면 심리 치료를 받은 부분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오해할까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은 숨기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후배들한테 적극 권유하고 있다고.
“올시즌 중반에도 한 번 찾아뵈었어요. FA 재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불안감이 가중돼 상담을 받았더니 또 다른 키워드를 주시더라고요. 덕분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죠.”
<FA 계약을 맺은 NC 유영준 단장과 손시헌.(사진=NC)>
“이종욱과 같은 시기에 은퇴하고 싶다”
영혼의 콤비, 이종욱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종욱도 1년 총액 5억 원(계약금 3억 원, 연봉 2억 원)에 NC와 FA 재계약을 맺었다. 손시헌은 이종욱과 어린시절 약속했던 내용을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 종욱이랑 이런 얘길 했었어요. 우리가 FA 계약을 했을 때 둘의 계약 기간이 차이났으면 좋겠다고. 한 사람이 2년하고 다른 사람이 3년 하면 2년 계약한 사람이 3년 한 사람보다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겠느냐면서요. 두산에서 NC로 팀을 옮겼을 때는 종욱이가 나보다 더 앞서 가고 있었기에 저도 더 힘을 내서 달렸어요. 종욱이랑은 서로 밀고 당겨주면서 같은 시기에 은퇴하고 싶어요. 그게 가장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시헌은 야구하면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 언제였느냐고 묻자 “지금”이라고 답했다. 이전에도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겠지만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최악의 순간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무리 힘든 일이었다고 해도 지나고 나면 그 일들이 자신에게 경험과 배움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제가 대학 다닐 때 2,3년 위 선배가 키가 작아서 프로에 가지 못하는 걸 보고 크게 절망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랬던 제가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입단했고 (정)근우나 (김)선빈이가 절 보며 희망을 가졌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제가 야구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키가 작아서 더 노력했고, 키가 작아서 더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살았어요. 야구선수 손시헌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동의대 졸업 후 작은 키 때문에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 구단들의 외면을 받았던 손시헌. 이후 두산 베어스 테스트를 거쳐 프로에 입문했고 2004년부터 두산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 김재호의 성장과 맞물려 두산에서 설 자리를 잃은 손시헌은 NC에서 제2의 인생을 맞이했고, 여전히 그 항해는 계속되고 있다. 손시헌이 은퇴하기 전까지 꼭 이루고 싶은 꿈은 NC의 우승. 꿈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내년 시즌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 NC를 정말 사랑하는 남자, 손시헌의 꿈을 응원하며...(사진=이영미)>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