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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시험받으신 예수님/마 4:1-11
성경본문 : 마태복음 4: 1-11
○ 시험 받으심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벧후3:16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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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아 타락한 사건 이후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동일하게 마귀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지상의 어떤 사람도 마귀의 유혹에서 제외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들이야 연약하고 죄인들이기 때문에 시험에 들고 악에 빠지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어떻게 마귀에게 시험받을 수 있을까요? 사실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세례받은 이유도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사건이라면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것도 예수님이 약하거나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모든 인간들을 위해 대신 시험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사건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도 시험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당하신 세 가지 시험은 모든 인류들이 동일하게 받는 유혹이요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은 이런 마귀의 시험, 유혹 앞에서 살아갑니다.
다른 하나는 마귀의 시험앞에 아담과 이브는 패배했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이긴 것은 오늘 우리들도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혹시 시험에 빠져 방황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시험에 빠져있어도 예수님을 바라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시험받으시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제일 먼저 보아야 할 것이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시험당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이 동일하게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유혹을 받는 것처럼 예수님도 유혹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민하던 것처럼 주님은 동일하게 고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처럼 힘들어 하셨고 피곤해 하셨습니다. 저는 이 본문이 너무 위로가 됩니다.
저는 어느 날 히브리서4:15절을 읽고 묵상하다가 탄성을 질렀습니다.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받았다고 말합니다. 동일한 문제로 그리고 동일하게 시험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사정을 너무 잘아십니다. 우리와 같은 시험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또 히브리서 2장 18절에 보면,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당하신 것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우리를 돕기 위하여 자청하여 당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들을 긍휼이 여길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같이 물질의 시험도 받아보셨습니다. 우리와 같이 뽐내고 싶은 그런 유혹도 받아보셨습니다. 우리처럼 슬픔도 아픔도 모든 고통을 다 당해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너무 잘 아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친구도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자기를 숨길 필요 없이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우리가 흔히 불알친구, 죽마고우라는 말을 하지요. 감출 것 없이 다 내놓고 다니는 시절에 사귀었다는 말입니다. 또 군대라든지 어떤 힘든 일을 함께 하게 되면 금방 친해집니다. 그래서 전우애, 동지애라고 말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볼 것 다보면서 함께 자라나든지, 힘든 상황에서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면서 함께 보낸 사람들이 주로 속내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됩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면 서로 친해지는 것이 인간관계의 묘미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에 밤을 새우고 여자들은 아이들 이야기에 밤을 새운다고 합니다.
지난 주에 군에 입대했던 아들 흠준이가 귀가조치 당해서 돌아왔습니다. 아토피성 피부염이 너무 심해서 군의관이 돌아가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귀가조치 당한 사람이 한 200명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귀가조치 당한 사람 중에 부산사람이 5명 정도 되었는데 같이 진해에서 부산까지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5명을 다 태워주고 핸드폰도 쓰라고 하고 너무 잘해 주었답니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내내 군대 이야기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언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까?
사람들이 고통 당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고통의 현장에 함께 하는 것을 체험할 때에 주로 하나님을 깊이 체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 멀리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늘 공식적인 관계입니다. 예배 때에만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교회에 나올 때만 성경을 펴고 기도합니다.
반면 어떤 분들에게는 하나님이 친구처럼 가까이 계시고,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다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주 가깝게 느껴집니다. 마치 옆에 계신 것 같고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성경의 증언은 너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너무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죄를 지시고 대신 죽으신 것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을 이해하셨습니다. 인간의 연약성과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와 동일하게 고통을 당했습니다.
저는 신학교 시절에 폐결핵 환자들이 있는 지역에 가서 전도를 하고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서부 시립병원, 그리고 폐결핵 환자를 돕기 위해 세워진 실로암교회에서 친구들과 함께 잠깐 동안 봉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위해 아무리 봉사해도 그들은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했습니다. ‘너희들은 폐결핵도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이니까! 우리와는 다르니까!’
보통 건강한 사람이 암환자에게 전도하면 그렇게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려서 나은 사람이 전도하면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이것을 동질성, 동정이라고 말합니다. 영어단어로는 "sympathy"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다미엔 신부에 대해서 알고 계시지요. 그는 문둥병자에게 전도하기 위해 스스로 문둥병자가 된 신부입니다. 자신이 문둥병자가 되기 전에는 문둥병자들에게 제대로 전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 자신도 문둥병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은 사건은 동질성을 가지기 위해섭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인간의 죄를 다 짊어지셨습니다. 채찍에 맞음으로 인간의 질병의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연약함도 담당하셨습니다. 이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은혜의 사건 뒤에는 시험이 따른다
두 번째 우리는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사건을 통해 몇 가지 놀라운 영적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받고 난 다음 곧 바로 시험받았습니다.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하고 난 다음 곧 바로 광야에서 시험받았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합니다.
은혜받고 난 다음에 시험있고,
구원의 큰 감격이 있고 난다음 고난과 시험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을 수도 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에겐 시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받고도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영적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고전10:12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한편으론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늘이 열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난 다음에는 땅의 비참한 상황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대결했습니다. 1:850으로 엄청난 영적 전쟁에 임한 것입니다. 그는 여기에서 놀라운 승리를 체험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던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장을 보면 엘리야의 승리와 전혀 반대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 체포령을 내린 것입니다.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한 이 위대한 선지자가 죽음이 두려워서 저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차라리 절 죽여주십시오”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이르렀을 때에 아브라함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바로 흉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놀라운 체험과 다른 비참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충만 뒤에 시험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사업이 잘되고 있습니까?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 모든 일이 잘됩니까?
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또 보십시다. 누가 우리를 시험합니까?
바로 마귀입니다.
여러분들은 마귀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성경은 마귀, 사단의 존재에 대해 정확하게 말합니다.
사실 성경외에 어디에도 마귀의 존재를 정확하게 폭로하는 책이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에 대한 두 극단적인 생각을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는 ‘요즘같은 시대에 마귀가 어디있느냐’라는 태도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모든 것을 마귀 짓이라고 해석하는 경우입니다.
둘 다 성경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마귀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쫓겨난 천사장입니다.
공중의 권세잡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항하다가 쫓겨난 천사장입니다.
그리고 귀신들은 이 때 함께 타락한 천사들을 말합니다.
죽은 부모가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한 마귀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고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모르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말미암아 마귀는 완전히 참패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마귀는 저 영원한 지옥에 영원히 갇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마귀의 존재를 부인하면서도 마귀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어디있냐라고 말하면서 귀신을 섬깁니다. 고사지내는 것, 제사하는 것 사주팔자를 보는 것등 귀신을 섬기는 문화가 바로 세상 문화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마귀가 주는 어떤 공격에도 자유합니다. 모든 운명과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유한 사람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마귀의 유혹을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마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마귀도 정확한 때 시험합니다. 정확한 시간에 돈을 내밀고, 정확한 시간에 쾌락을 내밀어 시험에 들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하고 났을 때 먹을 것을 가지고 시험했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요? 그런데 마귀는 바로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시험받기 쉬운 때, 환경적으로 불평할 수 있을 때, 가장 절박한 시간에 마귀는 유혹의 손길을 폈습니다. 마귀는 불신자들을 유혹하지 않습니다. 이미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약점을 알고 그 약점을 통해 시험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유혹을 테스트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으라
그러나 마귀의 시험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마귀의 시험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어야 합니다.
흔히 ‘시험받는다’라고 말할 때 이 시험이라는 단어는 희랍어로 “페이라제인”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유혹’, ‘템프테이션’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험’, ‘테스트’라는 뜻입니다. 보통 유혹이라는 말에는 나쁜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혹은 사람을 좋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유혹은 주로 마귀가 쓰는 것입니다. 반면에 ‘테스트’ 라는 단어는 선한 의도로 쓰인 단어입니다. 테스트해서 더 좋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훈련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요. 주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루시는 방법입니다. 테스트해서 더 좋은 믿음으로 더 좋은 인격으로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가도록 했습니다.
거기에게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더 분명하게 이렇게 표현합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왜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가셨을까요?
성령님이 예수님을 시험받도록 광야로 내 모신 것은 마귀의 시험도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이 오히려 영적인 유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마귀가 성도들을 시험하고 유혹에 빠뜨려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성도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손길이 성도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성도들을 유혹합니다. 그러면 그 유혹속에서 방황하고 갈등합니다. 그러다가 성도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됩니다.
교만이 무너지고 겸손해져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 내가 약하구나, 내 기도가 약하고 말씀의 깊이가 부족하구나"
그리고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귀의 유혹을 이렇게 테스트로 바꾸어 나가십니다. 성도들이 시험당하는 것을 오히려 성도들을 훈련시키시고 영적으로 더 성장하도록 만들어 나가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형제들아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는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그렇기 때문에 삶에서 여러 가지 많은 유혹을 받기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지만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그 시험은 오히려 성도들을 굳게 세웁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시험의 유익을 알아야 합니다.
시험이 없으면 참 좋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이 없으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영적 성장은 없습니다.
시험은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는 중요한 것을 알게 하고 성장하게 합니다.
지식도 자라고 믿음도 자랍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통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무엇이 마귀의 유혹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시험을 통해 떡이 아니라 말씀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사람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기적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시험이 주는 다른 하나의 유익은 시험을 통해 진실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알게 하고 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시험을 이기는 승리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마귀와 싸워라
세 번 째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단의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에게서 시험을 이기는 승리의 비밀을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험을 당할 때 마귀의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마귀가 첫 번째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본문 4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떠나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7절에서도 10절에서도 “기록되었으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악한 사단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비밀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맨 처음 사람 아담과 이브가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은 그 들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단이 이브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라고 했을 때 이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한 것이 아니고 자기 생각으로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 “정녕 죽으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고 자기 생각대로 바꾸었습니다.
결국 여자는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내 생각과 기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을 기도한 것을 착각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연구를 많이 한 것을 말씀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연구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자기 권위와 자기 경험과 자기 생각으로 악한 마귀를 대항한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8:3의 말씀을 정확하고 적절하게 인용하심으로 마귀를 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귀도 어쩔 수 없이 무너지고 쫓기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있느냐입니다.
많은 성도들은 그들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말씀이 없기 때문에 자기 생각대로 판단합니다. 우리는 말씀이 내 안에 깊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말씀에 푹젖어 살아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 생각대로 내 감정대로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안다는 것, 말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오해하기를 하나님이 육성으로 귀에다 대고 “누구 누구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말하는 줄 오해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 그 말씀이 깨달아지게 하기도 하고 생각나게 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려주기도 합니다. 다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또 하나님 말씀으로 말하십니다. 그렇다면 분명합니다. 성경말씀을 조금밖에 모르면 성령님이 내 안에 말씀하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은 조금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도 말씀을 아는 범위안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분명한 것은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아느냐 얼마나 말씀을 깊이 대하고 깨닫느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분명한 경험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저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난다음 저는 매일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성경통독을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 성경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저에겐 두 가지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첫째는 학교 공부가 잘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이 이해되면서 학교 성적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시험칠 때 문제를 읽으면 그 문제의 답이 교과서 몇 페이지 몇째줄에 나오는 것까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 하나님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저에게 주신 것 같습니다. 혹시 교회에서 성경퀴즈를 하거나 성경시험을 치게 되면 상은 제가 다 휩쓸었습니다. 신학교 1학년 때 구약통독 시간이 있습니다. 구덕관 박사님이 이 강의를 맡았는데, 일주일 한번씩 시험을 칩니다.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시험을 치는데 구 교수님의 시험문제를 보면 성경에 나오는 어떤 내용을 묻지 않습니다. 지명과 숫자, 이상한 단어들을 묻습니다. 예를 들면 바알 브올의 사건으로 염병이 일어났는데 몇 명이 죽었느냐? 라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건을 쓰라고 하면 대강이라도 쓸 수 있는데 숫자를 쓰는 것은 맞고 틀리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그 구약통독 시간에 "all A"를 맞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이 잘 납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능력이 되어서 젊은 시절의 유혹을 이기게 하셨고, 무엇보다 핍박과 환란을 이기게 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핍박받으면서 신앙생활하던 제가 모든 핍박을 거뜬하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강 듣지 말고 말씀을 외우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 말씀의 깊이에 들어가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말씀은 결국 마귀의 시험을 이기게 하고 영적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좀 성경통독을 하기로 결단하십시다. 몇 번이라도 좋습니다. 한번 성경을 손에 잡고 읽어보십시오
혹시 시험을 당하거나 어려운 일로 힘들어 하십니까?
오늘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시험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리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제 성경 말씀이 여러분들에게는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 처| 조재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