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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하는 말씀 한 채
-김재언 시집 『꽃의 속도』 읽기
배옥주 시인, 문학평론가
1. 한 잎 한 잎 겪으며 가는 꽃의 속도
‘詩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이 문장은 김재언이 자신의 프로필에 진술한 한 줄 정의다. 그녀는 시와 함께 걸어가는 시 같은 사람이라고 할 만큼 시에 진심이다. 김재언을 떠올리면 시와 동행하는 도반이 떠오른다. 나누고 베풀 줄 아는 더운 손을 가진 김재언은 생태친화적인 신서정시의 세계를 확장해간다. 시인이 창작하는 시세계에 시인의 성정이 녹아있듯, 그녀의 시에는 소외되거나 빈 부분을 메워가는 시인의 인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필자의 어머니는 친구나 이웃에게서 나눔 해온 꽃나무를 살려내는 것을 즐기셨다. 애써 보살피던 모종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나면 “사람 했네”라며 뿌듯해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 했다’는 뜻은 고비를 넘기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사람 한다’는 말은 꺼져가던 들숨을 순하게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니 고단하고 핍박한 요즘 세상에 단비 같은 말이 아닌가. 세상의 힘없고 부족한 누군가가 보살핌으로 용기를 얻게 되는 것. 그러니까 ‘사람을 한다’는 건 나무가 몰아쉰 숨으로 나이테 한줄 쯤 늘일 수 있는 위대한 일이며(「사람을 한다」), 아침마다 강력사건을 접하는 핍진한 일상이 위로받는 일이다. 김재언은 자신이 심은 시의 모종을 ‘사람 하게’ 하려고 작은 과정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김재언의 이번 시집 『꽃의 속도』는 한 잎 한 잎 거름을 하고 햇살에 내놓으며 ‘사람 하’게 키워낸 첫 번째 소중한 꽃나무다. 서두르지 않고 채워가는 김재언의 시 세계를 들여다보면 작고 낮게 밑바닥을 기는 대상들에게 내미는 온기에 닿을 수 있다. 그녀가 발견하거나 그녀를 찾아온 시는 언제나 그녀의 삶 가까이에서 사람을 꽃피우며 내면 사유가 깊어진다. 그녀의 첫 시집 『꽃의 속도』가 차분하게 겪어가는 생의 목소리는 얼마나 달큰한 향으로 피어날 것인가.
2. 가족, 깊은 그늘의 여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인간 구원의 언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는 역사보다 시가 더 철학적이며 고귀하다고 주장한다. 김재언의 시는 생생한 체험에서 발견한 시적 대상이나 사유를 현실에 밀착된 언어로 풀어낸다. 현재적 관점에서 제기되는 유년의 기억은 개인의 특수한 문제를 다루지만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김재언의 시에서 보편적인 생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서사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그녀는 보편적 기억의 대상인 가족을 통해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가족은 양면의 모습을 가진 혈연공동체다. 고달픈 생을 기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어깨이자 가장 큰 상처를 주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존재다. 그래서 위대한 사랑은 가족을 돌보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의 말은 백분 공감이 된다. 김재언의 가족서사에는 부스럼으로 낮밤을 울던 어린 자신을 고치기 위해 민간처방을 찾아 헤매던 부모님과, 시인의 심장을 그리움으로 울렁이게 하는 아들이 있다. 살펴볼 다음 시편들은 유년체험을 회상하는 원형적 이미지의 가족이야기가 생의 허공을 파랗게 채우거나(소나무 그늘 한 채), 반투명 막이 오랜 소리를 매기듯(매김 소리) 편편마다 보편적인 인간 구원의 서정성이 물씬 묻어나는 가족 서사다. 다음 시편들은 가족 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모성에 바짝 다가선다.
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은
포돗빛 짙은 젖꼭지를 가지게 된다
돌아올 수 없는 눈망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천장
모래시계 아랫배가 흘러내리는 동안
푸른 입들을 키운 젖무덤이 얼룩진다
생인손 같은 여덟 개의 동심원이
욱씬욱씬
주름 깊은 물무늬로 번져간다
다리 뻗는 자리가 머리맡이 되는 저녁
암매미 침묵 같은 가슴골 사이로
앙상한 물소리가 스며든다
온몸 늘어진 습식 사우나
느린 숨을 세는 미수米壽의 여자가
물실크로 박음질한 홑이불을 덮고 있다
쪼글쪼글한 생을 한주먹 그러쥔 채
- 「건포도」 전문
위 시는 습식 사우나에 누운 “미수米壽의 여자”에게서 짙은 포도 빛깔의 젖꼭지를 본다. 그 젖꼭지는 “입을 먹여 살리는 사람”의 것이라는 시인의 발견에서 이 시는 시작된다. 사우나 천장에는 물방울들이 매달려 있다. 천장에 맺힌 물방울들은 자신의 곁을 떠나 부재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전이된다. 갓 떨어진 아기꽃처럼 떼 낸다는 건 그리움을 씻어내는 일이듯(「낙화」), 물방울은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의 눈망울로 그렁그렁 맺혀 있다. 사우나에 누워 온몸 늘어진 노인의 젖무덤은 “물실크로 박음질한 홑이불을 덮”듯 땀으로 얼룩진다. 화자는 “푸른 입들을 키”운 늙은 여자의 얼룩진 젖무덤에서 세상 어머니들의 고단하게 번져가는 생의 물무늬를 발견한다. 그 동심원은 “생인손”처럼 “욱씬욱씬” 아릴 수밖에 없는 어머니들의 고통과 인내의 시간임을 시각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원형의 모습을 잃어버린 건포도처럼 쪼글쪼글해진 생을 그러쥔 채 습식 사우나에 누워 있는 “미수米壽의 여자”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와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소환하고 있다. 다음의 시 또한 같은 맥락의 주제를 보여준다.
담요를 밟는다
빨래 위로 북덕북덕 부푼 다섯 살
붉은 통이 태어난다
<중략>
모를 심는 동안
엄마는 다라이 안에 나를 심어 두었다
그늘 이불 안에서
꿀잠을 싹틔우던 아이가
조막손으로 잎맥을 뻗어갔다
아집 속에 갇힌 엄마가
고무통에 몸을 담그고 있다
무릎뼈 흐르는 소리를
물결에 풀어 놓았다
한 올 한 올 헹구는 요단강물
뼈의 울음이 마디마디 붉다
- 「붉은 마법」 부분
담요를 밟아 빨던 화자는 비눗물처럼 부풀어 오르는 다섯 살 유년의 기억을 떠올린다. 모내기를 하던 엄마는 “다라이 안에 나를 심어두”고 모를 심었다. 다섯 살 어린 화자는 그늘이 덮어주는 “그늘 이불 안에서 꿀잠을 싹 틔우”며 자랐다. 유년의 시점은 성인이 된 화자에게로 옮겨간다. 이제 화자의 노모는 “고무통에 몸을 담그”고 있다. 화자의 엄마는 “무릎뼈 흐르는 소리”를 물결에 맡길 만큼 연로하다. 유년의 나를 다라이 안에 심어두었던 젊은 엄마가 고무통에 몸을 담근 노모로 변화하는 시간을 통해 마디마디 붉어지는 죽음을 읽고 있다. “한 올 한 올 헹구”는 물은 죽음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의 ‘요단강물’이다. 고무통 안에서 “뼈의 울음이 마디마디 붉어”지는 붉은 마법이 일어난다. 이 시는 과거와 현재 시점을 넘나들며 어린 화자와 노모의 행위를 재구성하여 죽음으로 달려가는 무상한 생의 순리를 보여준다.
잘근잘근 되새김질하는 소 곁을
내내 맴돌던 아버지 울안
이제 꼬리로 쫓는 쇠파리 여름과
툭툭 터지는 도라지 망울 보면서
잦은 기침 소리를 잊어야 할 때
새로워진다는 것은
생의 허공을 파랗게 채우는 것일까
아버지로 서 있는 소나무가
삭은 그늘 한 채 지우고
슬하의 지붕 위로 이엉을 덮고 있다
- 「소나무 그늘 한 채」 부분
낮밤을 울었다
말복 초입에서 가장자리로 번져가는 부스럼
어린 나를 태우고 양밥이 떠간다
- 「목선」 부분
「소나무 그늘 한 채」에서 화자는 “아버지의 울안”을 허물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곳에는 아버지의 유품 같은 기억들이 가득하다. 이젠 잊어야하는 아련한 추억들로 생의 허공을 파랗게 채워가는 마당 한켠 소나무를 보며 건재했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이제 “삭은 그늘 한 채”를 지우고 슬하의 지붕 위로 이엉을 덮어주는 소나무는 자신의 보호막이 되어주던 아버지의 부재를 위로하는 든든한 한 그루 나무이자 아버지가 된다. 「목선」에서 화자의 부모는 자신이 어린 시절 번져가는 부스럼으로 고통에 울 때 온갖 민간요법을 찾아 발품을 아끼지 않는다.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목선을 치료법으로 사용했던 양밥은 부모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주물呪物이다. 민간신앙은 초월적인 힘에 의해 액을 막는 방편으로 사용되지만, 이 시의 기저에는 부모님의 사랑이 어떤 민간요법보다도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스럼을 앓던 화자는 이제 엄마가 되었다. 화자는 타지에 살고 있는 아들이 오랜만에 설에 온다는 전화 목소리에 단전으로 쏟아지는 떨리는 아침을 맞는다고(「극한 증후군」) 고백한다. 자신이 부모에게 받았던 사랑을 자신의 자식에게 전해주는 내리사랑은 아무리 줘도 마르지 않아 끝없이 퍼주게 되는 화수분이다.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할 수밖에 없다. 위 시편들의 가족 서사는 혈연공동체인 가족이 상호교감과 유대를 통해 서로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위대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전해준다.
3. 시적 진술, 그 깨달음의 세계
김재언 시에서 만나게 되는 시적 진술은 시인이 깊게 탐구한 깨달음이다. 해석적 진술은 객체 중심의 탐구와 비판의 성향을 갖는데, 시적 대상에 대한 집요한 의미 탐구는 내성적 자각의 특징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해석적 진술은 대상에 대한 시인 나름의 의미 해석이 담긴 새로운 세계관이다. 다음 시편들에서는 해석적 진술이 돋보이는 관조적 깨달음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참깨를 푼다
휘휘 조리질하면
밀려나지 않으려는 알곡들이
물살을 파고든다
무게는 바닥에 닿으려는 발바닥의 습성
선에 들지 못한 쭉정이들은
파문 밖으로 밀려나고
뒤척이지 마라
가라앉아라
물은 저울이다
‘여문’이란 태양의 정수리가 붉었다는 말
수태기의 절기를 다진 깨알은
제 속을 단단히 채웠을 것이다
평형에 매달린 낱알들이
기울어진 중심을 버티고 있다
어림의 잣대로 부유하는 호흡들
수면이 잠잠해질 때까지
물의 눈금을 측량하고 있다
- 「물저울」 전문
닳은 눈금의 뒤축을 읽어본다
바닥이 된 무량의 기울기를
<중략>
눈물과 눈금 사이는
무게추로 조율되지 않는 우기
비스듬한 수평으로 멈추어 버린
걸어도 걸어도 기운 저울대 바깥
갈증의늪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 통증으로부터
늑골이 걸린 쪽으로 추를 밀어본다
당겨보는 마음가에 마음을 달아보는 거야
민낯을 저울질해 보는 거지
행幸의 방향으로 기울어진 추가
불행을 밀어내는 거야
평형을 바로잡는 거지
- 「행복 저울」 부분
위 두 시는 저울 이야기다. 물로 만든 저울과 행복으로 만든 저울. 이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물저울」에서 화자는 참깨에서 돌을 골라내려고 “휘휘 조리질”을 하고 있다. 물속에서 조리를 돌릴 때마다 알곡들은 수면 위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물살 아래로 파고든다. 이때 여문 깨알은 제가 채운 든든한 무게로 인해 물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여문이란 태양의 정수리가 붉었”기 때문이라는 시인의 진술은 경험과 탐구로 알게 된 새로운 깨달음이다.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잘 여물었을 때 ‘경쟁’이라는 냉정한 세상 밖으로 밀려나지 않음을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가 물에서 저울질하는 조리질에는 중심을 버틸 수 있는 꽉 찬 알곡과 버티지 못하는 쭉정이들의 비애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행복저울」에서는 물이 저울이 될 수 있다는 발견을 통해 행복을 저울질하는 행복저울을 발견한다. 행복저울에서는 무게추로도 도무지 조율되지 않는 “갈증의 늪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 통증으로부”터 “민낯을 저울질”해보는 현대인의 욕망을 드러낸다. 추가 행의 방향으로 기울어져야 불행을 밀어내고 평형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행을 잡으려고 한쪽으로 쏠리는 욕심은 행복저울이 기울어지게 만들 뿐 오히려 평형을 유지하기 힘들다. ‘행복저울’은 경쟁과 욕망을 부추기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저울에 부여된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얼음장 갈피 따라
꽃술은 차례로 디뎌갈 것이다
아껴둔 말을 쏟아내듯
주춤거리는 곁가지도
빛에 물들 것이다
에두르다 햇빛 기우는 쪽
이슬 흔들리는 표정으로
나비를 기다릴 것이다
어둠이 열릴 때까지
꽃자루에 매달린 벌레도 앉히고
숨결 바라보며
첫사랑은 향기로 닿을 것이다
열지 않으면 꽃이 아니라고
길 멀어도 물어물어
그리움 한 잎 한 잎 디뎌갈 것이다
달빛 깊은 속내 읽어낼 때까지
꽃은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 「꽃의 속도」 전문
위 시 「꽃의 속도」는 표제작이다. 꽃을 피우기까지 견뎌야하는 속도는 한 잎 한 잎 꽃이 겪어가는 생의 과정이다. 꽃이나 삶이나 하루는 차례대로 디뎌가는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나아간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바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숨 돌릴 틈 없이 서두르다 허방도 짚고 건너뛰다 엎어지기도 한다. 아무리 흔들려도 온전히 이슬일 수 있도록 꽃은 “어둠이 열릴 때까”지 사유하는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어차피 겪어야 할 과정들을 지나가야 나비도, 첫사랑도 향기에 닿을 수 있다. 꽃은 “달빛 깊은 속내 읽어낼” 때까지 지레 달려가거나 건너뛰지 않고 “햇빛 기우는 쪽으”로 “그리움 한 잎 한 잎 디뎌”갈 것이다. 다음 시편들은 자연의 물질적 상상력과 교감하는 시적 화자의 삶에 대한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가리지 않았습니다
허방은 앉힌 적이 없습니다
걸려 넘어질 때
심장이 쿵쾅거리면
저를 낮춰드릴게요
얇은 귀가 술렁이면
네 개의 맨발로 막아보겠습니다
<중략>
닦을수록 내력이 깊어지는 저를
등지기라 불러주시겠어요
저녁이면
웃음소리를 태워주는 그네가 되겠습니다
부디,
꽃자리가 되게 해주십시오
제가 바라는 건 나이테를 잊는 일
나무였다면 낮은 숲을 달래고
바람이었다면
유목의 소리를 귀담아 듣겠습니다
- 「의자의 말씀」 부분
목백일홍을 옮겨 심었다
사람 하느라 앓은 몇날 며칠
흐려진 꽃물로 버티고 있다
<중략>
사람을 한다는 건
들숨을 순하게 내뱉는 일
몰아쉬는 나무의 숨이
한 줄 나이테를 늘일 수 있을까
배롱가지에게 휘파람새가 일러주고 있다
자죽자죽 모둠발 앞세우면
짓무른 수피에 흥얼흥얼 새살이 돋을 거라고
- 「사람을 한다」 부분
온전히 대상에게 몰두하는 시에서는 시인의 생목소리가 더욱 잘 들린다. ‘의자’는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들려주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의자의 말씀」에서 ‘의자’의 말씀은 화자의 내면을 대신 전해주는 메타포로 작용한다. 의자가 들려주는 말씀을 듣다보면 숙연해진다. 의자는 자신이 “걸려 넘어”지거나 “벼랑으로 밀”려도 자신을 “낮춰”주겠다거나 “바퀴 달린 낙하산을 펴”주겠다고 공언한다. ‘등지기’가 되어주고 ‘그네’가 되어준다는 의자의 말씀 속엔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수용하는 시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의자는 자신이 나무였던 근원을 떠올리며 나이테를 잊고 낮은 숲을 달래겠다고 전한다. 때로는 바람이 되어 “유목의 소리”까지 “귀담아 듣겠다”는 1인칭 주인공이다. 의자는 타인을 향해 자신을 희생하는 화자의 긍정적 에너지를 대신 책임지고 있다. 납작하게 낮추고 꽃자리가 되어 세상을 밝히고 싶은 화자의 의지가 의자 이전의 나무였던 근원적인 사유로 드러난다.
「사람을 한다」에서 “사람을 한다”는 건 쓰다듬어주고 싶은 생명의 말이다. 이사를 가도 전학을 가도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려면 쉽지 않다. 더러는 적응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이어가기도 한다. ‘사람을 한다’는 건 힘겹게 뿌리를 내리고 실뿌리를 뻗어가는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사람 하기’까지 인내하는 시간은 굳세게 버텨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사람 한다’는 건 고통을 이겨내고 잔뿌리에 심줄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대견한 일이다. 위 시편들의 진술에서 돋는 새살의 의미를 통해 기다리고 내주고 낮추는 김재언의 시적 세계관을 알 수 있다.
4. 욕망의 흘림체들
시의 효용에서 사회비판이나 자아성찰은 중요한 주제다. 김재언의 사자후獅子吼는 타인을 배제하고 이기심과 무관심이 난무하는 현실비판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증언이다. 민초들의 삶이나 폐해를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시, 또는 과몰입된 경쟁과 스트레스로 인한 현대시들은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허상에 대한 욕망과 무책임한 사회의 갈등을 성찰하는 힘을 갖는다. 다음의 「끄다」와 「튀다」는 욕망으로 일그러진 현대인에게 성찰할 기회를 열어주는 시편들이다.
‘끄다’는
거두는 마음에 물꼬를 트는 일
불암산에서 치솟는 불기둥
끌 수 없는 화염이 바람을 태워간다
유튜브 끄고, 말초신경을 끄고, 폰 끄고, 안전문자를 끄고
사각틀에 갇혀
소리를 끄다, 벽을 끄다, 채널을 끄다
물음을 끄는 손가락 갈피가
시시각각 눈맞춤을 비껴가는
너의 99도
결코, 끊지 않을 뒷모습에
뒷모습을 겹치면
순간이 순간을 꺼트리는 사이
멍에를 끄고, 새끼손가락을 끄고, 안부를 끄고
끝없이 부활하는 스팸을 몇 번씩 끄고, 끄고
네게 치우친 어깨의 기울기를 끈다
골똘한 불씨에 능선이 먹히고
화염을 끄지 못한 손끝은 화룡점정
부추기는 바람에 소리는 뜨거워지고
- 「끄다」 전문
귀를 막아도 뜨겁게 쏟아지겠어
눈덩이가 솟구쳐
땅값이 뻥 튀었다는 풍문에
한 끗 터지는 꿈은 가상으로 담겨 있어
물고 온 박 씨를 삼켜 버릴지도 몰라
박이 뻥 튀면 제비는 폭탄이 될 테니
<중략>
뻥튀기 안고 오는 길
튀밥은 자루와 튀밥튀밥 수군거렸어
툭툭 터지는 소문을 뒤집는 거야
허파에 갇혔던 공기를 한 방에 빼보겠어
- 「튀다」 부분
위 두 편의 시에서 끄는 것과 튀는 것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거두는 마음에 물꼬”가 트이고, “귀를 막아도 뜨겁게 쏟아지”니 감당이 불감당이다. 한번 붙은 불기둥은 끝없이 욕망으로 치솟기만 하고, 툭툭 튀는 소문은 뻥 튀긴 튀밥보다 더 헛배가 불러온다. 현대인은 각종 매체와 미디어에 갇혀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 한다. 그저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에 급급해 욕심 가득한 발이 허공에 떠다닌다. 인간을 경쟁구도로 몰아붙여 갈등을 유발하는 산업사회에선 번져가는 산불이 잘 꺼지지 않듯, 튀밥처럼 튀겨지는 소문은 부풀려진다.
왜 우리는 꺼야할 것과 끄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 하는 걸까? 틈만 나면 액정에 갇혀 끌려 다니는 정신과 마음은 화염을 부추기는 바람에 화룡정점으로 치달릴 수밖에. 그저 한끗 터질 일장춘몽의 욕망에 빠져 일삼게 되는 거짓이나 비정상적인 행위들에 일침을 놓는다. 수입산 참깨를 농사지은 참깨라고 파는 할머니의 거짓 흘림체에(「참깨의 흘림체」) 속은 자신을 돌아보거나, 로드킬로 숨이 넘어가는 고라니를 지켜보는 매정한 까마귀들처럼(「44번 국도」) 약자인척 약자를 속이거나 공격하는 행태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5. 더딘 걸음으로 사람 하는
김재언의 첫시집 『꽃의 속도』는 지혜를 탐구하기 위해 더딘 걸음으로 디뎌간 시집이다. 시적 대상을 포획하여 시 세계의 결과물로 빚어가는 언어의 속도는 서두르지 않아서 어깨를 겯고 걷기에 편안하다. 그녀의 내면 사유는 특별히 앞서거나 욕심 부리지 않고 차분하다. 골똘하게 자신을 건져 올린(「손금」) 이번 시집에서 김재언이 추구해온 시적 세계는 시인의 천형으로 연주해가는 언어를 보여준다. 목련화를 주저 앉혀 전설이 된 시인처럼 그녀는 자목련 아래 누워 봄밤의 불씨를 기다린다(「페어웰」). 절망의 순간을 건너고 극한의 고통 끝에서 ‘시’라는 환희를 받을 수 있게 된 그녀. 김재언은 환희의 순간을 온전히 ‘시’로만 완성할 수 있는 천상 시인이다.
김재언은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까지 표현해내려는 시적 이상理想으로 잠재된 세계까지 파고들어 독자와 자신을 위로하고 구원의 빛을 던진다. 언제든 어디서든 시의 언어가 피운 꽃나무들의 걸음에 귀를 기울이며 한 발 뒤에서 겸허하게 발맞추는 김재언. 그녀의 시는 자신이 찾아낸 유려한 언어로 독자를 향한 열림을 꿈꾼다. 김재언의 첫 시집 『꽃의 속도』는 ‘사람을 한’ 시편들로 울창하다. 시인이 극진하게 보살핀 씨앗과 모종은 ‘사람 하여’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시의 숲이 되었다. 거듭 ‘사람 하는’ 생명의 문장들이 악수를 청해오는 유월. 맞잡은 손바닥 사이로 소록소록 초록언어들이 돋아난다.
배옥주 약력
2008년 <서정시학> 등단
2022년 <애지> 평론 등단
시집 『오후의 지퍼들』, 『The 빨강』
평론집 『언어의 가면』
연구서 『이형기 시 이미지와 표상공간』
부경대학교 문학박사,
첫댓글 축하 드립니다 멋진시와 평론 잘 감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