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존대말 사용합시다.(새가정십계4)
성경본문: 잠언 15: 23-26
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24.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
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26.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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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영 목사
아침마다 우리 가정에서 흔히 듣는 말은 "엄마 내 가방 어디 있어?" "내가 네 가방을 어떻게 아니?"하는 대화입니다.
부모님께 특히 어머니에게 반말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처럼 됐습니다. 그러나 반듯한 가정은 부모님께 존대어를 씁니다. 우리나라는 어릴 때 쓰는 말이 유난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아빠", "엄마"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집 장가가서도 부모님을"아빠", "엄마"로 부르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아빠", "엄마"는 존칭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의 말입니다. 서양에도"마미", "대디"정도의 유아용어는 있으나 어려서부터 성인들의 용어를 그대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체불명의 유아용어 천국입니다. 먹지 못할 것을 입에 대면"지지" 그러고 잘못하면 때리는 시늉을 하며"때때"하고 먹을 것을 주면서는"맘마", "까까"하고 똥오줌을 누이면서는"응가", "쉬"라 하고 울음을 그치라 할 때는"뚝, 뚝"하고 잠자리에 들 때는"코오"라 하고 위험한 것에 손을 대면"에비~"하고 입마출 때는"뽀뽀" 손뼉은"짝짝궁" 걸음을 "걸음마"라고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 까지 아기 말을 쓰는 것은 아기의 정서를 어린이 되어서까지 지니고 싶은 응석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이런 의식이 별나게 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칭도, 남편을 "아빠"로 아내를 "엄마"로 부르는 경우가 흔하고 남편의 형제를 "삼촌"으로 아내의 형제를 "이모"로 부르고 남들도"용이 엄마", "순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 호칭을 "엄마"라 하면 촌수가 어덯게 되는 것이고 아내가 남편에게 "아빠"라 하면 그 집 촌수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서양 사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빨리 독립시켜 어른 사회로 끌어올리려 하는데 우리는 아기 사회에 어린이 끼여들어 융화되기 때문에 부모자녀 대화에 어린이의 대화가 연장되어 성장 해서도 부모님께 반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가정마다 자세히 보면 자녀들이 부모님께 특히 어머니에게 존대말을 쓰는경우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이랬어". "저랬어"하는 아기 언어로부터 "이랬어요", "저랬어요"하는 유아적 보통 말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좀 정감이 덜한 것 같아도 사회의 표준말인 "이랬습니다", "저랬습니다"하는 것이 성숙을 나타내는 언어입니다.
오늘 성경말씀도 "말"이 주제입니다.
잠언 15:23-26의 말씀은 악과 선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말을 하는 지혜자를 기쁨을 얻게 하시고, 위로 향하는 지혜자를 음부에서 떠나게 하시고, 교만한 집을 허신다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꾀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디도서 2:6-8의 말씀은 젊은이들을 가르칠 때, 근신하게 하되 먼저 네 자신이 본을 보여 부패하지 않을 교훈을 지키고 바른 말을 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세상사람들로 부끄러워 우리를 비방할 수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권면입니다. 우리는 위에서 경건에 말이 차지하는 큰 비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숙한 말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바른 말을 해야합니다.
디도서 2:8 전반절에 보면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바른말을 하여 책망을 받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사사로운 욕심이나 이익을 얻으려는 말을 한다든지 듣는 이에게 상처를 줄 독소가 있는 말을 한다든지 반발과 분쟁을 일으킬 말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젊은이들에게 주시는 교훈이라는 점에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부모님에 대해 바른 말을 하지 않아 세인들의 빈축을 사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유아기를 훨씬 지나서까지 유아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유아적 정서에 머물러 책임을 가볍게 해 보려는 응석이고 무지이고 무례입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아빠", "엄마"하는 호칭부터 고쳐야 합니다. "이랬어", "저랬어"하는 반말도 고쳐야 합니다. 성인의 경우 "이랬어요", "저랬어요"하는 보통언어도 고치고 "이랬습니다", "저랬습니다"라고 존댓말을 해야 합니다.
여기 바른말을 하라는 뜻은 도덕적으로 바른말이란 뜻도 있지만 형식상에 바른말이란 뜻도 있는 말씀입니다. 군에서 사병들이 지휘관의 훈시를 듣고 "알았나?" 했을 때"알았어요"한다면 얼굴에 주먹이 날아 올 것입니다. 직장 상사가 지시를 했을 때 "알았어요"한다면 눈밖에 날 것입니다. 유아적인 언어는 사회생활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기가 쉽습니다. 직장에서의 유아적 언어 사용은 신뢰를 잃기 쉽습니다. 부모님께 바른말을 사용하여 말의 공경부터 시작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유용한 말을 해야 합니다.
잠언 16:23에 보면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의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말 역시, 관계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존댓말이란 단순히 높임말만이 아니라 존중의 마음이 말이 되어야 하고 기쁨을 드리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말이 유용한 말입니다. 양심에 꺼림 없는 말이 여야 합니다. 양심에 가책이 없는 말이 진실한 말입니다. 공손한 말이 유용한 말입니다. 오만한 말은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가 되게 합니다.
때의 맞는 말이 유용한 말입니다.
주인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얼리사를 소개한 노예 소녀와 같이(왕하 5:1)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에 대노하여 돌아가려는 나아만에게 충고하던 종들과 같이(왕하 8:13) 지혜로운 말로 남편의 집을 구한 아비가일 같이(삼상 23:23)때의 맞는 말이 유용한 말입니다.
시집온 새 색시가"시댁에 가면 무조건 모든 말에 존칭을 붙여서 존댓말을 쓰거라"이르시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시아버지 머리에 검불이 붙은 것을 보고 "아버님 머리님에 검불님이 붙으셨습니다"했다는 우스게 소리가 있듯이 진실, 공손 때에 맞지 않는 말은 존대가 아니라 오히려 무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하심같이 듣는 분이 기쁨을 얻는 말이 존댓말입니다. 존댓말로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높은 영적 목표를 가진 말이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아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위"라는 말은 공간의 위치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도덕적, 영적 높은 목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말에도 단순한 의사전달 만이 아니라 수준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고상하고, 공손하고, 친절하고, 품위 있는 말은 분과 다툼과 분쟁을 잠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연인들에게 만 고상하고, 친절하고 시적인 언어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께도 고상하고, 친절하고, 품위 있는 시적인 말이 필요합니다. 품위 있는 말은 듣는 부모님에게도 행복감을 드리지만, 말하는 자신도 높은 도덕적, 영적 수준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불평, 불만과 무례한 언행은 듣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고 불행하게 해 드리지만 말하는 자신도 음부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유치원에 잘 갔다 오세요", "응" 이 풍경은 우리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경어를 꼬박꼬박 쓰는데 아이는 그 말을 뚝 잘라 반말을 씁니다. 물론, 젊은 엄마는 아이에게 경어 쓰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솔선 수범하는 것입니다. 먼저 솔선 수범하여 아이들을 가르치자는 것이 요즈음 교육방법입니다.
예전에는 대가족제도 아래 3대∼4대가 모여 살아 평상시에 부모님이 웃어른 모시는 것을 보고자라 자연스럽게 경어를 익혔으나 지금은 핵가족이 보편화되어 아이들이 보고 따를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르치기 위해서라 하더라도 부모가 아이들에게 경어를 쓰는 것도 예가 아닙니다. 힘들더라도 말을 배울 때부터 유아언어가 아니라 성인 언어를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를 가르치는 것이요 어른을 존중하는 정신과 자세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정예배와 주일성수와 십일조 생활이 새가정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본이요 하나님사랑 이라면 부모님께 존댓말을 하는 것은 새가정의 인간관계의 기본이요 사람사랑인 것입니다.
글을 읽고 쓸 때쯤이면, 나이, 이름, 말, 밥 등을 연세, 함자, 말씀, 진지라는 존대어휘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함자를 막 부르는 것이 아니라 "무슨자 무슨자 무슨자를 쓰십니다"할 수 있어야 언어를 바로 익힌 사람입니다. 언어가 반듯한 사람은 그 삶의 모습도 반듯할 수밖에 없고 신앙 생활도 반 듯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야고보는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야 3:6) 하였습니다. 존댓말을 통해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고 우리 안에 영적 수준을 높여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