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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40-43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여호수아 10: 40-43
40.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온 땅 곧 산지와 남방과 평지와 경사지와 그 모든 왕을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릇 호흡이 있는 자는 진멸하였으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것과 같았더라
41. 여호수아가 또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사까지와 온 고센 땅을 기브온에 이르기까지 치매
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신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43.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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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5 : 6-11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11.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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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어 드린 여호수아서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남방 지역을 단번에 점령한 이야기입니다.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점령하였고, 큰 성인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조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은 가나안 다섯 나라 왕들이 연합군을 편성하여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편에 서서 저들과 싸우셨기 때문에 저들은 크게 패하여 무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도망가는 가나안 연합군들 위로 큰 우박덩이가 쏟아져 그 때문에 죽은 자들이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추격하는 도중 해가 지지 않도록 기도하자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었던 것입니다. 10장 14절에 "주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이 날처럼 이렇게 들어주신 일은, 전에도 없었고 뒤에도 없었다. 주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을 편들어 싸우셨다"고 하였습니다.
다섯 나라 왕들이 쫓겨가 굴속에 숨었다가 모두 체포되어 죽임을 당했고, 그 성들은 완전히 섬멸되고 거기에 있는 모든 가축과 물건들은 전리품으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11장에 계속되는 점령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북방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여 그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하였던 것입니다.
이 가나안 점령 전쟁은 완전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주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를 가리켜 성전(聖戰, Holy War)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다는 구절이 10장에 두 번(14절과 42절)이나 나옵니다. 신명기 20장 4절에 보면 "주 너희의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싸움터에 나가서, 너희의 대적을 치시고, 너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전쟁 지도자는 하나님과 잘 통하는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되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예언자나 제사장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전쟁을 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 그의 허락을 받아야만 나가서 싸웠고, 그런 전쟁은 언제나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전쟁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편들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죄 하였을 때는 하나님이 이웃 나라들을 불러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시어 그들의 죄를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성전(聖戰)은 하나님께서 계약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신 방편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통하여 구약에서 평화(샬롬)라고 불리는 복지와 번영의 상태로 그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시는 전쟁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목적을 갖고 수행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런 구원하시려는 그의 뜻을 거슬려 대항하는 모든 세력에 대하여 선포되고 수행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전에 참여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요구된 것은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습니다. 군대의 많은 수나 뛰어난 전쟁 무기나 전략을 의지하거나 아니면 이웃 강한 나라의 원군을 요청하여 싸우려 할 때는 하나님께서 뒤로 물러나시고, 그렇게 되면 결국 그 전쟁은 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요청되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성전(聖戰)을 영적인 전쟁으로 해석하여 교회의 투쟁 대상은 인간들이 아니라 질서가 파괴된 우주를 지배하는 악마의 세력들이고, 이에 대항하는 무기는 악한 영들을 물리칠 하나님의 말씀의 검입니다. 특히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그가 친히 싸우실 때 우리는 능히 악한 영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베드로전서 말씀이 그에 해당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그런데 이런 영적 전쟁은 말세가 될수록 더욱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현대 문명이 발전할수록 도덕적인 타락과 더불어 우리의 정신적 영적 세계가 더욱 황폐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영적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이 성전에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갈수록 다양해지는 악의 공격은 우리 스스로의 능력이나 힘으로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그가 친히 싸우실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 우리의 현실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전망하면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세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적에 대한 분별력
먼저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악의 세력에 대한 분별력입니다.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적을 올바로 알아야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이어서 아이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자 두려워진 그 이웃에 있는 기브온이라는 성 사람들이 꾀를 내었습니다. 사신 몇 사람을 선택하여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 그리고 낡아 해어진 옷과 신을 입히고 마르고 곰팡이가 난 빵을 준비하여 이스라엘 진영을 찾아가게 하였습니다. 저들은 아주 먼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소문을 듣고 화친하러 왔다고 하자 그 말에 여호수아가 속아서 결국 그 나라와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먼 나라가 아니라 그들이 점령해야 할 가나안에 있는 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그 성을 진멸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 사람들을 종으로 받아드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악한 영들도 그 변장 수법이 뛰어나서 우리가 올바로 구별해 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조금도 놀랄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거짓 예언자들을 삼가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들"(마 7:15)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양인지 이리인지, 사탄인지 빛의 천사인지 올바로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항상 무기력하게 적의 공격에 쓰러지고 그 속임수에 넘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로 있을 때에는 우리의 적이 분명하여 그 억압과 지배를 벗어나기 위하여 확실하게 기도하고 투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이념 때문에 남북으로 나뉘어졌을 때도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조만큼 적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우리는 적을 분명히 가려내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크리스찬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그의 독재적인 정치에 반대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지지하였다가 4 19 학생혁명 때 부끄러움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군사혁명 이후 군사정권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적을 올바로 분별하기 어려웠습니다. 경제 성장을 주도하였으나 인권을 탄압하고 민주화를 막은 박정희 대통령이 옳은지 틀렸는지, 광주 학살 사건을 주도한 군부세력에 의해 대통령이 된 전두환 정권을 지지해야 하는지 반대해야 하는지, 장로가 정권을 잡은 김영삼 대통령을 우리가 믿어야 하는지 아닌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서 어떤 사람은 반대하고 어떤 사람은 지지하였습니다. 국민의 정부인 현 정권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고 있습니다.
정치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질 문명 전반에 대하여 우리는 분명한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끌려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눈부신 문명의 발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크리스찬들은 참으로 분별하기 어려운 오늘의 현상들 앞에서 영적 분별력을 포기한 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적이 아닌데도 적으로 알고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하는가 하면, 적인데도 아군으로 알고 방심했다가 크게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다원종교 사회 속에 살면서 우리는 타종교를 적으로 간주하면서 저들과 담을 쌓고 그들에 대해서 대단히 공격적인 태도를 견지합니다. 그래서 불상을 깨트린다든지 사찰에 방화를 한다든지 하는 과격한 행동을 큰 신앙의 용기로 알고 있는가 하면, 정말 경계하여야 할 이단 신앙에 대해서는 오히려 방심하였다가 끌려가 피해를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혼란한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정신을 차리고 성령 충만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 역사를 올바로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의를 실현시키고 그의 통치를 이루게 하는 우리의 영적 싸움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 신뢰
다음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시대의 악령들과의 전쟁은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어떤 능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친히 싸우시는 것임을 알고 그 능력을 신뢰하고 거기에 전적으로 의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군대는 훈련받은 군인들이 아니었으며, 저들에게 완전한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는 그 성을 하루에 한 번씩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면서 소리를 지르자 그 성이 무너져 내려 점령하였던 것입니다. 기드온의 3백명 군대 역시 칼이나 창을 가지고 싸운 것이 아니라 횃불과 항아리가 그들의 무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만의 미디안 군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서 몇 번이나 그것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어 밤에 이슬이 거기에만 내리게 하여 달라고 기도를 하였는데, 그 이튿날 보니 과연 양털에만 이슬이 내려 그것을 짜보니 물이 한 그릇 그득하였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반대로 양털을 빼고 마당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달라고 하여 그대로 된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소년 다윗이 물맷돌만 가지고 나가서 거구인 골리앗과 맞설 수 있었던 것도 그에게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머물고 있던 도단 성을 아람 군대가 포위하여 예언자를 잡으려 했을 때 엘리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산에 하나님의 군대 즉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큰 능력에 대하여 전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람 군대가 눈이 멀어 그 예언자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들을 그대로 다 체포하였다가 다시 돌려보내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군사정권 아래서 인권 회복과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필요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역사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밤이 깊으면 반드시 새벽이 온다는 확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여 자멸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 하나님의 역사의 연자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모든 악을 반드시 징벌하시고 곱게 갈아 놓으신다는 확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긴급조치로 붙들려 가고 고난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그가 이루시는 역사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을 지녔던 많은 사람들의 그 인내와 투쟁으로 마침내 군사정권이 그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거대하게 밀려오는 신자유주의 물결과 물질 문명의 탁류 앞에서 우리는 더욱 작아 보이고 무능력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그 거대한 탁류와 같은 세력을 꺾고 여기에 새로운 하나님의 의와 질서를 이루실 성령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우리가 가진다면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가 이 모든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베드로전서 말씀대로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그분의 영원한 영광으로 불러들이신 분께서, 잠시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5:10)
더욱이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이미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 십자가를 통해서 사탄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이 땅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동시에 그의 죽음의 권세까지도 넘어서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승리는 보장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악의 세력이 아무리 거대하다 할지라도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공격해 들어가면 물맷돌 하나에 맥없이 쓰러진 골리앗처럼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우도록 부름 받은 십자가 군병들입니다. 오늘 사면 팔방에서 여러 모양으로 우리를 공격하여 오는 악한 영들을 분별하여 적절하게 이들과 맞서 싸워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의 생활에서 부딪치는 이런저런 근심 걱정에 짓눌려서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가서 싸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탓입니다. 결국 이런 나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거룩한 전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도 하나님께 대한 소명과 확신이 없는 자들은 다 돌려보냈습니다. 우리 자신의 신앙의 삶을 돌이켜 볼 때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십자군으로 나설 확신이 있는가? 우리는 적군을 맞아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조차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약한 신앙의 소유자는 아닌가? 지금 치열하게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만의 구원을 위해 예배당 속에 머물러 있는 비겁자는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장 되시어 우리 앞에 가시는데도 우리는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위하여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이런 우리 자신의 나약함과 비겁함과 이기적인 태도를 회개하고 오늘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떨치고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언제까지나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겠습니까? 훈련받은 대로 일선에 나가 적과 맞서서 용감하게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시대의 악한 영들과 싸우기 위해 교회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 것이고, 이제 훈련받은 대로 적진을 향해 돌격해 나가는 담대한 십자군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여호수아의 군대처럼 진군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은 이 시대에 깨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그 모든 악과 맞서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