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에서 최인호만큼 다채로운 타이틀을 보유한 작가도 없다.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했을 때가 18세, 서울고 2학년 시절이다. 천재 시인 백석과 함께 신춘문예 최연소 당선이다.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시상식장에 나타나자 모두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문학 담당 기자는 황당한 나머지 연신 담배만 피웠다. 신문에는 이름만 내고 작품은 싣지 않았다.
1973년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을 연재한 것은 스물여덟 살 때다. 신문 연재소설 작가 중 최연소다. 한 출판사 사장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간호사들이 연재소설을 먼저 읽으려고 신문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는, 퇴원하자마자 당시로는 거금인 50만원을 주고 출판계약을 맺어 100만 부 이상 판매 히트를 쳤다.
1975년 9월부터 암 투병으로 중단한 2010년 2월까지 34년6개월 동안 월간 샘터에 연재한 <가족>은 국내 최장 연재소설이다. 그의 소설 21편이 영화로 만들어져 이 분야에서도 기록 보유자다. 그중 6편을 서울고·연세대 후배인 배창호 감독이 찍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작 <깊고 푸른 밤>은 아시아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최인호청년문화상’이 제정됐다. 이 땅의 청년문화를 선도한 업적을 기려 문학상이 아니라 청년문화상으로 만들어졌다. 제정추진위원장은 덕수초·서울중·서울고 동창으로 인생의 ‘베프’인 이장호 감독이 맡았다.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한 이 감독은 콘티도 없이 원작 소설책만 들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장면을 찍은 뒤 편집해 대박을 냈다. 당시 서울 인구가 300만 명일 때 46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최인호청년문화상 첫 수상자는 조로증을 앓는 17세 소년의 이야기로 영화화도 된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작가 김애란이다. 김 작가는 최인호를 생각하면 ‘현역’이란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최인호가 1974년 한 일간지에 기고한 ‘청년문화 선언’의 유명한 대목이다. “고전이 무너져 간다고 불평하지 말고 대중의 감각이 세련되어 가고 있음을 주목하라.” ‘꼰대’가 돼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곱씹어 볼 만한 말이다.